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사령술사의 눈, 영안은 평범한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를테면, 훈련장의 바닥에서 연기처럼 뿜어져 나오는 검은 증기와 같은 것들을.
진혁은 그 정체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카르마.’
그것도, 아주 강력한 카르마였다.
망령 내부에 축적된 것으로도 모자라 영혼 밖으로 뿜어져 나올 만큼의 카르마.
그 말인즉슨.
‘저 아래에, 강력한 망령이 있다는 의미지.’
망령의 강함은 전생의 실력과 지닌 카르마에 비례하는 법이니, 진혁이 그렇게 판단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가지고 싶다.’
진혁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오래전 잊었던 욕망이 피어올랐다.
사령술사에게 강력한 망령이란 곧 진귀한 보석, 혹은 영약과도 같은 존재.
이토록 강력한 카르마를 지닌 망령을 손에 넣는 것만으로, 그의 전투력은 눈에 띄게 불어나리라.
물론, 지금은 아니었다.
‘당장은 무리다.’
진혁은 자신의 현 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
심장에 흑마력을 쌓아 두기는 했지만, 지금의 육체로는 그 흑마력을 온전히 다룰 수 없다.
제대로 된 준비 없이 강력한 망령을 지배하려 들었다간, 도리어 망령에게 잡아먹히리라.
‘우선은, 훈련부터.’
그것이, 저 보석처럼 빛나는 망령을 손아귀에 넣는 첫걸음이었으니까.
진혁은 바닥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에서 눈을 떼고는, 다시금 트랙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보석을 손에 넣기 위해.
***
훈련을 마친 뒤, 진혁은 훈련장의 아래에 잠든 망령에 대한 정보를 찾아 나섰다.
‘생전에 누구였는지, 죽은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아 두면 계약에 유리하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계약이 그렇듯, 망령과의 계약 역시 정보의 선점이 중요하다.
망령이 원하는 것을 먼저 알고 준비할 수 있다면 좀 더 손쉽게 계약을 마칠 수 있다.
그렇기에, 진혁은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을 찾았다.
“훈련장에서의 사고 기록 말씀입니까?”
“그렇다.”
주연은 진혁의 지시를 이해할 수 없었다.
초렵식을 준비하기에도 정신없을 사람이, 난데없이 훈련장의 사고 기록 따위를 신경 써야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구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만, 혹시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개인적인 호기심…… 이라고 해 두지.”
그 말을 끝으로, 진혁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개인적인 호기심이라……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미 진혁의 성격을 겪어 본 주연은 별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얼마 뒤.
“말씀하신 훈련장의 사고 기록을 정리한 파일입니다.”
주연은 진혁에게 두꺼운 파일 하나를 건넸다.
훈련장의 역대 사고 내역이었다.
“흠…….”
진혁은 그녀가 모아 놓은 자료들을 손으로 빠르게 훑어 나갔다.
사고 현장의 끔찍한 광경을 담은 사진들이 중간중간 끼어 있었지만, 꿈속에서 시체와 함께 백 년을 살아온 진혁은 눈썹 하나 꿈틀하지 않고 모든 자료를 샅샅이 훑어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혁은 그중 유력한 후보를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조성준.”
그의 눈이, 사건 파일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조성준, 엽사 후보생. 당시 사 품 엽사의 자격을 획득할 예정이었음.
―2026년 7월 6일, 2층의 종합훈련장에서 모의훈련 도중 마나 폭주 발생. 그 후유증으로 사망.
지금부터 약 사 년 전, 진혁이 식물인간이 되어 누워 있던 당시의 사고.
‘이 층이라면, 바로 아래군.’
이 층에서 벌어진 유일한 사망 사고였으니, 진혁이 마주한 검은 연기의 주인은 아마도 그가 맞으리라.
“조성준이라는 엽사 후보생에 대한 정보가 필요해.”
확신을 얻은 진혁은 펼쳤던 파일을 다시 닫고는 주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것 역시, 진혁 님의 개인적인 호기심입니까?”
“그래.”
“알겠습니다.”
아무런 표정 없이 고개를 꾸벅, 숙인 주연은 곧장 밖으로 사라졌다.
‘우선은, 해결했군.’
주연을 보낸 진혁은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생각했다.
초렵식을 통과하기 위한 밑 작업들.
‘삼 주.’
진혁의 몸이 흑마력을 다룰 수 있을 만큼 성장하는 데 필요한 시간.
그때가 되면.
‘놈을 손에 넣는다.’
진혁의 오른 주먹이, 저도 모르게 불끈 쥐어졌다.
***
“이봐, 그거 들었어?”
“뭘?”
“이번에 회장님 첫째 아들이 깨어났잖아.”
“아, 십 년 만에 깨어났다는 그분?”
“그래, 그 사람이 지금 여기 있대.”
“그래? 깨어난 지 며칠 안 된 거 아니었어?”
“깨어나자마자 바로 훈련을 하겠다면서 새벽같이 나온다고 하더라고.”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 했던가.
매일매일 훈련장에 출근 도장을 찍는 진혁에 대한 소문은 칠성원의 엽사들 사이에서 서서히 퍼져 나갔다.
“그 사람, 나도 봤는데 완전히 말라깽이더만? 훈련이 아니라 재활 먼저 해야 하는 거 아냐?”
“들어 보니까 마나홀도 십 년 전에 박살 났다고 하던데. 어차피 엽사 일도 못할 거면서 훈련은 뭣 하러 하는 거지?”
“낸들 아나? 미련이라도 남았나 보지.”
“어차피 초렵식은 치르지도 못할 텐데…… 쯔쯔.”
물론, 긍정적인 소문은 아니었다.
이미 마나를 다룰 수 없는 무능력자라는 이야기가 파다하게 퍼져 있었으니, 괴수와 맞설 수 있는 무력을 중시하는 엽사들이 그 소문을 듣고 뭐라 생각할지는 뻔한 일이었다.
“후욱, 후욱.”
하지만 진혁은 신경 쓰지 않았다.
정확히는, 떠도는 소문 따위에 신경 쓸 만한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온몸의 체력을 모조리 쏟아부어야 하는 훈련을 견디는 것만으로도, 그의 정신은 한계 직전까지 몰려 있었다.
‘그래도…… 조금은 나아졌다.’
부러지기라도 할 것처럼 아파 오는 두 다리를 부여잡으며, 진혁은 애써 미소를 지었다.
본격적인 체력 훈련에 들어간 지 벌써 한 달째.
수수깡처럼 말라비틀어진 팔과 다리엔 조금이나마 근육이 들어찼고, 조금만 뛰어도 터질 것처럼 고동치던 심장은 몰라볼 만큼 강해졌다.
엽사의 몸이라기엔 아직 부족했지만, 평범한 사람 치고는 건강해 보이는 육체.
‘이 정도면, 흑마력을 다루는 덴 문제가 없겠지.’
최소한, 그의 심장에 쌓여 있는 흑마력 정도는 충분히 다룰 수 있는 상태.
‘그렇다면…….’
때가 되었다.
숨을 고르던 진혁의 눈이, 그가 밟고 있는 트랙의 바닥으로 향했다.
정확히는, 바닥 너머에 있을 2층을.
‘3주라, 정말 오래도 기다렸지.’
인고의 시간이었다.
바로 아래에 강력한 망령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참는 것은, 마치 고양이가 생선을 참는 것과도 같은 일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망령에게 밀리지 않을 만큼 강력한 흑마력을 손에 넣어야만, 그가 원하는 결과를 낼 수 있으므로.
‘하지만 그것도 오늘로 끝이다.’
심장에 쌓아 둔 흑마력을 온전히 다룰 수 있게 된 이상, 더는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어느 정도 체력을 회복한 다음, 진혁은 몸을 일으켜 승강기에 몸을 실었다.
이 층으로 향하는 버튼을 누르자 위잉 거리는 기계음과 함께 엘리베이터가 아래로 내려갔다.
‘저기 있군.’
이미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
이 층의 텅 빈 훈련장에 도착한 진혁의 눈이 번쩍, 빛났다.
망령이, 그곳에 있었다.
마치 쇠고랑을 찬 죄수처럼 검은 족쇄에 붙잡힌 채 둥둥 떠 있는 거대한 도깨비불.
그가 갓 깨어난 뒤 손에 넣었던 다섯의 망령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지만, 진혁은 망령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지박령인가.’
카르마는 영혼보다 무겁다.
그렇기에, 카르마를 짊어진 영혼은 그 무게때문에 명계로 날아오를 수 없다.
그리고, 지나치게 거대한 카르마를 짊어진 영혼은 움직임조차 제약당한다.
진혁이 마주한 지박령이 바로 그런 상태였다.
탁하다 못해 검은빛을 내뿜는 도깨비불의 아래에 족쇄처럼 매달린 것은, 망령이 생전에 가지고 있던 원한과 미련.
―……괴수……죽인다…….
녀석이 간헐적으로 내뱉는 입버릇만으로, 진혁은 놈이 가진 원한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부모님을 괴수에게 잃었다고 했지.’
본래는 평범한 사람이었던 자가, 서가의 엽사 후보생으로 흘러오게 된 이유였다.
부모님의 복수를 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엽사의 길에 도전했지만, 그 결과를 보기도 전에 목숨을 잃었다.
그 원한이 얼마나 깊고 강할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
‘시작해 볼까.’
진혁은 천천히 원한의 쇠사슬에 속박된 망령을 향해 다가갔다.
―복수…… 복수를…….
망령을 향해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갈 때마다 놈이 부르짖는 원성(怨聲)이 진혁의 영감(靈感)을 자극했다.
‘흠.’
마치 전신을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악의가 느껴졌지만, 진혁은 발걸음을 멈추는 대신 심장의 흑마력을 끌어올려 영혼을 보호했다.
그의 목적은 오직 하나였다.
‘망령과 계약을 맺는다.’
강력한 망령과의 계약은 그 자체로 사령술사의 힘.
눈앞에 보이는 망령은 척 보기에도 강력한 원한을 지녔으니,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큰 도움이 되리라.
천천히, 진혁은 망령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넌…… 누구…….
진혁이 자신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일까.
홀로 원한 섞인 목소리를 내지르던 망령이 진혁을 향해 물음을 던진 것은 그때였다.
‘흔한 일이지.’
평범한 사람은 영혼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다.
오랫동안 사람과 교류하지 못한 지박령이 외로움에 사무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몇 년 동안 고독 속에서 살아가다가, 드디어 자신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났으니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넌…… 누구…….
영혼에 눈이 달려 있지는 않았지만, 진혁은 망령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놈은, 분명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음.’
순간, 진혁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망령이 단순히 자신을 바라봤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 이상의 불쾌한 기분이 온몸을 타고 스멀스멀 기어오르고 있었다.
‘내 영혼을 들여다보는 것인가.’
아주 예전, 파슬란이 망령군주의 자리에 오르기 전.
자신을 시험하려 들던 망령들에게서 느껴지던 기운이 꼭 이와 같았다.
―영혼이…… 다르구나…….
진혁의 생각이 맞았는지, 지박령은 진혁을 향해 놀란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그 말이 진혁을 기쁘게 하지는 못했다.
‘감히.’
불쾌했다.
망령 따위가 자신을 판단하려 하다니.
망령군주 파슬란이었다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
그렇기에.
“망령이여.”
진혁은 그 무례를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두근! 두근!
진혁의 검은 심장이 세차게 맥동했다. 흑마력에 검게 물든 혈액이 진혁의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붉게 달아오른 피부 위로 검은 기운이 방울방울 맺혀 올랐다.
“명계의 율법에 따라.”
사령술사의 힘은 명계로부터 빌려 온 것.
한때 망령군주라 불렸던 진혁의 귀기 어린 눈빛이 망령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이윽고.
“그 고개를 조아려라.’
진혁의 명령이 끝남과 동시에.
검은 심장 속 흑마력이 그물처럼 쏟아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