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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카데미의 노예가 살아남는 법-186화 (186/200)

◈ 186화 외전 (6)

멸망한 가문이 차라리 귀족가라면 어떻게든 수습이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백탑과 관련된 가문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이제 겨우 평화를 좀 만끽하나 싶었더니…….’

누가 짧은 평화조차 시샘한 것일까.

아니면 백탑과 흑탑의 전쟁을 원하기라도 한 걸까.

‘설마… 흑막이 있는 건가?’

“그래서 노안르는? 잡았나?”

“예, 다행히도 스스로 범행을 인정하고 순순히 잡혔다고 합니다.”

“백탑 놈들이 웬일로 양보를 다 한 모양이군.”

노안르가 흑마법사이기는 해도.

그녀가 죄를 저지른 곳은 백탑의 영역 안이었다.

그럼 당연히 백탑의 주관하에 심문을 하는 것이 맞을 터.

“아무래도 탑주님의 입김이 크게 반영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하긴… 그것 말곤 이유가 없겠지. 그래서, 그녀가 타우린가를 멸망시킨 이유가 뭔데?”

아스칼의 물음에 흑마법사는 쉽사리 대답하질 못한다.

“그게…….”

“말해.”

“아스칼 님을 직접 만나서 대화하길 원한답니다.”

그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뜨는 아스칼.

“나를?”

아스칼은 어이없다는 미소를 흘리며 계속 말한다.

“결혼 생활이 퍽이나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인가 보군. 그래, 나를 찾았다면 까짓것 한번 만나 주지.”

“저, 정말 만나실 생각이십니까?”

“그래. 나갈 채비 해.”

* * *

3일 뒤.

과거에는 레바논의 수도였으나 지금은 펠기누스라는 이름으로 바뀐 도시.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누비는 가운데.

푸히힝-

한 마차가 거대하고도 검은 탑 앞에서 정차한다.

‘후우… 별일 없으면 좋겠는데…….’

아스칼은 그런 흑탑을 빤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안으로 걸음을 옮긴다.

“여기, 페이트 왕국까지 호송 임무를 좀 받고 싶은데.”

“그 임무는 인원 배정이 다 끝났어요.”

“…벌써?”

용병처럼 임무를 받고 돈을 챙기고자 하는 흑마법사들을 지나던 중.

꾸벅-

그를 알아본 흑마법사들이 정중히 묵례를 해 왔다.

“그래. 수고들 해라.”

아스칼은 그런 그들에게 손을 들어 보이곤.

데스나이트들이 지키고 있는 거울 앞으로 이동했다.

“흑혼해 듀오의 총책임자 아스칼이다. 레논 님을 만나러 왔다.”

[아… 스칼…….]

데스나이트들이 흉흉한 붉은 안광을 쏘아 보내던 그때.

[들여보내라.]

거울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들어… 가라…….]

“고맙군.”

데스나이트들이 칼을 거두어 들이자.

아스칼은 거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스윽-

거울 앞에 있던 그가 다시 모습을 보인 곳은 어느 기다란 복도였는데.

복도의 끝에는 단 하나의 문이 존재하고 있었다.

똑똑-

아스칼이 다가가 문을 두들기자.

“들어오게.”

안에서 레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끼이익-

“오랜만입니다, 탑주님.”

“오랜만이네. 주신께서 내리신 숭고한 사업은 잘 진행되고 있나?”

이제는 제법 머리가 희끗해진 레논이 그를 반가이 맞이하며 묻자.

아스칼은 씁쓸히 웃어 보인다.

“그러길 바랍니다만, 제 생각대로 풀리는 일이 잘 없는 것 같습니다.”

“일이 순리대로, 생각대로 잘 풀린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시련 또한 주신께서 내리시는 것일세. 그 시련을 헤쳐 나간다면 자네는 한 단계 더 위로 도약할 수 있겠지.”

레논의 나지막한 위로에도 아스칼의 얼굴에 걸린 씁쓸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글쎄요… 이젠 위로 도약하기보단 가족들과 함께 소소한 일상을 보내고 싶기도 합니다.”

몇 년 전, 다크엘프인 아내와 어렵사리 아이를 본 탓인지.

이제는 성공보단 그저 하루하루 아내와 아이의 얼굴을 보며 살고픈 마음도 있었다.

“물론 그렇겠지. 하나 잘 생각하게. 모든 걸 내려놓는 건 쉬울지라도, 내려놓은 걸 다시 줍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네.”

“…저도 잘 압니다.”

아스칼이 조용히 답하자.

레논은 그런 그를 보다가 빙긋 미소를 짓는다.

“물론 가족을 생각하는 자네의 마음이 잘못됐다는 건 아니야. 다만 결정을 하기에 앞서 신중히 고민을 하라는 거지.”

“…그러겠습니다.”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아스칼을 보며.

레논은 깍지 낀 손을 턱에 괴며 말한다.

“그보다 자네가 여기까지 온 이유는 역시 그 일 때문이겠지?”

“예, 노안르가 저를 찾았다고 들었습니다.”

“맞네. 그녀는 지금도 지하 감옥에서 자네 이름을 부르짖고 있지.”

레논의 대답에 아스칼의 표정이 복잡해진다.

“제 이름을… 말입니까?”

“그렇다네. 제법 원한이 많은 것 같던데, 혹시 짐작 가는 부분은 없나?”

“…잘 모르겠습니다. 딱히 누군가의 원한을 살 일을 하진 않은 것 같은데 말이죠.”

아스칼의 대답에 레논은 진중한 표정으로 그를 응시한다.

“어쨌건 이번 일은 굉장히 민감한 일이네. 이미 백탑에선 우리가 신뢰를 깨뜨렸다며 전쟁을 준비하자는 여론이 거세다고 하니 말이야.”

“심문은 하신 겁니까?”

“그러려고 했지만 그녀의 아비가 완강히 반대한 탓에 하지 못했네.”

노안르의 아버지.

암살자들 중에서도 두 번째의 서열에 있는 권력자였다.

“그렇다고 해도 심문은 필요한 일이잖습니까?”

“나도 동의하네. 하지만 암살자들과의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어서 말이지.”

“허…….”

아스칼이 답답함에 한숨을 내쉬자.

레논은 그런 그를 보며 나지막이 말한다.

“그래서 자네의 행동이 중요한 거라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번 일이 흑마법사 전체의 의사가 아닌, 그녀의 독단적인 행동이었다는 걸 자네가 증명해 주게.”

레논의 말에 두 눈을 부릅뜨는 아스칼.

“…예?”

“나도 자네에게 이런 무거운 짐을 안기고 싶지 않네만, 어쩔 수가 없군.”

“…….”

엄밀히 따지면 흑혼해 듀오의 수장인 그의 책임도 있을 것이었기에.

레논의 말에 아스칼은 별다른 반박을 내놓지 못했다.

“만약 실패한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글쎄… 최악의 경우에는 백탑과 전쟁을 벌일 수도 있겠지.”

“…….”

아스칼이 멍하니 그를 바라보자.

레논은 그런 그에게 무언가를 내민다.

“이걸 가져가게.”

“이건…….”

아스칼이 의아해하는 눈으로 수정구를 바라보던 중.

레논이 말한다.

“백탑에서 보내온 물건이네. 그녀를 추궁하는 모습을 그 안에 담을 수 있네.”

“증거를 남기라는 겁니까?”

“그래야 고지식한 백탑 놈들이 납득을 하지 않겠나?”

“…알겠습니다.”

* * *

똑, 똑, 똑-

물방울이 바닥에 고여 생긴 작은 물구덩이 위로.

가죽 신발들이 거침없이 지나친다.

“이곳입니다.”

이윽고 간수가 한 철창 앞에 멈춰 서자.

아스칼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철창 안을 바라본다.

‘어두워서 잘 보이질 않는군.’

“횃불을 주겠나?”

“예, 여기…….”

간수가 그에게 횃불을 전달하려던 그때.

쾅, 쾅-

“와아아아아아아악!”

웬 정신이 나간 것 같은 여인이 괴성을 지르며 철창을 두들긴다.

“허억…….”

깜짝 놀라 뒷걸음질 친 간수와 달리.

“…….”

아스칼은 무심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네가 노안르인가?”

“내가 노안르냐고? 오호호호호! 손님 얼굴을 금방 잊는 모양이네. 하기야 결혼만 시키면 끝이다, 이거지?”

다시금 노안르가 철창을 거칠게 두들기자.

옆에 있던 간수가 슬며시 귀띔을 해 온다.

“손을 단단히 묶어 두어 술식을 맺긴 어렵겠지만… 그래도 조심하십쇼.”

“그러지. 그보다 잠시 비켜 줄 수 있겠나?”

“…예? 하지만…….”

머뭇거리는 간수에게 다시금 손짓하는 아스칼.

“괜찮아. 무슨 일이 생기건 그건 네 책임이 아니다.”

“아, 예. 그럼…….”

간수가 황급히 자리를 벗어나자.

아스칼은 무심한 눈으로 그녀를 보며 입을 뗀다.

“왜 타우린가를 멸망시킨 거지? 그들은 너의 가족이었다.”

“왜 그들을 멸망시켰냐고? 아니! 질문이 잘못된 것 같은데?”

이죽이죽 웃던 그녀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그를 노려본다.

“왜 그들을 멸망시켰는지가 우선이 아니라 그들이 멸망한 이유를 찾는 게 우선 아니야? 응?”

‘그게 그 소리 아닌가.’

그러나 그녀를 자극할 필요는 없었기에.

아스칼은 순순히 그녀의 요구를 따라 주었다.

“좋아. 질문을 달리하지. 왜 그들이 멸망했어야만 했지?”

“내 결혼 생활을 망쳤으니까!”

쾅-쾅-

그녀는 또다시 미친 듯이 철창을 두들기기 시작했고.

촤르륵-

그사이 아스칼은 레논에게서 받았던 수정구를 작동했다.

“네 결혼 생활을 망쳤다고?”

“그래! 놈들은 가장 찬란하게 빛이 났어야 할 날 능욕했지. 놈들이 뭘 했는지 알아? 아냐고!”

“네가 설명해 주지 않는 이상, 내가 알 길이 없지. 그러니 진정하고 네가 겪었던 일을 말해라.”

아스칼의 덤덤한 말투 때문일까.

조금 진정한 노안르가 그를 노려보며 말한다.

“에만… 그 새끼부터가 문제였어.”

‘에만이라면…….’

그녀의 매칭 상대이자 노안르의 남편이었다.

‘미리 정보를 파악하고 오길 잘했군.’

“남편에게 문제가 있었다는 건가?”

“그래! 그놈은… 미친놈이었어! 미친놈이었다고!”

악을 내지르는 노안르가 질릴 법도 했으나.

아스칼은 최대한 냉정히 그녀의 의사를 귀 기울여 들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놈은… 내 아이를… 우리의 아이를… 죽였어. 그것도 처참하게!”

“…….”

‘정말인 건가? 아니면 이미 정신을 놓은 건가?’

그녀가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지 아니면 그저 미친 소리를 내뱉는 건지.

지금의 그로서는 파악할 수가 없었다.

‘이래선 마인드 브레이커도 소용이 없겠어.’

만약 아이가 남편의 손에 죽지 않았더라도.

그녀가 그 사실을 진실이라고 믿는다면 그녀의 입에선 똑같은 말이 흘러나올 터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일단은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는 가정하에 접근해 보자.’

“아이를 죽였다고?”

“그래!”

“하지만 의아하군. 네 말대로라면 남편인 에만만 죽이면 됐을 텐데. 왜 타우린 일가를 멸족한 거지?”

아스칼의 물음에 노안르의 입가에 비웃음이 걸린다.

“그야 그놈들도 모두 한통속이었으니까.”

“…한통속?”

“놈들은 내 아이에게 실험을 했었어. 그것도 겨우 3살 남짓의 아이에게 말이야!”

다시 노안르가 흥분하려 하자.

아스칼은 얼른 그녀를 진정시킨다.

“진정하고 차분히 말해. 최대한 냉정하게 말을 해 줘야 나도 너를 도울 수 있다.”

“놈들은… 놈들은 내 아들을 통해 마력과 흑마력을 융합하려고 했어.”

‘…마력과 흑마력을?’

파괴적이라는 부분에서 언뜻 두 힘이 엇비슷해 보일 수 있겠으나.

엄밀히 두 힘은 달랐다.

‘마력이 자연의 힘을 뒤틀어 그 힘을 체내에 모으는 것이라면, 흑마력의 경우는 사체나 자연에 있는 음의 기운을 몸에 집어넣는 거니까.’

한데 두 가지의 다른 마력을 한 몸에 집어넣는다니?

그것도 3살배기의 어린아이에게 말이다.

‘만약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일은 결코 좌시해선 안 될 사안이다.’

이 일은 능히 백탑에 책임을 물어야 할 일이었다.

“그래서 아이는…….”

“죽었어. 내 눈앞에서 갑자기 몸이… 몸이 뻥 터져서 죽었지. 웃기지? 웃기지? 웃기지?”

“…….”

깔깔 웃는 노안르와 달리.

아스칼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다 미친놈들뿐이었어! 넌 미친놈들의 소굴에 날 밀어 넣은 거라고!”

그녀의 말대로 타우린가가 정말 미친놈들만 우글거리는 가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실까지 그가 어떻게 파악한단 말인가?

‘가면을 쓴 미친놈들만큼 찾아내는 게 어려운 것도 없는데… 골치 아프게 됐군.’

다만 일단은 정말 그녀의 말이 사실인지 파악해야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를 찾은 건가? 원망을 토해 내려고?”

“아니.”

“그럼 내게 뭘 원하는 거지?”

아스칼의 물음에 그녀는 자조 섞인 미소를 짓는다.

“타우린가를 조사해. 그리고 놈들이 내 아이를 갖고 뭘 하려고 했던 건지 알아내.”

“…단순히 정보를 원한 거라면 네 아버지의 도움을 받으면 됐을 텐데?”

기본적으로 암살자들은 정보 파악에 능통하다.

더욱이 그녀의 아버지의 권세를 이용한다면 정보를 얻는 것 정돈 어렵지 않을 터.

“암살자들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한계가 있어. 하지만 넌 다르지. 넌 온갖 군중의 정보를 갖고 있잖아?”

“…….”

그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매칭을 위해 다양한 사람들의 정보를 보유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보고 네 아이의 복수라도 해 달라는 건가?”

“복수는 이미 끝냈어. 다만… 아이를 잃은 어미의 작은 부탁 정도로 여겨.”

그 말을 끝으로 노안르는 더 이상 대화를 이어 가고 싶지 않았는지 등을 돌려 버렸고.

‘흠…….’

아스칼은 몇 차례 더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가 수정구를 챙겨 감옥을 나갔다.

* * *

레논의 집무실.

[다만… 아이를 잃은 어미의 작은 부탁 정도로 여겨.]

재생했던 수정구가 마지막 장면을 끝으로 활동을 정지하자.

레논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타우린가가 비밀리에 어떠한 실험을 진행 중이었는데, 자신의 아이가 이용되자 참지 못한 노안르가 일을 벌였다는 건가?”

“…일단은 그렇습니다.”

“허 참…….”

레논은 기가 막혔는지 헛웃음을 흘린다.

“자네는 그녀의 말을 신뢰할 수 있다고 보나?”

“확신은 없습니다만…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하나 정신 상태가 온전치 못한 흑마법사의 말을 맹신할 수도 없는 노릇이네.”

레논의 말도 일리가 있었기에.

아스칼은 그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만약 사실이라고 한다면, 결코 넘어갈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마법사가 실험을 위해 흑마법사를 이용했다면.

응당 그 대가를 치르게 해야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있는 게 없네.”

레논의 우려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아스칼.

“그래서 개인적으로 타우린가를 조사해 볼까 합니다.”

“…자네의 위치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건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최대한 백탑과의 마찰을 피해 일을 진행해 보겠습니다.”

아스칼의 단호한 대답에 레논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그럼 그리하게.”

“그런데 노안르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일단은 백탑이 그녀의 인계를 요구하고 있지만, 자네가 정보를 수집할 때까지 최대한 시간을 끌어 보겠네.”

* * *

한 달 뒤.

“으음…….”

양피지 더미에 둘러싸인 아스칼이 나지막이 신음을 토해 낸다.

‘도저히 단서라고 할 만한 게 보이질 않네.’

이 한 달간, 흑혼해 듀오의 정보력을 이용하여 타우린가를 비롯해 마법사들의 정보를 파악했으나.

그 어디에도 노안르가 말한 실험과 관련된 단서를 얻을 수가 없었다.

‘마력과 흑마력의 융합… 노안르의 말이 사실이라면 타우린가는 왜 그런 실험을 진행하려고 했던 걸까…….’

그러나 아무리 고민해도 이렇다 할 답은 나오지 않았고.

‘죽겠군.’

그만 지쳐 버린 아스칼이 소파에 벌러덩 누우려던 그때.

벌컥-

누군가가 그의 집무실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온다.

“오랜만이에요, 아스칼.”

“제, 제이나 님?”

금빛의 머리를 찰랑이는 여인이 들어오자.

화들짝 놀란 아스칼은 얼른 몸을 일으키곤 그녀를 맞이한다.

“오랜만입니다.”

“저번 의식 이후로 처음이죠?”

그녀가 일정 주기마다 주신께 올리는 의식을 언급하자.

아스칼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하하, 시간이 참 빠르게 흐르는 것 같군요.”

“그러게 말이에요.”

하나 시간의 흐름조차 무시하는지 그녀의 외모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한데 사도님께서 이곳엔 어쩐 일이신지… 아, 혹시…….”

게슴츠레한 눈으로 제이나를 바라보는 아스칼.

“설마 매칭을 하려고 오신 겁니까?”

“네? 호호, 농담도 잘하시네요. 전 이미 주신님의 것이라고요.”

‘그럼 대체 이곳에는 왜 오신 거지?’

아스칼이 좀처럼 의문을 해소하지 못하던 중.

제이나가 천천히 입을 뗀다.

“찾는 사람이 있는데 혹시 이곳에서 도움을 좀 받을 수 있을까 해서요.”

“찾는 사람 말입니까?”

“그래요. 에만이라는 마법사인데, 혹시 그의 정보가 있나요?”

‘에만. 에만… 에만?’

“혹시 타우린가의 에만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잘 아시네요? 아는 사람인가 봐요?”

“…….”

제이나의 물음에 아스칼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연다.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죽었습니다.”

“…죽었다고요?”

아스칼의 대답에 제이나는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희한하네요, 분명 주신께서 내리신 신탁에 의하면 그가 살아 있다고 하던데요.”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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