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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35화 (35/174)

35화

마나의 가호를 받는 엽사들은 각성한 순간부터 비각성자와는 다른 길을 걷는다.

신체는 마나의 조력을 받아 강인해지고, 정신은 단단해져 외부의 충격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일반인보다 강한 정신과 신체를 가진 것은 모든 엽사들이 마찬가지.

그럼에도.

“대, 대체 이 해골 놈들은 언제까지 튀어나오는 거야!”

이 순간.

숲을 가로지르는 미추홀의 엽사들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빡! 빠각!

“젠장.”

불타오르는 검에 직격당한 해골들이 단숨에 박살 났지만, 검을 휘두른 백선홍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벌써 열 명이나 당했다.’

그것도, 고작 정급 던전 따위에서.

다른 엽사들이 이 일을 듣게 된다면 병신들이라며 비웃을 게 뻔했다.

‘젠장, 그 새끼들도 당해 봐야 알 테지.’

던전의 괴수들은 문제가 아니었다.

고작해야 무급, 정급의 괴수들이 진형을 짠 자신들을 당해 낼 수는 없으니까.

진짜 문제는, 양쪽의 숲속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해골들.

그리고.

“젠장, 또 나왔어!”

“창식이 저 자식, 대체 몇 번을 살아나는 거야?”

뚜둑. 뚜두둑.

한때 동료였던 자신들에게 검을 들이대는 시체.

팔다리가 굳은 듯 부자연스럽게 걸어오는 그들의 몸뚱이엔 이미 수십 개의 칼자국이 어지럽게 나 있었다.

서걱!

물론, 제대로 칼조차 움직이기 힘든 몸뚱이로 괴수 사냥의 달인인 엽사들을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

시체들의 목이 떨어져 나간 것은 순식간이었다.

허나.

“이건…… 현실이 아냐.”

“이게 무슨 던전이야, 지옥이지!”

한솥밥을 먹던 동료를 수없이 베어 낸 엽사들의 정신은 이미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길드장, 벌써 세 시간쨉니다. 이제 그만 돌아가야 해요. 그 새끼 잡기 전에 우리 애들이 먼저 미칠 겁니다.”

부길드장이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철수를 권했다.

지금이라도 돌아간다면, 남은 엽사들의 목숨은 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디로?”

“네?”

“어디로 도망가야 하지? 숲속? 나무로 막힌 통로?”

길드장이 반문하자, 그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숲속은 안전하지 않다.

두려움에 숲속으로 도망친 엽사들이 시체로 돌아와 칼을 들이민 뒤로, 그들은 숲으로 들어가는 것을 포기했다.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것 역시 마찬가지.

지금처럼 해골과 시체들의 습격이 계속된다면, 이미 지쳐 버린 엽사들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다.

허나 선홍의 반응은 달랐다.

“어차피, 이대로 돌아가면 끝이야.”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여기서 돌아가면, 윤가의 신임을 잃은 미추홀길드는 그대로 몰락할 게 분명하다.

그리고 길드장인 자신의 경력 역시도.

“그 새끼만, 그 새끼만 잡으면 돼. 그 새끼만 잡으면…….”

답은, 그것뿐이었다.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백선홍은 초점 잃은 눈으로 중얼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젠장, 길드장도 맛이 갔어. 나라도 애들을 챙겨야…….’

그 모습을 보며 부길드장이 살 구멍을 찾던 그때.

“놈이다!”

길드장의 외침에, 엽사들의 시선이 직선으로 뻗은 길 너머로 향했다.

그러자, 놈이 보였다.

“키이이이…….”

푸른 비늘을 두르고 금빛 뿔을 머리에 꽂은 거대한 괴수.

“처, 천둥비룡이다!”

“놈이야! 놈이 나타났어!”

천둥비룡이 나타났다는 건, 그들의 목표가 눈앞에 있다는 뜻.

풀려 있던 동공이 조여들고, 지친 몸에 힘이 들어간다.

그들이 전투대형을 갖추기 무섭게, 천둥비룡의 머리 위에 한 남자가 올라섰다.

“세 시간이라. 생각보다 늦었군.”

서진혁.

서가의 장남이자, 오늘 그들이 죽여야 할 목표.

“이 악마 같은 자식…….”

저놈.

분명 저놈이다.

해골들을 보내고, 동료의 시체를 되살려 보낸 개자식.

놈이 재수 없는 면상을 들이댄 순간, 백선홍의 눈이 분노로 활활 타올랐다.

“아직 욕할 힘은 남아 있는 모양이군.”

“널 죽일 힘도 남아 있다, 이 개자식아.”

“그래, 그래야지.”

원색적인 욕설에도 진혁의 표정은 담담했다. 동시에, 그의 오른손이 천천히 들어 올려졌다.

그 순간.

딱딱! 따따딱!

뚜두두둑!

숲속에서 튀어나온 망자 무리들이 엽사들의 퇴로를 막았다.

“해, 해골이다! 해골들이야!”

“빌어먹을, 또 시체들이…….”

열 구의 시체와 서른의 해골.

수적 열세임을 파악한 엽사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기회다.’

길드장, 백선홍을 제외하고는.

‘퇴로만 막은 걸 보니, 놈은 승리를 확신하고 있어.’

확신한 자는 자만하고, 자만한 자는 틈을 보이기 마련.

기습을 가하기엔 최적의 환경이었다.

“그럼, 이만 끝내지.”

쿵! 쿵!

진혁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천둥비룡의 거체가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파직! 파지직!

동시에, 크게 벌어진 천둥비룡의 아가리에서 검은 스파크가 번뜩였다.

좋지 않은 징조.

‘조금만, 조금만 더 와라…….’

백선홍은 긴장한 표정으로 품속에 든 마비침을 만지작거렸다.

‘무지개말벌의 마비침.’

병급 괴수의 거죽을 뚫을 수 있고, 맞힐 수만 있다면 을급 괴수조차 무력화시킬 수 있는 마비독이 발라진 보구.

이 녀석이라면, 분명 틈을 만들어 줄 것이다.

‘한 발짝만, 더…….’

기회를 노리는 그의 눈빛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이윽고.

쿵!

자신을 향해 다가오던 천둥비룡이 한 걸음을 더 내디뎠을 때.

‘지금!’

휙!

체내의 마나를 힘껏 끌어낸 선홍의 손에서, 검은색의 독침이 쏘아져 나갔다.

마나의 힘이 더해져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날아가는 독침의 목표는, 비늘로 보호되지 않는 천둥비룡의 뱃가죽.

투척이 그의 특기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천둥비룡 정도의 크기라면 아무렇게나 던져도 맞힐 자신이 있었다.

곧.

푸우욱!

독침이 천둥비룡의 뱃가죽에 깊숙이 박힌 그때.

“됐다!”

선홍은 환호성과 함께 검을 뽑으며 달려 나갔다.

화르르륵!

그의 검에서 피어오르는 것은, 불의 하급 정령이 뿜어내는 태초의 불꽃.

괴수의 피륙도 손쉽게 태워 버리는 이 불꽃이라면, 저 위에서 재수 없는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서진혁도 무사하지는 못하리라.

“단번에 끝내 주마!”

마비독이 온몸에 퍼진 천둥비룡이 바닥에 주저앉는 순간.

달려들어 검 한 번만 휘두르면 모든 것이 끝난다.

승리를 확신한 백선홍은 손에 쥔 검에 힘을 꽉 쥐었다.

하지만.

‘……뭐지?’

뭔가, 이상했다.

‘왜…… 쓰러지지 않지?’

천둥비룡의 덩치가 거대하다고 하지만, 그가 던진 독침의 마비독은 을급의 괴수도 단번에 쓰러트릴 수 있는 극독.

지금쯤이면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것이 정상이었다.

허나.

파직! 파지직!

주저앉기는커녕, 천둥비룡의 입에 담긴 검은 스파크는 더욱 거세질 뿐.

‘왜, 왜지?’

어째서, 독이 안 듣는 거야?

어느 순간, 그는 달려들던 발걸음을 멈추고 천둥비룡을 올려다봤다.

살아 있는 존재라면 심장근육조차 멎게 만드는 극독.

하지만 놈은 여전히 멀쩡하게 움직인다.

시체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아.”

시체구나.

해골도, 천둥비룡도.

다 시체였구나.

“이런 개…….”

모든 사실을 깨달은 순간, 선홍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너무 늦었지만.

콰르르릉!

세상을 검게 물들이는 묵빛의 번개.

그것이, 백선홍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    *    *

오대가문 중 하나인 윤가는 경상도와 전라도를 자신들의 영역으로 삼았다.

드넓은 평야에 수많은 강줄기가 흐르고, 그 사이를 차령산맥과 태백산맥이 교차하는 땅.

에피로나에서 게이트를 통해 넘어온 정령들이 거주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으므로.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런 변두리 땅에서만 살 수는 없지.”

지리산 한복판에 위치한 윤가의 본가.

본가를 이루는 수많은 기와집 중 한 채에서, 남자가 벽에 내걸어 둔 지도를 바라보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한반도 전체를 묘사해 놓은 지도.

그 위로, 누군가 펜으로 표시를 해 둔 듯 알록달록한 색의 도형들이 어지럽게 그려져 있었다.

그중 남자, 윤가람의 눈이 한 곳에 고정되었다.

한강 이남의 서울과 경기도, 인천 일부를 크게 묶은 노란색의 동그라미.

오대엽사 가문 중 하나, 서가의 영역이다.

“인천이 무너진다면, 인천과 가장 가까운 서가도 무사할 순 없지.”

물론, 세한을 완전히 무너트릴 수는 없을 것이다.

백 년을 넘는 시간 동안 쌓아 온 서가의 기반은 그만큼 튼튼했으니까.

그러나 기반을 흔드는 것 정도는 가능할 터.

‘그러면 우리 윤가도 한강에 손을 뻗을 수 있겠지.’

고대부터 한반도에 세워진 모든 국가들이 그랬듯, 이 땅을 지배하고자 한다면 한강을 손에 넣어야 한다.

서가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갈 수만 있다면, 윤가의 힘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해지리라.

‘그러면 내가 가주가 되는 것도 꿈은 아니야.’

서가 휘하의 길드들을 흔들었고, 그중 하나를 포섭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단 하나뿐.

‘설마, 그놈들이 아무리 머저리라도 이걸 못 하진 않겠지.’

서가의 장남이라고는 하지만, 고작해야 사 품의 엽사일 뿐이다.

서른 명의 베테랑 엽사를 혼자서 이길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애초에, 실패한다는 가정 따위는 그의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슬슬, 처리할 방법을 생각해야겠어. 그 버러지들에게 진짜 윤가의 성을 줄 순 없으니.’

이미 인천을 손에 넣기라도 한 듯, 가람은 즐거운 미소를 지으며 미래를 상상했다.

“대주님.”

누군가가 즐거운 상상을 방해하기 전까지는.

“무슨 일이냐? 분명히 방해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오랜만의 휴식을 방해받은 가람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문을 연 대원을 바라봤다.

하지만.

“서, 서진혁이 던전 밖으로 나왔다는 첩보입니다.”

“……뭐라고?”

대원의 보고를 들은 가람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 그럼 그 버러지들은?”

“……아직 소식이 없습니다.”

“그게 무슨…….”

윤가람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부하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알았지만, 받아들이는 것은 또 다른 일.

“그 버러지들이, 서진혁 하나를 못 잡았다고?”

가문에도 속하지 못한 버러지라지만, 서른 명의 엽사다.

서른 명.

마나를 다룰 수 있는 서른 명의 엽사들이, 고작 한 명을 당해 내지 못했다.

‘왜? 천둥비룡은 문제가 아니었을 텐데, 어째서?’

이해할 수 없었다.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니 낭떠러지에라도 떨어진 듯 머리가 굳어 버린다.

“허, 허억!”

“대주님!”

“야, 약을…….”

가람이 손을 부들부들 떨자 대원이 놀라 소리치며 품에 가지고 있던 약병을 건넸다.

까득!

가람은 떨리는 손으로 약병에 든 검은 환약을 씹어 삼켰다. 동시에 손의 떨림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이윽고, 떨리는 몸을 진정시킨 그는 벌게진 눈을 부릅뜬 채 부하를 바라봤다.

“……서진혁, 그 자식에 대한 정보를 더 모아 와. 할 수 있는 건 모조리 동원해서!”

“예, 예!”

뿌드득!

“감히…….”

당황한 부하가 도망치듯 뛰쳐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가람은 이를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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