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인간은 맨눈으로 영혼을 볼 수 없다.
영혼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영혼을 느낄 수 있는 감각, 영안(靈眼)을 개화한 자뿐.
전 세계의 엽사, 혹은 헌터들 중에서도 소수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었지만.
“어떻게, 망령이……?”
진혁의 눈에 보이는 것은 분명, 꿈에서 수도 없이 봐 왔던 망령이었다.
망령이 가진 원한, 카르마가 제법 진한 탓인지 도깨비불의 색은 미묘하게 탁한 청빛이었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내게, 영안이 있다고?’
그럴 리가 없다는 사실은 진혁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한 사람의 엽사로서 간신히 턱걸이만 할 수 있었던 그가, 영안과 같은 희귀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을 리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가능성은 오직 하나뿐이다.
‘꿈.’
사령술의 정점에 이르렀던 망령군주, 파슬란 드 노미크롬으로 살아왔던 백 년의 시간.
그 기나긴 세월이, 단순한 꿈이 아니었다는 것.
‘파슬란에게 영안 따위는 능력이라고 할 수도 없으니까.’
그것 말고는, 영안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만약, 내가 미친 것이 아니라면.’
눈앞에 보이는 것이, 환상이 아니라 정말로 길 잃은 망령이라면.
그리고, 자신이 겪었던 일이 꿈이 아니라면.
‘할 수 있다.’
진혁은 결심을 굳혔다.
자신이 꿈속에서 숨 쉬듯 사용해 온 힘을, 현실에서 시험해 보기로.
“망령이여.”
그의 담담한 목소리가 텅 빈 재활실 안을 가득 채웠다.
동시에, 망령을 똑바로 쳐다보던 진혁의 눈에 시퍼런 귀기가 서렸다.
그러자.
―……!
개구쟁이처럼 하늘을 휘젓던 망령이, 어느 순간 얼어붙은 것처럼 뚝 멈춰 섰다.
진혁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명계의 율법에 따라, 네 모든 것을 오롯이 바쳐라.”
진혁의 눈에 서린 귀기가 한층 강해졌다.
시리듯 차가운 파란색으로 물든 그의 눈빛이 거대한 영혼의 힘에 눌려 옴짝달싹 못 하는 망령을 억지로 찍어 눌렀다.
곧, 진혁이 망령을 향해 천천히 왼손을 들어 올린 순간.
―……?
망령은 진혁이 내민 손바닥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성공이었다.
‘……역시, 단순한 꿈이 아니다.’
어떻게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꿈속에서 겪었던 백 년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망령군주 파슬란의 사령술을, 나 서진혁이 사용할 수 있다는 것.’
그리하여, 망자의 군단을 이끌고 다시 외눈박이와 싸울 수 있다는 것.
‘그거면 충분하다.’
진혁이 다시 망령군주의 힘을 얻어야 할 이유는 그것으로 족했다.
―……?
진혁의 마음을 느낀 망령의 불꽃이, 바람 속 촛불처럼 흔들렸다.
* * *
진혁이 정신을 차린 지 일주일째.
그는 어느덧 퇴원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재활을 이렇게 빨리 마치실 줄이야. 역시 서가의 혈통은 대단합니다!”
직접 진혁의 상태를 확인하러 VIP 병실에 찾아온 원장은 진혁의 상태를 보고 감탄했다.
신체 능력에 특화된 것이 서가의 핏줄.
그렇다고 하나, 십 년 동안 움직이지 않아 걸을 수조차 없었던 진혁이 이제는 침대 옆에 서서 이야기를 나눌 만큼 상태가 좋아졌으니 대단한 일은 맞았다.
“병원의 치료가 적절했을 뿐이다.”
묘하게 위화감이 드는 말투를 쓴다는 것이 조금 걸리기는 했지만.
‘사고의 충격 때문에 인격이 조금 바뀐 걸지도 모르지. 이건 회장님께 보고만 드리면 될 일이야. 어차피 서진혁은 후계 구도에서 밀려난 지 오래니까.’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긴 원장은 활짝 웃음을 지었다.
“이런 재생력이라면, 분명 마나홀도 언젠가는 복구될 겁니다. 진혁 님의 노력이라면 분명 가능할 겁니다!”
“그때까지만, 조금 더 도와줬으면 좋겠군.”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마나홀이 스스로 복구되었다는 이야기는 전설일 뿐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진혁은 속으로 코웃음쳤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리고, 가문에 복귀하시면…… 하하하.”
“기억해 두도록 하겠다.”
“감사합니다, 진혁 님.”
진혁의 말에 원장은 빈 정수리가 훤히 보이도록 고개를 숙인 다음, 조심스레 병실을 나섰다.
곧, 진혁은 홀로 텅 빈 병실에 남았다.
그러나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벌써 다섯 째로군.’
자신의 주변을 둥둥 떠다니는 푸른색의 망령들.
생각 외의 소득에 진혁은 엷게 미소 지었다.
‘병을 치료하는 곳이니, 망령이 많은 것도 당연한 일이지만.’
병사(病死)로 죽은 자의 혼엔 진한 카르마가 담겨 있다.
카르마의 무게 때문에 명계로 가지 못한 망령들을 이끄는 것은, 사령술사들이 해야 할 의무.
‘지금의 내가 가진 힘으로는 이게 한계이긴 하다만.’
그가 한 것은 단순히 영혼의 힘으로 망령들을 굴복시킨 것에 불과했다.
사령술이라 말하기에도 민망한, 단순한 힘자랑.
영혼의 힘으로 굴복시키는 것을 넘어, 진정한 사령술의 길에 들어서기 위해선 또 다른 힘이 필요했다.
‘흑마력.’
마나와는 다른, 죽은 자나 원한 깊은 망령을 움직이도록 하는 동력.
강제로 혼을 지배하건, 계약을 통해 혼과 거래하건.
어느 쪽이든 흑마력 없이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 전에, 몸부터 어떻게 해야겠지만.’
진혁은 자신의 앙상한 팔다리를 내려다봤다.
서가가 가진 특유의 회복력 덕에 재활을 빨리 끝낼 수 있긴 했지만, 십 년 동안 침대에 누워 지내면서 사라진 근육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흑마력을 몸에 담으려면, 결국 강인한 육체가 필요하다.’
흑마력은 죽음과 관련된 힘.
흑마력을 축적하는 것은 산 자의 몸에 부담을 준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흑마력을 몸 안에 담기 위해선, 신체단련이 필수였다.
‘퇴원하고 나면, 아버지를 뵈어야겠어.’
망령군주의 힘을 오롯이 되찾기 위해선, 어느 정도는 가문의 지원이 필요하다.
현재의 그가 가문으로부터 버려진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라곤 하나.
‘아버지의 성격이 십 년 전과 같다면, 기회를 주시겠지.’
그리고, 진혁에겐 그 기회를 따낼 자신이 있었다.
“그럼…… 우선은.”
몸을 만든다.
생각을 마치기 무섭게, 진혁은 몸을 움직였다.
* * *
진혁이 병원을 나선 것은 그로부터 이틀 후였다.
병원의 정문을 나서자, 차가운 바람이 그의 펑퍼짐한 옷소매 안으로 파고들었다.
‘옷은 새로 사야겠어.’
피부 위로 느껴지는 한기에 진혁은 인상을 찌푸렸다.
어느 정도 완성되어 있던 몸에 걸치던 옷을 완전히 말라 버린 육체에 걸쳐 놓으니, 이건 숫제 애가 어른 옷을 입은 꼴이나 다름없었다.
‘그나저나, 본가까지는 어떻게 간다.’
본가의 위치는 서울 한복판에 있었으니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오랜 병상 생활로 약해진 데다 마나홀까지 망가진 진혁의 몸은 한파 속에서 걸어 다닐 만큼 강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해서, 그 고민은 쓸데없는 것이었다.
끼이이익―!
차 한 대가 진혁의 앞에 멈춰 섰다.
척 보기에도 억대를 호가할 것으로 보이는 검은색의 고급 세단.
‘흠…….’
진혁이 의아한 표정으로 차를 바라보기 무섭게, 세단의 조수석 문이 조심스레 열렸다.
그곳에서 나온 것은, 정장 차림의 여자였다.
“퇴원을 축하드립니다, 진혁 님. 저는 진혁 님의 경호를 맡게 된 세한보안의 신주연 팀장입니다.”
조수석에서 내린 그녀는 진혁을 향해 허리를 깊이 숙였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색 생머리가 아래로 흘러내렸다.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룹에서 나왔나 보지?”
“회장실까지 진혁 님을 데려오라는 회장님의 지시입니다.”
“호오.”
그 말에, 진혁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깨어난 지 일주일이 넘었는데도 연락 한 통 없던 그의 아버지가 직접 차를 보냈을 거라곤 미처 생각지 못했으니까.
“그래도 아예 버릴 생각은 아니었나 보군.”
“예?”
“일단 타지.”
당황한 주연을 향해 손을 내저은 진혁은 세단의 뒷자리에 몸을 집어넣었다.
‘십 년…… 아니, 백 년 만에 타는 자동차인가.’
구름처럼 푹신한 가죽시트에 몸을 누인 진혁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다른 세상에서 주로 탔던 마차의 딱딱한 승차감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편안함이 진혁의 몸을 감싸 안았다.
“그럼, 본사로 모시겠습니다.”
곧, 진혁을 태운 자동차가 부드럽게 전진했다.
진혁은 십 년, 저쪽 세상의 기간으로 계산하면 백 년 만에 보는 서울의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세한그룹이라.’
진혁에게 세한은 썩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다.
서가의 장남으로서 짊어져야 할 거대한 의무.
그리고, 후계자의 의무를 강요하거나 질시하는 수많은 사람들.
그 모든 것이 본가, 세한에서 벌어진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다 지난 얘기다.’
예전의 진혁이었다면 도망쳤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대륙 전체의 악의를 홀로 마주했던 것과 비교한다면, 가문 내의 알력 다툼쯤은 고작해야 어린애 장난에 불과했다.
‘나를 짓누르려 한다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다.
―……?
―……?
주인의 불편한 심기를 느낀 망령들이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을 그때.
“진혁 님, 본사에 도착했습니다.”
주연의 말에, 진혁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건물의 이름을 확인했다.
[세한빌딩]
강남 한복판에 위치한, 총 152층 규모의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자 세한의 심장과도 같은 건물.
‘저 촌스러운 글자는 그대로군.’
돋을새김으로 새겨진 빌딩의 이름을 보던 진혁은 속으로 코웃음치고는, 주연의 보조를 받아 차에서 내린 다음 건물 안으로 향했다.
곧, 회장실로 직행하는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진혁과 주연은 순식간에 회장실 앞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혼자 들어가셔야 합니다.”
말을 마친 주연은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진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회장실의 문을 열어젖혔다.
‘오랜만이군.’
십 년 만의 방문.
내부의 디자인은 별달리 변한 게 없었지만, 세월을 머금어 고풍스러워진 인테리어와 가구가 지난 세월을 말해 준다.
그리고.
“왔구나.”
정면.
마호가니로 만든 고급 책상 앞에 앉은 노년의 사내가 보였다.
노인의 입이 열림과 동시에, 무거운 공기가 회장실 전체를 짓눌렀다.
서강진.
세한그룹의 회장이자 오대엽사가문인 서가의 가주이며 (一品)의 엽사.
그리고.
‘내 아버지.’
십 년 만의 재회였지만, 반가움이나 그리움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눈에 띄게 늙어 버린 아버지이자 가주, 회장의 앞에서.
“네, 돌아왔습니다.”
진혁은 담담하게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