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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카데미의 노예가 살아남는 법-184화 (184/200)

◈ 184화 외전 (4)

“…음?”

“왜 그래요, 여보?”

“방금 무슨 소리가 들려온 것 같아서. 아니야, 잘못 들은 모양이야.”

부부가 방금 전의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어가던 그 무렵.

정체불명의 남자는 드래곤 캐슬이 자리하고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호오… 설마 이 정도로 정교하게 완성했을 줄이야. 이건 생각 이상이네.”

남자는 마치 흑마랜드의 관리자라도 되는 것처럼.

드래곤 캐슬의 레일을 면밀히 살피며 감탄한다.

“오리하르콘으로 만든 건가. 구하기 어려웠을 텐데. 근데… 저 녀석들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게슴츠레한 눈으로 드래곤 캐슬의 대기 줄을 응시하는 남자.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사람의 외형을 덧입은 아바돈과 아몬 그리고 마몬을 본 그는 피식 실소를 흘린다.

‘뭐, 녀석들에게도 꽤나 특이한 장소긴 할 테니까. 오늘만 봐준다.’

남자가 사람들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다시금 레일을 만지던 그때.

“이봐! 함부로 만지지 마!”

흑마랜드를 순찰 중이던 두 흑마법사가 득달같이 그에게 달려왔다.

“만지면 안 되는 겁니까?”

“당연하지! 저 위로 수레가 지나가는 것 못 봤어?!”

그러나 남자는 호통을 치는 흑마법사를 보며 빙긋 웃음을 짓는다.

“나름 안전에도 신경을 쓰고 있는 모양이네.”

“…뭐? 안 되겠군. 따라와!”

두 흑마법사는 어딘가 꺼림칙한 기분을 느끼곤 남자를 포획하려 했으나.

스슥-

“뭐, 뭐야……!”

“어디로 사라진 거지?”

남자는 눈 깜짝할 새 그들의 앞에서 사라져 있었다.

“이런 망할… 당장 찾아!”

* * *

한편.

‘진짜 잘 모방했네.’

나는 흑마랜드 곳곳을 돌아다니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곳의 기술력으로 실현하기 어려운 부분들도 어떻게든 해결했고.’

레일 위를 달리는 수레도 놀라웠지만.

“자, 하늘 위로 비상합니다! 추우울발!”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위에서 아래로 삽시간에 하강하는 놀이 기구 또한 실체화를 했다는 것이었다.

절그럭, 절그럭, 절그럭-

무려 다섯 구의 누더기 골렘이 엄청난 두께의 쇠사슬을 잡아당기자.

“오, 올라간다! 올라가고 있어!”

“우, 우리 죽는 건 아, 아니겠지?”

사람들을 태운 쇳덩이가 지지대를 타고 점차 하늘 위로 올라간다.

이윽고 쇳덩이가 더 이상 올라가지 않는 지점에 도달하자.

“자. 5초 뒤 떨어집니다. 오, 사… 일!”

기구 관리자의 외침이 떨어지기 무섭게 누더기 골렘들이 일시에 사슬을 놓았고.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곽-

“으아아아아아악!”

그 반동으로 드높이 올라가 있던 쇳덩이가 미친 속도로 떨어져 내린다.

이윽고 쇳덩이가 지면 가까이 내려온 그때.

그어어어어-

손을 놓고 있던 누더기 골렘들이 일시에 사슬에 달라붙었고.

촤르르르륵-

그 반동으로 인해 누더기 골렘들의 몸이 앞으로 주르륵 미끄러진다.

이윽고 누더기 골렘들이 천천히 사슬을 놓자.

툭-

사람들을 태웠던 쇳덩이가 천천히 지면에 착지했고.

“우와이씨… 진짜… 진짜 죽는 줄 알았어!”

“나도 이게 죽음인가 싶었다니까?!”

“그래? 난 엄청 재밌었는데. 또 탈래?”

“타겠냐? 다시는 안 탄다!”

밧줄로 단단히 결박되어 있던 사람들은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저건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난 어이가 없어 웃음을 흘렸다.

‘도대체 누더기 골렘들을 얼마나 훈련한 건지 원…….’

누더기 골렘들에게 생과 사를 가르는 정확한 타이밍을 익히게 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았을지는 나조차 감이 오질 않았다.

‘근데…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싹 다 죽는 것 아냐?’

어지간한 성보다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가 지상에 처박히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은 없을 터.

‘저건 보완이 필요하겠는데.’

그 외에도 나는 오싹오싹 스켈레톤의 집과 당근 잘 먹는 예쁜 말 등.

흑마랜드에 있는 모든 놀이 기구들을 관찰했다.

‘내가 구상했던 거랑은 조금 느낌이 다르긴 하지만… 어쨌건 최대한 충실히 잘 구현했네.’

만약 이곳에 평점을 매기는 시스템이 있었다면 별점 4개를 줬으리라.

‘이건 찾아가서 상을 줘야겠는데.’

내가 미처 구현하지 못했던 계획을 구현한 이에게 응당 상을 줘야 마땅할 터.

‘나가란이 이걸 만들라고 지시했다고 했었지?’

내가 옛 기억을 떠올리고 자리를 옮기려던 그때.

“으허허허, 정말 굉장하군.”

어디선가 노인의 너털웃음이 들려왔다.

‘이 목소리는…….’

어딘가 꽤나 익숙한 목소리에 나는 모습을 감추곤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응시했다.

“탑주님께서 원하신 대로 주신께서 남기셨던 설계도를 최대한 모방했습니다.”

“아주 잘했네. 너무도 만족스럽군.”

그곳에는 나가란 탑주를 필두로 레논 부탑주 그리고 레나를 비롯하여.

다수의 흑마법사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만하면… 주신께서도 크게 기뻐하시겠… 쿨럭, 쿨럭!”

격렬한 기침을 토해 내는 나가란을 보며 난 생각했다.

‘건강에 문제가 있나? 하긴… 저 정도로 오래 살았으면 언제 가도 이상하진 않지.’

“괜찮으십니까, 탑주님?!”

“난 괜찮네. 신경 쓸 것 없으니 얼른 안내를 이어 가 주겠나?”

무엇이 그리도 급한 걸까.

나가란은 한사코 흑마법사들의 시중을 거절하곤.

오롯이 자신의 두 발과 지팡이에 의지하여 걸음을 이어 간다.

“저건 뭔가?”

“빙글빙글 엔트입니다. 엔트를 이용한 놀이 기구로 엔트들과 드루이드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가… 참으로 흥미롭군.”

어딘가 힘없는 미소를 보이는 나가란의 모습에 불안감을 느낀 건지.

레논은 얼른 말을 이어 간다.

“또한 저쪽에 있는 파멸의 나라로 이동하시거든, 여러 동물들 또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 동물들이라고? 위험한 건 아닌가?”

“드루이드들이 포섭한 동물이라 위험하진 않습니다.”

레논의 대답에 나가란은 하늘을 보며 씁쓸히 웃는다.

“그 또한 잘 구현했군. 주신께서 왜 그런 공간을 만들라고 하셨는지는 의문이지만 말이야.”

‘아, 그거… 동물원이야.’

작금의 세상에서 동물은 사냥의 대상인 터라.

저들에게 동물원이란 개념은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고민하다가 슬쩍 집어넣은 건데 그것까지 구현할 줄은 몰랐지.’

내가 허공에서 저들을 내려다보며 멋쩍게 웃던 중.

레논이 진중한 표정으로 말한다.

“아마도 주신께서는 동물과 인간의 결합을 원하신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과 동물의 결합?”

“예, 비록 저들이 말 못 하는 짐승이라 할지라도 아끼고 또 사랑하고자 하시려 했던 게 아닐는지…….”

‘아니야. 그건 아니야.’

혹시라도 레논의 잘못된 해석에 흑마법사들이 동물 애호가로 변하면 어쩔까 하는 우려도 들었으나.

“으허허허, 재미있는 해석이군. 방금 자네는 꼭 드루이드 같았어.”

나가란은 껄껄 웃으며 그의 말을 농담 정도로 치부하는 듯했다.

“그리고 저쪽은 아직 완성이 되지 않았습니다만, 완성이 되는 대로 탑주님께 선보이겠습니다.”

레논이 서쪽 저 멀리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가리켜 보이자.

나가란은 그를 보며 묻는다.

“저곳은 뭘 하는 곳이지?”

“저곳은… 죄송합니다. 워낙 낯선 이름인지라…….”

주섬주섬 양피지를 꺼내어 내용을 훑는 레논.

“주신님의 설계도에 따르면 저곳은 수영장이라는 곳이 들어설 곳입니다.”

“물에서 헤엄을 치는 곳이었나?”

“맞습니다. 아마도 어인족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려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레논의 말에 나가란 또한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래도 어인족들에게 약속을 하신 게 있으셨던 모양인 게지. 수영장이 완성되거든 어인들을 초빙하게. 그들에게도 주신님의 위대함을 알려 줘야지.”

“그리하겠습니다.”

‘어… 그래. 좋을 대로 해석해라. 난 모르겠다.’

저들의 해석이 다소 특이하긴 했으나.

어쨌건 원하던 것만 잘 구현되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이만한 완성도라면 슬슬 각 왕국의 왕족들과 귀족들을 초빙해도 될 것 같은데. 레논,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아직 시험 단계라 보완할 부분들이 있긴 합니다만, 슬슬 초빙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흑마랜드의 인기가 드높아진다면 입장비를 받으려고 합니다.”

“입장비? 돈을 받자는 건가?”

나가란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레논.

“주신께서 이곳을 계획할 당시 흑탑의 재정을 생각하고 지금의 이곳을 고안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주신의 뜻을 따라 입장비를 받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하나 그리하면 평범한 시민들은 이곳을 이용할 수 없을 텐데?”

“그들 또한 이용할 수 있도록 적절한 가격을 매기려 합니다.”

레논의 대답이 만족스러웠던 걸까.

나가란은 그제야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이용할 수 있고, 흑탑 또한 재정비를 충당할 수 있으니 모두가 좋은 셈이로군.”

“그렇습니다. 이곳 흑마랜드는 모두에게 행복을 줄 장소가 될 것입니다.”

“그렇군. 그렇군…….”

물끄러미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나가란이 조용히 입을 뗀다.

“이만하면 분명 주신께서도 만족하셨겠지. 그렇잖나, 레논?”

“분명 만족하셨을 겁니다.”

‘그래. 만족한다.’

부족한 기술력을 인력과 마법으로 이만큼이나 일구어 낸 것은 분명 칭찬할 만한 것이었다.

“…….”

잠시 고요한 바다와 같은 눈으로 흑마랜드를 응시하는 나가란.

이윽고 그는 레논을 보며 말한다.

“이보게, 레논.”

“예, 탑주님.”

“자네는 우리에게 이런 날이 올 것이라 생각했던 적이 있나? 우리가 대륙의 주인이 되어 세상을 호령하는 날이 올 거라 믿었나?”

그에 레논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젓는다.

“어디까지나 꿈이었을 뿐, 현실이 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레논의 솔직한 대답에 빙긋 미소를 짓는 나가란.

“나 또한 그리 생각했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이곳에 있지. 레바논의 심장이 있었던 자리에 말이네.”

“그렇습니다.”

“세상사라는 것이 참으로 우스워. 그토록 원할 때는 이루어지지 않던 것이, 늘그막에 결실을 보게 될…….”

나가란이 채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몸을 비틀거리자.

“의자! 의자를 가져와라!”

레논은 황급히 옆에 있던 흑마법사에게 소리친다.

덜그럭-

마땅히 앉을 곳이 없어 엎드려뻗친 스켈레톤 위에 나가란을 앉히자.

나가란은 곧 잠들 것 같은 눈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세상은 우리의 것이야. 그렇지 않나, 레논?”

“그렇습니다! 이제 그 누구도 우리 흑마법사들을 멸시하지 못합니다.”

“그래… 그런 세상을 원했어. 그 누구도 우릴 핍박하지 못하는 세상……. 그리고 주신께서는 그러한 세상을 내게 보여 주셨지.”

점점 감기어 가는 나가란의 눈을 보며.

레논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그의 손을 꽉 쥐는 일뿐이었다.

“전에도 말했듯… 차기 탑주의 자리는… 자네의 것일세. 나를 대신하여… 흑탑을… 흑마법사들의 부흥을 이끌어 주겠다… 약속할 수 있겠나?”

“탑주님!”

“…약속하겠나?”

촛불처럼 당장이라도 나가란의 눈이 꺼지려 하자.

레논은 입술을 꽉 깨문 채 고개를 끄덕인다.

“약속하겠습니다! 맹세하겠습니다!”

“그래… 그거면… 됐…….”

“…….”

축 늘어진 나가란을 말없이 바라보는 레논.

그는 한참이고 나가란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뗀다.

“탑주님을… 보내 드릴 준비를 해라.”

“…예.”

촤라라라라라라라락-

“으아아아아! 그, 그만해!”

“꺄아아아악!”

사방에서 즐거운 비명 소리가 들려오는 이곳, 흑마랜드.

행복과 기쁨만이 넘치는 이곳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흑마법사가 스켈레톤의 위에서 숨을 거두었다.

에피소드 흑마랜드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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