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카데미의 노예가 살아남는 법-168화 (168/200)

◈ 168화

“이게 무슨……?”

이제는 흑탑에 없어서는 안 될 흑남을 갑자기 죽이라니?

흑마법사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에 띄게 당황해했으나.

더 이상 어떠한 음성도 들려오질 않았다.

“…….”

사령부에 침묵만이 맴돌던 중.

비교적 나이가 지긋한 흑마법사가 입을 뗀다.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아무래도 흑남이 우리를 배신한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건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흑남님이 왜 우리를 배신하겠습니까?”

“그럼 베논께서 할 일이 없으셔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렇다고 해도, 흑남이 배신을 할 이유가 없으니 이러는 것 아니요!”

삽시간에 막사 내부에선 흑남의 배신 여부를 놓고 설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서로의 언성이 점점 높아져 막사를 뒤흔들던 그때.

“시끄럽다!”

레논이 수뇌부를 보며 일갈하자 과열된 분위기가 조금 잦아들었다.

“흑남님이 정말 우리를 배신했는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다.”

“그럼 부탑주는 베논 님이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시는 겝니까?”

꼬장한 흑마법사의 물음에 레논은 눈을 부릅뜬다.

“자네는 멋대로 사실을 왜곡하는 쓰레기 같은 버릇이 있군. 조심하게. 이번에는 넘어가겠다만, 다음에도 내 발언을 멋대로 해석한다면 그땐 자네의 목을 칠 거네.”

“…….”

꼬장한 노인이 입을 꾹 다물자.

레논은 무거운 표정을 한 채 좌중을 보며 계속 말을 이어 갔다.

“어차피 흑남의 배신 여부는 결국 시간이 해결해 줄 거다. 그러니 당장 흑남을 찾기보단 눈앞의 일을 우선시하는 게 옳다.”

“부탑주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레바논의 개들이 아직 눈앞에 있으며 백탑 또한 우리의 후미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끼리 싸우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커흠… 자네 말이 맞네.”

다행히 의견이 하나로 통합되는 분위기가 되자.

레논은 수뇌부를 보며 나지막이 말한다.

“일단 다른 무엇보다도 전황이 최우선이다. 다들 알았나?”

“예!”

“좋네. 오늘 회의는 이쯤에서 마무리하지.”

이윽고 수뇌부들이 하나둘 막사를 나서자.

“…….”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레논 부탑주가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랄프 님…….”

* * *

다음 날.

“케륵…….”

파스스스슥-

먼지가 되어 사라지는 불 도마뱀을 보며.

나는 뻗었던 손을 천천히 거두어들였다.

‘어우… 징글징글하네. 뭔 놈의 도마뱀들이 이렇게 많아?’

어제, 펠기누스에 의해 이 요상한 지대로 이동되고 나서.

도대체 저놈의 도마뱀을 몇 놈이나 본 건지.

‘아니, 펠기누스는 날 도대체 어디로 보낸 거야?’

지면 곳곳에 난 균열 사이로 흐르는 붉은 용암을 바라보며 난 생각했다.

‘설마 진짜로 대륙 최남단으로 보낸 건가?’

물론 이곳이 어디라고 딱 잘라 결론 내리기는 어려웠으나.

땅의 특성이나 환경이 내가 들었던 대륙의 최남단과 상당 부분 일치했다.

그렇기에 난 이곳이 대륙의 최남단이 아닐까 추측만 하고 있는 상태였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잠들어 있는 아가멤논의 수하들을 깨우라고 날 이곳에 보낸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구태여 펠기누스가 날 이런 곳에 보낼 이유가 없을 터.

‘좋아. 보낸 이유야 그렇다 쳐……. 근데 무슨 수로 아가멤논의 수하를 찾으라는 건데?’

그저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이 불모지 같은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남은 생명체들 일부와 뜨거운 용암뿐이었다.

‘보낸 건 좋은데 최소한 단서라도 하나 던져 주면서 보내야 할 것 아냐. 어우… 저놈은 또 보이네, 또!’

“크륵, 크륵!”

나는 나를 향해 달려드는 터줏대감들을 단숨에 소멸해 버리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루 종일 걸었는데도 도무지 끝이 안 보이네. 도대체 어디로 가야 되는…….’

쩌저저저적-

그러던 그때, 갑자기 나의 앞에 균열이 생겨 가자.

나는 경계 어린 눈빛으로 균열을 응시했다.

‘뭐야. 설마 내 위치를 들킨 건가? 하지만 계속 바알의 힘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러나 나의 우려와 달리 균열 사이에서 타천사가 모습을 드러내자.

“넌…….”

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살아 있었어?”

[그럼 죽은 줄 알았나요?]

펠기누스가 장난스럽게 반문하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지만…….”

‘당연히 두 신에게 소멸했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운이 좋았어요.]

나의 속내를 알았는지 펠기누스가 웃으며 답했으나.

나의 의문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운이 좋았던 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데.”

[두 신 모두 저와 싸우는 걸 부담스러워하더군요. 서로 견제를 해 준 덕에 그 틈바구니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죠.]

‘아아, 그런 건가.’

나는 그제야 상황이 어땠는지 짐작을 할 수 있었다.

‘분명 베논은 펠기누스를 응징하고 싶었겠지. 하지만 만약 펠기누스와 싸웠다가 부상이라도 입는다면, 곧장 레바논이 공격해 올 수도 있으니 섣불리 나서지 못했나 보네.’

“진짜로 운이 좋았네.”

[그렇죠?]

“그런데 네가 이곳에 와도 괜찮은 거야?”

나는 펠기누스를 보며 계속 말했다.

“신들에게 네 위치가 들통날 수도 있을 텐데.”

[그렇긴 하지만, 후계자님은 아가멤논 님의 부하들을 깨우는 방법을 모르시잖아요?]

“…모르지.”

그에 펠기누스가 싱긋 웃어 보인다.

[너무 걱정하실 것 없어요. 부하들을 깨우고 곧바로 자리를 피하면 되니까요.]

“흠…….”

듣다 보니 펠기누스의 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어 보였다.

“좋아. 근데 아가멤논의 병사는 어떻게 찾지? 아무리 뒤져 봐도 단서 같은 것도 없던데.”

[신들의 이목을 피했어야 하니 단서도 없을 수밖에요. 따라오세요.]

당당하게 앞장서는 펠기누스를 쫓아 이동하길 몇 시간.

‘여긴…….’

이윽고 큼지막한 분화구 앞에 도착하자.

그녀는 분화구 밑을 가리키며 말한다.

[바로 저곳이에요.]

“설마… 저 용암 안에 있다고?”

[맞아요.]

‘용암 안에 잠들어 있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하긴… 아가멤논의 수하면 용암에도 그리 큰 영향을 받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머리로는 선뜻 납득이 가진 않았으나 나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뭐, 좋아. 그래서, 어떻게 깨우면 되는 건데?”

[방법은 간단해요. 후계자님께서 저 안으로 들어가셔서 아가멤논 님의 힘을 발현하시면 돼요.]

[…나보고 저 안에 들어가라고?]

나의 물음에 펠기누스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문제될 게 있나요?]

“아니, 뭐… 문제될 건 없지.”

난 이미 신이나 다름이 없는 상태다.

저깟 용암 따위도 지금의 내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터.

‘좋아. 들어가 보면 알겠지.’

스스스슥-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난 전신에 파멸의 힘을 껍질처럼 두른 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분화구 안으로 뛰어내렸다.

첨벙-

파멸의 힘을 둘러 용암이 피부에 닿지 않는 탓일까.

나의 생각보다 용암 속이 뜨겁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안 뜨거운 건 좋은데 뭐가 보여야 말이지.’

이래서 아가멤논의 부하들이 은신처로 이 안을 택했나 생각될 정도로.

그저 보이는 것이라곤 붉은 액체가 전부였다.

‘이제 여기서 아가멤논의 힘을 발현하라고 했었지.’

나는 펠기누스의 말을 떠올리며.

체내의 기운을 천천히 몸 밖으로 끌어냈다.

화아아악-

내가 창조와 소멸의 힘을 몸 밖으로 분출한 지 몇 분이나 흘렀을까.

부글부글-

갑자기 잠잠하던 용암이 들끓기 시작하더니.

몸이 점점 지면 아래로 내려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호오… 이건…….’

들끓던 용암은 어느새 좌우로 쩍 갈라져 있었고.

나의 발은 메마른 지면에 닿아 있었다.

‘이 길을 따라 걸어가라는 건가?’

내가 용암 사이로 생긴 길을 걸어가던 중.

‘잠깐. 저건…….’

나는 길의 끝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곤 감탄을 금치 못했다.

‘워… 설마 저게 아가멤논의 수하들인가? 크기 한번 어마어마하네. 누더기 골렘은 명함도 못 내밀겠어.’

길의 끝에는 피부가 시뻘건 거인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잠들어 있기라도 한 것인지 눈을 감은 상태였다.

‘만약 이 정도의 거인을 대륙에 떨어뜨려 놓으면 순식간에 대륙을 아작 내려나.’

내가 거인을 올려다보며 감탄하고 있던 그때.

번쩍-

갑자기 불의 거인이 눈을 뜨더니 눈을 좌우로 천천히 굴린다.

“…….”

이윽고 나의 눈과 거인의 눈이 맞닿자.

[드디어… 드디어 그분의 후계자님께서 찾아오셨다! 오욕과 불명예스러웠던 과거를 씻어 낼 때다! 타오르는 불과 잿더미로 후계자님을 찬미하리라!]

불의 거인의 입에서 경탄의 외침이 터져 나와 분화구 안을 뒤흔들었다.

그 탓일까.

우르르르르릉-

갈라져 있던 용암이 나의 상식을 뒤엎고 하늘 위로 드높이 분출된다.

[수하들을 잘 깨우신 모양이네요.]

그 와중 분화구 아래로 내려온 펠기누스가 내게 다가오자.

나는 그녀를 보며 물었다.

“저게 타이탄인가?”

[네. 과거, 아가멤논 님께서는 물을 이용하여 세상을 한번 휩쓰신 적이 있으세요. 그리고 그 뒤로 다시는 물로 세상을 멸하지 않겠다고 약조하셨죠.]

“근데?”

물로 세상을 멸망시킨 것과 불의 거인이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걸까?

[그래서 아가멤논 님께서는 다시 세상이 죄악으로 물들 것을 우려하시고 미리 멸망을 준비하셨죠. 그렇게 탄생한 게 바로 저 타이탄이에요.]

“아…….”

‘그러니까… 물로 한번 멸망시켰으니까 다음에는 불로 세상을 멸망시키려고 저 녀석을 만들었다? 아가멤논 그 작자도 제정신은 아닌 것 같은데.’

내가 속으로 실소를 흘리던 중.

펠기누스가 감격스러운 눈빛으로 타이탄을 보며 말한다.

[저들이 우리를 돕는다면 천계나 마계의 군세와 붙어도 승세를 바라볼 수 있겠어요.]

“타이탄이 그 정도로 강력한 존잰가?”

나의 물음에 펠기누스가 웃음기를 지운 채 고개를 끄덕인다.

[저들이 자랑하는 대악마나 대천사들도 타이탄에게는 감히 어쩌지 못할 걸요?]

“호오…….”

‘저 거인이 그 정도 힘을 가졌을 줄이야.’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더 이상 천계와 마계의 군세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더 이상 두 신을 피해 다닐 필요도 없겠네.’

타이탄을 확보하며 병력으로도 이쪽이 우위에 있는 데다가.

거듭된 개입으로 두 신의 힘도 조금은 쇠약해졌을 터.

‘남은 건… 결전인가.’

나는 지그시 하늘을 노려보며 생각에 잠겼다.

* * *

몇 시간 뒤.

쩌저저저적-

대륙 최남단에 생긴 두 개의 커다란 균열 사이로.

레바논과 베논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년은 왜 이곳에 온 거죠?]

[나도 모른다. 하지만 펠기누스가 이곳에 온 건 확실해 보이는…….]

찌릿-

[잠깐…….]

일순간 알 수 없는 서늘한 감각이 두 신의 피부를 자극하자.

두 신은 반사적으로 가장 커다란 화산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래도 저곳이 목적이었던 모양이군.]

[그런 것 같긴 한데, 이곳은 버려진 땅이야.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고. 몸을 숨길 목적이 아니라면 이곳에 올 이유가…….]

두 신이 텅 빈 분화구로 내려가 안을 살피던 그때.

레바논이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거대한 투구를 보곤 몸을 움찔거렸다.

[이 쥐새끼 같은 놈들이 설마…….]

[왜 그러는 거지?]

무심한 베논의 물음에 레바논은 역정을 내듯 소리치며 투구를 가리켜 보인다.

[이 아둔한 새끼… 저걸 보고도 느껴지는 게 없어?! 그 미친 새끼들이 타이탄을 깨웠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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