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카데미의 노예가 살아남는 법-188화 (188/200)

◈ 188화 외전 (8)

그는 서늘한 눈으로 문 쪽을 응시했다.

한편.

“음…….”

계단을 타고 지하로 내려온 아스칼과 제이나.

하나 그들을 반기는 건 작은 나뭇조각 하나 없는 텅 빈 공간이 전부였다.

“뭐랄까… 생각보다 깨끗하군요.”

“의아하네요.”

“의아하다니요?”

아스칼의 물음에 제이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한다.

“노안르의 증언대로라면 이곳의 마법사들은 독살을 당했어요. 그것도 단체로 말이죠. 그런 상황에서 이곳을 정리할 여유가 있었을까요?”

“…….”

제이나의 말이 맞다.

일족이 전멸하는 참사가 있었던 가문의 비밀 공간치고 이곳은 너무도 깨끗했다.

“어쩌면… 정말 백탑이 개입했을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백탑이 개입했다면 지금의 이 공간이 깨끗한 것도 설명이 된다.

아니, 백탑 말고는 이 일에 관여할 수 있는 조직이 없다.

‘아무래도 백탑이 이 일에 개입한 건 확실해 보이는데…….’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심증뿐이었다.

“그럴 가능성도 존재하죠.”

제이나가 게슴츠레한 눈을 한 채 고개를 끄덕이자.

아스칼은 미간을 찌푸린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백탑과의 전쟁도 현실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글쎄요. 그들이 순순히 더스틴가와의 협력을 인정하겠어요? 더스틴가의 단독 행동이었다며 꼬리를 자르려 하겠죠.”

“음…….”

아스칼이 반박하지 못하자.

제이나는 빙긋 웃으며 거대한 삽을 든다.

“그래도 일단 뭐라도 찾아봐요.”

“…예?”

그녀의 반응에 놀랐는지 아스칼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더 이상 이곳에선 얻을 게 없지 않습니까?”

“혹시 알아요? 놈들이 뭔가 숨겨 둔 게 있을지?”

그 말을 끝으로 번쩍 삽을 쳐든 제이나가 거침없이 삽질을 시작한다.

콰악, 콰악, 콰악-

단단한 지반을 물 뜨듯 퍼내는 것을 시작으로.

콰아아아아앙-

삽을 메이스 다루듯 휘두르며 거침없이 벽을 부수는 제이나.

‘…저게 정녕 같은 사람인가 싶군.’

누더기 골렘도 울고 갈 정도의 파괴력.

정말이지 저 파괴력은 보는 사람도 기가 질리게 만들었다.

콰아아아앙-

그러나 지하실 벽면 곳곳을 파냈음에도 불구하고 마땅한 소득이 없자.

“저… 사도님, 힘드실 터인데 그쯤 하시는 게 어떻겠습…….”

아스칼이 그녀를 만류하려고 했다.

그러던 그때.

터어어엉-

벽을 헤집던 삽날이 무언가에 걸리기라도 했는지 요란한 굉음이 울려왔다.

“호오… 이것 봐라?”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걸까.

씨익 미소를 지은 제이나가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거침없이 파내기 시작한다.

콰아아아앙-

“어…….”

철 덩어리가 파편처럼 튀어나오는 벽면에서 곧 검은 공간이 모습을 드러내자.

아스칼은 멍한 눈으로 그곳을 바라볼 뿐이었다.

“제가 뭐라고 했나요. 뭐라도 찾아보자고 했죠?”

“…….”

‘저 말도 안 되는 실행력 또한 주신께 배운 건가…….’

아스칼은 힐끔 철 파편들을 살펴보며 생각한다.

‘꽤나 복잡한 장치들이 안에 들어있었던 걸 봐선, 본래 어떤 조작을 해야만 문을 열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어중간한 지능은 압도적인 힘 앞에서 무기력하다는 건가.’

하나 그는 이내 당혹감을 감추곤 고개를 끄덕인다.

“참으로 현명한 결정이었습니다.”

스윽-

손을 들어 밝은 불빛을 떠올려 낸 제이나는 그에게 손을 까딱인다.

“얼른 들어가 봐요.”

“예.”

제이나를 따라 어두운 통로를 걷길 몇 분.

“이곳은…….”

곧 그들의 앞에 하나의 공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무래도 이곳이 정답인 것 같네요. 그렇죠?”

제이나의 말대로다.

방치된 것으로 보이는 커다란 유리관들 안에는 아이로 보이는 생명체가 들어 있었고.

곳곳에 먼지가 쌓인 양피지들이 가득했다.

‘근데 이건 어떻게 가동을 하고 있는 거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유리관 앞으로 다가간 아스칼.

그는 유리관 이곳저곳을 살피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마석을 매개체로 계속 가동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야. 하지만 마법사들이 이 정도 기술력을 갖고 있을 리는 없고… 설마 드워프들도 개입한 건가?’

아스칼이 이리저리 유리관을 살피던 그때.

“아스칼! 잠깐 이쪽으로 와 봐요.”

제이나가 다급히 그를 부른다.

“뭡니까?”

“이걸 읽어 봐요.”

제이나가 웬 책 한 권을 내밀자.

아스칼은 의아해하면서도 천천히 책을 읽어 내려갔다.

[레바논의 시대가 저물었고, 지금 대륙에 막대한 영향을 행사하는 것은 주신, 랄프이다. 하나 그도 처음부터 막대한 힘을 가진 신은 아니었다. 그 또한 본디 인간이었다.]

‘이건…….’

[그러나 평범한 이라면 결코 실행할 수 없는 짓을 그는 실행하고야 말았다. 흑마력과 신성력의 결합이 바로 그것이다.]

‘신성력과… 흑마력의 결합?’

주신이 인간이던 시절.

그 또한 나름대로 주신을 보필하던 한 사람이었으나 이 사실은 들은 적이 없었다.

‘이게 정말 사실인 건가?’

아스칼은 혼란스러워하면서도 계속 양피지를 읽어 나간다.

[하지만 어째선지 그의 도박은 성공했고 그로 인해 그는 신이 될 자질을 갖추었다. 그리고… 그게 재앙의 시작이었다. 그로 인해 흑마법사들의 전성기가 도래하고야 말았다.]

‘재앙? 하긴… 다른 사람들에게는 재앙일 수도 있겠지.’

[흑남이라는 구심점으로 흑마법사들은 대륙 전역에 그 영향력을 뻗어 나갔다. 그리고 흑남이 신의 자리에 올랐을 때, 흑마법사를 막을 수 있는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스윽-

어느덧 양피지 한 장을 다 읽은 아스칼은 양피지를 옆으로 넘겼다.

[그렇게 암흑시대가 도래했다. 많은 이들이 그들에게 산 제물을 바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으며, 흑마법사는 모두가 선호하는 직업이 됐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미쳐 돌아가다니? 딱히 우리가 잘못한 건 없는 것 같은데? 흑마법사에게 원한을 갖고 있는 놈이 쓴 건가?’

[그렇기에 난 나의 생명이 황혼에 접어들었음에도 이 정신 나간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리치가 됐다.]

‘…리치? 잠깐… 그렇단 건… 흑마법사가 이걸 쓴 건가? 하지만 왜?’

아스칼은 당혹감을 느낀 와중에도 얼른 다음 페이지를 읽는다.

[먼저 나는 주신이 탄생한 대로 신성력과 흑마력을 결합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하지만 완전히 상반되는 두 힘을 결합하는 게 불가능한 영역이라는 걸 알기까지 10년이 걸렸다.]

‘흠…….’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다. 그들이 대륙의 주인을 자처하는 한, 대륙에 평화는 존재할 수 없다. 그렇기에 나는 방향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그건 바로… 마력과 흑마력을 결합하는 일이었다.]

‘이 글을 쓴 놈도 어지간히 미친놈이군.’

[마력과 흑마력의 결합은 흑마력과 신성력처럼 상반되는 힘이 아니기에,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나는 마법에 대한 지식이 크게 부족했다.]

‘마법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고? 리치까지 된 놈이?’

아스칼은 큰 호기심을 느끼며 다음 페이지를 확인한다.

[그래서 나는 이 제안을 마법사에게 하기로 했다. 분명 마법사라면 이러한 실험에 큰 호기심을 느낄 것을 알았기에…….]

‘…음?’

양피지에 적힌 내용은 거기까지였다.

‘뒤의 내용은 잘린 건가?

“다 읽어 봤나요?”

“예, 그 덕분에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게 됐습니다.”

이곳은 흑마력과 마력을 결합해 새로운 신을 탄생시키고자 하는 곳.

신의 씨앗을 탄생시키는 신의 화원이었다.

“그 외에는요?”

“예?”

“그것 말고도 재밌는 게 있었는데 못 보셨나 보네요. 쓴 사람의 이름을 봐요.”

제이나의 묘한 미소에 아스칼은 얼른 책을 덮고 있던 가죽을 살폈다.

‘…아크? 아크… 분명 어디서 들어 본 이름인…….’

무언가 떠올랐는지 몸을 흠칫거린 아스칼.

“설마 전에 흑카데미의 교수를 했던 그 아크 신관장입니까?”

“그건 저도 모르죠. 다만 주신님에 대해 그리 상세하게 아는 걸 봐선, 그가 아닐까라는 생각은 들지만요.”

“허…….”

아스칼은 놀라움에 혀를 차다가.

어째선지 이내 표정이 점점 어두워져 갔다.

“혹시 뭔가 안 좋은 기억이라도 떠오른 건가요?”

“아, 그건 아닙니다. 애당초 전 아크 교수와 큰 접점도 없었습니다. 다만…….”

아스칼은 유리관의 액체 속에 담겨 있는 아이들을 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제 의도와는 다르게 흑마법사들을 팔아넘긴 게 아닌지… 마음이 좀 무겁군요.”

흑마법사들이 이렇게 실험에 이용될 줄 알았다면.

그는 결코 흑마법사들의 매칭을 진행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게 어떻게 당신의 잘못이죠? 잘못은 흑마법사들을 이용해서 헛짓거리를 하려던 놈들이 한 거죠.”

“…….”

제이나의 말이 맞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아스칼은 피부를 타고 오르는 죄책감을 쉽게 떨쳐 낼 수가 없었다.

‘이제껏 내가 해 온 것들이 잘못된 걸까.’

솔직히 그가 한 일이라곤 그저 비슷한 등급의 대상을 매칭 해 주는 것뿐.

이런 일은 엄연히 그의 영역을 벗어난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타우린가가 이런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는 걸 알고만 있었어도… 하다못해 놈들이 이런 인간일 거라는 걸 파악만 했어도…….’

노안르를 비롯하여 여러 흑마법사들이 이러한 참사를 피할 수 있었을 터.

‘망할…….’

아스칼이 속으로 자책하는 사이.

제이나는 그를 위로하다 말고 자료들을 모조리 자루 안에 쓸어 넣는다.

“어쨌건 이만하면 백탑을 압박하기엔 충분할 것 같네요. 이만 돌아가죠.”

“…돌아가기 전에 이들에게 안식을 주고 싶군요.”

아스칼은 유리관 속의 아이들을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구해 줄 수 있다면야 당연히 구해 주고 싶었으나.

실험의 부작용 때문인지 아이들의 몸 상당 부분이 인간의 것이라 보기 어려울 정도로 괴이하게 변해 있었다.

“그렇게 해요.”

“…미안하다.”

* * *

5일 뒤.

백탑주, 요하의 집무실.

“어찌, 소득은 좀 있으셨습니까?”

요하는 두 사람을 보며 온화한 미소를 짓는다.

“조금은요?”

“…그렇습니까? 조금이나마 소득이 있으셨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혹시라도 제가 도움을 드릴 일이 있다면 편히 말씀하시지요. 이 일은 백탑뿐만 아니라 흑탑도 얽힌 일이니까요.”

“그럼 이걸 좀 봐 주시겠습니까?”

아스칼이 책 몇 권을 꺼내 슬며시 내밀자.

“그건…….”

어째선지 요하의 표정이 점차 딱딱하게 굳어 갔다가.

“책이군요. 한데 어째서 책을 주시는 겁니까?”

이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그들에게 질문을 한다.

“타우린가를 조사하던 중 얻은 자료예요.”

“…….”

제이나가 흔들리는 탑주의 눈을 보며 계속 말한다.

“조사를 해 보니 타우린가에서 노안르 외에도 마법사와 흑마법사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을 납치해 실험을 진행했던 것 같은데, 탑주께선 이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건… 허허허허…….”

잠시간 어색한 웃음을 흘리던 요하 탑주가 정색하며 말한다.

“전 모르는 일입니다. 타우린가가 이런 극악한 일을 저지르고 있었을 줄이야…….”

“물론 모르셨을 거라 믿어요. 하지만 말이죠…….”

빙긋 웃던 제이나의 입가에 광기가 흐르기 시작한다.

“당신들이 타우린가를 보호하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져요.”

“…….”

제이나의 말에 요하 탑주가 몸을 흠칫거린다.

“허허허허, 보호하고 있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타우린가는 멸망했습니다!”

“아, 그래요? 그럼 우리가 에겐 숲에 숨어 있는 타우린가를 멸족해도 상관없다는 거네요. 그렇죠?”

“…….”

어색한 침묵만이 공간을 휘감던 중.

요하 탑주가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무, 물론이지요! 그들이 정말 살아 있다면 응당 대가를 치르게 해야지요!”

“탑주께서 그리 말씀해 주시니 다행이네요. 그럼 타우린가는 우리가 처리하도록 하죠. 그럼 이만…….”

더 이상 대화는 불필요했는지 제이나는 아스칼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고.

“빌어먹을 새끼들이…….”

요하 탑주는 그들이 떠나간 자리를 노려보다가.

콰아아앙-

제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책상을 내려친다.

한편.

“보아하니 탑주도 이번 일에 연관되어 있는 것 같은데, 이대로 마무리하는 겁니까?”

백탑 밖으로 나온 아스칼이 제이나를 보며 묻는다.

“연관되어 있겠죠. 하지만 탑주까지 추궁하는 건 어려워요. 어차피 타우린가만 꼬리 쳐 내듯 쳐 낼 거니까요.”

“…….”

아스칼이 아무런 대답도 못 하자.

제이나는 씁쓸히 웃으며 말한다.

“어쩔 수 없죠, 지금은 이 정도 선에서 만족하는 수밖에.”

“놈들이 또 이런 일을 벌일 수도 있잖습니까?”

“그렇다고 해도 우리에게 더 이상의 명분은 없어요. 그리고…….”

제이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한다.

“주신께서 원하시는 건 백탑의 멸망이 아니라 타우린가의 멸망이었어요. 그 부분을 간과하지 말아요.”

‘빌어먹을…….’

더 이상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걸 깨달은 아스칼.

그는 애꿎은 입술만 깨물다가 불현듯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사도님께선 타우린가가 에겐 숲에 숨어 있다는 걸 어떻게 아신 겁니까?”

“아, 그거요?”

픽 미소를 짓는 제이나.

“주신께서 말씀해 주셨거든요.”

“오…….”

* * *

한 달 뒤.

“후…….”

제이나, 흑기사들과 더불어 에겐 숲에 숨어 있던 타우린가의 일족을 모조리 도륙하고 돌아왔건만.

어째선지 그의 표정은 편치 않아 보였다.

“아스칼 님, 불편한 게 있으십니까?”

상관이 시종일관 멍한 표정을 짓자.

그의 눈치를 보던 흑마법사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해 왔다.

“그냥…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나서 말이야.”

“그 일이라면 전부 잘 끝난 게 아니었습니까?”

“…그랬지.”

타우린가를 완전히 지워 버린 그날 이후.

주신교의 이름 아래에 마력과 흑마력을 합하는 실험은 금지됐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해.’

또 누군가는 어디선가 전과 같은 일을 자행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애당초 사람이란 그런 존재니까.

‘다시는 그런 역겨운 일은 없어야만 한다.’

주신을 위협할 새로운 신의 등장도 문제겠지만.

아이를 이용하는 것부터가 그의 마음을 심히 거슬리게 했다.

‘망할 실험을 완전히 뿌리 뽑아 낼 방법이 없을까……. 아예 시도조차 못 하게 할 그런 방법이…….’

다시금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는 아스칼.

‘가만…….’

그러던 중 무언가 떠오른 걸까.

갑자기 자세를 고쳐 앉은 그가 수하를 보며 입을 뗀다.

“오늘 이 시간 이후로 흑마법사는 흑마법사와만 매칭 할 수 있게 해.”

“…예? 어… 하지만 그렇게 하면…….”

“이용객이 줄겠지. 그래도 해.”

지금 흑마법사는 최고의 결혼감이다.

만약 이 안건을 진행한다면 흑혼해 듀오의 이용객이 줄어들 건 자명했으나 실행해야만 한다.

‘아예 시작조차 못 하게 해 버리면 되는 거였어.’

“그리고 백탑 출신의 마법사들은 등급을 하나씩 내려.”

“…예? 아, 알겠습니다.”

이유 모를 아스칼의 명령에 수하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일뿐이었다.

그러나 아스칼의 명령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가입한 회원들과 앞으로 가입할 회원들은 모두 시험을 치르게 한다.”

“시, 시험 말입니까?”

“그래.”

“어, 어떤 시험을…….”

그에 아스칼이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성품 검사.”

“성품 검사… 말입니까? 그건 어떤 시험인지…….”

“말 그대로 그 사람의 성품을 검사할 거야. 그래서 우리가 정한 기준을 통과 못 하면 회원으로 받지 않는 거지.”

아스칼의 말에 수하는 묘한 표정을 보인다.

“이해했습니다. 다만… 시험을 치른다고 뭐가 크게 달라지는 겁니까?”

“크게 달라지는 건 없어. 하지만 최소한 내 선에서 한 번 정도는 쓰레기를 솎아 낼 수 있지 않겠어?”

인간이 존재하는 한 쓰레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치우도록 최대한 노력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알겠습니다……. 한데 시험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실 건지…….”

“그건 제이나 사도님께 부탁을 좀 드리려고. 신관들의 도움을 받으면 나름대로의 기준을 만들어 낼 수 있겠지.”

* * *

반년 뒤.

“자, 성품 검사 시험 시작 5분 전입니다! 다들 입장들 해 주세요!”

현관에 서 있던 기사의 외침이 울리자.

한쪽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신전 안에 마련된 자리에 착석한다.

“이 모래시계 안의 모래가 다 떨어지면 시험은 끝납니다! 최대한 성심성의껏 시험에 응해 주십쇼!”

기사들이 참가자들을 독려하던 중.

“망할… 성품 검사는 무슨 놈의 성품 검사 시험이야?”

“그래도 어쩌겠어? 이걸 통과해야 흑혼해 듀오의 회원이 될 수 있다는데.”

구석진 자리에 위치한 책상에 앉아 있던 남자들이 서로를 보며 속삭이듯 말한다.

“그깟 결혼 안 하면 그만이잖아?”

남자의 물음에 옆에 있던 동료는 고개를 젓는다.

“꼭 결혼만 위한 건 아니야. 다른 회원들을 만나서 안면도 트고 대화도 나눌 수도 있어. 흑혼해 듀오는 거대한 사교의 장이라고! 만약 거기서 높으신 귀족분과 안면이라도 터 봐. 출셋길은 확실하지 않겠어?”

“끙… 그것도 그러네.”

남자들이 한숨을 내쉬던 사이.

“자, 시험 시작하겠습니다. 지금부터 여러분들께 양피지를 나눠 드릴 겁니다. 그 안에 여러분 나름의 해답을 적어 주시면 되겠습니다!”

흑기사들이 시험자들의 앞에 양피지를 놓는다.

“…음?”

그러자 어째선지 양피지를 받아 든 시험자들의 입에서 당황해하는 음성이 터져 나온다.

‘이게… 시험이라고?’

양피지에 적힌 문제는 희한한 것이었다.

[물에 노예의 아이가 빠졌다. 구할 것인가?]

[큰 흉년이 들어 영지에 기근이 발생했다. 세금을 낮출 것인가, 유지할 것인가?]

[길을 지나가다가 마음에 드는 아녀자를 발견했다. 강제로 취할 것인가?]

‘이게 무슨 문제야?’

남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 픽 실소를 흘린다.

‘이딴 걸 문제라고 냈다고? 무조건 합격하겠어.’

그는 코웃음을 치며 답안을 적기 시작한다.

‘물에 빠진 노예를 왜 구해? 돌았냐? 기근이 발생해? 알 게 뭐야? 세금이 중요하지. 아녀자? 바로 포획!’

남자가 합격을 확신하며 답안지를 작성하던 사이.

시험자들 사이를 걸으며 그들이 적은 답을 살피는 아스칼.

“…….”

그는 답안지의 답들을 보며 생각했다.

‘모든 과오를 바로잡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다가올 불행을 막을 수 있다면 그리하겠다. 내 아이를 위해서라도…….’

에피소드 흑혼해 듀오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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