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카데미의 노예가 살아남는 법-130화 (130/200)
  • ◈ 130화

    “그래? 하지만 정보가 현실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 막말로 그런 정보를 여럿이 알고 있다면 이미 그 정보는 효용성을 다했다고 봐야 하지 않겠어?”

    나의 물음에 노인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당연히 그리 생각하실 수밖에 없지요. 하나 이제껏 브람스 영지 그 어디에서도 오리하르콘 광산이 발견됐다는 말도 없습니다. 이게 무얼 의미하는 거겠습니까? 비록 정보는 퍼져 나갔을지언정 아직 진실에 도달한 자는 없다는 걸 의미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흠…….”

    ‘확실히 노인의 말도 일리는 있어.’

    노인도 알 정도로 정보가 풀렸음에도 오리하르콘 광산이 발견됐다는 소문이 없다는 건.

    아직 누구도 광산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그럼 정보가 정말 진실이라고 가정을 했을 때, 만약 내가 오리하르콘 광산을 발견한다면…….’

    나는 막대한 양의 오리하르콘을 챙길 수 있을 터였고.

    그건 곧 나의 전투력 증강으로 이어지는 셈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도달하기엔 문제가 너무 많아.’

    일단 브람스가가 페른 왕국의 귀족 가문이라는 것도 걸림돌이었으나.

    더 큰 문제는 브람스가의 가주에게 접근하여 정보를 빼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보가 진실이라고 한다면 시간을 투자할 가치는 있어 보이는데…….’

    나는 고민에 잠겨 있다가 힐끔 노인을 보며 입을 뗐다.

    “정보의 신뢰도는 어느 정도 되지?”

    “페른 왕국을 움직이는 거물들도 이 정보를 어느 정도 신뢰하고 있는 걸 봐선, 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그래?”

    그러나 노인의 확신에도 불구하고 나는 섣불리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저번에 오리하르콘을 얻으러 무덤에 갔을 때도, 오리하르콘은 거의 못 얻었잖아.’

    물론 무덤에 간 덕에 아가멤논의 힘을 손에 넣긴 했어도.

    어쨌건 정보가 확실하지 않으니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으음… 뭔가 좀 더 확실한 정보가 있으면 좋을 텐데. 일단 브람스가에 대한 정보를 좀 모아 봐야겠어.’

    * * *

    내가 브람스 가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하고.

    어느덧 한 달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씁… 뭔가 이거다 싶은 정보가 안 들어오네.’

    한 달 반.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나름대로 인력도 동원하고 도서관에도 들러 봤었으나.

    내가 얻은 정보들은 썩 많지 않았다.

    ‘겨우 알게 된 게 브람스가의 자제들이랑 가문의 운영 상태 정도라니…….’

    정작 필요한 건 오리하르콘 광산에 대한 정보이건만.

    나는 속으로 혀를 차다가.

    ‘그래. 일단 회의에 집중하자.’

    잡생각을 버리곤 한창 회의가 진행 중인 회장으로 눈길을 돌렸다.

    “슬슬 레바논에서 반응을 보일 때도 됐건만, 어째 잠잠한 게 희한합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지부에서 별다른 소식은 없었습니까?”

    “아직까지는 조용하더군요.”

    좌중이 좀처럼 움직임이 없는 레바논 왕국을 두고 의문을 표하자.

    ‘음… 확실히 이상하긴 하네. 뭔가 반응을 보였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시간이 지났는데 왜 잠잠하지?’

    나도 속으로 동의했다.

    ‘설마 성기사들과 신관들이 그렇게 죽어 나갔는데도 가만히 있으려고 하는 건 아니겠…….’

    그러던 그때.

    쾅-

    갑자기 회장의 문이 벌컥 열리더니.

    “크, 큰일 났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한 흑마법사가 소리를 지르며 황급히 회장 안으로 뛰어 들어온다.

    “소란 떨지 말고 무슨 일인지 차분히 말해라!”

    ‘드디어 레바논이 쳐들어오는 건가?’

    나를 비롯한 장내의 모든 사람의 시선들이 흑마법사에게 쏠렸고.

    흑마법사는 그에 부응하듯 숨을 헐떡이며 소리친다.

    “레바논에서… 레바논에서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오오, 그래? 둔한 놈들. 오래도 걸렸군.”

    ‘호오… 선전포고를 할 거라고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만, 그래도 조금 의외긴 하네.’

    두 신이 3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큰 그림을 그리려 했기에.

    당연히 놈들이 나서서 전쟁을 막을 줄 알았건만.

    ‘흑마법사들이 자력으로 막을 거라고 판단을 한 건지, 아니면 그냥 방관을 하는 건지.’

    내가 속으로 생각을 이어 가던 중, 소식을 들고 온 흑마법사가 화급히 말을 이어 간다.

    “그런데 선전포고를 한 곳이 흑탑이 아닙니다!”

    “…음? 우리한테 한 게 아니라고? 그럼 어디다 했다는 말이지?”

    “페른 왕국에 선전포고를 했다고 합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나는 멍하니 흑마법사를 응시했다.

    ‘이게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뺨은 우리한테 맞았는데 화풀이는 페른 왕국에다가 하겠다, 뭐 그런 건가? 이게 말이 돼?’

    상식적으로 레바논 왕국의 행보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이유는? 뭔가 그럴듯한 명분이 있었으니 페른 왕국에 선전포고를 했겠지?”

    “지부에서 전해 온 정보에 의하면, 레바논의 신탁에서 이런 말이 있었다고 합니다. 페른 왕국과 흑탑은 깊은 관계를 유지 중이다, 따라서 페른 왕국을 멸망시키는 건 곧 흑마법사들을 멸망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다, 라고 말입니다.”

    흑마법사의 보고에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미친놈들이 설마 다른 나라에 누명 씌워서 흑탑과 레바논의 전쟁을 피하게 만들 줄이야. 허 참… 신들에게 있어 왕국 하나 정도는 버리는 패라는 건가.’

    다른 왕국에 흑탑이 벌인 일을 뒤집어씌운다?

    솔직히 이건 나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럼 지금 대륙은 난리가 났겠네.”

    나의 질문에 흑마법사가 얼른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습니다! 지금 레바논만이 아니라 각 왕국에서 병력들을 집결 중이라는 정보가 지부들에서 올라왔습니다! 거기다가 이미 페른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도미닉과 페이크 왕국, 두 왕국에선 페른을 향한 침공을 시작했다는 보고도 있었습니다!”

    흑마법사의 보고에 좌중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허 참… 도대체 저 미치광이들이 무슨 생각으로 저러는 거랍니까?”

    “우리와 싸우기 부담스러워서 일부러 페른 왕국으로 화살을 돌린 걸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에게서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져 나오는 사이.

    나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 채 허공을 응시했다.

    ‘음… 저쪽이 페른 왕국을 버리는 패로 소모를 했으니 이제 어떻게 해야 되나…….’

    나는 두 신의 계획을 초 칠 수 있는 방안들을 떠올렸다.

    ‘이대로 방관하면 페른 왕국의 멸망만으로 상황이 마무리되겠지. 그럼 우리가 페른 왕국의 전쟁에 개입해서 페른 왕국의 멸망을 막는 건 어떨까? 만약 일이 그렇게 흘러간다면 페른 왕국은 확실히 흑탑의 편이 되어 주긴 할… 가만…….’

    나는 눈을 부릅뜬 채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그렇게 왕국 하나하나를 흑탑의 색으로 물들이면 결국 대륙 멸망도 성립할 수 없는 것 아냐?’

    지금 대륙에 팽배해 있는 레바논의 색을 지워 버리고.

    그 위에 흑탑의 새로운 질서를 세운다면 흑탑의 지배하에 대륙도 평화를 얻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 그거였어. 멸망을 막는 가장 간단한 방법. 그건 지배였어.’

    모든 왕국이 한 몸이 된다면.

    더 이상 서로 싸울 일도, 신들이 원하는 멸망도 성립할 수 없을 것이었다.

    ‘지배하고 군림하여 도래할 멸망을 막는다. 괜찮은 계획 같은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바삐 머리를 굴려 나갔다.

    ‘하지만 이 가정이 성립되려면 일단 페른 왕국이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고, 우리가 연합군을 상대로 승리해야만 하는데…….’

    솔직히 두 가지 전제 조건을 모두 성립하기에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연합군을 상대하는 것도 문제긴 하지만 일단 페른 왕국이 우리에게 지원을 요청할 일이 없겠지.’

    아무리 제 몸에 불이 났다고 해도 페른 왕국이 흑탑에 도움을 요청하지는 않을 터.

    ‘끙… 가정을 다시 세워 봐야 하나.’

    내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던 그때.

    “페른 왕국의 제1공주! 카밀라 님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회장 밖에서 남자의 선명한 목소리가 회장 안까지 울려왔다.

    ‘…음? 뭐라고?’

    내가 어안이 벙벙하여 문 쪽으로 시선을 돌리기 무섭게.

    활짝 열린 회장의 문으로 일단의 무리가 안으로 걸어 들어온다.

    또각, 또각-

    화려한 드레스 차림을 한 여인이 먼저 회장 안으로 들어서자.

    단출한 차림을 한 두 남자가 그녀의 뒤를 쫓는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페른 왕국의 제1공주, 카밀라예요.”

    카밀라가 유일하게 자리에 앉아 있는 나가란 탑주를 보며 인사하자.

    “반갑네. 탑주인 나가란이라 하네.”

    나가란도 너털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맞이했다.

    “그래서, 공주께선 어떤 일로 이곳을 다 방문한 건가?”

    “…….”

    잠시 말이 없던 카밀라가 천천히 입을 뗀다.

    “저는 흑마법사들의 지원을 요청하고자 이 자리에 왔어요.”

    “으허허허, 그러니까… 지금 우리의 손을 빌리려고 왔다는 말인가?”

    “…맞아요.”

    카밀라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자.

    나가란은 재미있다는 듯 그녀를 바라봤다.

    “페른 왕국은 우리를 크게 혐오하고 있는 줄 알았건만. 아니었나?”

    ‘솔직히 혐오할 만하지.’

    흑탑이 가장 많은 노예와 실험체들을 빼 온 곳이 다름 아닌 페른 왕국이었으니 말이다.

    “맞아요. 지금도 그런 기류가 왕국 안에 팽배하죠.”

    카밀라가 순순히 인정하자 나가란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말을 이어 간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러 온 건가?”

    “대륙의 모든 왕국들이 우리나라에 칼끝을 겨누기 시작했어요. 우리가 흑마법사들과 결탁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먹이면서 말이죠.”

    애써 분노를 삭이기라도 하는 걸까.

    카밀라는 입술을 꾹 깨문 채 현실을 토로했다.

    “그런데 말이네. 지금 하는 행동을 보면 아주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네만?”

    “이건…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에요.”

    “그게 무슨 말인가?”

    나가란의 물음에 카밀라가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말한다.

    “이왕 흑마법사들과 손을 잡았다는 누명을 썼으니, 정말 흑마법사들과 손을 잡겠다는 거죠.”

    “흐으음…….”

    게슴츠레한 눈으로 카밀라를 바라보는 나가란 탑주.

    “그러니까 공주는 우리와 동맹을 맺기 위해 이 먼 곳까지 발걸음을 했다는 것이군.”

    “그래요. 전 흑탑이 페른 왕국을 도와 레바논 왕국의 간계를 막아 주길 원해요.”

    카밀라가 간곡히 요청을 이어 간다.

    “만약 흑탑이 페른 왕국을 도와준다면… 우리 페른은 결코 그 은혜를 잊지 않겠어요.”

    “흐음… 공주가 어떤 심정으로 이곳까지 온 건지는 잘 알겠네. 하지만 공주도 알다시피 이런 중대 사안은 단시간 내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네, 저도 바로 답을 원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페른을 위해서라도 빠른 답을 주셨으면 좋겠네요.”

    카밀라 공주가 인사하곤 수하들을 대동하여 회장을 나서자.

    “대충 이야기를 들었으니 다들 상황은 잘 알 거라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하겠네. 자네들의 생각은 어떤가? 우리가 페른 왕국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나?”

    나가란은 남아 있는 좌중을 보며 질문을 던졌다.

    “굳이 도와줄 필요가 있습니까?”

    오랜만에 회의에 나온 보라카 부탑주가 딱 잘라 말하자.

    나가란은 계속 말하라는 듯 고개를 까딱여 보였다.

    “지금 대륙은 페른을 몰락시키기 위해 하나가 되어 움직이고 있지요. 그런데 우리가 페른을 도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페른 왕국이 몰락한 뒤에는 연합군의 화살이 곧장 우리에게 날아올 겁니다.”

    “보라카, 자네는 우리가 페른을 도와줘도 그들의 몰락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적어도 지금의 병력으로는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직 우리에게는 더 시간이 필요합니다.”

    보라카 부탑주의 말이 끝나자.

    나가란은 다른 이들을 바라보며 손을 까닥거린다.

    “자네들의 생각은 어떻지?”

    “저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겐 페른을 도와줄 명분도, 이유도 없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페른 왕국도 우리가 점령할 왕국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런 왕국이 다른 왕국의 손에 멸망한다고 한들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대부분의 좌중이 페른 왕국을 돕는 데에 반대하는 의견 내놓았고.

    ‘솔직히 냉정하게 보면 저들의 의견이 맞긴 해.’

    나도 어느 정도는 좌중의 의견에 동의하는 바였다.

    ‘다만… 페른 왕국이 이렇게 도움을 요청해 왔을 때, 우리가 도움을 줘서 페른의 멸망을 막는다면…….’

    레바논의 색을 입고 있던 대륙을 흑탑의 색으로 물들이는.

    지배라는 주춧돌을 대륙에 올릴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이 분위기에서 페른을 돕자는 말을 꺼내기는 좀 그렇지. 일단은 좀 더 상황을 지켜보자.’

    “그럼 얼추 결정이 난 것 같으니 다시 카밀라 공주를 불러오지.”

    나가란 탑주의 명령이 떨어지고 몇 분 뒤.

    “…결단하신 건가요?”

    긴장한 티가 역력한 카밀라 공주가 나가란 탑주를 응시했다.

    “그렇네. 다만 우리의 결정을 말하기에 앞서 공주에게 한 가지를 묻지.”

    “말씀하세요.”

    “만약 우리가 페른 왕국을 도와주면 페른 왕국은 우리를 위해 뭘 해 줄 수 있지?”

    나가란의 질문에 올 게 왔다는 듯.

    두 주먹을 꽉 쥐는 카밀라 공주.

    “원하는 게 있으시다면… 무엇이든 들어드리겠어요. 개, 개처럼 짖으라고 시키신다면… 얼마든지 짖어 드릴게요.”

    ‘호오… 공주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줄이야. 확실히 절박하긴 한 가 보네.’

    왕국의 멸망이 코앞까지 다가온 탓인지.

    카밀라 공주의 간절함이 내 피부에까지 느껴지는 듯했다.

    “페른 왕국의 모든 국민을 우리의 노예로 삼는다고 해도 말인가?”

    “그게 무슨…….”

    “우리가 원하면 페른 왕국은 언제든 국민을 실험체로 바칠 수 있겠나?”

    나가란 탑주의 물음에 카밀라는 손을 파르르 떨었다.

    “왕국의 보배를 내놓으라 한다면 모두 드리겠어요. 돈을 원하신다면 왕궁의 모든 창고를 털어서라도 바칠게요. 하지만 국민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라는 소리만은 말아 주세요.”

    ‘보배라……. 그러고 보니 브람스 가문에서 정말 오리하르콘 광산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지 궁금해지네.’

    카밀라의 말에 나는 잠시 잊고 있었던 정보를 떠올렸다.

    ‘회의가 끝나거든 슬쩍 떠볼까?’

    내가 카밀라를 보며 생각하던 중.

    나가란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묻는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

    “어쨌건 결론을 말하지. 일단 페른 왕국을 돕는 건 부당하다는 의견이 나왔네.”

    “아아아…….”

    카밀라가 넋을 놓고 멍하니 탑주를 바라보자.

    나가란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이어 간다.

    “하지만 혹시 또 아나? 공주가 우리를 혹하게 만들 제안을 내놓는다면, 우리의 생각도 다시 바뀔지도 모르네.”

    “…어떤 조건을 원하시는 거죠?”

    “그건 공주가 정해야지. 여하튼 지금 우리의 입장은 그렇다네.”

    * * *

    몇십 분 뒤.

    마침내 길었던 회의가 끝이 나자.

    “이것 참… 설마 페른에서 공주를 보내올 줄은 몰랐습니다.”

    나는 레논과 함께 회장을 나서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의 손을 빌릴 생각을 한 걸 보면 어지간히 급하긴 했던 모양이지요.”

    “부탑주님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페른 왕국이 대륙을 상대로 승리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나의 질문에 레논은 단호히 고개를 젓는다.

    “대륙 전역이 아닌 몇몇 왕국만 움직였으면 모르겠지만, 보고대로 모든 왕국들이 움직였다면… 우리가 돕는다고 해도 힘들 거라 봅니다.”

    “확실히 승산이 떨어지긴 하지요.”

    내가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그때.

    “말씀들을 나누시는 중에 죄송합니다만… 혹시 잠시 시간을 내어 주실 수 있으실까요?”

    누군가가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음?’

    슬쩍 고개를 돌리니 안절부절못하는 카밀라의 모습이 나의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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