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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28화 (28/174)

28화

진혁이 제안을 거절하는 이유는 당연했다.

‘도움도 안 되는 신의 권속 따위를 굳이 옆에 둘 필요는 없지.’

도움은커녕, 신의 권속들이 뿜어내는 신성력은 망자를 움직이는 데 방해가 될 뿐이다.

언젠가는 그들도 진혁이 이미 죽은 마수를 일으켜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게 될 텐데, 과연 그들이 진혁의 행동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스칸의 광신도들도 못 참았던 걸, 참을 수 있을 리가.’

사령술사 역시 죽음의 신과 계약을 맺은 일종의 성직자였지만, 그 말로는 어떠했는가.

이미 파슬란의 삶을 통해 그 결말이 얼마나 처참한지 잘 알고 있었으니, 더더욱 꺼려질 수밖에 없다.

“왜, 왜죠?”

설마 진혁이 거절할 줄은 몰랐는지, 클레어의 목소리가 떨려 왔다.

“내가 왜 그 제안을 받아들여야 하지?”

“그, 그, 전 성녀예요! 성녀가 얼마나 강력한 신법을 쓸 수 있는지는 아시죠?”

“난 신법이 필요 없다.”

팔다리가 거의 잘려 나가다시피 한 성기사를 멀쩡하게 회복시킨 걸 보면 그 신성력은 진짜였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가까이 두고 싶지 않았다.

“시, 신법이 필요 없다니! 교단에서 길드로 봉사하러 갈 때마다 헌터들이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아요?”

“그럼, 나 말고 다른 곳으로 가면 되겠군. 어쨌건, 내게는 필요 없다.”

“어, 어…….”

진혁의 칼처럼 단호한 거절 앞에서, 클레어는 순간 할 말을 잇지 못하고 버벅댔다.

언제 어디서나 환영받을 줄만 알았던 그녀가, 이렇게 매몰찬 거절을 받을 거라곤 생각해 본 적 없었으니까.

‘어떻게, 어떻게 하지?’

당황한 클레어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할 말이 끝났다면, 이만 가 보지.”

그녀가 한참 동안 벙어리처럼 말없이 서 있자, 진혁은 다시 몸을 돌려 병실을 나가려 했다.

진혁이 병실 문을 막 나서려던 순간.

“자, 잠깐만요!”

“분명히 안 된다고 말했을…….”

“오, 오우거!”

“……지금 내게 한 말인가?”

식귀, 오우거라는 말은 전 세계에서 돼지와 비슷한 욕으로 통용된다.

몸을 돌린 진혁이 성녀를 싸늘한 눈으로 내려다봤다.

“아니, 당신 말고요! 당신 오우거!”

그 서슬 퍼런 눈빛에 그녀는 순간 움찔했지만, 곧 숨을 크게 들이켜고는 입을 열었다.

“당신 오우거, 그 손!”

“손?”

“그 손, 분명히 아다만티움 색이었어요!”

아다만티움.

그 단어가 소녀의 입에서 나온 순간.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진혁의 눈빛이 더욱더 진해졌다.

영혼을 찌르는 것 같은 살기에 몸을 덜덜 떨면서도, 그녀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우리, 교단에서, 원정 임무 때문에 세한에 대여해 준 아다만티움이, 있어요. 그런데, 히끅! 세한에서는 그 아다만티움을 도난당했다고 했고. 히끅! 그런데.”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며 딸꾹질을 진정시키곤,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그 오우거의 손, 아다만티움이죠?”

그녀의 말이 이어질수록, 진혁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다.

‘상혁이 놈이 아다만티움을 어디서 구했나 했더니, 무명교의 물건이었나.’

작은 일은 아니다.

현대 무명교의 위세는 마치 과거의 로마가톨릭처럼 하나의 국가와도 같은 수준.

무명교에서 이 일을 정면으로 걸고넘어진다면, 세한과 그에게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저, 이름 없는 신의 지상 대행자인 클레어는 당신과 세한에게 아다만티움 분실과 관련된 청문회를 제안하겠어요! 그 오우거의 정밀 감식도 포함해서!”

“……허.”

“물론, 당신이 제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없던 일이 되겠지만요!”

잠시 동안 병실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진혁의 살벌한 눈빛 앞에 금방이라도 주저앉아 버릴 것 같았지만, 클레어는 이를 악문 채 그의 눈을 마주 바라봤다.

“……없던 일이라.”

얼어붙은 시간이 다시 흐른 것은, 진혁의 입이 열린 뒤였다.

“첫째, 내가 뭘 하건 간섭하지 않는다.”

“네?”

“둘째, 나와 함께 있을 땐 내 통제에 따른다. 셋째, 내 업무에 걸리적거리지 않는다.”

진혁의 눈이 아래, 얼어붙은 성녀에게로 향했다.

“성기사가 퇴원한 다음 찾아와라. 그때 다시 이야기하지.”

쿵!

클레어가 채 말을 마치기도 전, 진혁은 병실 문을 닫고 나갔다.

“해, 해냈다, 해냈어.”

콰당!

문이 닫힘과 동시에, 다리가 풀려 버린 성녀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서, 성녀님!”

그 모습에 놀란 기사, 렌이 비명을 질렀지만.

“해냈어…….”

죽을 것 같은 공포도, 엉덩이에 느껴지는 둔탁한 통증도.

이미 그녀에게는 남의 일이었다.

*    *    *

잠실 한복판의 인공섬, 칠성원에 존재하는 유일한 기와집.

‘골치 아프군.’

자신의 거처에 도착한 진혁은, 제법 키가 자란 사령수를 향해 손을 뻗어 소진한 흑마력을 충전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세한과 서가의 힘은 한국, 아니 세계에서도 제법 쳐주는 편.

그럼에도, 세계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무명교와 비교하면 손색이 있을 수밖에 없다.

만일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면 성준의 팔이라도 잘라 넘겨야 했을 판이니, 짐 덩어리 둘 정도는 차라리 애교에 가까웠다.

‘상혁이 놈에겐 나중에 제대로 따져야겠지만.’

진혁이 제대로 된 설명도 해 주지 않은 막냇동생의 얼굴을 떠올리던 그때.

“부르셨습니까, 팀장님?”

토벌 3팀의 부팀장, 신주연이 활짝 열린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언제나처럼 정장 재킷에 스커트를 단정하게 차려입은 그녀가 허리를 숙이자,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가 하나 생겼는데, 조언을 듣고 싶어서.”

“문제라면…….”

“아무래도, 무명교의 성녀를 데리고 다녀야 할 것 같다.”

“성녀…… 말씀입니까?”

그녀 역시 엽사이자 세한보안의 간부였으니, 무명교의 성녀가 어떤 존재인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름 없는 신의 대행자이자, 그 의지를 지상에 널리 퍼뜨리는 존재.

“왜 성녀께서, 팀장님에게?”

“자세한 내용은 말해 줄 수 없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당황한 그녀를 향해, 진혁은 당장 직면한 문제를 꺼내 들었다.

“우리의 임무가 제법 위험하단 거지.”

“……성녀의 신변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단 말씀이군요.”

주연의 짐작을 들은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성기사 한 명이 호위를 맡고 있긴 하지만, 그래 봐야 견습기사일 뿐이다. 그것도, 삼 품도 되지 못한 애송이지.”

정작 말을 꺼낸 성녀는 아무 생각도 없었겠지만, 그녀를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에선 큰 문제다.

성녀가 던전 토벌을 참관한다며 따라왔다가, 다치거나 죽기라도 한다면?

그녀의 의지가 어찌 되었건, 세한과 진혁은 성녀를 잃은 무명교의 분노를 정면에서 맞닥뜨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려운 일은 아니군요.”

진혁의 고민을 들은 주연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쉬운 방법이 있지 않습니까?”

그녀가 보기에 무명교가 분노할 위험 없이 두 짐 덩어리, 아니 시한폭탄을 데리고 다닐 방법은 오직 하나뿐.

‘이걸, 팀장님이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단지, 그 점이 의아할 뿐이었다.

그 말에, 진혁의 눈썹이 휘었다.

“……그 방법이라면 나도 알고 있지만, 내키지 않는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이미 잘 알고 있지만, 그 방법만은 되도록 피하고 싶은 게 진혁의 심정이었으니까.

‘더 이상 신의 권속들과 엮이는 건 곤란하다.’

가능하면, 최대한 두 폭탄과 거리를 두고 싶은 게 그의 마음.

하지만.

“……팀장님, 그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부팀장을 부른 게 아닐까?”

“없는 건 없는 겁니다.”

“……보좌해 줘서 고맙군, 부팀장.”

“제 할 일일 뿐입니다.”

칼 같은 주연의 말에, 진혁이 할 수 있는 대답은 그것뿐이었다.

*    *    *

성녀의 호위기사, 렌이 퇴원하는 데에는 채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한국 최고의 의료 기술을 자랑하는 의료진들이 밤낮으로 보살핀 탓도 있지만, 그녀와 성녀 클레어가 가진 신성력이 육체의 회복력을 극도로 높인 이유가 컸다.

“렌, 이제 괜찮은 거죠?”

“네, 성녀님. 이젠 검을 휘두르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미안해요, 나 때문에 괜히…….”

여전히 죄책감을 느끼는 건지, 의료원 정문에서 연신 기사의 양팔을 살피던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렌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기사라면 한 번쯤은 패배를 겪어 봐야 하는 법이니까요. 그리고…….”

다음엔, 지지 않을 겁니다.

“렌?”

“아닙니다.”

마지막 말을 속으로 삼킨 렌은, 고개를 저으며 그녀와 대적한 은색 투구의 오우거를 떠올렸다.

‘다음에 검을 맞댄다면…….’

그 목을 베어 버리겠다.

기사가 속으로 호승심을 불태우고 있던 그때.

끼이익!

어디선가 달려온 검은 세단이 두 사람 앞에 멈춰 섰다.

갑자기 나타난 고급 승용차 앞에서 두 소녀가 당황하던 사이.

“몸은 다 나은 모양이군.”

세단 뒷좌석 창문이 내려오면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서가의 장남, 서진혁이었다.

“어, 서진혁 씨?”

“받아라.”

진혁을 알아보고 놀란 클레어가 눈을 깜빡였다.

진혁은 대답 대신 손에 들린 무언가를 그녀에게 던졌다.

“이건…….”

각기 기다란 끈 아래 매달려 있는 플라스틱 카드 두 장.

그녀가 무의식적으로 카드를 들어 올리자, 카드에 적힌 글자가 권능을 통해 번역되었다.

[세한보안 토벌 3팀]

[객원]

[무명교]

[클레어 솔라]

[세한보안 토벌 3팀]

[객원]

[무명교]

[렌 슈미트]

“토벌 3팀? 객원?”

세한보안의 사원증을 받아 든 클레어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진혁이 말을 이어 나갔다.

“내 옆에 있고 싶다면, 최소한의 밥값은 해야겠지.”

물론, 그것보다는 둘의 신분을 명확히 하려는 의도였지만.

무명교의 사제들이 다른 단체 소속으로 들어가 봉사하는 일은 제법 흔한 편이었으니, 세한에도 당연히 [객원]이라는 제도가 준비되어 있었다.

신성력을 가진 봉사자를 팀의 보조원으로 받아들여 혜택을 주는 제도.

‘죽거나 다쳐도 욕은 덜 먹겠지.’

성녀 개인이 소속까지 바꿔 가면서 봉사에 참여하다 문제가 생긴 것이니,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책임을 회피할 여지는 있었다.

“당신, 대체 이 사진이랑은 다 어디서…….”

놀란 클레어가 사원증에 대문짝만하게 박힌 두 사람의 사진을 가리키며 물었지만.

“출근은 내일부터다. 칠성원에 거처를 마련해 뒀으니, 잠은 거기서 잘 수 있도록.”

“자, 잠깐!”

부우우웅!

클레어가 채 말을 마치기도 전, 진혁은 창문을 올리곤 승용차와 함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아, 아니…….”

“성녀님, 괜찮으십니까?”

렌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클레어를 바라봤다.

하지만 호위기사의 말이 들리지 않았는지, 클레어는 하염없이 검은 세단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니, 어떻게 가는지는 알려 줘야 할 거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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