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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18화 (18/174)

18화

초렵식이 끝나고, 진혁은 회장실로 향했다.

“돌아왔습니다, 아버지.”

책상 앞에 앉아 자신을 바라보는 서강진을 향해 진혁은 고개를 슬쩍 숙였다.

“말로만 지껄이진 않았구나.”

돌아온 답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축하도, 격려도 아닌 어정쩡한 대답.

하지만 진혁은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을 이어 나갔다.

“초렵식을 끝마쳤으니, 저도 토벌 팀을 이끌고 싶습니다.”

토벌 팀을 이끌겠다.

그 말에 담긴 의미는 분명했다.

“십 년 만에 깨어나니, 그제야 이 자리가 탐이 나더냐?”

동생들처럼, 후계자 경쟁에 참여하겠다는 선언.

너무나 노골적인 말에 강진은 코웃음 쳤다.

“필요할 뿐입니다.”

“네겐 자격이 없다.”

강진은 고개를 내저었다.

“세한은 누구보다 앞에 서야 하는 법.”

아들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싸늘하게 빛났다.

“네가 제법 성과를 낸 건 사실이다만, 결국 식귀의 힘을 빌린 게 아니더냐? 남의 힘을 빌려 쓰는 자는 한계가 뚜렷한 법이다.”

결국, 진혁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겠다는 이야기다.

말을 마친 진혁은 팔짱을 낀 채 못난 장남을 노려봤다.

하지만.

“아버지.”

그 말에, 진혁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서가의 가주가, 꼭 앞에 나서야만 합니까?”

“……뭐라고?”

“세한의 회장이신 아버지께서도 아래 직원들을 통해 일을 처리하는 건 마찬가지지만, 그 누구도 아버지께 회장의 자격이 없다고 하지는 않잖습니까.”

아직 엽사 면허도 나오지 않은 자신을 세한의 회장과 동일시하는, 오만한 소리.

허나 진혁의 말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앞에 나서냐가 아니라, 세한을 더 높은 곳까지 이끌 수 있느냐입니다.”

“그걸, 네 녀석이 할 수 있단 말이냐?”

“믿지 못하시겠다면, 시험해 보시면 됩니다. 지금처럼.”

강진의 눈빛이 칼날처럼 날카로워졌지만, 진혁은 변함없이 미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강진의 머릿속에, 진혁의 십 년 전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예전엔 말도 제대로 못 붙이던 녀석이.’

그러나, 지금의 진혁은 다르다.

단순히 괴수 뒤에 숨을 줄만 아는 겁쟁이라기에, 장남의 전신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자신감이 거세게 피어오른다.

또한.

‘……별것 아니기는 하다만.’

자신이 마나를 담아 던진 만년필을 허공에 멈춰 세운, 정체 모를 힘.

분명, 식귀 외에도 강진 자신이 아직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강진은 말없이 아들의 눈을 응시했다.

아들의 동공 깊은 곳에 비치는 것은, 그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진한 의지와 자신감.

결국.

“……조만간 토벌 3팀을 새로 편성하겠다. 자세한 건 따로 말해 주지.”

강진은 장남을 시험해 보기로 했다.

“이제, 네 말을 증명해 보아라.”

“기대하셔도 됩니다.”

아버지의 싸늘한 목소리 앞에서, 진혁은 자신만만한 웃음을 지었다.

*    *    *

“흠.”

본가, 칠성원에 위치한 진혁의 숙소.

고즈넉한 기와집의 대청마루에 드러누운 진혁은, 한 장의 플라스틱 카드를 눈 가까이 들어 올렸다.

[서진혁]

[사 품]

[대한엽사회 인]

“사 품 엽사……인가.”

손바닥만 한 카드 위에 든 것은 자신의 사진과 엽사 등록 번호 그리고 그 아래 찍힌 대한엽사회의 직인.

면허증을 받은 순간, 그는 정식으로 사 품의 엽사가 된 것이다.

―축하드립니다, 진혁 님.

마당에서 진혁을 바라보던 식귀, 성준이 축하를 보냈다.

―처음부터 사 품을 받으시다니, 유례가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엽사 대부분이 오 품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처음부터 사 품을 받은 진혁의 경우는 매우 드문 일.

진혁의 두 동생도 오 품에서 시작하지 않았던가.

“글쎄.”

허나 그 사실이 진혁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는 못했다.

“십 년 동안 논 것 치고는 평범한 편이지.”

십 년의 격차란 그만큼 거대했다.

이미 자신의 동생들은 게이트를 넘어 에피로나를 드나들고 있는데, 고작 사 품 엽사에 만족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그 격차를 좁히기 위해선.

‘사령술의 경지를 올려야 한다.’

자신이 아스칸에서 백 년 동안 사용해 온 망령군주의 힘.

이 힘을 활용한다면, 십 년의 격차를 뛰어넘는 것은 시간문제이리라.

‘그 전에, 처리할 일이 있지만.’

진혁은 잠시 시선을 돌려, 자신의 주변을 맴도는 두 개의 도깨비불을 바라봤다.

검은 사슬에 칭칭 묶여 있는, 탐욕고의 삼 층에서 자신을 유혹하려 했던 두 망령.

“망령이여.”

그러나 그들이 지은 죄는 지난번 공을 세워 씻겨져 나갔으니.

“명계의 율법에 따라, 너희에게 가한 금제를 해제한다.”

이제는 그 벌을 거둘 때가 되었다.

차르르륵!

진혁이 언령을 내뱉음과 동시에, 두 망령을 꽁꽁 묶어 두었던 흑마력의 사슬이 풀려 나간다.

―으, 으으으…….

―커, 커헉!

진혁이 그들에게 가한 금제는 사고와 소통의 제약.

금제에서 풀려나자마자 두 망령은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신음했다.

하지만 진혁은 둘을 가만히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너희의 과거를 고해라.”

어떻게, 요정의 보구인 탐욕고에 사령술의 산물인 망자와 망령이 존재하는 것인가.

눈앞의 두 망령은 그 수수께끼를 풀 열쇠였다.

“어떻게, 망자인 너희가 탐욕고 안에 있었던 것이냐.”

말을 마친 진혁의 눈이 시퍼런 귀기로 번들거렸다. 여차하면 다시 망령들을 제압할 생각.

―저, 저도 몰라요! 분명히 괴수에게 죽은 것까진 기억이 나는데, 그다음부턴 기억이 아예 없다니까요?

―소인도 마찬가지요. 죽은 이후엔 전혀 기억이 없소.

진혁의 서슬 퍼런 말에 두 망령은 두려움에 떨며 털어놓았다.

허나 진혁이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리 없다.

“망령이여, 영계의 율법에 따라 네 기억을 고하라.”

―자, 잘못했어요!

―정말이오, 정말이란 말이오!

스으으!

영안을 통해 쏘아져 나간 흑마력이 순식간에 겁에 질린 두 망령을 잠식했다.

그와 함께, 사령술을 통해 뽑아낸 망령의 기억이 진혁의 머릿속으로 흘러들어 왔다.

곧, 진혁은 망령들이 보고 들은 것을 읽어 낼 수 있었다.

‘사실이다.’

이들의 기억 속엔, 죽음 이후의 부분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사실상, 망자가 된 순간 자유 의지를 완전히 잃어버렸다는 의미.

‘자유 의지를 제약했으니, 사령술의 수준이 높진 않다.’

하지만, 그렇다기엔 탐욕고의 삼 층에서 저들이 보여 준 강력한 힘이 마음에 걸렸다.

진혁이 배우고 발전시켜 온 사령술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

‘언젠가, 알아볼 필요가 있겠어.’

수수께끼를 뒤로 접어 둔 진혁은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두 도깨비불을 바라봤다.

“멜리나, 자이츠.”

―네, 네!

―왜 이러는 거요, 대체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둘 다 괴수에게 죽었군. 에피로나가 멸망하기 전이니, 백 년도 전인가.”

이미 망령의 기억을 읽어 낸 진혁은, 둘이 망자가 되기 전의 기억을 지니고 있었다.

어떻게 태어났고, 어떻게 자라 왔으며, 어떻게 죽었는가.

그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이상.

“너희를 죽인 괴수에게 복수하고 싶지 않나?”

진혁이 두 망령을 손에 넣는 일은 너무나 간단했다.

―……하기 싫다면 거짓말일 거요. 놈들에게 우리 마을이 박살 났었으니까.

―저도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이미 죽은 몸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자이츠와 멜리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살았던 세계가 다를 뿐, 그들 역시 괴수의 피해자다.

어찌 괴수에게 복수하고 싶지 않겠는가.

현실에 영향을 끼칠 수 없는 망령의 모습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문제일 뿐.

그렇기에.

“너희에게 육체를 주마. 괴수를 처 죽일 수 있는 육체를.”

진혁의 제안은 너무나 달콤했다.

―……육체라니.

―그게, 정말 가능하다고요? 이미 죽은 우리에게?

그의 말을 들은 두 망령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와 계약을 맺는다면, 너희는 육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육체가 아니라 괴수의 육체겠지만. 어떠한가?”

인간의 시체를 움직이는 것은 아스칸에서도, 지구에서도 금기다.

하지만 잃을 것이 없었던 아스칸의 망령군주와는 달리, 진혁에겐 서가와 세한이 있다.

서가의 주인이 되어 양지에 서기 위해선, 괴수를 망자로 부리는 것이 가장 좋았다.

물론.

―……그 계약이 뭔진 모르겠지만, 괴수 놈들을 도륙 낼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 수 있소. 아니, 괴수의 육체라면 원래보다 강력할 테니 더 좋겠지.

―저도 마찬가지예요. 그이의 복수를 위해서라면……!

진혁의 제안을 받은 두 망령은 조금도 머뭇거림 없이 동의했다.

복수심에 불타는 이들에게, 괴수의 모습으로 되살아난다는 사실은 문제도 되지 않았다.

진혁은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럼, 계약을 맺지.”

동시에.

두근! 두근!

진혁의 검은 심장으로부터, 진한 흑마력이 꿀렁대며 체외로 쏟아져 나왔다.

“나 서진혁은 명계의 율법에 따라 내 앞의 망자와 죽음의 계약을 맺는다. 계약을 어기는 자 연옥의 불꽃이 맞이하리라.”

스으으!

계약을 선언함과 동시에, 공간을 검게 물들인 흑마력의 안개가 두 망령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곧, 흑마력에 침식당한 망령은 본래의 빛깔을 잃고 검게 물들었다.

그것으로 계약은 끝났다.

망령들이 원하는 조건을 이미 알고 있었으니, 남은 것은 그것을 확인하는 절차일 뿐.

“조만간, 너희를 위한 육체를 준비해 두겠다.”

―얼마든지 기다리겠소, 주인.

―그렇다고 고블린 따위를 던져 주면 가만 안 둘 거예요.

“그건 걱정할 필요 없다.”

말을 마친 진혁은 품에서 한 장의 검은 카드를 꺼내 들었다.

온통 검게 칠해진 카드의 중앙에 박힌 것은 무지갯빛으로 반짝이는 엄지손톱만 한 마정석.

그 아래, 금색으로 쓰인 문구가 카드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3/21. Arcana]

“내일인가.”

동생으로부터 뜯어낸, 자격 있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초대장.

검은 카드를 쥔 그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    *    *

여의도.

과거엔 툭하면 물에 잠기는 비행장일 뿐이었지만, 한강을 중심으로 수도권을 갈라 먹은 서가와 이가 간의 갈등은 이 작은 섬을 가장 안전한 중립지대로 만들었다.

안전한 곳엔 돈과 이권이 몰려드는 법이니, 이곳에 한국의 엽사들이 몰려드는 것도 당연한 일.

오늘 밤, 진혁이 여의도를 찾아온 것 역시 그와 무관하지 않았다.

[Arcana]

‘여긴가.’

검게 칠해진 빌딩의 벽면에 필기체로 쓰인 금색 글자.

그 아래 조그맣게 난 구멍을 바라보며, 진혁은 수트 안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준비해 온 초대장, 검은 카드를 꺼내 든 진혁은 카드 앞으로 볼록하게 튀어나온 마정석을 구멍에 맞춰 넣었다.

그러자.

―확인되었습니다.

기계음과 함께, 진혁의 앞을 막고 있던 돌벽이 마치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입구에만 이 정도 수준의 결계 마법이라니, 뭐 이런 동네가 다 있어?

―백 년이 흘렀다더니, 정말 별천지가 아닐 수 없소.

나타난 입구를 묵묵히 가로지르는 진혁의 옆에서, 멜리나와 자이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르카나가 한국에서 버는 돈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그 말에 진혁은 속으로 코웃음을 치며 빌딩의 화려한 내부로 향했다.

던전과 에피로나에서 가져온 기기묘묘한 보물들로 장식된 내부 장식이 그의 눈을 가로막았지만, 진혁의 관심사는 이미 다른 곳에 가 있었다.

‘대부분 엽사군. 일반인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하나같이 화려한 차림으로 온몸을 칭칭 감고 있었지만,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초상 능력자 특유의 기세는 숨길 수 없었다.

‘괴수와 보구가 거래되는 곳이니까,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진혁은 다가온 직원으로부터 경매 물품의 목록이 적힌 카탈로그 한 부를 넘겨받았다.

‘음.’

진혁의 눈이 누군가와 마주친 것은 그때였다.

‘……이런.’

진혁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어졌다.

그와 눈을 마주친 것은, 또래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검은 머리를 옥빛 비녀로 곱게 땋은, 창백한 피부의 여성.

‘이설화.’

그의 전 약혼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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