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카데미의 노예가 살아남는 법-179화 (179/200)

◈ 179화

‘쯧…….’

내가 팔을 들어 날아드는 놈의 앞발에 힘껏 내지르자.

쩌어어어어어어억-

굉음이 일며 커다란 충격파가 일대를 뒤흔든다.

[크크킄… 어리석은 놈.]

[…뭐?]

스스스스슥-

‘이건…….’

돌연 놈의 발과 맞닿은 나의 팔이 검게 물들어 가자.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나의 팔을 잘라 냈다.

[흐읍!]

그러곤 술식을 완성한 오른손을 위에서 아래로 힘껏 휘두르자.

쩌저저저저저저저적-

균열이 난 하늘 사이에서 검은 낙뢰가 수천 번이 넘게 놈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크으…….]

낙뢰를 얻어맞는 맴피스의 입가에서 고통의 신음이 새어 나오는 사이.

나는 창조의 힘을 발현하여 왼팔 부근을 어루만졌다.

그러자.

스스슥-

잘라 냈던 왼팔이 다시금 생겨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맴피스가 낮게 으르렁거린다.

[여전히 역겨운 능력이군.]

[역겹다라……. 결국 너도 누군가에 의해 창조됐을 텐데?]

[나는 그 누구의 손도 빌리지 않았다. 나는 심연 속에서 홀로 태어났다.]

나는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렇겠지.]

[창조는 저주스러운 능력이다. 창조하기에 끝이 존재하는 것이고, 끝이 존재하기에 고통이 존재하는 거다.]

[아, 그러니까 태어나지 않았으면 고통받을 일도 없다?]

그에 힘껏 고개를 끄덕이는 맴피스.

[네놈은 형과 달리 제법 말귀가 통하는군.]

놈은 못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계속 말을 이어 간다.

[네놈이 형의 후계자라는 사실은 개의치 않겠다. 더 이상 그 저주받은 능력을 사용하지 마라. 그리고 그 뒤에는 나를 좇아라. 그리한다면 네게 영원한 삶을 약속하지.]

[영원한 삶?]

‘어이가 없네.’

나는 실소를 흘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영원하고 또 전능하다. 그러니 심연의 망령이 내뱉는 헛소리를 따를 이유도 없지.]

[…결국 형이 만든 끝없는 고통의 순환을 유지하겠다는 건가. 어리석은 놈.]

[누가 어리석은지는 운명이 가르쳐 주겠지.]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열 가지의 술식이 포개어진 두 손을 들어 힘껏 바닥에 내리쳤다.

쩌저저저저저적-

그러자 천지 사방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더니.

피를 뚝뚝 흘리는 눈동자가 균열 사이를 비집고 개안한다.

첨벙-

이윽고 눈에서 내리는 피로 인해 순식간에 발목까지 피가 차오를 무렵.

[소멸을 원한다면 홀로 죽어라.]

나는 펴고 있던 손을 힘껏 쥐었다.

그러자 피를 흘리고 있던 눈동자들이 한순간 풍선처럼 팽창하더니.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몸이 뒤틀릴 정도로 격렬한 폭발이 피비린내 나는 일대를 뒤덮었다.

연쇄적인 폭발로 대지가 뒤틀리고 갈라지는 와중.

[크으으으윽…….]

저만치에서 맴피스의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가 들려온다.

‘후… 효과가 있는 모양이네.’

아가멤논이 구현했던 능력을 내 나름대로 재해석해서 발현해 본 것인데.

놈의 찰진 반응을 보니 썩 나쁘진 않은 것 같았다.

‘저대로 끝없는 폭발 속에 갇힌 채로 죽어 줬으면 좋겠지만…….’

[나는 시작이자 곧 끝이다!]

어딘가 울분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피부가 저릿하게 쩌렁쩌렁하게 울려온다.

[내게 패배는 한 번이면 족하단 말이다!]

스스스스스스슥-

피로 뒤덮였던 일대가 돌연 거무튀튀하게 변해 가자.

‘역시나…….’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나는 고통이다! 나는 영원하다! 나는 고통이자 영원이다!]

시커멓게 물들어 썩어 가는 일대 저 너머로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한다.

촤아아아아악-

그건 썩은 파도였다.

온갖 질병과 죽음을 실은 거대한 파도는 하늘과 맞닿을 정도로 커다래.

좀처럼 피할 곳이 없어 보였다.

[으으윽…….]

파도에서 뿜어져 나오는 재액의 힘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걸까.

멀찍이 있던 펠기누스가 신음을 토해 낸다.

[물러나 있어라.]

[하, 하지만…….]

[지금 네가 있어 봐야 방해만 될 뿐이야.]

[죄, 죄송합니다.]

펠기누스가 송구스러워하며 힘겹게 자리서 물러나자.

나는 몰려드는 재액의 파도를 향해 온 힘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웅웅웅웅웅웅-

나의 두 손에 상반된 힘이 응집되고 또 응집되어 가던 그때.

나는 거대한 해일을 노려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갈라져라.]

내가 두 손을 힘껏 좌우로 벌리자.

투두드드드득-

몰려오던 해일 가운데서 무언가가 뜯겨 나가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촤아아아악-

반으로 찢어지다시피 한 파도가 양옆으로 힘없이 허물어져 내린다.

그러던 그때.

사사사삭-

갈라져 지면을 타고 흘러내리는 재액의 바다 속에서 거대한 아가리가 튀어나와 나의 몸을 삼키려 들었다.

‘그 정도 타격을 입고도 멀쩡하… 진 않네.’

놈의 아가리 주변이 갈라지고 또 터져 있는 걸 봐선 재생력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보였다.

[소용없다.]

나는 놈의 아가리 위아래를 힘껏 붙잡았다.

스스스슥-

그 여파로 팔을 시작으로 전신이 검게 변해 갔고 온갖 질병들이 나의 몸을 살라 먹기 시작했으나.

나는 재생의 힘으로 끊임없이 나 자신을 재생해 나가며 입을 열었다.

[삶이 저주이고 곧 고통이라면 홀로 죽어라.]

내가 아가리를 잡고 있는 두 팔에 있는 힘껏 힘을 밀어 넣자.

콰드드드득-

놈의 아가리 사이에서 뼈 비틀리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아그그그그그…….]

아가리의 압력과 질병으로 인해 끊없는 재생의 고통에 점차 머릿속이 혼미해져 갔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두 팔을 힘껏 좌우로 벌렸다.

[죽어!]

그러자.

찌지지지지지직-

놈의 입 부근에 기다란 실선이 생기더니.

쩌어어어어억-

[으어어어어억!]

놈의 아가리는 완전 두 갈래로 갈라져 쭈욱 찢어져 나간다.

이윽고 놈의 머리와 몸 부분이 분리되자.

스윽-

나는 분리된 놈의 몸통에 폭이 엄청나게 좁은 파멸의 철창을 촘촘하게 덧씌웠다.

[어, 어떻게 아가멤논도 아닌 놈이 이런 힘을…….]

[나는 아가멤논보다 더 위대하니까.]

나는 자꾸 옛 신을 거론하는 맴피스를 무심히 바라보다가.

지면을 향해 손을 까딱였다.

쩌어어억-

그러자 지면이 좌우로 벌어지더니.

웅웅웅웅웅웅-

끝없는 어둠만이 자리하고 있는 심연이 모습을 드러낸다.

[뭐, 뭘 하려는 거냐!]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심연에 넣어 주려고.]

어차피 놈이 갖고 있던 힘의 정수이자 몸통은 분리해 놓은 상태.

이대로 놈을 심연에 처박는다면 놈은 영원히 지옥 속을 헤엄쳐야만 했다.

[그, 그건…….]

[심연의 왕이라며? 다시 가서 왕 노릇 하면 되겠네.]

[그, 그럴 수는 없다. 그럴 수는 없어!]

‘아씨… 시끄럽네.’

나는 들고 있던 놈의 얼굴 부분을 어둠 속에 툭 던졌다.

[그럴 수는…….]

쩌어어어억-

심연이 놈을 삼키자.

갈라졌던 지면도 한순간에 봉합된다.

[…….]

나는 잠시간 지면을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쳐들었다.

우중충하던 하늘에는 점차 빛이 드리우고 있었고.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끝났나. 레바논은… 도망쳤나 보네.’

언제 자리를 뜬 것인지 레바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뭐, 그년은 천천히 처리해도 되니까. 아니, 최대한 오래 살려 둬야지.’

삶은 고통이라는 레바논의 말은 틀렸다.

하지만 적어도 레바논에게만큼은 놈의 말이 부합할 것이다.

* * *

몇 달 뒤.

맴피스의 잔재를 심연 속에 밀어 넣은 뒤.

많은 것이 달라졌다.

[저… 레바논이 주신님께… 인사… 올려요.]

[그래. 지금처럼 네년은 천계를 관리해라. 단, 내 옆에서 관리해.]

[아…….]

일단 마계와 달리 천계는 복속시키지 않았고.

레바논은 일부러 살려 두었다.

‘저년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는 재미도 있네.’

레바논을 계속 살려 둬 두고두고 괴롭히려는 것도 있었으나.

난 천계와 마계를 지금과 같이 계속 앙숙 관계로 놔둘 생각이었다.

‘경쟁이 없으면 도태되기 마련이지.’

[…….]

어느 정도 관계 정리를 끝마친 뒤.

나는 물끄러미 인간계를 주시했다.

[뭘 보고 계신 건가요?]

그러던 중 펠기누스가 슬며시 다가와 묻는다.

[마침 잘 왔네. 저기 백탑주랑 흑탑주가 손잡고 있는 걸 좀 봐. 신기하지 않아?]

[…신기하긴 하지만 조금 의문이네요.]

[뭐가?]

나의 물음에 그녀가 답한다.

[백탑이랑 흑탑 손잡는 건 좋아하시면서, 왜 마계랑 천계는 그대로 분리해 두신 건가요?]

[그야 마계랑 천계는 주신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계속 하나로 묶일 수 있지만, 저들은 다르잖아?]

[다르다니요?]

나는 이해하지 못하는 그녀를 보며 차분히 말을 이어 갔다.

[지금이야 저들이 손을 잡았다고 해도 언제든 갈라설 수 있잖아. 물론 그걸 또 보는 재미가 있겠지만.]

나의 말에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주신님께서 저들이 계속 화목하길 원하신다면 개입을 하시면 되는 것 아닌가요?]

[그래도 필요 이상으로 개입할 생각은 없어. 인간사는 어디까지나 인간사일 뿐이니까.]

내가 물끄러미 인간계를 응시하자.

그런 나를 보던 그녀가 조용히 묻는다.

[미련은… 없으신가요?]

[미련?]

그녀가 무얼 묻고 싶은지 짐작한 난 작은 미소를 보였다.

[미련이라고 할 게 뭐가 있을까.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고 한다면… 이세계로 넘어갈 방법이 사라진 것 정도겠지.]

그에 눈을 번뜩이는 펠기누스.

[그럼 제가 이세계로 갈 방법을 한번 찾아볼게요!]

[됐어. 아직도 나한테 반항하려는 놈들이 보이던데, 괜한 헛수고 하지 말고 악마들 관리나 잘해.]

[아, 네!]

* * *

한 달 뒤.

스윽-

흑탑주 나가란을 필두로 모든 흑마법사들이 거대한 제단 앞에 모여 있다.

“준비는 끝났나?”

“예. 새로운 신께서도 만족하실 정도로 철저히 준비했습니다.”

레논이 큰 자신감을 보이자.

나가란은 고개를 끄덕이곤 흑마법사들을 향해 힘껏 소리친다.

“힘의 논리에 의거하여 마신 베논은 소멸을 맞이했다. 따라서 우리는 새로운 마계의 주인을 모시고 또 따를 것이다!”

“새로운 신께 영광을!”

“그분께 온 마음을 다해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좌중이 크게 열광하자.

나가란은 기다란 밧줄을 들고 있는 흑마법사들에게 손을 까딱인다.

흑마법사들이 밧줄을 힘껏 잡아당기자.

펄럭-

무언가를 가리고 있던 천이 거두어지고 거대한 신상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저건…….”

“새로운 신이라는 게… 정말 저분이 맞는 겁니까?”

신상을 본 대부분의 흑마법사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신상에는 그들이 익히 알고 있던 존재의 얼굴이 자리하고 있는 탓이었다.

“저건… 흑남 아닙니까?”

한때는 경외의 대상이었으나 베논에 의해 척결 대상이 됐다가.

최근에 나가란의 명령으로 다시금 척결령에서 벗어난 흑남이 알고 보니 주신이었다니.

“그렇다.”

나가란이 덤덤히 고개를 끄덕이자.

“허어… 흑남님이 주신이었다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군.”

“그럼 주신께서 잠깐 인간으로 변하셔서 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건가?!”

“뭐, 그럴 수도 있겠지. 드래곤들도 인간으로 변해 유희를 즐기곤 하잖나? 신께서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흑마법사들 사이에 당혹감이 더욱 퍼져 나간다.

“그보다 주신께선 어떻게 하시려나…….”

“뭐가?”

“그야 베논은 최근까지 대륙을 정벌하려고 했었잖아? 주신께서도 베논이랑 같은 명령을 내리실지 궁금해서 말이야.”

“글쎄……. 이제 우리도 어엿한 마법사의 일원으로 인정받았는데, 굳이 전쟁까지 해야 할까…….”

흑마법사들이 저들끼리 숙덕거리던 그때.

나가란의 목소리가 광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주신께 경배를!”

그러자.

“주신께 경배를!”

광장에 있던 모든 흑마법사들이 주신의 신상을 향해 경배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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