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카데미의 노예가 살아남는 법-182화 (182/200)

◈ 182화 외전 (2)

오리하르콘을 금방 구할 수 있다니?

딸은 그 귀하디귀한 광물을 어떻게 구할 생각인 걸까.

“뭔가 좋은 방법이라도 있는 거니?”

“각 왕국이 은밀하게 보유하고 있을 오리하르콘을 차출하면 되죠.”

“음…….”

레나의 계획은 제법 괜찮은 계획이었다.

“좋은 생각이긴 하다만 다른 왕국들이 순순히 협조할지 의문이구나.”

“당연히 협조할 수밖에 없죠. 설마 흑탑의 명령을 어기려 하겠어요?”

“그렇게 하면 일을 간단하게 처리할 수는 있겠지만, 저들의 불만을 사게 될 거다.”

의외로 레논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레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

“불만을 좀 사면 어때요?”

“그 불만들이 쌓이고 쌓여 언제고 흑탑을 향한 비수로 돌아오게 될 거란다.”

“으음…….”

그에 침음하던 레나가 힐끗 그녀의 아버지를 바라본다.

“그럼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오리하르콘을 가져오는 수밖에 없겠네요. 그들이 순순히 오리하르콘을 팔지는 의문이지만요. 대부분 없다고 잡아떼지 않겠어요?”

“…….”

레나의 우려 또한 일리가 있는 것이었기에.

레논은 시름에 잠긴다.

‘강압적으로 빼앗는 것 말곤 방법이 없는 건가…….’

“아니면 이건 어때요, 아빠? 왕국들에 순위를 매기는 거죠.”

“…순위라고?”

“네. 우리에게 협조적인 왕국에는 여러 편의를 봐주고, 협조하지 않는 왕국은 홀대하고요.”

레나의 말이 끝나자.

레논은 가라앉은 눈으로 레나를 바라본다.

“나쁘지 않은 생각 같구나. 한번 탑주님과 이야기를 해 보마.”

* * *

한 달 뒤.

대륙의 각 왕국에 흑탑의 공문이 전달됐다.

“그러니까… 오리하르콘을 바치지 않으면 여러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거군.”

“만약 왕국에 주둔 중인 흑마법사들이 철수한다면, 곧바로 다른 왕국의 공격을 받게 될지도 모릅니다.”

흑마법사의 철수.

그것은 곧 해당 왕국이 흑탑과 아무런 관계도 아니라는 사실을 반증하는 셈이었고.

그럴 경우 다른 왕국들이 손을 잡고 침공해도 아무도 도와줄 곳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레바논이 사라지고 이제야 숨통이 좀 트이나 했더니…….”

나지막이 한숨을 토해 내는 나밀라 여왕을 보며.

옆에 있던 신하가 조심스레 고한다.

“하나 적극적으로 협조를 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물자 지원을 약속한다고 하니, 아주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기야 하지. 그런데 대체 저들은 무엇을 하려고 그 많은 오리하르콘을 필요로 하는 건지…….”

말꼬리를 늘이곤 잠시간 말이 없던 나밀라 여왕이 천천히 입을 연다.

“왕궁의 비고에 있는 오리하르콘을 꺼내 와라.”

“저들의 요구를 수락하시려는 겁니까?”

“그럼 다른 좋은 방법이 있나?”

여왕의 물음에 그 누구도 입술을 떼는 이가 없었다.

* * *

세 달 후.

거대하고도 검은 탑을 중심으로 수많은 흑마법사들이 오가는 거리.

푸히히히힝-

수십 대의 마차가 검은 탑 앞에 정차하자.

그 안에서 드워프들이 우루루 내리기 시작한다.

“이곳이 레바논 왕국이 있었던 곳인가?”

“믿기지가 않는군. 원래 흑마법사의 영역이었다고 해도 믿겠어.”

드워프들이 갓 도시에 상경한 시골 청년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떠들자.

“어허, 설원의 아돌, 말조심해. 지금은 흑마법사들의 성역이나 마찬가지니까.”

고산의 방패가 눈을 부릅뜬 채 재차 조심할 걸 강조한다.

“그런데 이곳까지 우리를 부른 이유가 뭐랍니까?”

검은 대지에 있는 드워프 대공방에서 열심히 일하던 그들을 이곳까지 부른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터.

“뭘 그리 궁금해해? 우리는 시키는 대로 일을 하면 될 뿐이다. 짐 챙겨!”

고산의 방패의 일갈에 드워프들이 연장을 챙겨 들던 그때.

“먼 길 오느라 고생했네.”

어느새 검은 탑에서 나온 레논이 고산의 방패를 마중 나온다.

“으허헣, 부탑주님! 아닙니다. 부탑주님의 명령이라면 당연히 수행해야지요!”

“그리 말해 주니 고맙군.”

“그보다 저희를 이곳에 부르신 걸 봐선… 설마 정말 그걸 전부 모으신 겁니까?”

고산의 방패가 낮은 목소리로 묻자.

레논은 미소를 띤 채 고개를 까딱인다.

“따라오게.”

레논을 따라 흑탑 옆에 위치한 커다란 공터로 이동한 드워프들.

“허억…….”

“맙소사… 이게 대체…….”

그들은 공터 위에 쌓여 있는 광물 더미를 보곤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아니면 눈이 잘못된 건지도 몰라.”

얼마나 놀랐던지 일부 드워프는 제 눈을 몇 번이고 비비기도 했으나.

눈앞에 가득 쌓여 있는 광물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빛을 발하고 있을 뿐이었다.

“부, 부탑주님, 이게…….”

고산의 방패 또한 크게 놀라 레논에게 조심스레 묻자.

레논이 그런 그를 보며 빙긋 웃는다.

“인부들은 충분히 준비해 뒀네. 마법사들과 드루이드의 협조 또한 얻어 둔 상태고.”

“어어…….”

“저 정도의 오리하르콘이라면 작업에 착수할 수 있겠지?

벙찐 표정으로 입만 뻐끔거리던 고산의 방패의 얼굴에 점차 묘한 열의가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무, 물론입니다! 이만한 오리하르콘을 갖고 작업을 할 수 있다니… 꿈만 같군요.”

“작업을 성공해야만 아름다운 꿈이 될 거네. 실패하면 그저 더운 날에 꾼 불쾌한 꿈이 되겠지.”

레논이 말을 끝마치기 무섭게 고산의 방패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소리친다.

“이 고산의 방패의 명예를 걸고 반드시 성공해 보이겠습니다!”

“기대하겠네.”

레논의 미소가 채 얼굴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고산의 방패가 드워프들을 보며 소리친다.

“당장 화덕부터 지어! 오리하르콘도 녹일 수 있는 백염을 피울 화덕을 말이야!”

“예, 공방장님!”

* * *

세 달 뒤.

깡, 깡, 깡-

한적했던 공터 위로 망치질 소리가 곳곳에서 울려온다.

“고정 작업 끝났습니다!”

“올립니다!”

한 드워프가 힘껏 뿔피리를 불자.

크어어어어억-

발에 기다란 철근을 달고 있는 본 와이번이 하늘 위로 날아오른다.

“좀 더 가까이 붙여! 좀 더 가까이! 됐어! 이제 내린다!”

쿠우웅-

철근의 이음새와 이음새가 딱 맞물려 들어가자.

기다리고 있던 드워프들이 여럿 달라붙어 맞물린 부분을 다시금 단단히 고정한다.

“후우… 슬슬 윤곽이 드러나고 있군.”

지상에서 그 모습을 뿌듯하게 바라보는 고산의 방패.

“언제쯤 작업이 끝날 것 같나?”

옆에 있던 레논이 나지막이 묻자.

고산의 방패가 제 가슴을 툭 치며 말한다.

“이 정도 속도라면 적어도 세 달이 지나기 전에 완성을 할 수 있을 겁니다. 드래곤 캐슬은 이미 시험 작업에 들어갔고요.”

고산의 방패가 자신만만하게 옆을 가리키자.

레논은 힐끔 시선을 돌린다.

촤르르르륵-

광산에서 사용할 법한 수레가 깔린 레일을 타고 세차게 달리고 있다.

“좋아! 제발…….”

그리고 그러한 수레를 애타는 눈으로 주시하고 있는 백탑의 마법사들.

쿠르르르릉-

이윽고 수레가 360도로 회전하는 구간에 들어서자.

마법사들의 목울대가 하나같이 위에서 아래로 꿀렁거린다.

촤르르르륵-

하나 수레가 360도로 회전하는 구간을 무사히 지나자.

“됐어! 드디어 됐다고!”

“드디어……. 망할… 저기서 부숴 먹은 것만 몇 개인지 기억도 안 난다!”

마법사들은 기쁨에 겨워 서로를 얼싸안고 탄성을 내지른다.

그러던 그때.

촤르르르르르륵-

“어어? 어어어어?”

“야! 저거 왜 안 멈춰!”

출발 지점에서 멈춰야 할 수레들이 다시 레일을 타고 사라지자.

마법사들의 표정이 새하얗게 질려 간다.

“망할! 누가 가서 세워!”

“파, 파이어 볼이라도 쓸까요?”

“미쳤어?!”

결국 누더기 골렘을 투입하고서야 수레가 멈췄으나.

마법사들의 표정은 한없이 어두워져 있었다.

“빌어먹을… 오늘도 또 잠자긴 글렀군.”

“뭐가 문제지? 마석과 마석의 상호작용으로 수레가 달리게 하는 것까진 완벽했는데…….”

“문제는 우리가 원하는 지점에서 멈춰 세울 수가 없다는 거지. 저걸 해결하지 못하는 이상… 우린 계속 여기에 있어야 한다고.”

“어떻게든 해결책을 마련해!”

마법사들이 아우성을 치며 대책 회의에 들어가자.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레논이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열심히들 해 주는군.”

“으허허헣, 원래 마법사들이라는 게 희한한 부분에서 열정을 태우는 족속이잖습니까?”

“그렇다곤 해도 저 정도로 관심을 보일진 몰라서 한 말이네.”

이번에는 고개를 돌려 좌측 방면을 바라보는 레논.

그곳에는 거대한 나무들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꾸드드드득-

[시작하겠다.]

나무 한 그루가 살아 있기라도 한 건지 자리에서 일어나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자.

나무의 가지마다에 걸려 있는 그네가 그 반동으로 회전한다.

몇 바퀴나 돌았을까.

[…어지럽군.]

나무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교대하지.]

옆에 있던 나무가 자리에서 일어나 마찬가지로 따라 돌기 시작한다.

“저긴 잘되고 있는 모양이군.”

“아무래도 엔트의 협조만 받는다면 쉬운 일이었으니 말입니다.”

고산의 방패가 어딘가 불만인 듯한 표정을 짓자.

레논은 그를 보며 의아함을 드러낸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은 모양이군.”

“으허헣, 그럴 리가요? 다만, 엔트들이 너무 자리를 차지하는 것 같아 그게 조금 불편했을 뿐입니다.”

“저들도 어지러움을 느끼니 어쩔 수 없지. 어쨌건 주신께서 만들고자 하셨던 걸 엔트들로 간단히 대체할 수 있었으니 좋게 생각하게.”

레논의 말에 고산의 방패는 더 이상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궁금증을 내보인다.

“그런데 말입니다. 대체 이곳은 뭘 하는 공간입니까?”

“주신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네. 종족과 나이 그리고 출신을 떠나 모든 이들이 화합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다고 하셨지.”

주신이 정말 그리 말했는지는 레논 또한 몰랐다.

다만 주신이 그러한 의도를 갖고 이 공간을 계획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을 뿐.

“허어…….”

그러나 그의 말을 들은 고산의 방패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주신께서 그러한 생각을 갖고 계셨다니… 저는 정말 몰랐습니다.”

“인간이 어찌 신의 계획을 알 수 있을까. 다만 우리는 그저 최대한 그분의 뜻을 좇으며 따르면 될 뿐이네.”

레논이 말없이 완성되어 가는 공사 현장을 응시하던 중.

고산의 방패가 멋쩍게 웃으며 입을 뗀다.

“저… 제가 워낙 자주 깜빡해서 그런데 말입니다. 이 위대한 공간의 이름이 뭐라고 하셨지요?”

그에 레논이 차분히 답한다.

“흑마랜드이네.”

* * *

세 달 뒤.

“저, 정말 우리가 이런 곳에 와도 되는 건가?”

허름한 차림을 한 남자가 침을 꿀꺽 삼키며 묻자.

옆에 있던 부인이 그에게 면박을 준다.

“못 들었어요?! 흑탑에서 누구나 이용이 가능하다고 했잖아요!”

“그렇기야 하지만…….”

남자는 슬며시 고개를 들어 입구 부분을 바라본다.

[흑마랜드]

보기만 해도 위압감이 들 정도로 드넓은 입구 부분에는 스켈레톤들이 도열해 있어.

들어가면 죽음을 맞을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아닐까? 흑마법사들만 이용할 수 있는 쉼터인데 우리가 착각한 거라거나…….”

“여보, 저기를 봐요! 다른 사람들은 잘만 들어가잖아요?! 기왕 여기까지 온 거, 들어나 가 보자고요, 좀!”

결국 아내의 구박을 이기지 못하고 입구로 향하는 부부.

“아, 안녕하세요?”

남자가 입구를 지키고 있던 스켈레톤에게 어색하게 인사하자.

덜그럭-

스켈레톤은 그들에게 무언가를 내민다.

“이, 이건… 팔찌?”

남자가 양피지로 만든 팔찌를 어색하게 받아 들던 그때.

덜그럭-

스켈레톤이 자리를 비켜 가로막고 있는 입구를 열어 준다.

“드, 들어가라는 건가 보네요.”

여인 또한 겁을 먹었는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자.

남자는 그녀의 팔을 꽉 쥔 채 전방을 노려본다.

“기왕 여, 여기까지 온 거, 들어나 가 봅시다!”

남자가 우악스럽게 아내의 팔을 잡고는 용감히 안으로 들어서던 그때.

[절망의 나라로 오세요! 즐거움과 행복이 넘치는 고오옷!]

어디선가부터 여인들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그들의 귓가에 울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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