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카데미의 노예가 살아남는 법-148화 (148/200)

◈ 148화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어딜 가시는 겁니까?”

“좀 있으면 수업 시간이잖아? 수업을 하러 가야지.”

곧장 교실로 이동하자.

저주학파 3학년 학생들이 무언가 기대감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해 왔다.

“흑남님! 누가 원형 경기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고 하던데 혹시 흑남님도 들으셨나요?”

“그래. 들었다.”

“그럼 이제 수업을 하기는 어려운 것 아닌가요? 교실이 날아간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학생들이 구태여 경기장이 작살났다는 걸 강조하자.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확실히 수업을 하기엔 난감한 상황이 됐지.”

“그쵸?! 그럼 이제…….”

“그래서 이참에 수업 환경을 좀 바꿔 볼까 한다.”

내 대답에 어리둥절해하는 학생들.

“수업 환경을 바꾸신다고요?”

“그래. 일단 전원 밖으로 나와. 아, 책은 갖고 올 필요 없어. 지팡이만 챙겨서 나오면 된다.”

‘눈빛들이 아주 그냥 불신에 차 있네.’

나는 학생들의 따가운 눈총에도 아랑곳 않고.

그들을 데리고 흑카데미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몇 시간 뒤.

“허억, 허억… 미친… 미친…….”

“흑남 새끼… 진짜 미친놈… 아니야?!”

대열을 맞춰 흑카데미 주변을 달리는 학생들이 숨을 몰아쉬며 욕지기를 토해 낸다.

이윽고 학생들이 한 바퀴를 겨우 돌자.

“자, 10분간 휴식!”

나는 학생들에게 크게 소리쳤다.

“어우… 아무래도 경기장이… 문제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망할… 어떤 새끼가… 경기장을 없애 갖고…….”

“아까 1학년들이 우릴 보고… 웃는 것 봤어? 지들은 안 할 거라 생각하나 봐. 멍청한… 놈들.”

학생들은 체면이고 뭐고 하나같이 대자로 뻗은 채로 하늘을 보며 불평을 터뜨렸다.

“진짜 이딴 수업이 도움이 되긴 하는 걸까?”

“되겠냐? 그냥 우리는 귀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거라고!”

“아씨… 내일은 전투 노예들이랑 싸워야 되는데 이래선 지팡이도 못 들겠다.”

나는 그러한 학생들의 불평을 멀찍이서 듣다가 활짝 웃으며 소리쳤다.

“아직 입을 놀릴 힘이 있는 걸 보니 더 달려도 되겠네. 한 바퀴 더 추가!”

* * *

그렇게 학생들의 시간표에 괴이한 수업이 들어온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흐음… 희한하네.”

책상에 앉아 있던 학생이 머리를 갸웃거리자.

옆에 있던 짝이 호기심을 보였다.

“뭐가 희한하다는 거야?”

“아니… 그냥 뭔가 전에 비해 몸이 좀 가벼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머리가 지끈거리던 것도 사라진 것 같기도 하고.”

“혼자 맛있는 거라도 먹었어?”

친우의 물음에 대화를 꺼냈던 학생이 픽 미소를 지었다.

“매일같이 붙어 다녔던 놈이 뭐라는 거야?”

“근데 사실 나도 요즘 뭔가 몸이 좀 좋아진 것 같은 느낌이야.”

“그래? 너도?”

두 눈을 크게 뜬 학생이 생각에 잠겨 있다가 천천히 입을 뗐다.

“딱히 우리 생활이 달라진 건 없었잖아. 달라진 거라곤 하나뿐인데… 그럼 혹시 이게 흑남님의 수업 성과인 걸까?”

“한 거라곤 매일 개처럼 달린 것밖에 없는데 성과는 무슨 성과야?”

“그렇긴 한데 그것 말곤 딱히 생각나는 게 없잖아?”

“그럼 정말 그 괴상한 수업 때문인 건가?”

학생들이 좀처럼 풀리지 않는 의문을 두고 질문을 던지던 그때.

드르륵-

흑남이 교실로 들어오자 시끌벅적하던 분위기가 삽시간에 잦아들었다.

“또 오늘도 온종일 달리기만 시키겠지?”

“그렇겠지.”

학생들이 죽을상을 한 채 소곤거리던 중.

흑남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간 매일 달리기만 해서 굉장히 지루했을 거다. 그렇지?”

“…….”

학생들이 입을 꾹 다물고 아무런 말도 않자.

흑남은 웃으며 말을 이어 갔다.

“그래서 내일부터 3일간 실전과 같은 훈련을 할 거다.”

“실전과 같은 훈련이요?”

“그래. 너희는 3일간 검은 숲에서 생활을 하게 될 거다.”

흑남의 말이 끝나자 학생들의 얼굴에 물음표가 걸렸다.

“…네? 검은 숲에서 생활한다고요?”

“너무 걱정할 건 없어. 교수들이 너희의 안전을 보호할 거다.”

그에 한 학생이 번쩍 손을 들었다.

“그럼 검은 숲에서 3일간 지내기만 하면 되는 건가요?”

“그럴 리가? 3일 동안 데스나이트들이 너희를 끊임없이 공격할 거다. 데스나이트들의 손에 잡히지 않고 3일간 버티면 합격이야.”

“네?!”

데스나이트라는 말에 학생들의 얼굴이 핼쑥해져 갔다.

“아니… 데스나이트를 상대로 어떻게 버티라는 거예요? 애당초 통과 자체가 불가능한 시험이잖아요!”

“다시금 말하지만 데스나이트를 상대로 승리하라는 게 아니야. 물론 맞서도 상관은 없다만 어디까지나 잡히지 않는 게 최우선이겠지. 뭐, 각자의 방식대로 버텨 봐.”

“주, 죽는 건 아닌가요?”

한 학생의 물음에 랄프는 고개를 저었다.

“그 부분은 걱정할 것 없다. 데스나이트에게는 딱 기절할 정도로만 때리라고 명령해 둘 테니까.”

“맙소사…….”

“물론 이번 실습은 너희만 치르는 게 아니다. 4학년을 시작으로 모든 학년이 이 실습을 치르게 될 거다. 다만 4학년들은 다른 학년들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 줄 거라고 난 믿어 의심치 않으마.”

* * *

약 2주 뒤.

전 학년을 대상으로 진행된 대규모 실습이 종료된 뒤.

흑카데미의 회의실 안에는 교수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이제야 겨우 끝이 났네요.”

“그러게 말이에요. 정말 피곤해서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밤새 학생들을 뒤쫓으면서 상황을 살피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교수들이 이 주 동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던 중.

달프 교수가 슬며시 운을 뗀다.

“그래도 나는 깜짝 놀랐네.”

“뭐가요?”

“학생들 말이네. 당연히 금방 잡힐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잘 도망다니지 않던가? 그것도 데스나이트를 상대로 말이야.”

그에 다른 교수들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긴 해요. 학생들이 뭔가 좀 달라진 것 같긴 했네요.”

“전에는 볼 수 없던 단합력도 그렇고… 뭔가 변화가 있긴 있었습니다.”

게슴츠레하게 눈을 뜬 채 교수들을 응시하는 달프 교수.

“나는 어쩌면 그것이 흑남께서 원하시던 그림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네.”

“네? 하지만… 무식하게 달리기만 시키셨잖아요?”

“그렇기야 하네만 그로 인해 학생들의 체력이 늘어나서 그러한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라 생각하진 않나? 솔직히 여기에 앉아 있는 모두가 학생들이 금방 데스나이트에 잡힐 거라 생각했었고 말이네.”

1학년들은 무려 하루를 버텼고.

4학년 중에서 약 3분의 1은 3일을 온전히 다 버틴 덕일까.

달프 교수의 말에 그 누구도 반박하지 못했다.

“슬슬 인정해야 하지 않겠나? 희한하긴 했어도 흑남님의 가르침은 학생들에게 확실히 도움이 됐네. 또한 데스나이트에게서 버틸 정도의 생존력이라면 전장에서도 능히 살아남을 수 있을 테지.”

“그건 그렇습니다만…….”

“또한 위대한 대업이 끝나거든 흑남님의 수업을 정식 수업으로 넣어야 한다고 난 생각하는 바이네. 자네들의 생각은 어떻나?”

달프 교수의 물음에 다른 교수들도 천천히 의견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저는 달프 교수님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그때는 아예 페른에서 정식으로 숙련된 기사를 초빙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저도 동의해요. 이번 일로 체력은 전사만 갖춰야 할 소양이 아니라 흑마법사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라고 느꼈어요.”

이번 실습으로 느낀 바가 많았던 교수들 대부분이 동의를 표하자.

달프 교수는 허허 웃으며 말했다.

“이것 참…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어쩌면 흑남께선 흑마법사의 전통과 역사를 완전히 뒤바꿔 놓으신 걸지도 모르겠군.”

“아니면 이참에 우리도 기사를 육성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흑기사는 어때요?”

“그것도 좋은 의견인 것 같군.”

* * *

다음 날, 점심.

“야야! 그저께 봤었어?! 나 진짜 데스나이트한테 잡힐 뻔했었잖아?”

“그래? 그 몸으로 안 잡힌 것도 신기하긴 하네.”

“뭐라고?!”

“농담, 농담.”

학생들은 바로 얼마 전에 있었던 실습을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진짜 고문 같은 수업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도움이 됐던 모양이야. 나는 내가 데스나이트를 따돌릴 거라고 생각도 못 했다니까?”

“애당초 우리 흑마법은 먹히지도 않더라. 그냥 실습의 의도 자체가 뻔히 보이긴 했었어.”

“그래도 어쨌건 흑남님의 수업이 효과가 있었단 건 사실이잖아? 우리가 전장에서 생존하도록 만들겠다고 했던 게 진심이었던 거지!”

볼이 통통한 학생이 흥분하여 말하자.

옆에 있던 학생은 안경을 고쳐 쓰며 한숨을 내쉬었다.

“뭐, 이유야 어쨌건 확실히 훈련이 효과가 있는 것 같으니 앞으로 계속 하긴 해야겠지. 아, 하지만 몸을 쓰는 건 영 내 취향이 아닌데…….”

“전쟁터에서도 취향 타령 할 거야? 흑남님 말씀대로 일단은 살아남아야지! 난 앞으로 흑남님이 시키시는 건 군말 없이 따를 거야!”

그러던 그때.

드르륵-

교실 문이 활짝 열렸는데.

“달프 교수님?”

어째서인지 흑남이 아닌 달프 교수가 안으로 들어왔다.

“교수님! 지금은 흑남님의 수업 시간인데요?!”

“앞으로 흑남님은 바쁘셔서 수업을 진행할 수 없으실 거다.”

“…네?”

더 이상 흑남의 수업을 받을 수 없다는 말에 당황한 학생들을 보며.

달프 교수는 계속 말했다.

“이제 약속의 날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흑남님은 지금 굉장히 바쁘신 상태다. 그래서 더 이상 수업을 진행하실 수 없다는 거다.”

“아…….”

학생들이 아쉽다는 표정을 짓자.

달프 교수는 조금 놀라워하며 물었다.

“좋아할 줄 알았는데 의외구나.”

“이번 실습으로 흑남님의 수업이 큰 도움이 됐다는 걸 알게 됐어요!”

“설령 흑남님이 못 오신다고 하더라도 전 혼자서 계속 흑남님의 가르침을 따르려고요!”

“호오…….”

* * *

당일 밤.

‘어이구야… 머리가 다 아프네.’

온종일 흑탑에서 회의를 한 탓일까.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은 채 고개를 저었다.

‘병력을 한곳에 집결시켜서 하나씩 처리할 생각을 해야지, 그걸 왜 분산한다는 건지 모르겠네.’

나가란 탑주가 병력을 나누어 페른, 크레켄 왕국을 제외한 나머지 왕국들을 일시에 침공하자고 해서.

그 말도 안 되는 계획을 말리느라 정말이지 개고생을 했다.

‘그래도 내 의견을 수용해서 망정이지, 진짜 이도 저도 안 될 뻔했네. 아닌가. 차라리 그냥 놔둘 걸 그랬나? 대륙 침공이 실패해도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았을… 에이씨… 모르겠다.’

나는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곤 고개를 쳐들어 밤하늘을 바라봤다.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네. 한 달인가.’

약 한 달 뒤에는 대륙을 향한 흑마법사들의 공세가 시작될 거고.

어떠한 결과가 나올지는 나조차 감히 짐작할 수가 없었다.

‘이상론일 뿐이긴 하지만 큰 피해 없이 마무리가 됐으면 좋겠는데…….’

내가 밤하늘에 가득한 별들을 보며 고개를 젓던 그때.

“허억, 허억…….”

어디선가 절도 있는 발소리와 함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심지어 발소리도 한 명이 내는 소리가 아닌, 못해도 수십 명의 것은 돼 보였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내가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지그시 주시하던 중.

“허억, 허억…….”

등불을 든 학생을 선두로 수십 명의 학생들이 대열을 맞춘 채 내 쪽을 향해 달려왔다.

‘…저건 또 뭐야?’

내가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던 중.

“아, 흑남님!”

선두에 있던 학생이 헉헉거리며 내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너희… 지금 뭐 하고 있는 거냐?”

그에 선두의 학생이 건강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뭘 하긴요? 흑남님께서 가르쳐 주신 걸 복습하고 있는 것뿐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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