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3화
일주일 뒤.
‘으음…….’
왕궁 정원을 거닐던 나는 지그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웅웅웅-
여전히 하늘에는 선명한 마법진이 자리하고 있었다.
‘진짜로 끝장을 보려고 하는 건가.’
대마법을 발현했다가 취소하기엔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 걸까.
아니면 어떤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어느 쪽이 됐건 간에 저놈들도 어지간히 미친 놈들인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흑마법사들이 전선을 이탈했음에도.
메테오를 계속 구현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고개를 젓곤 여왕이 자리하고 있을 알현실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흑남… 이제 거동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한 모양입니다.”
“그게 중요합니까? 해명을 하시지요! 도대체 왜 흑마법사들이 갑자기 전선을 이탈한 겁니까?!”
“금방 돌아오는 거랍니까?”
안에 있던 귀족들이 나를 보곤 질문 폭탄을 투척해 댔다.
‘그래. 일주일을 별관에 처박혀 있었으면 많이 박혀 있었다.’
언데드 군세가 떠난 지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으니.
이만하면 슬슬 저들에게 확답을 해 줄 때긴 했다.
“그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예? 그게… 안 돌아온다니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흑마법사들은 레바논을 치기 위해 이동했다. 그들이 다시 페이트로 돌아올 일은 없다.”
나의 대답이 알현실을 울리자.
고요한 침묵만이 이 공간을 지배했다.
“그럼… 어떻게 적들을 상대하라는 겁니까? 심지어 저들의 마법도 거의 완성된 상태이잖습니까?!”
“그래. 머지않아 이곳에 메테오가 떨어질 거다.”
“허어…….”
나의 확고한 발언에 귀족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아니,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겁니까?”
“군세를 동원하여 마법사들을 저지해도 모자랄 판국에… 레바논을 치러 갔다고요?”
“빌어먹을. 내가 뭐라고 했었나! 진작 백성들을 도피시켜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아직 완전히 늦은 건 아닙니다, 혼스 자작. 우리만이라도 당장 피신 준비를…….”
귀족들이 서로를 향해 언성을 높이던 그때.
“정숙해라!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냐!”
나밀라 여왕의 호령에 귀족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알현실이 조용해지자.
나밀라 여왕은 나를 응시하며 천천히 입을 뗐다.
“군세의 이동은 결코 가벼운 사안이 아니다. 한데 어째서 우리에게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은 거지? 우리에게 확실한 정보를 줬다면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대처를 했을 것이다.”
‘일주일 만에 태도가 이렇게 바뀌나. 뭐, 당연한 거긴 하겠다만.’
한기가 내려앉은 나밀라 여왕의 시선을 마주하며.
나는 흑남의 자세를 유지했다.
“왜 우리가 너희에게 보고를 해야하지?”
“…뭐라고?”
“너희는 우리 흑탑의 일부에 불과할 뿐이다. 페이트 또한 흑탑의 일부일 뿐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건가?”
귀족들과 여왕의 얼굴에 점차 분노가 들어찼으나.
나는 아랑곳 않고 계속 말했다.
“거기다가 우리는 지부에 병력도 남겨 놨는데 뭐가 문제인 거지?”
“5만의 언데드 군세로 놈들을 막을 수 있다고 보나? 하늘에서 떨어질 메테오를 막을 수 있냐는 말이다!”
여왕의 고성에 나는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글쎄. 결과는 하늘만이 알겠지.”
“…….”
나의 대답에 나밀라 여왕이 어처구니없어하던 중.
“여왕이시여! 지금이라도 왕궁을 버리고 몸을 피하셔야만 합니다!”
“그렇습니다! 메테오가 떨어지기 전에 영역 밖으로 벗어나야 목숨을 보전하실 수 있을 겁니다!”
다시금 귀족들이 목소리를 높인다.
“지금 나보고… 왕성과 백성들을 버리라는 것이냐? 나는 그리할 수 없다.”
여왕이 단호히 거부하자.
귀족들은 다시 여왕을 설득하기 시작한다.
“여왕이시여! 살아 있어야 훗날도 도모할 수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저 간악한 흑남의 목을 치시고 왕성을 버리십시오!”
‘내 목을 친다라…….’
어느 정도 저들의 반응을 예상했기에 나는 속으로 실소를 흘렸다.
‘뭐, 진짜 목을 치려고 한다면 그땐 대처를 해야겠지만, 아마도 그러지는 않겠지.’
“여왕이시여! 흑남의 목을 치는 것은 너무 성급한 판단인 것 같습니다! 일단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나의 예상대로 엘런 백작이 여왕을 만류하며 목소리를 높이자.
“후우… 좋다. 너희의 의견을 들으마.”
여왕은 귀족들을 보며 고개를 까딱였다.
하나 아무리 회의를 진행해도 마땅한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왕성을 버리는 것 말곤 정녕 답이 없는 것이냐! 무능한 것들.”
그에 한계치에 도달한 것인지 여왕은 귀족들에게 일침을 가하곤.
나를 노려보며 나지막이 말한다.
“일단 흑남은 감옥에 가둬 둬라. 놈을 어찌할지는 추후 상황을 보고 결정하겠다.”
“예!”
* * *
똑, 똑-
습기가 가득한 감옥.
간헐적인 기침 소리만이 복도를 타고 울린다.
‘감옥은 또 오랜만이네.’
화려한 침실 대신 차가운 바닥에서 생활하게 됐으나.
나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감옥 정도면 양반이지. 거기다가 생각대로 일이 잘 흘러가고 있기도 하고.’
솔직히 저들이 나를 당장 처형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한 와중에 감옥행에 처해졌으니, 이만하면 양호하다고 볼 수 있을 터.
나는 피식 미소를 흘리며 생각을 이어 갔다.
‘이번 메테오로 페이트를 완전히 주신의 영역으로, 나의 영역으로 만든다, 반드시.’
페이트에 닥친 고난과 역경.
나는 그 악재를 이용하여 페이트를 완전히 나의 영역으로 만들 계획이었다.
‘나밀라 여왕이 내 신도가 됐다고 해도 그걸로는 부족해. 이번 메테오를 계기로 아예 왕국이 주신교를 국교로 삼을 정도로 만들어야지.’
내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계획을 구상해 나가던 그때.
끼이이익-
갑자기 어디선가 철창 열리는 소리가 울리더니.
발소리가 들려오다 내가 갇혀 있는 감옥 앞에서 멎었다.
“누구지?”
“접니다. 엘런입니다.”
“호오… 여긴 무슨 일이지?”
나의 물음에 철창 밖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왜 여왕님을 도발하신 겁니까? 사도님께서 도발만 하지 않으셨다면 제가 어떻게든 변호를 했을 것인데…….”
크게 안타까워하며 말을 이어 가는 엘런 백작.
“아니면 혹시 이 또한 주신님의 계획인 것입니까? 사도님께서 감옥에 갇히신 것도, 흑마법사들이 물러난 것도, 메테오가 왕궁 위로 떨어질 것도 모두 주신님의 계획인 겁니까?”
미세하게 떨리는 엘런 백작의 음성에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일개 사도일 뿐인 내가 어떻게 그분의 뜻을 다 알까.”
“하나 그렇지 않고서야 흑마법사들이 갑자기 물러날 이유가 없잖습니까?”
‘씁… 귀찮게시리.’
모든 걸 다 설명하자니 말할 것도 많고 설명할 수 없는 부분도 많았기에 나는 침묵을 고수했다.
“핍박의 시대라는 건 주신께 들어 알고 있다지만… 제게는 그 짐이 너무도 무거운 것 같습니다.”
엘런 백작이 씁쓸히 말하자.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신념과 신앙을 지키는 게 쉬운 일이라 보나? 넌 그 목에 칼이 들어가도 신앙을 지킬 수 있나?”
“저는…….”
선뜻 답하지 못하는 엘런 백작을 보며.
나는 덤덤히 대답했다.
“그래도 그분께서 이 환란을 막아 주실 거란 믿음을 갖고 신앙을 지켜라. 그분께선 자신을 부르짖는 자를 결코 외면하시지 않는다.”
“허어…….”
탄식하듯 한숨을 내쉬는 엘런 백작.
“아무래도 돌아가서 더 간절히 기도를 올려 봐야겠습니다. 여하튼 금방 그 안에서 꺼내 드릴 테니 조금만 견디십시오.”
“그러지.”
이윽고 엘런 백작이 자리를 뜨자.
나는 창살 밖을 보며 생각했다.
‘더 간절하게 부르짖어. 더 간절하게.’
* * *
2주 뒤.
화아아아아아악-
마침내 완성된 마법진에서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찬란한 빛이 흘러나오자.
“오오… 세상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건지…….”
“주신이시여… 주신이시여…….”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봤고.
“우린 이제 다 죽은 목숨인가…….”
“상황 참 우습군……. 흑마법사들한테 죽을 줄 알았더니 백마법사들한테 죽게 될 줄이야.”
“말할 시간에 얼른 짐이나 싸! 돈만 챙기라고! 돈만! 그 장신구는 또 뭐야!”
마법진의 정체를 알고 있는 자들은 뒤늦게라도 몸을 피하고자 발버둥을 쳤다.
또한 그러한 움직임은 왕궁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여왕이시여!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도망을 가셔야……!”
“닥쳐라! 이곳은 내가 나고 자란 곳이다! 나의 집을 버리고 어디로 도망가라는 말이냐! 나는 죽어도 나의 집에서 죽겠다!”
“여왕이시여…….”
애원에 가까운 귀족들의 요청에도.
여왕은 그들의 의견을 묵살하곤 천천히 왕좌에서 몸을 일으킨다.
“나갈 채비를 갖추어라.”
“…예?”
“설령 오늘이 최후의 날이라 할지라도 나는 하늘을 우러러 보며 죽을 것이다.”
몇십 분 뒤.
정갈한 의복으로 갈아입은 여왕이 귀족들을 대동한 채 밖으로 걸어 나간다.
“허어…….”
“정녕 오늘이 최후의 날이란 말인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귀족들과 달리.
나밀라 여왕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늘을 응시한다.
그러던 그때.
스스스스슥슥-
갑자기 허공에 자리하고 있던 마법진이 시계 방향으로 팽그르르 돌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자취를 감춰 버렸다.
“무, 무슨…….”
“…혹시 주신께서 저희의 기도에 응답한 게 아닐까요?”
놀라움과 기대감이 그들의 얼굴에 공존해 가던 중.
쇄애애애애애액-
저 멀리 구름 위로 작은 점 같은 것이 그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저, 저건…….”
자그마한 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점차 커다래져 어느덧 뚜렷하게 윤곽이 드러나자.
“맙소사…….”
“하늘이시여…….”
놀라움과 기대감은 깊은 나락으로 변하여 그들을 심연 밑바닥으로 밀어 넣었다.
쿠구구구구궁-
하늘을 뒤덮은 거대한 운석에 압도된 걸까.
꿀꺽-
“손주들이 보는 앞에서 죽을 거라 생각했건만, 내 마지막이 이럴 줄은 몰랐네.”
“다이르 자작, 그간 자네를 견제했던 걸 사죄하겠네.”
“그런 말 말게. 나도 자네와 다를 바가 없었어.”
마른침을 삼키던 일부 귀족들은 처연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전에 자네한테 암살자를 보냈던 거, 그건 내가 한 일이었네.”
“허허… 그런가. 괜찮네. 시종을 시켜 자네의 차에 독을 타게 한 건 내가 한 일이었으니 말일세.”
“…그런가.”
어느덧 최후가 목전까지 다가온 탓일까.
귀족들이 고해성사를 하며 최후를 준비하는 사이.
쿠구구구구구궁-
거대한 그림자가 왕성 위를 완전히 덮어 버렸다.
“으으…….”
“주신이시여… 저희를 구원하소서…….”
표면이 뚜렷이 보일 정도로 운석이 가까워지자.
사람들은 누구 할 것 없이 멍하니 하늘만을 바라봤다.
그러던 그때.
화아아아아악-
갑자기 검은 것 같으면서도 빛이 나는 한 줄기의 광채가 운석을 향해 쏘아져 갔다.
“저, 저건 뭐지?”
“저게 뭐든 무슨 의미가 있나,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을…….”
거대한 운석에 비해 광채의 크기가 너무도 왜소한 탓일까.
사람들은 여전히 절망한 눈으로 운석을 바라봤다.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고, 그들은 곧 운석에 깔려 죽을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정해진 미래였다.
쩍, 쩌저저저저저저적-
그러나 운석에서 미세한 파열음 소리가 들려오더니.
점차 신기루 사라지듯 운석이 먼지처럼 부스러져 가기 시작했다.
“어어? 어어어어?”
“도, 돌이 사라지고 있어?”
눈앞에 드리웠던 죽음이 삽시간에 사라지자.
“어, 어떻게 된 거야?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몰라. 하지만 우린… 우린 산 것 같아.”
“사, 살았어. 살았다고……. 난 살아 있어…….”
“아아…….”
대다수의 사람들은 멍하니 선 채로 눈물만 흘리거나.
자리에 풀썩 주저앉기까지 했다.
그러던 그때.
[나의 자녀들아. 나의 자녀들아. 내가 너희를 사랑하노라.]
하늘에서 울려온 커다란 음성이 지면을 덮는다.
“이, 이 목소리는……. 나… 분명 들은 적 있어! 이 목소리는… 분명 주신님의 목소리야!”
“주신께서… 우리를 구해 주셨어……. 우리를 구해 주셨다고!”
“아아… 주신이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