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카데미의 노예가 살아남는 법-196화 (196/200)

◈ 196화 외전 (16)

하인 선발이라니?

무슨 놈의 하인을 뽑는 데에 시험까지 치른단 말인가?

“잘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군.”

주인장은 천천히 하인 선발 시험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러니까, 생각 이상으로 지원자가 많아서 시험을 도입하게 됐다는 거죠?”

“그래. 돈도 많이 주지, 숙식도 제공하는 데다, 무엇보다 흑마법사들과 안면을 틀 수 있으니까. 오죽하면 기사의 자제들도 하인을 지원할까.”

남자의 말에 안톤은 고심에 잠겼다.

‘기사의 자제들까지 지원한다니… 생각 이상으로 경쟁이 심한가 보네.’

안톤의 표정이 심각해지자.

남자는 그런 그를 보며 너스레를 떤다.

“뭐, 그래도 멀리서 왔을 텐데 도전 정도는 해 봐야 하지 않겠어? 도전이라도 해 봐야 후회라도 남지 않을 것 아냐!”

“그렇긴 하죠. 하지만 언제 시험이 시작되는지도 모르는데요.”

씁쓸한 미소를 짓는 안톤을 보며 남자가 씨익 미소를 짓는다.

“아무래도 네게 주신님의 은혜가 따랐던 모양이다.”

“…네?”

“하인 선발 시험 접수는 내일까지야. 시험은 접수가 마감된 바로 다음 날 시작하고.”

남자의 말에 안톤은 두 눈을 크게 떴다.

“흑카데미 옆으로 가거든 커다란 벽돌집이 보일 거다. 접수는 거기서 하면 돼.”

“아… 네. 감사합…….”

안톤이 꾸벅 인사하려던 찰나.

타악-

두터운 손바닥이 그의 등짝에 작렬한다.

“하하하, 더 늦기 전에 얼른 가서 접수부터 해라. 얼른!”

“…감사합니다.”

‘으… 무슨 놈의 힘이…….’

안톤은 제법 매서웠던 주인장의 손맛을 뒤로하고 주점을 나갔다.

‘어디… 이쪽으로 가라고 했지?’

주인장이 알려 준 대로 인파를 지나 거리를 헤쳐 나가는 안톤.

얼마나 걸었을까.

‘저건가?’

제법 높다란 담장 밑을 한참이고 걸은 뒤에야.

안톤은 주점 주인이 말했던 벽돌집을 발견할 수 있었다.

‘허… 무슨 사람이 이렇게 많아?’

벽돌집 앞으로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안톤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일단 줄을 서자.’

안톤이 줄의 끝자락으로 가 그저 줄이 줄어들기만을 기다리던 중.

“후… 이번에는 꼭 시험에 통과해야 할 텐데…….”

“체력 시험이야 그렇다고 쳐도, 인내력 시험이 문제란 말이지.”

“저번에는 가장 오랫동안 물통을 들고 있던 녀석들만 통과했다며? 그것도 따지고 보면 결국 체력 시험 아니야?”

“뭐, 이번에는 또 다르겠지. 다른 시험은 몰라도 인내력 시험은 매번 바뀐다고 하잖아?”

앞에 있던 사내들의 대화 소리가 안톤의 귀를 자극했다.

‘인내력 시험이라…….’

시험은 이미 주점 주인에게 들었던 내용들인지라 큰 감흥은 없었으나.

안톤은 그들의 말을 귀 기울여 들었다.

“뭐, 가장 알 수 없는 건 지혜 시험이겠지. 저번에는 지혜 시험에서 성적이 높았던 녀석들이 대거 떨어졌다던데.”

“그놈들은 인내력이랑 체력 시험에서 수준 미달이었던 거겠지.”

“흠… 그런가?”

남자들의 대화를 듣던 중.

어느덧 줄이 줄어들어 접수처 앞까지 도착하게 된 안톤.

“자, 다음 사람!”

“네.”

접수원의 외침에 기다리고 있던 안톤이 그의 앞에 나선다.

“명패를 주겠나?”

명패.

그 사람의 신원을 증명하는 패로서.

명패가 없으면 시험에 참가하는 것 자체가 불가했다.

“여기 있습니다.”

그러나 안톤은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당당히 명패를 꺼내어 놓는다.

‘정말 교수님들의 말씀대로구나.’

[대륙을 누비다 보면 명패가 필요한 상황이 있을 거다. 너희에게 지급하는 이 명패는 우리를 암암리에 지원하는 주민들의 도움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니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안톤이 헤르만 교수의 말을 떠올리던 중.

접수원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그를 보며 묻는다.

“호밀 마을의 안톤, 18세 맞나?”

“네, 맞습니다.”

“으음… 좋네.”

찌이익-

양피지를 사각형 모양으로 잘라 낸 접수원이 그에게 네모난 양피지 조각을 내민다.

“그건 시험증이야. 잃어버리면 재발급은 안 되니 주의하고.”

“감사합니다.”

“1골드야.”

‘1골드……. 접수비도 어지간히 비싸네.’

안톤은 말없이 접수원의 손에 금화 한 닢을 올려놓곤 접수처를 나갔다.

‘후… 그래도 어떻게 잘 끝냈네.’

혹시나 가짜 신분이 걸리지 않을까 내심 조마조마했으나.

접수원은 눈치조차 못 챈 모양이었다.

‘그보다 시험은 모레니까 하루 여유가 남는데… 뭘 해야 하지?’

아는 사람도, 만날 사람도 없는 이곳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숙소에 틀어박혀 연구 일지를 살피는 것 정도였다.

‘조금쯤은 이곳을 둘러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러나 거의 평생을 섬에서, 성카데미에서 생활했던 안톤이었기에.

이 화려한 거리를 걷고픈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비록 이곳이 흑마법사들의 영역이라고는 해도… 이 정도는 레바논 님도 용납해 주실 거야.’

마침내 결단을 내린 안톤이 다시금 시가지로 걸음을 옮기려던 그때.

콰과과과과과광-

“으아아아아악!”

“우와아아앗!”

어디선가 사람들의 선명한 비명 소리가 울려왔다.

‘갑자기 웬 비명이…….’

설마 누가 습격이라도 받고 있는 걸까?

‘그렇다고 해도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이곳은 흑마법사들의 영역.

이곳에서 누가 습격을 받았건 죽었건, 그건 그가 상관할 일이 아니었다.

하나…….

“으아아아아악!”

거듭 울려오는 비명 소리에 성기사라는 직무감이 그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자.

안톤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망할… 어떤 정신 나간 놈이 대낮부터……. 그래. 상황만 지켜보자, 상황만.’

절대로 개입은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몇 번이고 다짐하고서야.

안톤은 비명 소리가 울린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침내 비명 소리가 울려오는 장소에 도착한 안톤.

‘저, 저건 대체…….’

예상과는 너무도 다른 광경에 안톤은 숨을 쉬는 것마저 잊고 말았다.

콰르르르르르르-

기이한 철로를 달리는 수레들에는 사람들이 타고 있었는데.

“우와아아악!”

“꺄아아악!”

밧줄로 칭칭 묶여 있는 그들의 입에선 연신 비명 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심지어 그뿐만이 아니었다.

쿠르르릉-

“자, 내려갑니다. 3, 2, 슈르륵!”

콰과과과광-

그저 흑탑에서 만든 작은 탑 정도로 생각했던 곳에서.

“으아아아아아아악!”

무언가가 사람들의 비명 소리를 동반한 채 삽시간에 떨어져 내리는 것 아닌가?

“…….”

멍한 눈으로 입구를 바라보는 안톤.

[흑마랜드]

그곳에는 흑마랜드라는 희한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

‘흑마… 랜드?’

도대체 저곳은 뭘 하는 곳인 걸까?

‘설마… 흑마법사들이 새로 만들어 낸 고문 기구를 실험하는 곳인가?’

밧줄에 묶여 오도 가도 못 한 채 비명만을 지르는 사람들을 보며.

안톤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크윽… 이 잔악한 놈들이…….’

대륙을 삼킨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저리 대놓고 사람들을 고문하다니.

저들은 정녕 하늘이 두렵지도 않은 것일까.

‘젠장… 젠장!’

마음 같아선 당장이고 저들을 구출해 주고 싶었으나.

지금의 그로서는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난… 난… 참 무기력하구나…….’

고통받는 이들을 구제하고 죄악을 사멸하는 것이 성기사 된 자의 도리건만.

뿌득-

안톤이 반쯤 빼 든 검을 잡은 채 손을 떨던 중.

덜그럭, 덜그럭-

웬 스켈레톤 두 구가 그를 향해 다가오는 것 아닌가?

‘…뭐지? 설마 내가 성기사라는 걸 눈치챈 건가? 아냐… 여기 와서 신성력을 사용한 적은 한 번도 없어. 걸릴 이유가 없다고.’

안톤이 스켈레톤과 싸워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등하던 그때.

척-

갑자기 스켈레톤 한 구가 팔을 들더니 흑마랜드를 가리켜 보인다.

“…….”

놈들에게서 공격할 의지는 느껴지지 않았으나.

안톤은 싸늘한 시선으로 놈들을 노려봤다.

‘뭘 하려는 거지? 왜 고문장을 가리키는 거야?’

안톤이 스켈레톤들을 보는 와중.

“손님! 입구는 이쪽입니다!”

입구에 서 있던 남자가 그를 향해 손짓을 해 온다.

‘…손님? 입구?’

“하하, 흑마랜드를 방문하신 건 처음인 모양입니다.”

“아… 네…….”

여전히 안톤이 검에서 손을 놓지 못하자.

남자는 이러한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웃으며 말을 이어 간다.

“이곳은 주신님의 뜻에 따라 완성한 유희를 즐길 수 있는 공간입니다.”

“…유희요?”

“네, 저기 드래곤 캐슬만 하더라도 드워프들의 피와 땀이 얽힌 기술의 정수라고 할 수 있죠.”

‘…드래곤 캐슬? 저 뱀 같은 철로에 드래곤이라는 이름을 붙이다니… 이렇게 오만할 수가 있나.’

여전히 안톤이 미심쩍은 눈초리를 보이자.

남자는 빙긋 웃는다.

“기왕 오신 김에 한번 체험을 해 보시는 건 어떠십니까?”

“…체험이요?”

고문 기구를 체험하다니?

‘뭔가 이상한데…….’

아무리 봐도 상대에게 적의는 없다.

그런데 그에게 고문 기구를 체험하라는 둥 헛소리를 연발하니.

안톤은 혼란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네. 거기다가 지금은 입장료가 50실버밖에 되지 않으니까요.”

“…….”

‘입장료가 50실버라……. 입장료…….’

저 고문장에 들어가기 위해서 돈을 내야 한단다.

그 말인즉슨…….

‘설마 저곳은 고문장이 아닌 게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안톤의 가슴에 묘한 호기심이 차올랐다.

‘좋아. 그럼 내가 직접 확인해 주마.’

“여기 50실버입니다.”

“네, 여기 팔찌 받으시고요.”

안내원이 양피지로 만든 팔찌를 내민다.

‘설마 신성력 사용을 방해하는 팔찌는 아니겠지?’

괜한 의심이 피어올랐지만 안톤은 말없이 팔찌를 착용했다.

‘…평범한 팔찌네.’

“자, 이제 흑마랜드를 즐겨 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안톤은 무심하게 대답하곤.

천천히 흑마랜드로 들어갔다.

‘함정은 없는 것 같지만… 방심해선 안 돼.’

안톤이 검집으로 바닥을 쿡쿡 찌르며 함정의 유무를 확인하던 그때.

[절망의 나라로 오세요! 즐거움과 행복이 넘치는 고오옷! 흑! 마! 랜! 드!]

어디선가 여인들의 아름다운 합창 소리가 그의 귓가를 자극해 왔다.

‘저건… 인어들이잖아?’

책으로나 접했던 이종족들이 어째서 저곳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걸까?

‘잡혀 온 것 같진 않은데. 으음… 일단 아까 들었던 드래곤 캐슬로 가 보자.’

몇 분 뒤.

“아, 빨리 좀 타고 싶다.”

“어쩔 수 없지. 이게 제일 인기가 많은 마도구니까.”

드래곤 캐슬의 입구 앞으로 늘어선 엄청난 인파를 본 안톤.

‘설마 저걸 타려고……. 정말 고문 시설이 아닌 건가?’

그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던 중.

“드래곤 캐슬에 온 걸 환영한다, 용사들이여. 과연 너희가 드래곤을 물리치고 역사의 주인이 될 수 있을지 지켜보마. 그럼 포털의 문을 열겠다.”

입구 너머로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오더니.

사람들을 태운 수레가 철로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

달달달달달-

수직으로 꺾인 수레가 천천히 하늘을 향해 오르자.

‘맙소사… 맙소사…….’

안톤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도대체 어떻게 저걸 탈 수 있는 거지?’

성기사를 지망하던 그조차 지금 등골이 오싹해지는데.

저걸 타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의 정신머리는 어떻게 된 것이란 말인가?

‘지금이라도 퇴각하는 게… 크윽…….’

하나 평범한 사람들과 아이들마저 줄을 서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자존심이 퇴각을 용납지 않았다.

‘그래… 오늘 죽는 한이 있더라도 끝장을 보자.’

그렇게 몇십 분이나 기다렸을까.

마침내 줄이 빠지고 그의 차례가 되자.

덜그럭-

스켈레톤이 그들을 막아서고 있던 밧줄을 풀고.

그를 수레로 인도한다.

‘후우… 괜찮을 거야.’

덜그럭-

스켈레톤 두 구가 밧줄을 들고 와 그의 몸을 자리에 칭칭 동여매자.

안톤은 불쾌함을 참을 수 없었다.

‘한낱 마물 따위들이 감히…….’

하나 이 자리에서 검을 휘두를 수는 없었기에.

안톤은 스켈레톤들을 놔둘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스켈레톤이 밧줄을 탄탄하게 묶자.

“드래곤 캐슬에 온 걸 환영한다, 용사들이여. 과연 너희가 드래곤을 물리치고 역사의 주인이 될 수 있을지 지켜보마. 그럼 포털의 문을 열겠다.”

기다리던 중 몇십 번이고 들었던 남자의 목소리가 천장에서 울려오더니.

촤르륵-

그를 태운 수레가 철로를 타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달달달달달-

수레가 점점 지상에서 멀어지자.

“…….”

‘레바논이시여… 레바논이시여… 레바논이시여… 으으으…….’

안톤은 속으로 몇 번이고 그가 믿는 신의 이름을 되뇌었다.

‘레바논이…….’

촤르르르르르르륵-

그 와중 하강 부분에 들어선 수레가 엄청난 속도로 떨어지자.

숨을 쉬는 것조차 잊은 안톤은 삽시간에 가까워지는 지상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레… 레… 으어어어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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