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카데미의 노예가 살아남는 법-147화 (147/200)

◈ 147화

“…생존 전문 교수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학생들.

“그래. 나는 약 세 달간 너희에게 전장에서 생존하는 법을 가르칠 거다.”

“흑마법을 알려 주시는 게 아니었나요?”

한 학생의 물음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흑카데미에는 능력이 출중한 교수들이 많다. 그러니 구태여 나까지 흑마법을 가르칠 필요는 없지.”

“그럼 흑남님은 뭘 가르치시는 건가요?”

“방금 뭘 들었지? 전장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알려 준다고 했을 텐데. 말이 나온 김에 한 가지 질문을 할까. 과연 흑마법사는 어떤 방식으로 싸워야 하지?”

그에 학생들은 의아해하면서도 하나둘 대답하기 시작했다.

“그야… 압도적인 힘으로 적을 찢어발겨야죠.”

“그냥 노예들한테 했듯이 흑마법을 쓰면 되는 것 아닌가요?”

“그래? 그럼 만약 상대가 흑마법이 통하지 않는 상대라면 어쩔 거지?”

내 질문이 그리도 생소한 질문이었던 걸까.

학생들은 무슨 그런 질문이 다 있냐는 듯 나를 바라봤다.

“흑마법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존재하긴 하나요?”

‘이놈들은 아크한테서 뭘 배운… 아, 2학년이면 아크 신관장이 쫓겨난 이후이겠구나.’

나는 속으로 고개를 젓곤 천천히 입을 뗐다.

“좋다. 그럼 지금 네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흑마법을 내게 사용해 봐.”

“…진심이세요?”

“어차피 내겐 아무런 영향도 없을 테니 걱정할 것 없다.”

나의 발언에 자존심에 상처라도 입은 것인지.

표정을 일그러뜨린 남학생이 지팡이를 든 채 주문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스스스스슥-

남학생의 등 뒤로 뿌연 형체가 서서히 자리를 잡아 가자.

나는 조금 놀랐다.

‘호오… 2학년이 벌써 망령을 구사할 줄 안다고?’

망령 소환.

파멸학파의 전유물 같은 흑마법으로.

망령에 침식당하거든 이지를 잃고 망령을 소환한 대상에게 조종당하게 되는 중급 흑마법이었다.

‘근데 제일 강한 흑마법을 쓰라고 했는데, 저건 정신 계열의 흑마법이잖아.’

혹시라도 내가 다칠 것을 두려워해서 망령을 소환한 걸까?

‘쓸데없이 걱정이 많은 건지 아니면 오만한 건지.’

내가 속으로 픽 웃던 중.

“망령을 부르다니…….”

“조금 위험한 것 아냐? 아무리 흑남님이라고 해도 정신은 취약하실 수도 있잖아?”

망령을 본 일부 학생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가라!”

사아아아아아악-

망령이 나의 몸을 잠식하기 위해 나에게 쇄도해 오자.

나는 슬며시 양손에 파멸의 힘을 불어넣었다.

그러곤 날아오는 망령을 낚아챈 뒤.

쫘아악-

양피지 찢듯 두 동강을 내 버렸다.

“…어어?”

남학생이 먼지처럼 흩어지는 망령을 멍하니 바라보는 사이.

난 삽시간에 그의 앞으로 달려가 목에 손가락을 갖다 대며 입을 열었다.

“만약 이곳이 교실이 아니라 전쟁터였다면 어땠을까? 지금 네 목에 드리운 게 손가락이 아니라 칼이었다면 넌 죽었을 거다.”

“하, 하지만 이건 상대가 흑남님이었으니까 그런 거예요! 평범한 병사였다면 제가 이겼을걸요?!”

남학생이 불공평하다는 듯 불만을 터뜨리자 나는 실소를 흘렸다.

“전장에 평범한 병사들만 포진하고 있을까? 정예 기사들을 비롯해서 백마법사와 신관 등, 그 모든 직업군이 네가 상대해야 할 적들이다. 그런데 그들 앞에서도 이런 말을 하려고?”

“그건…….”

나는 학생들의 면면을 쓱 훑어보며 계속 말을 이어 갔다.

“전장은 잔혹한 곳이다. 나이가 어리다고, 실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상대가 봐주는 일도 없어. 그렇기에 너희가 최우선적으로 여겨야 할 것이 바로 생존이다.”

“적을 많이 죽이는 게 아니라요?”

“적을 죽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살아남아야 미래도 도모할 수 있다.”

일부 학생들이 내 말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물론 최전방에는 언데드들이 나서겠지. 하지만 언데드를 운용하게 될 너희가 적들의 표적이 될 확률이 굉장히 높다.”

전장에서 언데드가 아니라 숙주 격인 흑마법사부터 죽이는 건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었으나.

학생들은 그마저도 모르고 있었는지 멍하니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니 오늘부터 난 너희에게 살아남는 법을 가르칠 거다.”

“흑남님, 구체적으로 어떠한 걸 가르치실 계획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볼드 학장이 넌지시 질문을 해 오자.

나는 그런 그를 보며 물었다.

“지금 원형 경기장은 비어 있나?”

“예, 사용하고 있는 교수가 없으니 쓰셔도 될 것 같습니다.”

“좋아. 그럼 지금 바로 원형 경기장으로 이동할까.”

나는 학생들과 함께 원형 경기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곤 기대 반, 의심 반으로 날 바라보는 학생들에게 빙긋 웃으며 말했다.

“자, 지금부터 전원 지팡이를 들고 이곳을 뛴다. 일단 딱 서른 바퀴만 돌아 볼까?”

“…네? 여기를 뛰라고요?”

“가장 빨리 들어오는 사람에겐 상을, 가장 늦게 들어오는 놈에게는 벌을 주마. 시작!”

내가 목소리를 높여 소리치자.

서로 눈치만 보던 학생들 사이에서 한 학생이 갑자기 앞으로 달려 나간다.

“카이나! 뭐 하는 거야?”

“뭐 하긴? 못 들었어? 이곳을 달리라고 하셨잖아.”

“그렇긴 하지만…….”

결국 내 눈치를 보던 학생들도 여학생을 따라 원형 경기장을 돌기 시작했다.

“허억… 허억…….”

“내가… 왜… 이 짓거리를…….”

선두가 다섯 바퀴쯤 돌았을 무렵.

대다수의 학생들이 자리에 멈춰 서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이야… 아무리 앉아서 공부만 했다고 해도 그렇지, 겨우 저 정도밖에 못 뛰고 퍼져 버린다고?’

어느 정도 예상을 하긴 했건만 설마 저 정도였을 줄이야.

저 정도 체력이면 근접전은커녕 행군조차 재대로 못 할 정도로 학생들의 체력은 저질이었다.

‘앞으로 세 달간 너희는 지옥을 맛보게 될 거다.’

건들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미 손을 뻗은 이상 세 달간 학생들의 체력을 완전히 바꿔 놓으리라.

“빨리 뛰어! 전쟁터에서도 그렇게 느릿느릿하게 뛰려고?! 애새끼들도 너희보단 잘 뛰겠다!”

학생들이 다시 이를 악물고 달리는 사이.

볼드 학장이 내게 슬며시 다가와 묻는다.

“흑남님… 이게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까요?”

“볼드 학장, 그럼 내가 내 귀한 시간을 허비하면서 장난이나 치려고 하는 것 같나?”

“그, 그건 아닙니다만…….”

볼드 학장이 말꼬리를 흐리자 나는 그를 보며 물었다.

“볼드 학장, 전쟁에 나간 경험이 있으면 지금 하는 훈련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잘 알 텐데?”

“경험은 있습니다만… 저는 주로 후방에 있었던지라…….”

‘뭐야. 후방이면… 거의 보급 위주의 임무만 맡았다는 것 아냐?’

물론 보급 또한 전쟁을 치르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이긴 하나.

학생들이 보급병 역할을 맡는 건 아니잖은가?

“학생들은 전방으로 나가게 될 거다. 당연히 수많은 위협에 목숨이 노출될 수밖에 없겠지. 거기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도망이라도 가야 되는데, 저딴 체력으로 도망이나 제대로 칠 수 있을 것 같아? 분명 도망가다가 뒤통수에 칼이 꽂힐 거다.”

실제로 페른과 연합군의 전쟁 당시.

전투에서 패배하여 도망치다가 체력이 부족하여 뒤통수에 화살이 꽂힌 신관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체력은 전사의 전유물이다? 개 같은 소리지.’

체력은 만인이 길러야 할 기본 소양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흑마법사나 신관들이나 모두 그 기본적인 걸 간과하고 있었다.

‘얼씨구? 저것들 봐라?’

나는 느릿느릿 걸어 다니는 학생들을 보며 버럭 소리쳤다.

“빨리 뛰어!”

* * *

흑카데미에 새로운 교수가 부임한 지 하루가 지났다.

“미친… 허억… 허억… 이게 말이 돼?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짜… 달리기만 시키네?”

“그래도… 흑남님의 가르침이잖아. 뭔가 깊은 뜻이 있을 거야!”

2일째.

“그… 그래도 뭔가…….”

“더… 더는… 우웨에에엑…….”

3일.

4일.

.

.

.

10일이 지났음에도 흑남의 교육 방침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으으으…….”

“이러다 진짜 죽는 것 아냐?”

“심지어 숙제가 경기장을 달리는 거라니. 그냥 그 인간은 미친 게 분명해!”

학생들은 하나같이 영혼이 빠져나간 것 같은 표정을 한 채.

책상에 널브러져 흑남을 욕하기 바빴다.

“도대체 흑남님은 우리한테 왜 이런 짓만 시키는 걸까?”

“하인 출신이었다며. 그래서 그때의 원한을 우리한테 풀려고 이러는 것 아냐?”

“하지만 원한을 풀 생각이었으면 진작 이러지 않았을까? 그래도 진짜로 우리를 생각해서 그러시는 것 같은데…….”

한 학생이 조심스레 변호하자 다른 학생들은 코웃음을 쳤다.

“그래서, 시키는 게 온 종일 경기장을 돌게 하는 것뿐인데?”

“그딴 수업은 나도 할 수 있겠다. 그냥 우리가 고통받는 걸 즐기는 게 분명해!”

“그뿐이야? 전쟁터에는 우리를 시중들 하인도 없다면서 청소도 전부 우리한테 시키고 있잖아!”

“우리한테 뭔가 불만이 있는데 그걸 수업으로 푸는 게 분명해! 애당초 전사들이나 받을 훈련을 왜 우리한테 시키는 건데? 난 흑마법을 배우러 온 거라고!”

불만을 터뜨리던 학생들 중 한 명이 슬며시 입을 뗀다.

“이대로 계속 참을 거야?”

“그러면 어쩌자고? 상대는 흑남인데.”

학생과 흑남.

그 사이에 존재하는 신분의 격차는 감히 학생들이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인간이 더 이상 그딴 수업을 하지 못하게 하면 되는 거잖아?”

“그럼 너무 좋지. 하지만 어떻게?”

친우의 물음에 화두를 던진 학생이 눈을 번뜩인다.

“독을 먹이는 건 어때?”

“…독? 죽이는 건 좀…….”

“미쳤어? 흑남을 어떻게 죽여. 내 말은 독을 먹여서 수업에 못 나올 정도의 상태를 만들자는 거지.”

하지만 대다수 학생들의 반응은 썩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과연 흑남한테 독이 먹힐까? 거기다가 만약 걸리기라도 한다면…….”

“그렇다고 흑마법이 통하지도 않을 거고…….”

학생들이 머리를 맞대고 깊이 시름하던 중.

한 학생이 넌지시 의견 하나를 던진다.

“아니면 원형 경기장을 박살 내는 건 어떨까?”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지금 수업을 그곳에서 하고 있잖아. 그럼 그곳만 박살 내면 흑남도 더 이상 수업을 진행할 수 없지 않을까?”

“…그거다!”

화제를 꺼냈던 학생이 손뼉을 치며 의견을 내놓은 학생의 어깨를 꽉 붙잡는다.

“너… 천재구나?!”

“그 정도야 뭐…….”

“근데 어떻게 경기장을 부수지?”

“당연히 밤에 몰래 나가야지. 순찰 도는 스켈레톤들을 피하는 것 정도는 쉬운 일이잖아?”

순식간에 계획을 짜 나가는 학생들.

“그럼 실행일은 언제로 할까?”

“오늘 밤으로 하자. 이런 건 빠르면 빠를수록 좋으니까. 다 동의하는 거지?”

* * *

다음 날, 아침.

똑똑-

“흑남님, 볼드입니다.”

‘…음?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나는 의아해하면서도 문에 대고 소리쳤다.

“들어와.”

어째 볼드 학장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아 보이자.

난 그런 그를 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

“그게…….”

잠시 망설이던 볼드 학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간밤에 누군가가 원형 경기장을 사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망가뜨려 놨습니다.”

“…그래?”

“예… 아무래도 흔적을 봐선 학생들의 소행인 것 같은데, 범인을 찾는 즉시 큰 벌을 내리겠습니다.”

‘음… 근데 그게 그렇게 표정이 썩어 갈 정도로 큰일인 건가?’

나는 의아함이 들어 볼드 학장에게 물었다.

“그게 전부야?”

“…예?”

“보고할 건 그게 전부냐고.”

내가 너무도 덤덤히 물어서일까.

볼드 학장은 당혹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정말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하다는 건데?”

“예? 그야… 흑남님께서 수업장으로 사용하시던 곳이 그렇게 돼서…….”

‘아, 왜 저렇게 안절부절못하나 했더니 그것 때문이었어?’

나는 속으로 실소를 금치 못하며 고개를 저었다.

“됐어. 굳이 범인을 찾으려고 할 것도 없고. 학생들이 단단히 오해를 한 것 같은데, 원형 경기장이 없으면 다른 곳을 이용하면 돼.”

“좋은 장소를 알고 계십니까?”

“달리는 구간을 더 늘려야지. 앞으로는 원형 경기장이 아니라 흑카데미 안을 뛰어다니게 할 거다.”

흑카데미 주변이 워낙 넓어서 그런 건지.

볼드 학장이 멍한 표정으로 물어 왔다.

“흐, 흑카데미 안을 말입니까?”

그에 나는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원형 경기장에서 뛰던 것보다 한 5배 정도는 길이가 늘겠네. 이 소식을 들으면 학생들도 좋아하겠어.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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