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그런 적이 없다니?
“그럼 시녀를 시켜 갖고 나한테 쪽지를 보낸 적도 없어?”
“난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
백스 자작의 입에서 연거푸 자신의 행동을 부정하는 말이 나오자.
나는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분명 마인드 브레이커에 걸렸던 시녀는 모든 일을 백스 자작이 시켰다고 토로했건만.
백스 자작은 그 모든 것을 부정하고 있지 않은가?
‘설마 마인드 브레이커가 제대로 안 먹힌 건가?’
아니다.
일개 귀족이 나의 흑마법을 풀어내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건 시녀한테도 해당되는 이야기잖아. 시녀가 내 마법을 풀어냈을 리는 없고……. 흠…….’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곧 한 가지 가정을 떠올렸다.
‘만약에 둘 다 사실을 말했다고 한다면… 역시 가능성은 하나겠지.’
시녀나 백스 자작.
둘 중 한 명은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경우였다.
‘그래. 그러면 말이 되긴 해. 하지만 백스 자작보단 이 일의 발단이 된 시녀가 그럴 확률이 더 높아 보이긴 하는데.’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누군가가 백스 자작인 것처럼 위장을 하여.
시녀에게 명령을 전달했다고 봐야 하는 것일까?
‘만약 시녀가 마인드 브레이커에 걸릴 것까지 감안하여 이번 일을 꾸몄다고 한다면…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제법 흑마법에 능통한 놈이 뒤에서 이 일을 꾸몄을 가능성도 있겠어.’
내가 고민을 이어 가던 중.
“으으음…….”
정신을 차린 백스 자작이 몸을 휘청거렸다.
“정신이 드나?”
“…꽤나 거부감이 드는 능력이군. 다시는 내게 그 힘을 사용하지 마라. 알겠나?!”
백스 자작이 마인드 브레이커에 강한 거부반응을 보이자.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피식 웃었다.
“그래도 이 능력 덕에 무고함을 증명했는데, 감사할 줄은 알아야지.”
“무고함을… 증명했다고?”
그의 물음에 내 옆에 있던 올밀이 뱃살을 들이밀며 힘껏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습니다! 백스 자작님께서는 그 모든 일들이 자신과 연관이 없다고 실토하셨습니다.”
“그런가……. 근데 올밀, 자네는 저자의 능력을 꽤나 신뢰하는 모양이군.”
“죄를 고백한 시녀의 말과 흑남께서 하셨던 말씀이 정확히 일치했었습니다.”
올밀의 대답에 백스 자작이 복잡한 표정을 짓던 중.
나는 백스 자작을 보며 입을 뗐다.
“그보다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 예상이 가나? 네가 제거당했을 때 가장 이득을 볼 만한 사람을 알고 있다든가.”
“내가 죽었을 때 이득을 볼 사람이라…….”
백스 자작은 씁쓸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죽길 바라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라 딱 잘라 누구라고 단정 지을 수가 없다.”
‘씁… 이런 쓸모없는 놈을 봤나.’
백스 자작을 통해 무언가 단서를 얻길 바랐건만.
저 말은 결국 아무것도 모른다는 소리이지 않은가?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을 정리했을 때, 한 명 의심 가는 사람이 있긴 하다.”
“그게 누구지?”
“에델만 공작이다.”
‘에델만 공작? 에델만… 에델만…….’
나는 카밀라 공주가 넘겨줬던 정보들을 상기하며.
에델만 공작과 관련한 사항들을 최대한 떠올려 봤다.
‘아아… 기억났다.’
에델만 공작.
보통 마탑에 거처를 두고 활동하는 마법사들과 달리.
에델만 공작은 탑에서 나와 귀족으로 진로를 전향한 늙은이라 했었다.
‘만약 이 일의 배후에 에델만 공작이 있다고 하면……. 이제야 좀 그림이 그려지네.’
백탑 출신인 에델만 공작이 뒤에 있었다면.
마인드 브레이커에 대처한 것도 어느 정도 납득이 갔다.
‘다만, 아직 이 정보만으로 섣불리 에델만 공작이 범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어.’
백스 자작이 누명을 썼듯이 이 정보 이면에 숨겨진 함정이 존재하고 있을지도 몰랐으니까.
“에델만 공작이라……. 의외군. 누구보다 왕국에서 특혜를 받으며 살았을 공작이 연합군과 손을 잡았을 줄이야.”
“공작이… 연합군과 손을 잡았다고? 그건 너무 억측이 아닌가?”
백스 자작의 물음에 나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지금 이 시국에 왕국에서 가장 중요한 요충지를 관리하는 사령관의 목을 베려고 하는데, 이유야 너무 뻔하지 않나?”
“…….”
나의 물음에 백스 자작도 걸리는 게 있었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하, 하지만 에델만 공작님께선 이제껏 그 누구보다 안드레이아 3세 님을 섬기셨습니다! 절대로 공작님께선 그럴 일을 하실 분이 아닙니다!”
대신 올밀이 끝까지 에델만 공작을 변호하자.
나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세상에 절대란 건 없어. 배신자인 줄 알았던 백스 자작이 누명을 썼을 거라고 누가 알았을까.”
“그건 그렇습니다만…….”
올밀이 말꼬리를 흘리자.
나는 다시 백스 자작을 보며 입을 열었다.
“어쨌건 자네가 무고하다는 사실이 증명됐으니 최대한 빨리 그 안에서 꺼내 주지.”
“날… 이곳에서 꺼내 주겠다고?”
실소를 흘리는 백스 자작.
“만약 에델만 공작이 날 죽일 생각으로 함정을 판 거라면 날 꺼내는 건 힘들 거다.”
“이유가 있나?”
“왕께서 가장 신뢰하는 사람 중 한명이 에델만 공작이다. 네가 아무리 왕께 진실을 고한들 왕께선 섣불리 에델만 공작을 쳐 내지 못하실 거고, 그사이 내 사형이 집행되겠지.”
모든 걸 내려놓은 것 같은 그의 발언에 나는 무심히 대답했다.
“그래도 일단 왕에게 건의를 해 보겠다.”
* * *
몇 시간 뒤.
‘씁…….’
나는 왕궁을 나와 별관으로 돌아갔다.
그러곤 가죽 의자에 걸터앉아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왕과 대면하는 것까지 막아 놨을 줄이야…….’
나는 감옥에서 나가 곧장 안드레이아 3세를 만나고자 했었으나.
왕이 취침 중이라는 이유로 킹스가드들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그렇다고 내일이 되더라도 왕을 만나게 해 준다는 보장이 없으니.’
백스 자작의 처형식은 3일 뒤다.
그 안에 판도를 바꾸지 못한다면 백스 자작의 피는 사형대에 핀 꽃들의 양분이 되고 말 터.
‘왕을 만나기 어렵다면 에델만 공작을 만나 봐야 되나.’
차라리 에델만 공작의 입에서 진실을 듣는 편이 여러모로 편할지도 모른다.
‘다만 에델만이 날 만나 줄지가 변순데……. 그냥 몰래 놈의 집에 침입할까?’
나는 깊은 고민에 잠겨 있다가.
“자, 이 글자는 뭐라고 했죠?”
“새요!”
“맞아요. 그럼 이건 뭘까요?”
“무, 문짝 아닙니까?”
“틀렸어요. 이 글자는 희망이에요.”
시녀와 함께 글을 배우고 있는 옐리치와 아린에게 눈길을 줬다.
‘내 생각 이상으로 열심히들 배우고 있네.’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내가 시켜서인지는 몰라도.
어쨌건 열심히 배움에 임하는 부녀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았다.
‘후우… 일단 에델만 공작에 대한 정보가 빨리 들어와야 할 텐데.’
일단 올밀에게 에델만 공작과 관련한 정보를 싹 다 모아 오라고 말은 해 뒀지만.
정보를 모아 오는 일이 어디 하루 이틀 걸리는 일이던가?
‘3일… 빠듯하긴 하네. 아오… 정 안되면 일단 백스 자작을 탈출시켰다가 무죄가 증명됐을 때 돌려보내야 되나.’
내가 다시금 고민과 씨름하며 미간을 한껏 찌푸리던 그때.
“흑남님!”
올밀이 별관에 찾아왔다.
“이제 해도 다 떨어져 가는데 무슨 일이야?”
“낮에 말씀하셨던 정보를 갖고 왔습니다!”
“…벌써?”
내가 믿기 어렵다는 듯 올밀을 바라보자.
“일단 이걸 보시죠.”
올밀은 양피지 몇 장을 내게 내밀었다.
‘흠… 호오…….’
나는 양피지를 쓱 훑어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에델만 공작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이렇게 빨리 가져올 줄이야.’
“일단 자리를 좀 옮기지.”
나는 올밀과 함께 거실에서 나가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겨우 반나절 동안 이만한 정보를 갖고 올 줄을 몰랐는데.”
“하하하……. 그게… 사실 그 정보는 제가 구한 게 아닙니다.”
“그럼 누가 구했는데?”
“데르콘 재무대신께서 도와주셨습니다.”
‘그 깐깐한 늙은이가? 흠… 이건 하루아침에 얻을 만한 정보가 아닌데.’
그렇단 건 데르콘도 에델만 공작을 의심하고 있었다는 걸까?
‘뭐, 어쨌건 나로서는 호재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곤 계속 양피지를 읽어 나갔다.
그러던 중.
“흠… 이건 조금 의외인데. 흑마법사들이 공작가에 들어가는 걸 봤다고?”
나는 양피지에 적혀 있던 정보들 중, 한 가지를 짚어 올밀에게 툭 던졌다.
“예, 그래서 데르콘 재무대신께서 흑남님을 불편해하셨던 것 같기도 합니다.”
“어디 데르콘 재무대신뿐일까.”
“그, 그건…….”
나는 안절부절못하는 올밀을 보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
“여하튼 에델만 공작이 흑마법사들을 초빙했다. 이게 사실이라 한다면 이유가 뭘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데르콘 재무대신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잠시 뜸을 들이던 올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에델만 공작이 사별한 부인을 소생시키려 하는 게 아닐까라고 말이죠.”
“…소생?”
“예. 이런 질문을 드리기 외람되지만… 정말 흑마법사들은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겁니까?”
올밀의 질문에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를 흘렸다.
“흑마법사들이 신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럼… 불가능하다는 말씀이십니까?”
“당연히 불가능하지. 인간은 결코 죽은 자를 되살릴 수 없어. 뭐, 에델만 공작이 부인의 유골로 스켈레톤을 만들려고 했다면 또 모를까.”
나의 농담에 올밀은 헉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그건 흑마법사식 농담입니까?”
‘…너무 패륜적인 농담이었나?’
“그렇다고도 볼 수 있지. 여하튼 에델만 공작이 부인을 소생시키려고 흑마법사와 손을 잡고 페른 왕국을 전복하려 한다, 이렇게 볼 수도 있긴 하겠네.”
“하지만 그렇다고 한다면 오히려 에델만 공작은 연합군과 싸워야 하는 게 맞는 것 아닙니까?”
“왜?”
나의 물음에 올밀이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야 연합군은 레바논 왕국의 명령하에 결집한 것 아닙니까? 그럼 누구보다 레바논을 혐오하는 흑마법사들은 당연히 연합군을 쳐부수길 원할 텐데…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군요.”
“자넨 너무 얕은 시선으로 흑마법사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데.”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나는 덤덤히 말을 이어 갔다.
“신관이라고 모두 같은 신관인가? 저마다 믿는 신들이 다르고, 또 그 안에서도 믿는 신을 저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는 신관도 생기지. 내 말이 틀리나?”
“아, 아닙니다.”
나는 것보라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흑마법사라고 다를 것 없어. 나와 놈들은 그저 같은 직업을 공유하고 있을 뿐이야. 서로 원하는 게 다르고 이루고자 하는 게 다르면, 각자의 목적을 따라 움직이는 게 인간 아닌가?”
“그렇단 건… 흑남께선 공작의 이면에 있을 흑마법사들과 흑탑이 연관이 없다는 말씀을 하고 싶으셨던 거군요.”
“그래. 정확히 이해했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 갔다.
“그 흑마법사들도 뭔가 목적이 있으니 페른의 멸망을 바라는 거겠지. 에델만 공작은 부인의 소생이라는 끈을 놓지 못해 놈들에게 놀아나고 있는 거고.”
나의 대답에 올밀이 무언가 떠올린 게 있는지 눈을 부릅뜬다.
“그럼 당장 공작령에 병사를 보내야겠습니다!”
“아직 그럴 필요는 없어. 지금 말한 건 어디까지나 전부 가정일 뿐이야. 병사를 파병하는 것보다도 일단 에델만 공작을 만나는 게 우선이 돼야지. 아직 그도 왕성 안에 있을 것 아냐?”
“예. 그럼 공작에게 연락을 취해 보도록 하겠…….”
내가 올밀과 함께 방에서 나가 거실로 가던 그때.
쇄애애애애애애액-
돌연 무언가가 유리창을 깨부수고 들어와 우리를 향해 쏘아져 왔다.
탁-
그에 나는 검은 기운이 피어오르는 손을 들어 날아오는 물체를 낚아챘다.
‘이건…….’
날아온 물체는 다름 아닌 화살이었는데.
화살 끝에는 양피지로 보이는 물체가 묶여 있었다.
‘누군지 몰라도 꽤나 고전적인 방식을 썼네.’
나는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지그시 응시했다.
오밤중이라 범인을 명확히 파악하긴 어려웠으나.
‘둘… 아니, 셋인가.’
인간의 육신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던 내 눈은 범인의 숫자를 정확히 파악해 냈다.
‘쫓기에는… 좀 늦은 것 같네.’
범인들은 순식간에 어둠과 동화되어 사라졌다.
‘애당초 이 화살을 건네는 게 목적이었던 건가.’
“화, 화살이……. 어떤 놈이 감히…….”
갑자기 날아온 화살에 올밀이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나는 묶여 있던 양피지를 풀고 내용을 살폈다.
‘음… 이건…….’
“뭐, 뭐라고 적혀 있습니까?”
잔뜩 긴장하여 질문하는 올밀을 보며 나는 덤덤히 입을 열었다.
“나를 초대한다고 적혀 있네.”
“흑남님을 말입니까? 아니… 어떤 놈이 이딴 방식으로 초대를 한단 말입니까?!”
“에델만 공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