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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34화 (34/174)

34화

서강진.

세한그룹의 회장이자 다섯 가문의 수장 중 하나.

환갑을 훌쩍 넘는 나이임에도 녹슬지 않은 육체와 두뇌는 거대한 세한그룹을 이끌기에 부족함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지만.

“회장님.”

그를 바라보는 비서실장, 건일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이대로는 위험합니다.”

회장의 건강 문제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일 품의 경지에 올라 마나의 수호를 받는 자는 노화조차도 느려지니까.

“단 네 명의 인원만으로 인천의 그 넓은 영역을 담당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지금이라도 지원을 보내야 합니다.”

말을 마친 건일의 손에 들린 것은, 세한그룹 전체에 소속되어 있는 엽사들의 목록.

“엽사를 세한보안에서 차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다른 자회사에서라면 가능합니다.”

세한그룹의 엽사가 세한보안에만 소속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세한금속을 비롯한 세한의 자회사들은 대부분 엽사와 관련된 사업에 종사하니, 그 직원들 중에는 당연히 엽사가 존재할 수밖에.

“전략팀의 계산으론 일간 30명의 인원을 추가로 파견할 수 있다고 합니다.”

경비원, 운전수, 심지어 연구원까지.

그들을 토벌에 차출하는 건 분명 무리한 일이긴 했지만, 불가능한 일은 결코 아니다.

“회장님, 결정을 내리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한 전체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회장을 설득하려는 건일의 표정은 간절했다.

게이트 크러시가 벌어진다면 그 손해는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할 터.

늦기 전에, 문제의 근원을 틀어막아야 했다.

허나.

“조 실장.”

“네?”

“자네는 걱정이 너무 많아.”

정작, 보고를 듣는 강진의 표정은 태평하기 그지없었다.

“오늘이 벌써 일주일째로군. 지금 위험단계에 들어선 던전은 몇 개지?”

“……없습니다.”

“그러면, 못 해도 이틀은 아무 문제도 없겠군.”

“그, 그럼…….”

“일주일을 버텼다면, 일 년도 버틸 수 있어.”

“회장님, 하지만.”

대답을 들은 비서실장이 말을 더듬자, 강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주의 단계에 들어선 던전이 보이면 그때 다시 이야기하지. 이만 가 보게.”

“……알겠습니다.”

마음을 굳힌 회장 앞에서, 건일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개를 숙이고 돌아가는 것뿐이었다.

“흠.”

회장실에 홀로 남은 강진은 턱을 쓰다듬으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썩 마음에 드는 방식은 아니긴 한데…… 나름 잘하고는 있단 말이지.”

그의 시선이 문 위쪽, 거대한 디스플레이로 향했다.

화면 위에 떠올라 있는 것은 인천의 남동쪽을 밝히는 지도와, 그 위에서 반짝이는 던전 게이트의 현황.

‘깔끔하군.’

이미 수차례 보고를 받은 강진은 인천의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단 네 명으로 구성된 토벌 3팀.

그리고 그들을 지원하는 괴수들과 정체불명의 해골들.

‘아마, 진혁이 그놈의 짓이겠지.’

서가의 전통을 부수고 있지만, 동시에 서가의 현재를 지키고 있었다.

십 년 만에 나타난 돌연변이 같은 녀석을, 자신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어디, 보여 봐라.”

네가 걷고자 하는 길을.

화면 속 지도를 바라보며, 강진은 눈을 빛냈다.

*    *    *

던전에 들어선 미추홀길드의 엽사들이 처음 마주한 것은, 게이트 너머로 펼쳐진 울창한 숲.

“……쥐새끼처럼 숨어들어 갔군.”

인기척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 숲을 바라보며, 백선홍은 입술을 비틀었다.

“아무래도, 정보가 샌 모양인데요. 낌새가 좋지 않습니다, 길드장.”

그러자 그의 옆에 서 있던 부길드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나도 알아, 저길 보라고.”

선홍은 손가락을 들어 숲의 가운데를 가리켰다.

시야를 가득 채운 수해(樹海) 사이, 곧게 뻗어 있는 일직선의 길.

박살 나고 불탄 나무의 잔해들과 길을 둘러싼 나무들 사이에서 반짝거리는 불씨는, 누가 보더라도 인위적이다.

오랫동안 던전을 토벌해 왔던 선홍은 그 의미를 쉽게 알 수 있었다.

“제발 이쪽으로 와 달라고 빌고 있잖아. 딱 봐도 함정이야.”

“그럼, 돌아가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부길드장이 내키지 않아 하자, 선홍은 피식 웃었다.

“너, 쫄았냐? 고작 정급 던전인데?”

“쫄긴, 누가요.”

“우린 서른이고, 상대는 사 품 엽사에 정급이나 무급 괴수 몇 마리야. 그게 무서워서 도망치는 게 쫀 거지 뭐가 쫀 거야?”

대담한 표정으로 부길드장을 비웃은 선홍에겐, 진혁의 생각이 손에 잡히는 것만 같았다.

“분명히, 놈도 너처럼 우리가 겁먹고 돌아가길 바라는 걸 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대놓고 수상한 함정을 팠을 리가 없어.”

“그럼, 함정이면 어떡하고요?”

“그래 봐야 적은 한 놈이야. 우리 서른 명 전부를 덮칠 만한 함정을 팔 수 있을 리가 없어. 천둥비룡이 문제긴 하지만.”

말을 멈춘 선홍은 품에서 작은 독침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 들었다.

윤가로부터 극비리에 받아 낸 병급의 보구, 무지개말벌의 마비침.

“이거 한 방이면 충분해. 로봇이나 고렘이라면 모를까, 살아 있는 놈이라면 을급 괴수도 꼼짝 못 하게 만드는 물건이지.”

“그, 그렇다면.”

그제야, 부길드장은 납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선홍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는 기다리던 엽사들에게 손짓했다.

“자, 빨리 끝내고 회식이나 하러 가자!”

“와아아아아아!”

함성을 내지른 미추홀의 엽사들이 무기를 뽑아 들었다. 길드장인 백선홍을 선두로, 그들은 숲을 갈라놓은 대로를 향해 전진했다.

“봐 봐, 별거 없잖아?”

선홍의 말대로, 적의 저항이나 기습은 없었다.

간간이 인간의 살 냄새를 맡은 정급이나 무급의 괴수들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서른 명의 엽사들 앞에선 고깃덩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까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천둥비룡만 조심하면 된다고. 그러니까 사주경계 똑바로 해라!”

“예!”

믿음직스러운 길드장의 말에 엽사들의 목소리도 한층 커졌다. 기세등등해진 선홍의 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길드장님!”

이상한 일은, 그때 일어났다.

“입구가…… 사라졌습니다!”

“뭐?”

맨 뒤에서 퇴로를 살피던 길드원의 외침에, 선홍의 시선이 황급히 뒤로 돌아갔다.

“이 자식, 나무로 길을 막았어.”

그들이 들어왔던 입구가, 언제 쓰러졌는지 모를 나무 수십 그루로 막혀 있었다.

“길드장, 퇴로를 막은 걸 보니 뭔가 있어요. 지금이라도 후퇴해야…….”

옆에서 상황을 살피던 부길드장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무슨 소리야?”

하지만 선홍의 마음을 꺾을 수는 없었다.

“한 놈, 한 놈만 잡으면 돼. 그러면 모든 게 끝난다고!”

여기까지 왔는데, 고작 사 품의 엽사 하나가 무서워서 돌아갈 수는 없다.

이미 그의 눈앞엔 윤가의 이름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그때.

딱딱!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왔다.

딱딱딱!

위턱과 아래턱이 서로 거세게 부딪치는 불쾌한 소리.

“괴수다, 경계를 강화해!”

“괴수가 이런 소리를 낸다고요?”

“그럼, 던전에서 나오는 게 괴수지 뭐겠냐?”

생전 처음 듣는 소리에 엽사들은 당황했지만, 그들의 몸은 이미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곧게 뻗은 길을 중심으로 타원형으로 늘어선 엽사들을 향해.

타앗!

무언가가 달려들었다.

“뭐, 뭐야, 저게?”

수십 년 동안 괴수의 숨통을 끊어 온 그들조차도, 생전 처음 보는 형태의 괴수가.

“해, 해골이다! 괴수가 해골처럼 생겼어!”

“해골?”

“해골이라고?”

손에는 뼈로 만든 병장기를 쥐고, 뻥 뚫린 두 개의 눈구멍엔 눈 대신 푸른 불꽃을 담은 해골들.

괴수는커녕, 살아 있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 생김새였지만.

딱딱딱딱!

놈들의 손에서 번쩍이는 칼날만은 진짜였다.

“커, 커헉!”

해골을 마주한 엽사 중 하나가 입에서 검은 피를 토했다.

어느새, 그의 가슴팍엔 뼈로 만들어진 새하얀 검신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대체, 어느 틈에…….”

검이 날아오는 것조차 보지 못했다.

빠각!

그를 찌른 해골은 곧 다른 엽사들에 의해 산산조각 났지만, 이미 생명을 잃은 엽사는 허망한 표정을 지으며 쓰러졌다.

“창식아! 이런 빌어먹을!”

“무슨 괴수들이 무기를 이따위로…… 괴수 맞아?”

“조심해! 사 품 수준의 검사라고 생각하고 싸워!”

해골들의 무기술이 생각보다 뛰어나단 사실을 깨달은 엽사들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 가기 시작했다.

“서진혁…… 이 새끼…….”

그것은, 타오르는 검을 쥔 백선홍 역시 마찬가지였다.

빠각!

“반드시…… 죽여 버린다…….”

단숨에 달려드는 해골 하나를 박살 낸 백선홍의 표정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    *    *

―저 해골들, 제법 잘 싸우는데요?

하늘 위에서 숲을 내려다보던 멜리나가 감탄하자,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 모두가 생전엔 서가의 엽사들이었지.”

지난 백 년 동안 괴수와의 싸움에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자들.

그렇다 한들, 그들의 영혼에 새겨진 지식과 무술은 사라지지 않고 보존되어 있다.

뼈만 남은 볼품없는 육신이라 한들, 평범한 괴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전투력을 지니고 있을 터.

―뭐, 그래도 한계는 있네요. 죄다 박살 나 버렸는걸요?

그녀의 말대로, 숲에서의 싸움은 소강상태에 들어섰다.

해골, 스켈레톤으로 부활한 엽사들의 실력은 그대로였지만, 상대가 좋지 않았다.

정령을 다루는 검사 하나와 마나를 움직일 수 있는 서른의 엽사들.

근력과 마나에서 열세인 스켈레톤들이 승리하기를 바라는 것은 과한 욕심이리라.

허나 진혁의 표정은 가벼웠다.

“상관없다, 재생시키면 그만이니.”

두근! 두근!

말을 마친 진혁은 심장에서 흑마력을 끌어모았다.

주기적으로 본가에 심어 둔 사령수에서 흑마력을 뽑아낸 덕에, 던전 토벌에 들어선 지 일주일이 지난 지금에도 그의 심장은 반 이상 차 있었다.

“망령이여, 다시 일어나 싸워라.”

전투를 끝낸 미추홀의 엽사들은 이미 자리를 떠난 상태.

망자를 깨우는 언령과 함께, 그의 손에 뭉쳐 있던 흑마력이 널브러진 해골들에게로 퍼져 나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따닥! 따다닥!

그을린 땅에 널브러져 있던 뼛조각들이 서로 엉겨 붙었다.

부러진 뼈들이 합쳐져 온전한 뼈가 되고, 뼈와 뼈가 만나 골격을 이루었다.

이내.

따딱! 따따딱!

온전히 부활한 스켈레톤들이, 서서히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고는 다시 숲속으로 사라졌다.

미추홀의 엽사들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스켈레톤들은 끊임없이 적을 찌르고, 부서지고, 부활하리라.

‘그것만으론…… 조금 부족하지만.’

흑마력으로 강화된 진혁의 영안이, 던전의 지상을 맴도는 망령들에게로 향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진혁을 죽이기 위해 무기를 든 자들이었지만.

“망령이여.”

이제는 아니다.

“명계의 율법에 따라, 너희의 죄를 삶으로 갚아라.”

명계의 사자인 사령술사를 해하려 한 죄인들.

스으으!

수백 미터 위 허공.

진혁으로부터 뿜어져 나온 흑마력의 빛이 노을처럼 지면을 물들이자.

―명령.

―따른다.

흑마력에 사로잡힌 미추홀의 망령들이,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싸늘하게 식은 자신의 육체로 되돌아간다.

뿌득! 뿌드득!

망령을 받아들인 시체의 굳어 버린 관절에서 연신 기괴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생명을 잃어버린 육체가 스스로 몸을 일으킨다.

“그으으…….”

그 결과로 깨어난 것은, 생전의 육신으로 다시 깨어난 다섯의 망자들.

“가라, 죄인들아.”

죄인들에게로.

스으으!

명령을 내리는 진혁의 육신에서, 흑마력의 검은빛이 은은하게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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