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3화 외전 (3)
“이게 대체…….”
머릿속을 몽롱하게 만드는 여인들의 음색 때문일까.
남자는 홀린 듯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긴다.
이윽고 남자는 커다란 호수 앞에서 걸음을 멈췄는데.
[즈을거운 축제가 열리는 고오옷!]
호수에 자리하고 있는 커다란 바위 위로.
하반신에 물고기의 꼬리를 갖고 있는 여인들이 환한 미소와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세상에……. 저들은… 인어가 아닌가요?”
어느새 뒤따라온 아내의 물음에 남자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것 같아. 내가 살아생전에 인어를 보게 될 줄이야…….”
비단 인어의 목소리에 홀린 것은 그들뿐만이 아니었던 건지.
이미 와 있던 사람들 또한 인어를 보며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절망의 나라로 오세요! 꿈과 희망이 가득한 이고오옷! 흑! 마! 랜! 드!]
마침내 인어들의 합창이 끝나자.
와아아아아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인어들을 향해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낸다.
“정말이지… 천상의 목소리였어. 평생 들어도 지겹지가 않을 것 같아.”
“왜 귀족들이 인어를 수집한다는 소문이 나도나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군.”
일부는 인어의 노래에 미련이 남았는지 선뜻 발길을 돌리지 못했으나.
“이만 가자고. 아직 봐야 할 게 더 많잖아?”
“…그렇지. 이동하자.”
대부분은 흑마랜드에 대한 호기심을 해소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걸 택했다.
“여보! 뭐 하고 있어요! 안 갈 거예요?!”
“아… 가야지. 암!”
그리고 아내의 호통에 몽롱한 표정을 짓고 있던 남자는 아쉬움을 삼키며 앞으로 이동한다.
“어머. 여보, 여기 좀 봐요. 꽃들이 가득하네요. 나무도 많고요.”
아내가 길 곳곳에 심긴 꽃들을 보며 활짝 웃자.
남자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본다.
“나무랑 꽃은 산에도 많잖아?”
“그렇긴 해도……. 하여간 당신은 낭만이라곤 요만큼도 없는 통나무 같네요.”
“낭만이 밥을 먹여 줘? 낭만은 말이야, 귀족들만이 부릴 수 있는 사치스러운 감정일 뿐이라고!”
“뭐라고요? 당신은 진짜……!”
부부가 서로를 흘겨보며 말다툼을 시작하려던 그때.
촤르르르르르륵-
어디선가 돌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그들의 귓가를 선명하게 울려왔다.
“여보… 방금 들었나요?”
“들었어. 방금 건 대체… 허억…….”
무엇에 그리도 놀란 건지.
남자는 전방을 가리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저게 대체…….”
그저 희한한 조형물 정도로 생각했던 기다란 철길 위를 수레들이 세차게 달리고 있는 것 아닌가?
“마, 마도구 아닐까요?”
“글쎄… 잠깐…….”
꺄아아아아악-
“사람들이 타고 있잖아?!”
수레에는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타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표정이 공포에 물든 게, 참 꼴이 가관이었다.
“그, 그마… 으허허허헉!”
사람들을 실은 수레가 삽시간에 철길을 타고 사라졌으나.
비명 소리만은 여전히 남아 부부의 얼굴에 내려앉았다.
“저, 정말 괜찮은 거겠죠?”
“…뭐가.”
“혹시 흑마법사들의 실험실에 우리가 스스로 찾아온 거라거나…….”
아내의 표정이 점차 울상으로 변하자.
남자는 단호히 말한다.
“예전이었다면 몰라도, 설마 그러겠어? 그건 아닐 거야.”
“그럼 저건 대체 뭔데요?!”
“…….”
남자가 아내의 말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던 그때.
불현듯 그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온다.
“여보, 저길 봐! 수레가 멈춘 곳을 보라고! 저 밑에 사람들이 모여 있잖아!”
“어머, 정말이네요?”
수레들이 멈춘 자리 밑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어째선지 머리가 산발이 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일단 저쪽으로 가 보자고.”
아내의 손을 잡곤 인파가 모여 있는 자리로 이동한 남자.
그가 줄 서 있는 인파를 힐끔 쳐다보던 중.
“이봐요, 드래곤 캐슬의 줄은 저쪽이에요.”
“…예?”
“줄을 서야 이용할 수 있다고요.”
한 여인의 앙칼진 말에 남자는 멋쩍게 고개를 숙이고는 아내에게 다가가 말한다.
“줄을 서라는데?”
“줄이요? 잠깐… 그럼 이게 줄이었다는 거예요?”
“그런가 봐. 다들 미친 게 분명해. 저 정신 나간 수레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다는 거잖아?”
수레를 타고 드높은 상공에 위치한 철로를 누비다니.
아무리 봐도 미친 짓이라고밖엔 보이질 않았다.
“그래도 한번 타 보는 게 어때요?”
“…뭐?”
아내의 말에 눈을 부릅뜨는 남자.
“사람들이 이렇게 줄을 서 있는 건 나름 안전하다는 것 아니겠어요? 저기 마법사님들도 계시니까 문제가 생기면 분명 해결해 주실 거예요.”
“으음…….”
아내의 말이 나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걸까.
“후우… 알았어. 대신 딱 한 번만이야.”
결국 아내의 말을 따르기로 한 남자는 한숨을 내쉬곤.
아내와 함께 줄의 끝에 서서 줄이 줄어들길 기다린다.
몇십 분이나 기다렸을까.
마침내 줄이 빠지고 그들의 차례가 되자.
덜그럭-
스켈레톤이 그들을 막아서고 있던 밧줄을 풀고.
그들을 수레로 인도한다.
“괘, 괜찮은 거겠지?”
“괜찮을 거예요.”
수레에 탄 부부가 불안한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던 그때.
덜그럭-
갑자기 스켈레톤 두 구가 밧줄을 들고 와 그들의 몸을 자리에 칭칭 동여매기 시작했다.
“이, 이건 몇 번을 봐도 적응이 안 되네요.”
“…그러니까.”
기다리며 앞사람들이 밧줄에 묶이는 걸 몇 번이고 봤지만.
그들은 도무지 지금의 상황에 적응할 수 없었다.
꽈아악-
이윽고 스켈레톤이 밧줄을 탄탄하게 묶자.
“드래곤 캐슬에 온 걸 환영한다, 용사들이여. 과연 너희가 드래곤을 물리치고 역사의 주인이 될 수 있을지 지켜보마. 그럼 포털의 문을 열겠다.”
천장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오더니.
촤르륵-
마침내 그들을 태운 수레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여, 여보! 움직이고 있어요!”
“아, 알아!”
시작부터 당황한 부부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던 중.
달달달달달-
수직으로 꺾인 수레가 천천히 하늘을 향해 오르기 시작한다.
“세상에… 세상에…….”
“주신이시여…….”
수레가 점점 지상에서 멀어지자.
부부의 얼굴 또한 새하얗게 질려 간다.
이윽고 오르막길 부분이 끝나자 여인은 안도의 숨을 내쉰다.
“다 올라온 모양이에요.”
“…….”
그러나 아내의 말에 남자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의 시선은 그저 밑이 보이지 않는 정면을 응시하고 있을 뿐.
“여보, 이제 괜찮은 것 아닌…….”
촤르르르르르르륵-
하강 부분에 들어선 수레가 엄청난 속도로 떨어지자.
“억…….”
아내와 남자는 단말마의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으어억! 억! 크어어억!”
“그… 그만…….”
그저 흔들리는 수레에 몸을 맡기고 이 미친 순간이 끝나기만을 기도하는 것뿐.
촤라라라라락-
미친 말처럼 좌우상하로 사정없이 흔들리던 수레가 마침내 출발점에 도착하자.
“호오… 무사히 용을 격퇴하고 돌아왔군. 보상을 달라고? 보상은 너희의 목숨이다. 썩 꺼져.”
수레가 출발하기 직전에 들려왔던 남자의 목소리가 부부의 귓가를 울려온다.
덜그럭-
그러나 그들은 스켈레톤들이 다가와 밧줄을 풀어 주는 그 순간까지 멍청한 표정으로 수레를 바라봤다.
“우리… 죽은 건 아니겠죠?”
“…살아 있어. 살아 있다고! 우린 살아 있어!”
수레에서 나온 게 그리도 기뻤던 건지.
남자는 두 손을 번쩍 든 채 포효한다.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난…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을 봤어.”
“저 사람들도 대단하네요. 저 무서운 걸 몇 번이고 타고 있잖아요.”
아내가 머리가 산발이 된 사람들을 가리키자.
남자 또한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미친놈들인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저걸 어떻게 계속 탈 수가 있겠어?”
남자가 질린다는 듯 혀를 차자.
아내는 그런 그를 물끄러미 보다가 입을 뗀다.
“그럼 한 번 더 탈래요?”
“…미쳤어?”
단호히 고개를 저은 남자가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 든다.
그는 양피지 위에 그려진 그림을 잠시간 보다가.
고개를 돌려 아내를 바라본다.
“저쪽으로 조금만 걸으면 빙글빙글 엔트라는 게 있는데, 그거나 구경하러 가자고.”
“…빙글빙글 엔트요?”
남자는 더 이상 드래곤 캐슬을 보고 싶지 않았는지.
얼른 아내의 손을 잡곤 빙글빙글 엔트가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돌렸다.
“여긴…….”
이윽고 그들이 커다란 나무들이 빼곡히 자리하고 있는 곳에 도달한 그때.
와아아아아아-
나무 사이로 사람들의 탄성이 들려온다.
“저긴가 보네.”
“얼른 가 봐요.”
그들이 나무 사이를 지나 안으로 접근하자.
[움허허허허!]
나무가 살아 있기라도 한 건지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모습이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세상에… 빙글빙글 엔트라는 게…….”
“정말 엔트가 빙글빙글 도는 걸 줄이야…….”
사람들과의 대면을 싫어하기로 소문난 엔트가 저리 빙글빙글 돌고 있을 줄이야.
“빨리! 더 빨리!”
하나 당황한 그들과 달리 나뭇가지에 달린 그네에 타고 있던 아이들은 그저 신이 나.
엔트를 더욱 보챘다.
[우욱… 어지럽군. 이만 교대하지.]
[알겠네.]
콰드드드득-
가지에 그네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나무 한 그루가 벌떡 일어나자.
“와아아아! 새 나무가 일어났다! 다 절로 가!”
그네에 앉아 있던 아이들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옆 나무로 뛰어간다.
[움허허허허! 줄을 서거라, 인간의 아이들이여.]
그러나 일어선 엔트는 달려오는 아이들을 막아서더니.
한쪽에 자리하고 있는 기다란 줄을 가리켜 보였다.
“빨리 줄 서자! 빨리!”
헐레벌떡 기다란 줄을 향해 뛰어가는 아이들.
“아무래도 여긴… 아이들을 위한 곳인가 보네요.”
“아이들을 위한 곳이라니? 저기 어른들도 많은데?”
“그래도 대부분은 아이들이잖아요?”
하나 아내의 말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줄의 끝자리로 이동한다.
“당신… 설마 드래곤 캐슬을 또 타기 싫어서 그런 건 아니죠?”
“…그럴 리가? 난 그냥 이곳에 있는 건 다 한 번씩 보고 싶은 것뿐이라고.”
몇십 분 후.
“이건… 조금 어지럽네요.”
“그래도 드래곤 캐슬에 비하면 우습지.”
부부는 머리를 붙잡은 채 천천히 그네에서 내린다.
“그래도 나름 재미있었어요.”
“그러게 말이야.”
“흑마법사들은 참 희한하네요, 이런 곳을 다 만들 생각을 하다니. 마법사들보다 더 특이한 것 같아요.”
아내의 말에 남자는 피식 미소를 짓는다.
“차라리 희한한 게 낫지. 예전 놈들은 시체를 구하려고 납치도 마다하지 않고 대륙과 전쟁도 치렀었잖아.”
“그래서 더 신기해요.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한순간에 바뀔 수 있는 건지…….”
“뭐, 다 주신님의 덕분 아니겠어? 주신께서 놈들을 통제하고 계신 덕에 대륙도 평화로운 거지.”
남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아내.
“확실히 듣고 보니 그러네요.”
“잠깐 주신님의 신상에 들러서 기도나 드리고 움직일까?”
“주신님의 신상이요?”
아내의 물음에 남자는 양피지 한쪽을 가리켜 보인다.
“여기에 그려져 있는 게 주신님의 신상 같은데. 어차피 여기에 적혀 있는 오싹오싹 스켈레톤의 집에 가는 방향이기도 하고.”
“좋아요. 당신 뜻대로 해요.”
마침내 목적지가 정해지자.
부부는 양피지를 접곤 주신의 신상이 있는 방면으로 이동한다.
“어머, 여기도 사람이 많네요.”
“저건… 흑카데미의 학생들인 것 같은데.”
남자의 말대로 검은 로브를 두른 무리를 비롯하여.
정갈한 옷차림을 한 귀족 등, 많은 사람들이 신상에 절을 올리고 있었다.
“흑카데미의 학생들도 방문할 정도면 꽤 믿을 만한 장소인 모양이에요.”
“그러게 말이야. 설마 자기네 학생들에게 해가 될 장소에 학생들을 보내진 않았을 테니까. 그보다 우리도 슬쩍 가서 기도를 드리자고.”
아내와 함께 신상 근처로 다가간 남자.
그가 아내와 함께 주신의 신상을 향해 절을 올리려던 그때.
“…음?”
불현듯 한 남자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저, 저건…….”
어째서인지 주신의 신상을 빼닮은 듯한 그의 모습에 남자가 경악하자.
그의 아내는 그런 그를 보며 묻는다.
“여보, 왜 그래요?”
“저길 봐! 주신을 빼닮은 사람이 있잖아!”
“…어디요? 제 눈에는 안 보이는데요.”
“저기! 저기… 어?”
신기루라도 봤던 걸까.
주신을 닮은 남자의 모습이 오간 데 없자 아내는 그런 그를 보며 빙긋 웃는다.
“잘못 본 모양이네요.”
“허… 희한하네. 분명 봤던 것 같은데……. 당신 말이 맞는 것 같아. 잘못 본 모양이야.”
그러나 남자가 방금 전의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신상을 향해 천천히 무릎을 꿇던 그때.
“호오… 흑마랜드를 진짜 만들어 낼 줄이야. 재미있네.”
어딘가 짓궂은 요정처럼 장난스러워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그들의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