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카데미의 노예가 살아남는 법-136화 (136/200)

◈ 136화

나의 나지막한 외침이 집을 울리자.

군중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저들끼리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지금 저게 무슨 소리야? 아까는 주신 랄프가 뭐 어쩌고 하지 않았어?”

“그럼 지금 자기가 신의 아들이라도 된다는 거야, 뭐야?”

“하지만 당장 숨이 넘어갈 것 같던 아린을 살려 냈잖아? 정말로 신의 아들인 게 아냐?”

군중의 수군거림이 이어지던 그때.

죽은 듯 잠들어 있던 여아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아빠?”

“오오오… 세상에, 신이시여……. 아린, 몸은, 몸은 좀 어떤 것 같니?”

남자가 먹먹한 목소리로 질문하자.

여아는 이리저리 팔을 흔들어 보이더니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아까까지는 뭔가 몸이 엄청 무거웠었는데 지금은 뭔가 날아갈 것처럼 가벼워!”

“오오오… 세상에 이런 기적이…….”

딸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던 탓이었을까.

쿵-

남자는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한 채 바닥에 힘껏 머리를 처박았다.

“감사합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주신 랄프 님께서 저희 가정에 은총을 내려 주신 덕분에 제 딸이 잃었던 생기를 되찾을 수 있게 됐습니다.”

“지금의 믿음을 잃지 마라. 그리하면 랄프께서 너희 가정에 복에 복을 더하여 주실 거다.”

내 말에 큰 감격을 한 것인지.

남자는 한참이고 말문을 잇지 못하다가 떨리는 입술을 뗐다.

“제가 감히 신의 아들 되시는 분의 존함을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내가 주신 랄프의 아들이라는 걸 믿느냐?”

“믿습니다!”

남자가 벌떡 일어나 소리치자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직 정해 둔 이름이 없는데. 흠… 그래도 신의 아들이라고 뻥을 쳤는데 비슷한 이름이긴 해야 될 거고…….’

“롤프다.”

“오오… 롤프 님……. 롤프 님 만세! 랄프 님 만세!”

남자가 두 이름을 우렁차게 복창하자.

만세! 만세!

남자를 뒤따라온 구경꾼들 또한 오늘 일어난 기적을 찬양하며 두 손을 번쩍 쳐들었다.

이윽고 탄성과 환희가 잦아들 무렵.

“저… 롤프 님…….”

남자가 내게 조심스레 질문을 해 온다.

“제 딸에게 베푸신 기적은 그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는 것이지만… 저는 롤프 님께 드릴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잠시 머뭇거리던 남자가 계속 말을 이어 간다.

“롤프 님께서 허락하신다면 롤프 님의 뒤를 따르며 주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데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호오… 진심으로 하는 소린가? 아니면 그저 입에 발린 말을 하는 걸까?’

나는 불현듯 남자의 믿음을 시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령 그 길이 가시밭길이라고 해도 나를 쫓겠느냐?”

“그 길이 평탄하지 않은 길이라도, 깊은 늪지대라고 해도 롤프 님을 쫓겠습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는 남자를 보며.

나는 덤덤히 입을 열었다.

“옐리치, 일어나라. 일어나 네 딸과 함께 나를 따라라.”

나의 대답에 남자의 얼굴에 감동의 빛이 어리어 갔다.

“예!”

남자가 힘차게 답하며 허리를 조아리던 중.

“괜찮은 겁니까? 옐리치는 배운 게 없는 미천한 사람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그를 쓰시겠다는 겁니까?”

군중 중 한 명이 내게 질문을 해 왔다.

“나의 아버지께선 사람의 내면을 보시지 출신 성분을 보시지 않는다.”

“그, 그럼 그 누구라도 당신을 쫓을 수 있다는 겁니까?”

“네가 가진 모든 걸 나누어 주고, 그 뒤에 나를 따라라.”

“그, 그건…….”

군중이 머뭇거리자 나는 나지막이 한마디를 던졌다.

“많은 것을 가진 자일수록 아버지에게서 멀어지는 법이다.”

* * *

몇 시간 뒤.

나는 빈민가를 돌며 병자들을 치유하고 경전과 함께 복음까지 전파하고서.

나는 부녀와 함께 마차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돌아오셨… 허억…….”

나를 반기려던 올밀이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치며 소리친다.

“아, 아니… 도대체 뒤에 있는 군중은 뭡니까?”

올밀이 내 뒤를 쫓아온 군중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나는 무심히 대답했다.

“별일 아니다. 그보다 이만 돌아가도록 하지.”

“근데 옆의 그 사람들은…….”

올밀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부녀를 보며 물었다.

“저들도 나와 함께 간다. 문제될 게 있나?”

“문제될 건 없습니다만… 알겠습니다.”

몇십 분 뒤.

우리는 마차를 타고 다시금 왕성으로 복귀했고.

나는 부녀와 함께 별관으로 돌아갔다.

“우와아… 우와아아…….”

별관을 둘러보며 감탄사를 연발하는 아린을 보며 나는 나지막이 물었다.

“그리도 놀랍더냐?”

“네! 전부 처음 보는 것들뿐이에요!”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라 옐리치도 지금의 상황이 낯설었는지.

어색해하며 별관을 구경하기 바빴다.

‘일단 좀 씻겨야겠어.’

나는 부녀를 보며 미소 짓다가 시녀를 호출했다.

“저들을 씻기고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가 입혀.”

“네. 저를 따라오시겠어요?”

시녀가 부녀를 데리고 사라지자 나는 허공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기왕 두 사람을 거둔 김에 둘 다 나의 이름을 전파할 사도로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저 둘에게 뭘 가르쳐야 하나……. 일단 사상 교육부터 해야 되나?’

나는 곧 고개를 저었다.

‘사상 교육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랄프의 사도라면 어디 가서 뚜들겨 맞는 일은 없어야지. 사상 교육과 훈련을 병행하면 될 것 같긴 한데, 문제는 재능이란 말이지.’

두 개의 심장을 갖고 있어 마법사로서 대성할 가능성이 높은 아린과 달리.

옐리치에게는 이렇다 할 재능이 보이지 않았다.

‘음…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두 사람을 어떤 식으로 다뤄야 할지 깊은 고민에 잠겨 있던 그때.

화아아아악-

갑자기 나의 창조와 소멸의 힘이 강화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건…….’

갑작스러운 상황에 내가 가만히 나의 몸을 내려다보던 중.

[랄프 님, 오늘 하루도 어떻게 무사히 보냈습니다만, 내일은 부디 일용할 양식을 구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랄프 님, 당신의 사도가 저의 다리를 고쳐 주었습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말도 안 되는 기적을 봤습니다. 저희 가정에도 그런 기적이 임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다양한 사람들의 기도 소리가 나의 머릿속을 울려왔다.

‘호오… 확실히 이번 포교 활동으로 신도가 제법 늘어난 모양이네.’

하나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더 포교 활동을 해서 신도들을 늘리고 힘을 키워야 돼. 그래야 그 빌어먹을 신들을 작살내지.’

내가 레바논과 베논을 떠올리며 전의를 다지던 사이.

아린과 옐리치가 시녀의 손에 이끌려 거실로 돌아왔다.

“차려입으니까 아까보다 낫네.”

한결 훤칠해진 옐리치와 아린을 보며 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저희가 감히 이러한 대접을 받아도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잠시간의 휴식기라 생각해라. 그보다…….”

나는 경전을 꺼내 들곤 부녀를 응시했다.

“두 사람 다 글을 읽을 수 있나?”

“아주 조금은 가능합니다.”

“음…….”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만. 씁… 그래, 뭔가를 얻으려면 대가가 필요한 법이니까.’

“좋다. 그럼 너희는 내일부터 글을 배워라. 오늘만큼은 내가 경전을 읽어 주마.”

“그런데 있잖아요. 롤프 님은 신의 아들이라고 하셨잖아요.”

아린이 두 눈을 크게 뜨고 질문해 오자 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랬었지.”

“근데 그런 분께서 저희를 위해 책을 읽어 주셔도 되는 건가요?”

아린이 어린아이답지 않게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자.

나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나의 아버지 랄프의 자녀들이고, 너희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 자녀에게 책을 읽어 주는 것도 못 할까. 앉거라.”

“네!”

흔쾌히 자리에 앉는 아린과 달리.

옐리치는 여전히 조심하는 태도를 보이며 자리에 앉았다.

“그럼 여기부터 시작할까.”

그에 나는 제이나가 집필한 경전을 천천히 읽어 나갔다.

* * *

다음 날, 아침.

나는 항상 기상하던 시간에 일어나 별관 뒤로 이동했다.

‘것참, 이 광경은 봐도 적응이 안 되네.’

별관 앞이 꽃으로 화창한 것과 달리.

뒤뜰에는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으니 말이다.

‘그보다… 창조와 소멸, 이 두 힘을 더 극대화해야 되는데…….’

스스스스슥-

내가 양손에 두 힘을 응집하곤 간단한 시험을 진행하려던 찰나.

“와아아아아아아아!”

언제 일어난 건지 아린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웃으며 눈밭을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이크…….’

나는 그녀를 보곤 얼른 힘을 풀곤 천천히 아린을 향해 걸어갔다.

“아, 롤프 님! 이것 좀 보세요! 밀가루처럼 생긴 게 엄청 차가워요!”

‘…밀가루? 눈을 보고 밀가루라…….’

눈을 처음 봐서 그런 걸까.

오직 아이만이 가질 수 있는 순수함에 나는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눈을 처음 본 모양이구나.”

“눈이요? 이건 차가운 밀가루가 아니었나요?”

“이건 눈이라고 하는 걷다. 추운 환경에서만 볼 수 있는… 밀가루 같은 거지.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렇게 손을 대면 녹아 버린단다.”

나의 대답에 아린이 눈을 반짝거린다.

“그럼 먹어도 되나요?!”

그녀의 말에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먹어도 되긴 하다만, 안 먹는 게 나을 것 같구나.”

“이 차가운 밀가루도 주신인 랄프 님께서 만드신 건가요?”

“차가운 밀가루뿐만이 아니란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주신께서 만드셨지.”

‘아오… 이거 쉽지 않아.’

최대한 품위를 유지한답시고 엄숙한 말투를 사용하자니.

어째 자꾸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만 같았다.

‘그건 그렇고, 아린을 보는 게 참… 묘하게 재미있네.’

내게 자식이 있다면 이렇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아린을 관찰하는 재미가 있었다.

‘흑탑으로 돌아가기 전까진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둘까.’

본래는 글 이외에도 흑마법, 성마법을 교육할까 했으나.

지금은 아린과 옐리치에게 쏟을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아무래도 전쟁이 다가오고 있으니.’

내가 하늘을 보며 혀를 차던 그때.

“흑남님! 흑남님! 왕께서 흑남님을 찾으셨습니다!”

올밀이 나를 부르며 헐레벌떡 달려왔다.

“아린, 잠시 다녀와야 할 곳이 생겨서 말이다. 옐리치가 일어나거든 시녀에게 부탁해 함께 글을 배우거라.”

“네!”

나는 힘차게 대답하는 아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곤.

올밀에게 다가가 나지막이 말했다.

“이 시간 이후로 별관을 지키는 병력을 늘려.”

“…예?”

올밀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날 바라보자.

나는 고갯짓으로 아린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 갔다.

“저 아이는 내가 제자로 삼을 아이다. 그런데 만에 하나 저 아이에게 무슨 일이 발생한다면… 페른은 전적으로 그 책임을 져야 할 거다.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했나?”

‘친연합군파가 이쪽에도 손을 쓰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내 물음에 올밀이 침을 꿀꺽 삼킨다.

“무, 물론입니다! 병력을 더 배치하겠습니다.”

“좋다. 그럼 이동하지.”

나는 올밀을 따라 알현실로 이동하여 안드레이아 3세를 대면했다.

“어서 오게. 기다리고 있었네.”

“저를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나의 대답에 안드레이아 3세가 흡족한 미소를 보인다.

“자네가 우리 페른을 위해 아주 큰 공헌을 했다고 들었네!”

“공헌이라니요?”

“백스 자작 말일세. 자네의 조언을 따라 그의 집을 수색했었지.”

‘아아… 뭔가 했더니 그거였어?’

“뭔가 발견한 게 있었습니까?”

“연합군과 주고받았던 편지들을 몇십 통 발견했네.”

“호오… 그렇습니까? 그건 참으로 다행인 일이군요. 한데 그럼 백스 자작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나의 물음에 안드레이아 3세의 눈가에 서늘한 기운이 들어섰다.

“그를 비롯하여 연관된 모든 사람들은 죽음을 면치 못할 걸세.”

‘뭐, 당연한 수순이겠지. 당연한 수순이긴 한데…….’

어째서인지 나는 뭔가 마음이 썩 편치가 않았다.

‘희한하단 말이야. 자작이 그렇게 멍청하지 않고서야 그런 흔적들을 남길 이유가 있나?’

정말 백스 자작이 연합군과 내통했다면 당연히 그런 편지들은 불태웠어야 했을 터.

나는 잠시간 고민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백스 자작의 사형은 언제 진행됩니까?”

“정확히 3일 뒤에 진행할 거라네.”

“흠… 그렇습니까? 그럼 사형이 진행되기 전에 백스 자작을 만나 봐도 되겠는지요?”

다소 불편할 수 있는 질문임에도 안드레이아 3세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게.”

* * *

몇십 분 뒤.

나는 안드레이아 3세와의 접견을 끝마치곤.

올밀을 따라 왕궁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감옥으로 이동했다.

저벅, 저벅-

잠시간 어두운 감옥의 복도를 걸어가던 중.

“저 사람입니다.”

한 감방 앞에 멈춰 선 올밀이 감방 안의 남자를 가리켜 보였다.

‘벌써 고문까지 진행한 건가?’

급속도로 일이 진행되기라도 한 건지.

남자의 몸에는 고문을 당한 흔적들로 가득했다.

“네가 백스 자작인가?”

“…….”

감방 안에서 어떠한 대답도 들려오지 않자.

나는 그를 내려다보며 무심히 물었다.

“왜 에스더성을 지킨다는 사명을 저버리고 페른을 배신하려고 한 거지?”

나의 질문이 그의 감정을 자극하기라도 한 걸까.

백스 자작은 몸을 움찔거리더니 나를 죽일 듯 노려보며 소리쳤다.

“나를 쳐 내려던 놈이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냐!”

“그럼 배신할 생각이 없었다는 건가?”

“나는 반평생을 오직 페른을 위해 살아왔다! 그런 내가 페른을 배신했다고?!”

백스 자작의 고함에서 비통함과 억울함이 절절히 묻어 나오자.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씁… 이거 진짜로 다른 놈들이 백스 자작을 담그려고 함정을 판 것 아냐?’

하지만 마인드 브레이커에 걸렸던 시녀의 입에선 백스 자작의 이름이 나오지 않았던가?

‘이거… 아무래도 확실하게 하고 가야겠어.’

나는 백스 자작에게 한 가지 제안을 던졌다.

“자작, 당신의 무죄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긴 한데. 할 텐가?”

“…뭐라고?!”

“어차피 3일 뒤 당신은 죽어. 그럴 바엔 뭐라도 해 보는 게 낫지 않겠어?”

그에 백스 자작은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내 무죄를 증명할 수만 있다면야……. 뭐든 해 봐라.”

백스 자작의 승낙이 떨어지자.

나는 쇠창살 사이로 손을 집어넣곤 그의 얼굴을 붙잡은 채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마인드 브레이커.”

“으으… 으으으으… 으으으…….”

잠시 저항하던 백스 자작의 표정이 몽롱해지자.

나는 곧장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자작, 자네는 정말 페른을 배신하려고 했나?”

“난… 난…….”

잠시 입술을 꿈틀거리던 백스 자작의 입에서 한마디가 툭 튀어나왔다.

“난 그런 적 없다.”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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