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7화 (7/174)
  • 7화

    아스칸의 사령술사는 모두가 명계와 계약한 자들이다.

    “망령이여.”

    길 잃은 망령들을 명계로 인도하는 대가는, 지상의 망령들을 다룰 수 있는 자격.

    “명계의 율법에 따라.”

    사령술사는 곧 명계의 대리인이며, 사신의 대행자였으니.

    “그 고개를 조아려라.”

    사령술의 정점에 올라 망령군주라 불렸던 진혁에게, 망령을 제압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익숙한 일이다.

    촤아아악!

    검은색으로 빛나는 흑마력의 그물이 망령을 집어삼킬 기세로 쏟아져 나갔다.

    영혼을 속박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령술.

    ―이게…… 무슨…….

    갑자기 눈앞에 펼쳐진 검은 그물에 망령이 당황한 사이, 날아간 그물은 허공에 고정되어 있던 망령을 삼켜 버렸다.

    곧, 망령은 검은 고치에 싸인 번데기 꼴이 되었다.

    휙!

    진혁은 오른손을 휘둘렀다. 휘두른 손날에서 묵빛의 기운이 마치 칼날처럼 쏘아져 나갔다.

    망령을 베어 버리기 위함은 아니었다.

    서걱!

    망령과 연결되어 있던 강력한 카르마의 사슬.

    혼령을 이 훈련장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만든 거대한 원한이, 검은 칼날에 종이처럼 잘려 나갔다. 바닥으로 추락한 원한의 사슬은 지면에 닿자마자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준비는 되었다.’

    지나치게 많은 카르마는 망령의 행동과 사고를 제약한다.

    망령을 그의 의도대로 부리기 위해, 카르마의 사슬을 잘라 버리는 것은 당연한 일.

    잘려 나간 사슬이 검은 연기로 흩어지자, 진혁은 연기를 향해 손을 뻗었다.

    스으윽!

    그러자 연기처럼 흩어지던 진한 카르마가 그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검은 심장 안으로 모인 카르마는 심장 속 한 줌의 흑마력과 섞여 회오리치기 시작했다.

    ‘아슬아슬한데.’

    흑마력의 그물을 만들면서 심장 안의 흑마력을 줄여 놓지 않았더라면, 카르마를 새롭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무리 진혁이라도 어려웠을 터.

    하지만, 성공한 이상 망설일 필요는 없다.

    ―이게…… 무슨…… 짓…….

    끼아아악!

    자신을 옭아매던 사슬을 그대로 흡수해 버린 진혁을 향해, 망령은 소름 끼치는 소리로 외쳤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듣는 것만으로 영혼에 상처를 입을, 강력한 한이 깃든 귀곡성(鬼哭聲).

    초상 능력을 다루는 엽사라 한들 감히 경시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위력이었지만.

    “어리석구나.”

    진혁은 자신을 향해 덮쳐 오는 검은 파장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진혁은 사령술의 정점에 올라섰던 자.

    한 줌의 흑마력이 그의 심장에 깃들어 있는 이상.

    두근! 두근!

    포획당한 망령의 발악 따위가, 그의 육신과 영혼에 손상을 입힐 수 있을 리 없었다.

    스으으!

    진혁이 내민 손을 중심으로 검은색의 방패가 사방으로 자라났다. 순식간에 그의 몸 전체를 가릴 만큼 거대해진 방패를 향해 망령이 쏘아 낸 귀곡성이 몰아쳤다.

    두 힘이 접점에서 맞붙은 순간.

    슈우우!

    방패와 마주친 검은 파장은, 원래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주인인 망령을 향해 돌아갔다.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크아아악……!

    자신이 쏘아 낸 귀곡성에게 당한 망령이 비명을 질렀다. 그를 옥죄던 흑마력의 그물이 갈기갈기 찢겨 나가면서 망령의 영체에 깊숙이 박혀 들었다.

    아무리 강한 힘을 지닌 영혼이라 할지라도, 영혼이 찢겨 나가는 고통을 견뎌 내는 것은 어려운 일.

    결국.

    ―대체…… 왜…….

    망령은 자신이 묶여 있던 훈련장의 바닥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마치 석쇠로 짓이기기라도 한 것처럼 도깨비불의 군데군데에 검은색의 그물 자국이 박혀 있었다.

    ―괴롭다…… 난…… 그저…….

    “해방되고 싶나?”

    바닥에 쓰러진 채 꺼질 듯 반짝거리는 도깨비불을 향해, 진혁은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영혼의 고통, 네가 품은 원한. 모두 해결해 주겠다.”

    달콤한 유혹이었다.

    영혼이 부서질 것 같은 지독한 고통 속에서는, 제아무리 강력한 원한을 지닌 망령이라도 견딜 재간이 없었다.

    ―어, 어떻게……?

    “계약.”

    당장이라도 소멸할 것처럼 애처로운 목소리로 신음하는 망령을 향해.

    “계약을 하지.”

    진혁은 흑마력으로 검게 물든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이 주저앉은 망령에게 닿았다.

    곧.

    사아악!

    흑마력의 검은빛이, 새벽의 훈련장을 집어삼켰다.

    *    *    *

    오전 6시.

    삐비빅! 삐비빅!

    언제나처럼, 귀빈실에 마련된 시계의 알람은 정확했다.

    시끄러운 알람 소리가 귀에 꽂히기 무섭게, 침대 위에 죽은 듯 쓰러져 있던 진혁은 눈을 번쩍 떴다.

    ‘피곤해.’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서가의 핏줄이 강한 육체를 타고난다고는 하지만, 그것만으론 한계가 있다.

    심장에 담긴 흑마력을 모두 뽑아내다시피 사용해 놓고서는, 몸에 아무런 문제도 없길 바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물론.

    ‘그럴 만한 필요가 있었지만.’

    진혁은 아무도 없는 한쪽 벽면을 바라봤다.

    아니, 아무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깨어나셨습니까, 진혁 님.

    사람의 머리만 한 크기의 푸른색 도깨비불.

    도깨비불로부터 고막과 청신경이 아닌, 영혼의 목소리가 진혁에게로 전해졌다.

    도깨비불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분명했다.

    “그렇다, 성준.”

    조성준.

    그가 오늘 새벽에 계약을 맺은 망령의 이름.

    영체에 박혀 있던 흑마력 조각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깔끔하게 사라져 있었고, 꺼질 듯 반짝이던 불꽃은 계약을 맺기 전보다 더욱 활활 타올랐다.

    거기에, 원한에 미쳐 버린 지박령 때와는 다르게 명료하게 전달되는 의지까지.

    이 모든 것이, 계약을 맺은 진혁이 망령에게 제공해 준 약간의 흑마력 덕분이었다.

    “하루도 안 지났는데, 벌써 적응했군.”

    자신을 향해 깍듯한 태도를 보이는 성준을 향해 진혁은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계약을 맺고 사령술사를 섬기게 된 망령들이 보통 사흘에서 나흘 정도의 적응 기간을 가진다는 걸 생각하면, 성준의 경우는 특이한 편이다.

    ‘제게 선택권이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말과 함께, 성준은 자신의 영혼 한복판에 새겨진 정체불명의 문자들을 내보였다.

    사령술사가 자신과 계약한 망령에 새겨 놓는 복종의 징표.

    ―제가 계약을 이행한다면, 제게 어떠한 불이익도 없을 거란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리고, 제 원한을 해소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영혼이 찢겨 나가는 고통과 함께 찾아온 달콤한 제안.

    ‘내 계약을 받아들이면, 괴수는 원 없이 쳐죽일 수 있을 거다.’

    그 제안을 듣는 순간, 성준은 고통 속에서도 홀린 듯 계약에 동의했다.

    “계약은 지켜질 것이다. 명계의 공정함과 내 영혼을 걸고.”

    한 서린 성준의 목소리를 듣고 진혁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한 달 뒤면 원하는 만큼 괴수를 처 죽일 수 있을 것이다.”

    ―한 달…… 조금 많이 남았군요.

    “초렵식을 치러야 하니까.”

    ―설마, 초렵식을 아직 치르지 않으신 겁니까?

    “십 년 동안 누워 있었으니까.”

    ―그럼…… 소문으로만 듣던, 서가의 장남이셨군요.

    그 말에, 성준은 자신이 계약한 주인이 정확히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럼, 이제 내 설명은 그만해도 되겠지?”

    진혁은 고개를 까딱이고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불을 가지런히 정리한 다음, 빠르게 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었다.

    옷매무새를 대강 정리한 다음 귀빈실 밖으로 나서자, 새벽의 여명이 진혁의 눈을 간지럽혔다.

    ―그러면 저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조금만 기다리면,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될 것이다.”

    아무 말 없이 주군을 뒤따르던 성준이 묻자 진혁은 대강 대답하고는 귀빈실의 정문 앞에서 팔짱을 낀 채 손목의 시계를 확인했다.

    ‘일곱 시 반.’

    그로부터 채 몇 초가 지나기도 전.

    부르르릉!

    저 멀리에서, 익숙한 자동차 소리가 들려왔다.

    진혁이 칠성원으로 돌아올 때 탔던 검정 세단.

    진혁을 향해 빠르게 달려오던 자동차는 진혁의 앞에서 소리 없이 멈췄다.

    곧, 진혁의 앞에 멈춰 선 승용차의 조수석이 열리고 사람이 나왔다.

    진혁의 호위, 주연이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진혁 님.”

    “조금 늦었군.”

    “죄송합니다, 순찰업무가 조금 늦었습니다.”

    머리를 푹 숙인 주연을 향해 진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세단의 뒷좌석에 몸을 뉘었다.

    “출발하겠습니다.”

    곧, 세단은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목적지까지 도착하려면, 제법 걸릴 테지.’

    푹신한 가죽시트에 몸을 파묻은 진혁은 조용히 눈을 감고는 내면을 관조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흑마력과 카르마로 가득 들어차 있는 자신의 심장을.

    ‘가서는 바쁠 테니, 여유 있을 때 정리해 둬야 한다.’

    목적지로 이동하는 시간 동안, 진혁은 성준과의 계약으로 얻은 카르마를 흑마력으로 변환해 둘 생각이었다.

    두근! 두근!

    심장 속에 수증기처럼 퍼져 있던 카르마가 조금씩 한 곳으로 뭉쳐 들기 시작했다.

    쏴아아아!

    구름이 된 카르마는 곧 액체가 되어 심장의 아래쪽으로 흘러내려서는, 바닥에 고여 있던 흑마력과 섞여들었다.

    마치 바다에 비가 내리듯, 검은 구름이 줄어드는 만큼 심장의 흑마력이 빠르게 차올랐다.

    ‘괜찮군.’

    텅 빈 심장을 가득 채워 나가는 그 충족감에, 진혁은 눈을 감은 채로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시간이 제법 흘러, 그가 심장 안에 담겨 있던 카르마 대부분을 흑마력으로 전환했을 때.

    “진혁 님, 도착했습니다.”

    귓속으로 파고든 주연의 목소리에, 진혁은 슬며시 눈을 뜨고는 창밖을 바라봤다.

    “십 년이 지났는데, 여긴 그대로군.”

    주변을 둘러본 진혁은 턱을 슬쩍 쓰다듬고는 차에서 내려 오늘의 목적지를 확인했다.

    창고였다.

    판넬과 슬레이트 지붕으로 어설프게 지어진, 여느 시골에 하나쯤은 있을 법한 싸구려 창고.

    수확이 끝난 김포의 겨울 논밭 사이에 세워진 컨테이너의 모습은, 영락없이 농사용 창고의 꼴이었다.

    세한그룹의 장남인 진혁이 굳이 시간을 내서 방문해야 할 이유가 없는 곳.

    하지만 진혁은 망설임 없이 창고의 문을 열어젖혔다.

    끼이익!

    녹슨 철문을 열어젖히자, 농기구나 비료 따위로 가득 채워진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바깥과 마찬가지로, 십 년 전과 다를 바 없는 모습.

    “흠.”

    십 년 전의 기억을 더듬어 간 진혁은, 농기구들이 늘어선 구석의 선반으로 다가가선 중간의 낫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푹!

    진혁은 망설임 없이 낫으로 새끼손가락을 찔렀다.

    살갗 사이로 쏟아지는 피가 조선낫을 검붉게 물들였다.

    하지만, 이곳의 정체를 잘 알고 있는 주연과 성준에게선 조금도 놀란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윽고.

    쿠르르릉!

    가벼운 진동과 함께 낫이 놓여 있던 선반이 컨테이너 벽면 뒤로 빨려들듯 사라졌다.

    곧이어 선반이 있던 자리에 새롭게 나타난 것은, 지하로 향하는 계단.

    ‘여길 다시 찾아올 줄은 몰랐는데.’

    진혁은 저 계단 너머의 정체를 잘 알고 있었다.

    ‘탐욕고.’

    서가의 백 년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보물창고이자, 세한그룹이 가진 막강한 힘의 근원.

    그리고.

    ‘지옥의 아가리.’

    탐욕고에 붙은 별명을 떠올린 진혁의 눈이, 계단 아래 무저갱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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