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화
‘더핀 교수가 자리에 있으려나.’
더핀 교수.
내가 부재중이거든 흑립 유치원의 모든 업무를 대신 수행하는 대리 원장이자 교수였다.
“더핀 교수. 더핀 교수, 안에 있나?”
내가 집무실 문을 두드리자.
곧 몸이 펑퍼짐한 아줌마가 문을 활짝 열고 걸어 나왔다.
“어머, 랄프 님?!”
“오랜만이야, 더핀 교수.”
“그러게요. 세상에… 못 본 사이에 더 마르신 것 같은데, 페른에서 엄청 고생을 하셨나 보네요. 제가 뭐라도 좀 내올까요?”
더핀 교수가 내 몸을 보곤 화들짝 놀라 묻자.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그보다 애들 교육은 좀 어때?”
“다들 별 탈 없이 교육과정을 잘 따라오는 중이에요. 낙제생도 없고요! 이 정도면 대부분 흑카데미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잘 교육했죠. 한번 구경해 보시겠어요? 흑남께서 참관하시면 아이들도 좋아할 것 같은데…….”
더핀 교수가 넌지시 권유해 오자 나는 서슴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어머머, 세상에. 정말인가요?”
“다만, 그 전에 할 이야기가 있다.”
나의 대답에 더핀 교수가 내 옆에 서 있던 안나를 쓱 훑어보며 말한다.
“혹시 옆에 있는 꼬마 숙녀와 관련이 있는 걸까요?”
“그래.”
나는 안나의 머리에 가볍게 손을 올리며 말을 이어 갔다.
“이 아이를 흑립 유치원에 입학시키려고 한다.”
“어머머머… 세상에, 세상에…….”
내 말이 그리도 놀라웠던 걸까.
깜짝 놀란 더핀 교수가 입을 틀어막았다가 슬며시 내게 질문을 던져 왔다.
“혹시 흑남님의 숨겨진 따님이라거나…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주책맞은 질문을… 오호호호호호!”
“숨겨 왔던 딸은 아니고, 내 제자로 삼을 아이다.”
“네?! 흑남님의 제자요?”
더핀은 연거푸 놀라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흑남님, 그럼 구태여 흑립 유치원에 입학을 시키기보단 흑남님께서 직접 가르침을 내리시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내가 바쁘지 않았다면 그렇게 했을 거다. 그래서 최소한의 이론과 교육은 흑립 유치원에서 배우게 할 생각이다. 덤으로 학우들도 사귀고 말이야.”
“아아,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요.”
고개를 끄덕이는 더핀 교수를 보며 난 한 가지 우려를 표했다.
“혹시 특혜 논란이라거나 그런 게 생기진 않겠지?”
본래 흑립 유치원에 입학하기 위해선 철저한 검증과 시험을 치러야만 했다.
하나 안나는 그러한 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입학을 하는 것이니.
당연히 논란이 될 수 있을 터.
“논란이라니요?! 흑남님이 제자로 삼으시려고 하는 정도면 재능은 보장됐다는 이야기잖아요? 감히 누가 뭐라고 하겠어요?! 걱정 마세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럼 안나를 입학시켜도 큰 문제는 없겠네.”
“오호호호호, 알겠어요. 안나 양? 나를 따라오겠어요? 아 참, 흑남님도 참관하시겠어요?”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참관하지.”
“좋아요. 마침 에그리오 교수가 갓 입학한 1학년들에게 기초적인 흑마법의 이론을 가르치는 중일 테니, 그쪽으로 이동할게요.”
나와 안나는 더핀 교수를 따라 수업을 진행 중인 한 교실로 이동했다.
“오호호호호, 에그리오 교수님? 잠깐 실례할게요.”
“무슨 일… 헉…….”
안경을 쓴 남자가 질문하려다 나와 눈이 마주치곤 크게 기겁한다.
“흐, 흑남님께서 여긴 어쩐 일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아니요, 아니요. 별일은 아니고, 여기에 있는 꼬마 숙녀분이 1학년에 편입할 예정이에요. 괜찮겠지요?”
더핀 교수가 계속 눈짓으로 날 가리켜 보이자.
그제야 상황 파악을 한 건지 에그리오 교수가 두 눈을 부릅떴다.
“마, 마침 잘 오셨습니다! 수업을 듣기 정말 딱 좋은 때였거든요. 얼른 책상을 가져오라고 하겠습니다!”
에그리오 교수가 헐레벌떡 교실을 나가자.
“갑자기 교수님이 나가셨어! 무슨 일이 생겼나 봐!”
“그, 근데… 저기 서 있는 분… 흑남님 아니야?”
“거짓말하지 마! 흑남님이 여길 왜 와?!”
“아냐! 진짜야! 전에 광장에서 봤었어!”
수업을 듣고 있던 원생들이 자기들끼리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럼 흑남님 옆에 있는 여자애는 흑남님의 친척인 거야?”
“그건 모르지. 하지만 입학식은 이미 끝났잖아? 그럼 쟤는 시험도 안 치르고 흑립 유치원에 들어오는 거야?”
“불공평해! 우리는 여기에 들어오려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데……!”
교실이 점점 소란스러워지자.
“자자, 조용! 조용!”
보다 못한 더핀 교수가 나서서 원생들을 정숙시킨다.
교실의 분위기가 잦아들던 중.
덜그럭-
스켈레톤이 들고 온 책상과 의자를 교실 한편에 놔두고는 조용히 사라졌다.
“자, 여러분? 오늘 수업은 흑남님께서 직접 참관을 하신다고 해요!”
“흐, 흑남님이요?”
“그래요. 그러니까 다들 열심히 수업을 듣는 모습을 보여 드려야겠죠?”
더핀 교수의 물음에 불만을 보이던 학생들이 입을 모아 소리친다.
“네!”
‘기운들 넘치네.’
나는 그런 원생들을 보며 속으로 미소를 짓다가.
안나의 손에서 거친 진동이 느껴져 그녀를 내려다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긴장할 것 없어. 넌 그저 이곳에서 열심히 수업만 들으면 돼.”
“그, 그래도 걱정돼요.”
“걱정할 것 없다. 널 괴롭히는 아이들이 있거든 내게 와서 이야기를 해. 그런 놈들은 내가 따끔하게 혼을 내 주마.”
나의 말에 큰 용기를 얻은 걸까.
불안에 떨던 안나의 눈에 결의가 들어찬 것 같았다.
“아, 알았어요. 저, 열심히 해 볼게요!”
“그래. 자, 이제 가 봐.”
내가 슬며시 그녀의 등을 떠밀자.
안나는 고장 난 기계처럼 딱딱하게 걸어가 빈 책상에 앉았다.
‘어디, 이제 수업을 지켜볼까.’
* * *
1시간 뒤.
“자, 오늘 수업은 여기서 끝마치겠다. 서클이 어떻게 생성되는지, 흑마법사는 어떻게 흑마력을 쌓는지, 다음 수업 전까지 꼭 예습해 오도록.”
“고생하셨습니다!”
마침내 에그리오 교수의 수업이 끝나자.
안나가 냅다 나를 향해 달려와 묻는다.
“이, 이제 다 끝난 건가요?”
“이제 시작이지. 그리고 앞으로 나보단 저기 보이는 친구들과 어울리도록 해. 알았지?”
“…네.”
힘없이 대답하는 안나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원래 처음이 어려운 법이지만, 금세 적응할 수 있겠지.’
내가 책상으로 돌아가는 안나의 등을 바라보며 소리 없는 응원을 보내던 중.
더핀 교수가 내게 다가왔다.
“오호호호호, 수업은 마음에 드셨나요?”
“적당히 아이들 눈높이에 잘 맞춘 수업이었다. 그 정도면 아이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겠지.”
“그렇죠? 저는 항상 최대한 낙제생이 안 생기도록 신경을 쓰고 있거든요. 안나 양도 분명 수업을 잘 따라올 거예요.”
더핀 교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하지만 저 아이는 아직 내가 가르친 게 없어서 빈 양피지와도 같은 상태다. 그러니 잘 가르쳐야 할 거야.”
“호호호호호, 물론이죠! 충분히 더 신경을 써서 가르칠게요!”
‘이만하면 최소한의 도리는 다한 건가.’
교수들에게 확실하게 언질을 했으니.
동급생들은 어떨지 몰라도 교수들은 확실한 안나의 편이 되어 줄 것이다.
‘동급생들과의 관계는… 네가 하기 나름이라고 본다. 안나야, 힘내라.’
나는 속으로 안나를 응원해 주곤 더핀 교수와 함께 교실 밖으로 나갔다.
* * *
이윽고 두 사람이 나가고 교실 문이 닫히자.
“…….”
안나는 안절부절못하며 주변을 힐끔거렸다.
‘사도님도 가셨는데 이제 난 뭘 해야 하는 거지?’
낯선 환경에 낯선 사람들만이 가득한 공간은 그녀에게는 무거운 짐과도 같았다.
그러던 그때.
“야, 넌 이름이 뭐야?”
원생들 몇이 그녀에게 다가와 질문을 던져 왔다.
“나, 난 안나야!”
“안나? 어디 가문 출신인데?”
“사는 곳은 어디야?”
아이들의 질문 공세가 이어지자 안나는 기죽지 않으려고 최대한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자그마한 입을 뗐다.
“나는 페른 왕국에서 왔어!”
“…페른에서 왔다고? 뭐야, 그럼 어떤 가문 출신도 아닌 거네?”
“그럼 너랑 흑남님이랑은 무슨 사이야?”
‘무슨 사이냐고? 그야…….’
안나는 흑남과 자신을 주신을 믿는 신도라고 말하려다가.
“우리가 주신을 믿는 건 무조건 비밀로 해야 돼. 알았지?”
불현듯 흑남이 했던 말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쳐 갔다.
‘아 참… 말하지 말라고 하셨지. 이럴 때는 어떻게 말하라고 하셨더라……. 아!’
“난 흑남님의 제자야!”
“뭐, 뭐라고?”
그녀의 대답에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거짓말하지 마! 페른 왕국 출신이 어떻게 흑남님의 제자가 돼?”
“지, 진짜야!”
“흑남님의 제자면 흑마법도 엄청 잘 쓰겠네? 한번 써 봐!”
한 남학생의 질문에 안나는 고개를 푹 떨궜다.
“…아직 흑마법은 못 배웠어.”
“뭐라고? 그럼 제자가 아니잖아?”
“흑남님이 시종으로 들인 걸 너 혼자 제자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 아냐?!”
아이들의 악의적인 질문에 안나는 몸을 파르르 떨었다.
“아니야! 분명 흑남님은 날 제자로 삼으시겠다고 하셨어!”
“거짓말! 네가 정말 제자라면 왜 흑마법을 안 가르치셨겠어?”
“그래! 거짓말하지 마!”
아이들이 삿대질을 하며 질타할수록.
안나의 눈망울에 점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아, 아니야……. 흑남님은 분명… 날…….”
그러던 그때.
덜컥-
누군가가 교실로 들어오자.
“흑남님!”
안나는 득달같이 달려가 그의 허리춤에 머리를 파묻었다.
“무슨 일이야?”
“그게… 그게…….”
서러움에 목이 잠겼는지 안나가 쉽사리 입을 떼지 못하던 중.
학생들이 그에게 다가와 질문을 던졌다.
“흑남님! 이 애가 흑남님의 제자라고 말했는데 그게 사실인가요?”
“거짓말이죠? 시녀로 거두신 건데 이 애가 착각한 거죠?”
아이들이 끝없이 질문을 던져 대자.
안나는 슬쩍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봤다.
“흠…….”
잠시 안나를 바라보던 흑남이 아이들을 보며 피식 미소를 짓는다.
“너희 가문에선 시녀에게 공부를 가르치니?”
“…아니요?”
“내가 안나를 시녀로 거뒀다면 흑립 유치원에 입학을 시켰을까?”
그의 물음에 질문을 던졌던 남학생이 쉽사리 수긍하지 못하고 반박한다.
“하지만 이 애는 흑마법에 대한 건 아무것도 모르던데요?”
“그야 아직 내가 가르친 게 없으니까. 안나는 이곳에서 너희와 함께 기초적인 흑마법을 배울 거다. 그리고 그 뒤엔 내가 본격적인 가르침을 내릴 거다.”
“와아아아…….”
흑남의 말에 아이들은 부러움과 질시가 섞인 눈빛을 안나에게 보냈다.
“그러니 그 전까진 다들 안나와 친하게 지냈으면 하는데. 다들 할 수 있겠지?”
“네!”
“좋아. 너희의 말을 믿어 보마. 안나, 너도 기죽지 말고 잘 어울리렴.”
덜컥-
흑남이 그녀의 머리를 몇 차례 쓰다듬어 주곤 책을 챙겨 다시금 교실을 나서자.
“거, 거봐! 난 거짓말 안 해!”
아까와는 달리 허리춤에 손까지 올린 안나가 원생들을 쏘아보며 말했다.
“어… 음…….”
“사과해.”
가시를 잔뜩 세운 안나가 남학생을 보며 소리치자.
남학생은 머쓱하게 뒤통수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미, 미안해. 진짠 줄 몰랐어.”
“다음부턴 조심해.”
“으… 으응……. 미안.”
남학생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
안나에게 내밀었다.
“이거… 먹을래?”
“이게 뭔데?”
“매점에서 파는 건데, 맛있어. 폭탄 맛 쿠키라고 하는 건데…….”
* * *
한 달 뒤.
“자, 그래서 우리가 양질의 흑마력을 모으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된다고 했죠? 안나 양?”
“시체가 많은 곳으로 가야 해요!”
“그래요. 그러니 우리는 사람들을 납치하는 데 주저함이 없어야 된다는 거예요. 사람들에게서 질 좋은 시체를 얻을 수 있고, 또 스켈레톤과 누더기 골렘을 만드는 등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으니까요.”
교실 밖에 서 있던 난 열심히 수업을 듣고 있는 안나를 보며 희미한 미소를 흘렸다.
‘이제는 제법 잘 융화된 모양이네. 어느 정도 이론교육이 완성되면 그때부턴 나도 좀 가르쳐야지.’
적어도 지금은 저 아이가 저 시절에만 누릴 수 있는 일들을 만끽하도록 놔둘 생각이었다.
‘안나는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으니 이제 제이나를 만나러 가 볼까.’
최근 들어 대륙에 조금씩 주신의 이름이 퍼지고 있다는 소문을 접했다.
‘그렇게까지 퍼질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지만……. 슬슬 대비를 하긴 해야 해.’
주신의 이름과 성세가 점차 커져 간다면.
당연히 레바논과 베논이 나서 주신을 이단 취급 하며 제거하려 할 터.
‘제이나와 회의를 하면 뭔가 좋은 방안이 나올지도 몰라.’
내가 제이나를 찾으려 걸음을 옮기려던 그때.
“흑남님! 흑남님! 허억, 허억… 여기 계셨군요!”
한 흑마법사가 손을 흔들며 헐레벌떡 내 앞으로 달려왔다.
“무슨 일이야?”
“그게, 큰일 났습니다!”
“…큰일?”
‘큰일이 날 게 있나?’
페른 왕국도 무사히 연합군의 합공을 물리쳤는데 큰일 날 게 뭐가 있단 말인가?
“그게, 페른 왕국에서 서신이 왔는데, 그게…….”
“뭔데 그래?”
침을 꿀꺽 삼킨 흑마법사가 나를 보며 힘겹게 말을 토해 냈다.
“안드레이아 3세가 카밀라 공주와 흑남님의 결혼을 추진하면 어떻겠냐고 물어 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