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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37화 (37/174)

37화

게이트를 빠져나온 진혁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시청 옆에 위치해 있는 세한보안 인천지사였다.

“수고하셨습니다, 팀장님.”

주연이 고개를 숙이자, 진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도 수고했다.”

“팀장님이 붙여 준 그…… 해골의 도움이 컸습니다.”

주연의 얼굴은 일주일 전에 비해 확연히 지쳐 있었다.

오러를 뿜어낼 수 있는 삼 품의 엽사라고는 하지만, 일주일 내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던전을 토벌하는 건 도무지 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녀를 도와 함께 싸워 준 스켈레톤이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버티는 것도 불가능했으리라.

다행히도, 그 강행군은 이제 끝났지만.

“그럼, 당분간은 휴식을 취하도록 해라. 이제부턴 다른 길드에서 처리할 테니까.”

본래 서가의 영역을 담당하던 길드들이 하나둘 세한에게 돌아오기 시작한 것은 조금 전의 일.

간석길드를 시작으로, 남동구와 연수구의 던전을 담당하던 길드의 장들은 게이트를 나서던 진혁에게 찾아와 용서를 빌었다.

‘그럼, 계약은 새로 체결하도록 하지.’

이런 일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진혁은 미리 준비해 둔 계약서를 내밀었다.

이전보다 좋지 않은 조건이었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진 길드장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가장 처음, 그리고 가장 철저하게 서가를 배신한 미추홀길드를 제외하고는.

“팀장님.”

주연이 자신을 부르자 진혁은 그녀를 바라봤다.

“혹시, 미추홀 길드는…… 어떻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잘 모르겠군. 일이 안 풀리니 도망이라도 가지 않았을까.”

진혁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말을 마친 다음 몸을 돌렸다.

하지만.

‘……뭔가 있어.’

삼 품에 이르러 오감이 고도로 발달된 주연은, 진혁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럼, 설마…….’

주연의 머릿속을 떠도는 퍼즐 조각들이 하나둘씩 짜 맞춰진다.

‘……서진혁 팀장이?’

허나 그녀는 곧 생각을 멈췄다.

‘이건, 내가 알아서는 안 될 일이야.’

상대는 고작 사 품의 엽사.

하지만 그녀의 생각대로 서른 명의 엽사로 구성된 길드를 ‘실종’시킨 게 맞다면.

‘고작 사 품일 리가.’

호기심에 목숨을 걸 만큼, 주연은 어리석지 않았다.

“곧 성녀가 올 거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을 테니 회복을 도와주도록.”

“알겠습니다.”

“난 본가에 잠깐 다녀오지.”

“본가라면.”

주연의 물음에,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를 뵈어야겠어.”

*    *    *

“인천의 일은 이미 들었다.”

회장실에 앉은 세한의 회장, 서강진의 표정은 조금 풀려 있었다.

“제법, 깔끔하게 처리했더구나.”

어쩌면, 세한이 휘청거릴지도 모르는 중대한 사건.

아들의 대처가 조금만 더 늦었다면, 조금의 빈틈이라도 보였다면.

강진은 주저하지 않고 지원을 보냈을 것이다.

그렇기에.

“수고했다.”

자신의 생각 이상으로 활약해 준 아들을, 강진은 진심으로 칭찬했다.

‘아버지의 칭찬이라.’

십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

과거의 자신을 떠올린 진혁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지만,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다.

그것도 잠시.

“그래, 배후가 누구인지는 알아냈느냐?”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굳힌 강진의 눈이 진혁과 마주쳤다.

“네.”

그는 머뭇거리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백선홍의 망령에게서 읽어 낸 기억 중엔, 일을 사주한 자에 대한 정보도 들어 있었으니까.

“윤가의 사주를 받았더군요.”

“증거는?”

“없습니다.”

“……없다고?”

그 말을 들은 강진은 어처구니없어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망령의 기억을 보여 주는 건 어려운 일이지.’

그렇기에, 지난번에도 망령의 기억을 읽는 대신 뒤를 밟아 기억재생기에 저장하지 않았던가.

“그럼, 증거가 없으니 놈들에게 죄를 물을 수도 없겠군. 반쪽짜리 성공이야.”

강진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진혁은 고개를 저었다.

“곧, 놈들은 알아서 틈을 보일 겁니다.”

말을 마친 그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맺혔다.

*    *    *

한국 엽사들의 정점에 서 있는 오대엽사 가문.

그중 한 축을 담당하는 윤가의 가훈은 조화와 균형이다.

자연의 응집체인 정령을 다루는 그들에게, 정령이 거부감을 느끼는 행위는 되도록 피해야 했으니까.

그러나.

“이 망할 자식아!”

윤가의 가주는 오랜만에 금기를 어길 수밖에 없었다.

콰아앙!

마나가 스며든 고성이 사자후처럼 지리산을 울린다. 나무에 앉아 있던 산새들이 고함에 놀라 흩어진다.

고막이 터질 것처럼 아파 왔지만, 마당에 엎드려 있던 둘째 아들, 윤가람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대체, 밖에서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게야!”

세간에는 지리산의 신령이라고 불릴 만큼 인자하기로 소문난 윤가의 가주, 윤이랑.

그가 이토록 불같이 화를 내는 이유는 분명했다.

“자, 입이 있다면 어디 변명을 해 봐라!”

철퍽!

가주의 손에서 날아간 편지 봉투가 가람의 머리를 맞고 바닥에 떨어졌다. 엎드려 있던 그의 눈길이 편지 봉투에 쓰여 있는 글씨로 향했다.

[경고문]

‘젠장.’

상황을 파악한 가람은 고개를 숙인 채 입술을 깨물었다.

‘걸린 건가.’

무엇에 대한 경고문인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인천에서 자신이 벌였던 일 말고는, 딱히 걸고넘어질 구석이 없으니까.

하지만.

‘그놈들, 어떻게 내가 했단 걸 알아낸 거지?’

증거는 모두 없앴다.

통화는 대포폰으로만, 그것도 간략하게만 전달했다.

그 외의 세부적인 지시들은 정령으로 보냈으니, 증거 따위가 남아 있을 리 없지 않은가.

‘백선홍 그놈에게 걸린 정령의 맹약을 깰 수 있다면 모를까.’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다.

고위 마법사만이 사용할 수 있는 정신계 마법조차도 정령의 맹약을 부술 수는 없으니까.

허나, 그 이유가 무엇이건.

당장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의 분노를 피하는 것.

장차 가주를 꿈꾸는 그가, 가주이자 불의 최상급 정령을 다루는 일 품 엽사의 심기를 거슬러서 좋을 것은 없었다.

“죄송, 죄송이라.”

하지만 윤이랑의 분노는 쉽게 꺼지지 않았다.

“죄송한 줄 알면 죄송할 짓을 하지 말았어야지!”

화르륵!

분노와 함께 가주의 등 뒤로 푸른 불꽃이 일렁인다.

계약한 정령이 거부반응을 느낄 만큼, 그의 감정이 격렬해졌다는 증거.

분노한 아버지 앞에서 가람이 꺼낼 수 있는 말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제가 저지른 일이니,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해결이라, 말은 잘하는구나.”

엎드린 그의 등줄기에 아버지의 뜨거운 시선이 느껴진다. 붉게 달아오른 턱선을 타고 땀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그래, 어디 들어나 보자. 이 망신을 무슨 수로 해결할 건지.”

조금 전보다는 누그러진 아버지의 목소리.

가람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제가 이번 일을 진행하면서 조그마한 실수를 저지른 것은 맞지만, 서가 역시 틈을 보인 것은 사실입니다.”

“흠.”

“이 틈을 노린다면, 서가에서도 더 이상 저희 가문을 압박할 수는 없을 겁니다.”

말을 마친 가람은 엎드린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디 마음대로 해 봐라.”

다행히도, 윤이랑은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려 사라졌다.

가람은 아버지가 사라지고 나서도 한동안 꼼짝 않고 엎드려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는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리고.

“꼴좋다, 꼴좋아.”

누군가의 비웃는 목소리.

가람의 고개가 번개같이 돌아갔다.

“그러게, 주제에 맞게 놀았어야지.”

엎드린 자신을 오만하게 내려다보는 장신의 남자가, 그곳에 있었다.

“……형.”

가람의 형, 미르였다.

“하청길드를 이용해? 인천을 먹어? 그런 헛짓거리나 하니까 네 정령들이 중급을 못 벗어나는 거 아냐.”

미르는 동생을 한심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의 뒤틀린 입술에서 터져 나오는 독설이 가람의 심장을 마구 찔러 댔다.

“뻘짓 하면서 가문 이름에 먹칠하지 말고, 가서 정령들이나 잘 돌봐라, 제발.”

그 말을 끝으로, 미르는 몸을 홱 돌려 왔던 길로 돌아갔다.

“……빌어먹을.”

홀로 남은 마당에서 가람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마치 알코올중독에라도 걸린 것처럼,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려 왔다.

“어, 어서…….”

가람은 떨리는 손을 움직여 품속을 뒤졌다. 곧, 품에서 조그마한 약통 하나가 튀어나왔다.

까득!

그는 약통에서 검은색 알약을 꺼내 씹어 삼켰다.

일 분 정도가 지나자, 손의 떨림이 서서히 잦아든다.

“허억, 허억…….”

식은땀이 얼굴과 머리를 흠뻑 적셨다.

가람은 한동안 허리를 숙인 채 숨을 고르며 몸을 진정시켰다.

얼마나 지났을까.

“……후우.”

가람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촤아악!

이내 물의 정령을 부려 몸에 묻은 땀과 흙먼지를 씻어 낸 그는, 물기 하나 없이 깨끗해진 몸을 툭툭 털고는 품속에 약통을 집어넣었다.

“……반드시, 올라 주겠어.”

가주의 자리에.

마당의 흙바닥에 찍힌 아버지의 발자국을 바라보며, 가람은 눈을 빛냈다.

―…….

그 모습을, 눈에 보이지 않는 망령 하나가 바라보고 있다는 건 생각지도 못한 채.

*    *    *

서울에 위치한 구 왕가의 궁궐들 중 하나, 덕수궁.

덕수궁을 이루는 여러 전각 중엔 특이하게도 대리석과 돌로 지어진 서양식 건물, 석조전이 존재한다.

과거 대한제국 최후의 궁궐이자, 현재는 이가의 정예 엽사집단인 착호갑사대가 머물고 있는 곳.

그중, 착호갑사대의 대장이 사용하는 2층의 집무실에서는.

“미추홀길드가, 실종됐다라.”

후우―.

착호갑사대의 장, 이설화가 익문사에서 보내온 문서를 읽으며 곰방대를 물었다.

‘어떻게?’

빨아들인 연기가 그녀의 머리를 맑게 해 줬지만, 머릿속의 의문을 풀어 주지는 못했다.

‘어떻게, 한 거지?’

서진혁이 ‘실종’되었다면, 그녀는 납득했을 것이다.

사 품의 엽사 개인이 길드를 당해 낼 수는 없으니까.

서진혁이 미추홀길드의 습격을 피해 냈다면, 그 역시 납득했을 것이다.

습격당하기 전에 정보를 건네줬으니, 피할 시간은 충분했을 터.

허나.

‘미추홀길드가 ‘실종’되었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고작 사 품의 엽사 개인이, 수십의 엽사가 모인 길드를 압도할 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었으니까.

‘분명, 그 자식이 천둥비룡을 부리기는 했지만…… 병급 괴수라기엔 너무 약했는데?’

천둥비룡이 내뿜는 뇌전은 분명 강력하다.

하지만 진혁이 부리는 천둥비룡은 스스로 뇌전을 뿜을 수 없었다.

그녀가 가진 마나 대부분을 불어 넣고서야 겨우 한 번의 뇌전을 뿜어낼 수 있을 정도였으니, 실전에서 사용하기엔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다.

“……알아내야겠어.”

단순한 호기심의 문제는 아니다.

오대가문이 백 년 넘게 유지하고 있던 힘의 균형이 무너질지도 모르는 일.

서가의 맞수인 이가의 성을 받은 그녀는, 확인해야만 했다.

후우―.

설화는 곰방대를 다시 한번 빨아들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익문사로 간다.’

평소라면 가까이 두고 싶지 않은 음습한 녀석들이지만, 이럴 때에는 도움이 되는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그녀가 집무실을 떠나 복도로 나왔을 때.

“대장.”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설화는 고개를 돌렸다.

그녀를 부른 것은, 그녀와 함께 착호갑사대를 이끄는 부대장.

“무슨 일이지?”

그녀의 물음에, 부대장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상(上)께서 명을 내리셨습니다.”

“……아바마마께서?”

그 말에, 설화의 푸른 아미가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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