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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카데미의 노예가 살아남는 법-170화 (170/200)

◈ 170화

‘저건 또 뭐야?’

거대하고도 길쭉한 몸뚱이도 그렇거니와.

그 아가리로 능히 천지를 삼키고도 남을 정도로 거대한 뱀이 타이탄을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오늘에야말로 네놈의 목을 잘라 내어 아버지의 영전에 바칠 것이다!]

[오오, 네까짓 놈이 날?]

거인과 뱀의 목소리가 지상을 쩌렁쩌렁하게 울리자.

나는 생각에 잠겼다.

‘아버지의 원수?’

그렇다는 것은 저 거대한 뱀이 아가멤논의 소멸에 일조하기라도 했다는 걸까?

내가 생각을 이어 가던 중.

[반피르!]

쩌어어어어억-

불에 휘감기어 이글거리는 타이탄의 주먹이 반피르의 표피에 작렬한다.

하나 귀가 찢어질 것 같은 소리가 인 것과 달리.

반피르의 몸에선 비늘 몇 조각만 떨어져 내릴 뿐, 큰 타격을 입은 것 같지는 않았다.

[푸흐흐흐흐, 겨우 그딴 힘을 갖고 날 죽이겠다고 한 거냐. 우습군.]

촤르르르르륵-

한순간 반피르가 허리를 꼿꼿이 세우자.

삽시간에 서로를 마주보던 형국에서 반피르가 타이탄을 내려다보는 상황이 되었다.

[죽어라.]

하늘을 가릴 정도로 넓게 벌어진 반피르의 아가리가 타이탄의 머리로 쇄도해 들자.

타이탄은 두 팔을 들어 뱀 아가리의 위와 아랫부분을 콱 붙잡았다.

콰드드드득-

[크읍…….]

그러나 어째 타이탄이 힘 싸움에서 밀리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자.

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그냥 몸뚱이만 거대한 뱀 아니었어? 뭔데 타이탄이 저렇게 밀리는 건데?’

나는 도무지 이 상황이 납득되질 않아 옆에 있던 펠기누스에게 물었다.

“펠기누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설마… 반피르가 이곳에 있을 거라곤 저도 예상을 못 했네요.]

까득 입술을 깨무는 그녀를 보며 나는 계속 물었다.

“반피르가 저 뱀의 이름이야?”

[맞아요. 과거, 신들 간의 전쟁이 일어났을 때 아가멤논 님께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던 놈이에요. 하지만… 분명 그 전쟁 이후로 여러 신들에 의해 봉인됐다고 들었었는데…….]

펠기누스의 말에 나는 생각에 잠겼다.

‘그러니까 원래 있어선 안 될 놈이 이곳에 있다는 것 아냐. 그렇단 건… 설마 베논이나 레바논이 내가 이곳에 올 걸 알고 저 괴물 놈을 미리 풀어 둔 건가?’

[으아아아아아아아!]

그 와중, 타이탄의 입에서 벼락 같은 함성이 터져 나오더니.

잡고 있던 반피르의 아가리를 있는 힘껏 뒤로 밀어낸다.

화르르르르르륵-

그러곤 녀석의 몸 전체가 용광로가 된 것처럼 새하얀 불길이 피어오른다.

[반피르!]

타이탄의 육중한 주먹이 반피르의 턱 부근을 정확히 가격하자.

쩌어어어어어억-

천지가 진동할 정도의 타격음이 대지를 뒤흔들었다.

쩌어억, 쩌어어억-

기세를 몰아 타이탄이 연거푸 주먹을 휘두르자.

몸이 활시위처럼 뒤로 젖혀진 채 두들겨 맞던 반피르가 목만 살짝 꺾은 채 혓바닥을 날름거린다.

[푸흐흐흐흐흐. 정정하지. 제법 힘은 좋구나. 어지간한 신들보다 네놈의 타격이 더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해, 너무도 부족해.]

[헛소리 집어 치워!]

다시금 타이탄이 주먹을 치켜들던 그때.

반피르가 커다란 몸뚱이와 어울리지 않게 삽시간에 그 몸을 타이탄의 몸에 칭칭 감았다.

콰드드드드드득-

[크윽…….]

[푸흐흐흐흐, 우습구나. 얼른 네놈들을 처리하고 날 심연에 처박아 둔 놈들을 먹어 치우러 가야겠다.]

타이탄의 몸에서 점점 철근이 구겨지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려오던 중.

[으아아아아아아!]

화르르르륵-

타이탄의 몸에서 잿빛의 불길이 치솟아 오르자.

[푸허헣!]

깜짝 놀란 반피르가 얼른 포박을 풀고 뒤로 물러난다.

[방금의 불은……. 몸뚱이만 큰 줄 알았더니 제법 잔재주가 있구나.]

[교활한 뱀에게…….]

반피르의 도발에도 아랑곳 않고.

어느새 이글거리는 창을 쥔 타이탄이 어깨를 뒤로 젖힌다.

[죽음을!]

타이탄의 손을 벗어난 창이 격렬한 기세로 쇄도하며.

반피르의 새하얀 배 부분에 정확히 도착했으나.

텅-

표피에 닿은 창은 놈의 피부조차 꿰뚫지 못한 채 튕겨져 나왔다.

[무슨…….]

[신들도 감히 내게 생채기조차 내지 못했는데, 하물며 너라고 다를까.]

반피르의 입가에 걸린 교활한 미소가 사라지자.

콰과과과곽-

놈의 주변으로 칼날 같은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더니.

그대로 타이탄을 덮친다.

[크윽…….]

[포기하거든 편안한 죽음을 내려 주겠다.]

[다, 닥쳐라!]

하나 호기롭게 소리치는 타이탄의 마음과는 달리.

녀석의 몸은 소용돌이에 의해 찢겨 나가고, 검붉은 살점이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쓰읍… 저대로 둬선 안 되겠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난 타이탄이 반피르에게 죽을 수도 있겠다고 판단하곤.

체내의 힘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스스스스슥-

소멸의 힘을 머금은 수천 개의 창들이 나의 등 뒤에 생겨나자.

나는 반피르를 향해 창을 쏘아 보냈다.

[…음? 푸흐흐흐흐흐! 그딴 나뭇조각들로 날 죽일 수 있을 거라 보는 거냐.]

크흥-

날아드는 창들이 그리도 우스웠던 걸까.

창들을 향해 콧김을 뿜는 반피르.

쇄애애애액-

[…음?]

그러나 콧김에 창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릴 거라 생각한 것과 달리.

창들은 매섭게 날아들어 뱀의 표피를 꿰뚫고 놈의 살점에 깊숙이 틀어박혔다.

키에에에에엑-

간드러진 비명을 내지르던 반피르가 홱 눈알을 돌려.

정확히 나를 노려보며 말한다.

[네가… 네가 아가멤논의 후계자인가 보구나. 그래, 잘됐다. 이참에 네놈부터 죽이고 그 힘을 내가 먹어 치워야겠어.]

뱀의 교활한 시선이 내게로 향한 그때.

[감히 내 앞에서 한눈을 팔다니!]

쩌어어어억-

타이탄이 포효하며 다시 놈의 몸통에 뜨거운 일격을 가한다.

[이 버러지 같은 놈들이 감히!]

자신이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에 격분한 것일까.

반피르의 두 눈에서 안광이 번뜩 거리자.

‘이건…….’

나를 비롯하여 타이탄의 몸 또한 경직되어 딱딱하게 굳어 갔다.

[한입에 삼켜 주마!]

그 틈에 반피르가 타이탄의 머리를 아가리에 처넣으려 하자.

“으으으으읍!”

나는 소멸의 힘으로 나를 옥죄던 무형의 기운을 제거하고.

창조의 힘을 발현하여 놈의 아가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터어어업-

돌연 놈의 아가리에 거대한 바위가 생겨나자.

[읍읍!]

얼굴을 이리저리 돌리던 뱀이 돌을 한입에 꿀떡 삼켜 버린다.

[이딴 잔재주를……. 네놈부터 죽여 주마!]

반피르의 포효를 시작으로 놈의 얼굴 앞에 녹색의 거대한 구체가 생겨나더니.

[죽어라!]

녹색 구체가 바닥에 닿기 무섭게.

지상의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위험해요!]

황급히 나를 껴안고 하늘로 치솟는 펠기누스.

“겨우 독이잖아?”

[저건 단순한 독이 아니에요. 신들조차 녹이는 극독 중의 극독이라고요!]

“으음…….”

내가 단순한 독 정도로 생각했던 것과 달리.

펠기누스의 표정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아버지도 놈의 독에 당하고 힘들어하셨어요. 물론 그게 아버지가 소멸하게 된 원인은 아니지만…….]

“무슨 말인지는 이해했어. 그보다 저걸 처리할 방법은 없나?”

내 물음에 펠기누스가 고개를 젓는다.

[신들도 봉인을 해 두는 게 고작이었어요. 물론 아버지의 힘이 온전했었다면 저 괴물도 능히 처리하셨겠지만…….]

‘흠… 힘이 온전한 아가멤논은 처리할 수 있었다?’

그 말인즉슨, 그의 후계자가 된 나 또한 가능하다는 이야기 아닌가?

[쓰레기 같은 놈들! 죽어!]

사방에 독을 쏘아 대며 온몸을 틀어 대는 반피르를 보며.

나는 천천히 나의 두 힘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모든 힘을 한곳에 응집한다. 일격에 놈을 소멸하는 거야.’

웅웅웅우웅-

나의 몸이 점차 빛과 어둠으로 덮여 가자.

[앗…….]

당황한 펠기누스의 음성이 뒤에서 들려왔으나.

나는 개의치 않고 오직 표적만을 노려봤다.

휘이이이이잉-

나의 손에서 시작된 빛기둥이 하늘로 뻗어 오르자.

“…됐다.”

몸을 뒤엎는 탈진감에도 나는 하늘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네? 어떤 게 됐다는…….]

펠기누스가 의문을 표하려던 그때.

우르르르르릉-

하늘에서 우렛소리가 들려오더니.

찬란한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거대한 검이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저건…….]

“죽어라.”

내가 반피르를 노려보며 손가락을 까딱이자.

쿠구구구구구구궁-

거대한 검이 구름을 찢고 반피르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푸흐흐흐흐, 그 어떤 공격을 가하든 난 죽지 않는다! 나는 영원하다! 나는 무한하다!]

반피르가 떨어지는 검을 보며 광소하던 사이.

[으아아아아아아아!]

타이탄이 검은 불길을 피운 채로 놈에게 달려들어 놈의 배를 콱 끌어안는다.

키아아아아악-

그 반피르도 저 검은 불길에는 맥을 추지 못하고.

아가리를 벌린 채 고성을 지른다.

[후계자시여! 놈을! 아버지의 복수를!]

타이탄의 몸에 서린 검은 불길이 급속도로 잦아들자.

퍼어어어억-

반피르는 꼬리로 타이탄을 우악스럽게 쳐 내곤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 어떤 것도 내게 상처 입힐 수 없다! 그 어떤 것도!]

날아드는 검까지 집어삼킬 생각이었던 것인지.

아가리를 쩍 벌린 반피르가 검을 향해 솟구쳤고.

쩌어어어억-

거대한 검은 놈의 입을 타고 들어가 그대로 놈의 꼬리까지 관통하여 호수에 처박혔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엄청난 물보라가 튀어 올라 나의 시야를 가렸고.

누구 할 것 없이 반피르가 있는 자리를 조용히 응시했다.

[푸흐흐흐흐. 우습군… 우스워.]

하지만 나의 기대와 달리.

반피르는 검에 꿰뚫린 채 멀쩡히 살아 있었다.

‘이런 망할… 그걸 맞고도 살아 있다고?’

나의 모든 힘을 다 소모하여 가한 일격이건만.

저 거대한 뱀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베논의 수작인지 레바논의 수작인지는 몰라도, 도대체 어떻게 저런 놈을 통제한 거지? 빌어먹을… 일단 놈이 검에 묶여 있으니 이 틈에 물러나야 되나.’

내가 진지하게 퇴각을 고민하고 있던 그때.

파스스스슥-

놈의 표피가 점점 먼지처럼 변해 가더니.

이윽고 살점까지 공기 중으로 후드득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저건…….’

[이건…….]

반피르 또한 당황했는지 놈은 자신의 몸뚱이를 멍하니 내려다보며 중얼거린다.

[내가… 천계조차 휩쓸었던 내가… 이럴 순…….]

마침내 반피르의 몸이 먼지처럼 변하여 바람을 타고 허물어지자.

‘후…….’

나는 그제야 들었던 팔을 내리곤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우, 진짜 죽을 것 같네.’

정말 갖고 있던 모든 신력을 때려 부어서 만들었던 것이라.

만약 저 일격이 통하지 않았다면 싸움이 정말 힘들어질 뻔했다.

‘그래도 어째 잘 처리해서 다행이네. 근데 왜 놈을 죽여도 신력이 들어오지 않는 거지?’

바알을 소멸했을 때만 해도 놈이 갖고 있던 능력을 취했건만.

어째서 반피르의 힘은 들어오지 않는 걸까.

‘으음… 희한하…….’

[으으음… 으으으으으…….]

나는 그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화르르르륵-

잠시간 탄성을 내지르던 타이탄의 몸 주변으로 잿빛의 화염이 맴돌기 시작하더니.

거대한 불기둥이 하늘까지 솟아올랐다가 일순간 사라져 버렸다.

‘저건…….’

그리고 타이탄이 있던 자리에는 불의 화신처럼 불길에 뒤덮여 있는 작은 존재가 자리하고 있었다.

“…타이탄?”

[나의 주인이시여, 반피르를 소멸한 대가로 저는 더 큰 힘을 얻게 된 것 같습니다.]

“호오… 확실히 그런 것 같긴 하네.”

전과 달리 녀석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위압감은 언뜻 봐도 보통의 것이 아니었다.

‘저 정도면 녀석은 이제 반피르 그 이상의 존재가 된 건가?’

나는 흐뭇하게 타이탄을 바라보다가.

호수로 힐끔 눈길을 돌렸다.

‘불청객도 처리했으니 이제 포세이돈을 깨워야지.’

나는 다시금 호수 중심으로 내려가.

아가멤논의 힘을 발현하기 시작했다.

웅웅웅웅웅-

나의 힘이 호수의 파동을 타고 일자.

잠잠하던 바닥에서 엄청난 숫자의 기포가 솟구쳐 오르더니.

철썩-

기이한 물체가 모습 드러냈다.

‘저게… 포세이돈?’

그것은 꼭 거대한 방주처럼 생겼는데.

수만 명의 사람 정도는 우습게 태울 정도로 그 크기가 엄청났다.

‘포세이돈도 그렇고 타이탄도 그렇고, 아가멤논이 큼직한 걸 좋아했나 보네. 근데… 뭔가 이상한데?’

어째서인지 방주 주변으로 칭칭 감겨 있는 검은 사슬이 괜히 눈에 걸렸다.

[오, 포세이돈을 깨우셨군요.]

“근데 저 사슬은 뭐야? 원래 있던 건가?”

나의 물음에 방주로 다가간 펠기누스가 사슬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눈살을 찌푸린다.

[이건… 아무래도 베논이 장난질을 해 놓은 것 같아요. 이 사슬을 억지로 풀려고 한다면 포세이돈은 그대로 소멸되고 말 거예요.]

‘엉? 이런 망할…….’

나는 속으로 혀를 차곤 방주로 다가가 사슬을 살펴봤다.

‘…음?’

나는 사슬을 살피곤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건 소멸의 힘으로 만든 거잖아?’

“간단하네.”

[네?]

내가 손을 들어 사슬에 뻗자.

[앗! 건들면 안…….]

스스스스슥-

나를 말리려던 펠기누스는 점점 사라져 가는 사슬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놈이 뿌린 힘을 회수하고 있는 것뿐이야. 내가 놈이랑 같은 힘을 구사하는 걸 모르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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