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카데미의 노예가 살아남는 법-122화 (122/200)

122.

“오리하르콘… 말입니까?”

난 놀라워하는 좌중을 보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래, 신의 광물. 난 그걸 원한다.”

“하나 왜 그걸 저희에게…….”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구하기 어려우니까.”

내가 빙긋 웃으며 답하자.

한쪽에 앉아 있던 여인이 내게 질문을 해 온다.

“혹시 얼마 전에 베논의 형상이 하늘에 생긴 것과 연관이 있는 건가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야 오리하르콘으로 만들 게 장비밖에 없는데, 그걸 저희에게 요구하신다는 건 혹시 전쟁이라도… 아, 아닙니다.”

‘흠… 제법 눈치가 빠르네. 물론 전쟁에 쓸 건 아니지만.’

“오리하르콘이 어디에 쓰이는지는 너희가 알 필요 없다.”

“…실례했습니다.”

“오리하르콘을 구할 수 있겠나? 도굴이 됐건 전쟁 중에 몰락한 성에서 빼 오건 개의치 않겠다.”

나의 질문에 남자가 조심스럽게 운을 뗀다.

“그게… 워낙에 귀하고 또 보기 힘든 광물인지라…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더욱이 얻는 데 많은 시간도 필요로 하겠지요.”

옆에서 노인이 추임새를 넣자.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뗐다.

“난 어렵다거나 불가능하다는 대답을 들으려고 너희를 모은 게 아니다. 부탑주에게 듣기론 자네들은 불가능 속에서 가능을 만들어 낸 사람들이라고 하던데. 아닌가?”

“커흠…….”

내가 그들을 넌지시 치켜세우자.

대부분은 어색해하며 헛기침을 하거나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흑남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다만 이 늙은이는 한 가지 우려가 되는 부분이 있어 선뜻 흑남님의 요구를 수락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우려되는 부분?”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결실을 보기 어려운 일들이 왕왕 있습니다. 무덤을 팠는데도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다든가 하는 일들 말이지요.”

노인은 몇 번 기침을 쿨럭이곤 슬며시 날 응시했다.

“만약 저희가 흑남님의 제안을 수락하여 최선을 다해 오리하르콘을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리하르콘을 얻지 못했을 경우, 이 늙은이는 그에 따라올 대가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아… 그러니까 오리하르콘을 구하지 못하면 내가 벌을 내릴 것 같고, 그 위험성을 감수하기 싫다?’

확실히 노인의 걱정은 일리가 있는 부분이었기에.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걱정할 필요들 없다. 설령 실패한다고 해도 너희에게 해가 가는 일은 없을 거다. 그 부분은 확실히 약속하지. 또한 오히려 확실한 성과를 낸 사람에게는 그만한 대우를 해 주겠다.”

“대우라 하심은…….”

“오리하르콘의 가격은 대강 다 알고 있겠지? 크기에 따라 제각각이긴 하지만 이만한 크기가 80만 골드 정도 하던데.”

나는 갓난아이 크기만큼 팔을 벌려 보이며 계속 말을 이어 갔다.

“만약 너희가 오리하르콘을 구해 온다면 난 그 가격의 두 배를 지불하겠다.”

“두 배라면… 160만 골드?!”

그 액수가 도저히 믿기지 않았던 것일까.

좌중은 멍하니 나를 바라봤다.

“그래. 오리하르콘의 크기나 순도는 따지지 않겠다. 일단 들고 와라. 그럼 내가 전부 구입할 테니까.”

“허어…….”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약속하지. 너희 중 가장 많은 오리하르콘을 갖고 온 자에게는 내가 개인적으로 더 보상하도록 하겠다. 생각할 시간을 조금 줄 테니 충분히 고민들을 해 보도록.”

나는 그 말을 끝으로 느긋하게 방에서 걸어 나갔다.

* * *

덜컥-

흑남이 방을 나서자.

“…….”

말없이 서로의 눈치만 보던 인원들 중 한 명이 입을 뗀다.

“다들 어쩔 겁니까?”

“어쩌긴? 시가의 두 배를 주겠다는데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아냐? 이만한 게 160만 골드라잖아?!”

여인이 두 팔을 벌리며 오두방정을 떨자.

맞은편에 있던 남자는 한심하다는 듯 그녀를 바라본다.

“그렇게 간단하게 접근할 문제가 아니라는 걸 잘 알 텐데?”

“아니, 뭐가 문젠데? 실패해도 책임질 필요 없고, 성공하기만 하면 거액의 돈을 거머쥘 수 있잖아?”

“그렇기야 하지. 하지만 오리하르콘이 누구 개 이름이야? 그 귀한 걸 어떻게 구하려고?”

남자의 물음에 여인이 테이블을 내려치며 웃음을 터뜨린다.

“진짜 어떻게 그 머리로 상인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당연히 우리가 가장 잘하는 걸 해야지! 닥치는 대로 무덤들을 도굴하고, 비밀리에 귀족들에게 접근해서 무기와 오리하르콘을 거래한다든가. 방법은 많잖아? 흑남도 그걸 감안해서 우릴 부른 걸 거고.”

“정 안되겠다 싶으면 암살자들을 대거 고용하여 귀족들에게 투입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겠지.”

옆에 있던 노인이 슬며시 거들자.

여인은 정색하며 고개를 젓는다.

“영감, 미쳤어? 돈을 벌려고 하는 짓에 돈을 박겠다고? 그놈들 고용비가 얼만 줄 알고 하는 소리야?”

“모든 일에는 위험이 존재하는 법이네. 하물며 거액을 손에 거머쥐기 위해 그깟 돈 정도도 투자하지 못하겠나?”

여인과 노인이 말다툼을 벌이던 중.

일부가 우려를 표한다.

“하지만 흑남이 오리하르콘만 받아먹고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어떡한답니까?”

“…뭐? 푸하하하하하하!”

노인은 재미있는 농담을 들었다는 듯 눈물까지 훔치며 폭소한다.

“뭐, 뭐가 그렇게 웃깁니까?!”

“자네, 지금 이 검은 대지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이 누구일 것 같나?”

“예? 그건… 당연히 나가란 탑주 아니겠습니까?”

남자의 물음에 노인이 고개를 젓는다.

“대부분은 그렇게 알고들 있지만 아니네.”

“그럼…….”

“흑남일세.”

노인의 대답에 일부는 고개를 끄덕였으나.

대부분 멍청한 표정으로 노인을 응시했다.

“진심으로 하는 말씀이십니까? 하지만 제가 알기로 그는 하인 출신인 걸로 알고 있는데…….”

“자네… 검은 대지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됐다고 해도 이렇게 소식에 깜깜해서야 쓰겠나?”

노인은 딱하다는 듯 혀를 차며 계속 말했다.

“그는 미스릴 광산의 소유주일세.”

“…예?”

“은근히 유명한 소문이었는데 정말 몰랐던 건가?”

노인의 물음에 남자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눈을 부릅떴다.

“그럼 시중에 미스릴들이 풀렸던 게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던 겁니까?”

“허 참… 자네는 기본부터 다시 다져야 될 것 같군. 상인이 그런 정보조차 몰라서야 원……. 어쨌건 그런 흑남이 돈을 떼먹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일세.”

노인이 헝겊 조각으로 안경을 닦자.

다시금 여인이 그에게 묻는다.

“그래서 영감은 어쩔 건데? 이 일, 할 거야?”

“마다할 이유가 없잖나?”

“그렇지? 그럼 나도 해야겠다. 영감, 그냥 나랑 손잡고 같이 움직일래? 수익은 정확히 반씩 나눠 갖는 걸로 하고. 어때?”

여인의 제안에 노인은 허허 웃으며 안경을 걸친다.

“내가 누군가와 뭘 나눠 먹는 걸 본 적이 있나?”

“없지. 나도 그냥 물어본 거였어.”

“여하튼 막대한 골드와 흑남과의 관계 발전을 마다할 사람은 없을 것 같은데. 그렇지들 않나?”

* * *

두어 시간 뒤.

‘음… 생각대로 일이 잘 풀려서 다행이네.’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레논의 집에서 나갔다.

‘설마 전원 다 참여를 할 줄이야.’

한두 녀석 정도는 내 제안을 거부할 줄 알았건만.

예상외로 모든 이들이 나의 제안을 수락했다.

‘이렇게 되면 이제 굳이 내가 오리하르콘을 찾으려고 시간을 투자할 필요는 없겠지.’

이제는 수많은 도굴꾼들과 상인들이 나를 대신하여.

각지를 떠돌며 오리하르콘을 수소문할 것이었으니 말이다.

‘이제 오리하르콘은 됐고, 다음은 바알을 찾아내야 하는데……. 놈을 어떻게 찾지?’

워낙 신출귀몰한 놈인지라 신들도 놈을 찾는 데 애를 먹는데.

하물며 내가 놈을 찾아낸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다고 놈이 접근해 오는 걸 기다릴 수만도 없는 노릇이고.’

만에 하나 놈이 몰래 내게 접근해 오다가.

내 힘을 눈치채기라도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일이 복잡해진다.

‘차라리 이참에 놈의 신도들을 찾아내서 싹 쓸어버릴까? 그러다 보면 놈이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는 거잖아? 씁… 그것도 좀 그런가?’

오히려 여우 굴을 쑤셨다가 여우가 굴 안에 단단히 틀어박히기라도 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골치가 아파진다.

‘거기다가 꽁꽁 숨어 있는 바알의 신도들을 싹 다 찾아내는 것도 쉽지 않을 거고. 그래도 어떻게든 놈을 찾아내서 끝장을 보긴 해야 할 텐데. 가만있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중, 난 한 가지 방안을 떠올렸다.

‘성녀를 미끼로 던져 보는 건 어떨까? 성녀가 신도가 되겠다고 찾아오면 의외로 바알이 직접 모습을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거기다가 이미 전례도 있잖아?’

심지어 전대 성녀가 타락하여 바알을 섬기기도 했었으니.

의외로 쉽게 걸려들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 계속 사람의 몸에 기생하는 놈이니까 성녀가 나타나면 얼씨구나 하고 기생을 하려 들지도 몰라. 그러면 그때…….’

놈을 처리하는 것도 괜찮을 터.

‘음… 좋아, 일단 제이나한테 말을 해 봐야겠다.’

애당초 제이나 없이는 성립될 수 없는 계획이었기에.

나는 흑카데미로 돌아와 곧바로 제이나를 찾아갔다.

‘저기 있네.’

그녀는 하인, 스켈레톤들과 함께 젖은 이불을 널고 있었다.

“제이나! 잠깐 이쪽으로 와 봐!”

“무슨 일인가요?”

그녀가 손을 털곤 내 쪽으로 다가오자.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한쪽으로 그녀를 이끌었다.

“여기서 이야기하긴 좀 그렇고, 일단 따라와.”

나는 그녀와 함께 내 집무실로 이동했다.

“이제 괜찮죠?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는 거예요?”

“제이나, 너 말이야… 혹시 바알의 신도가 될 생각은 없어?”

“…네에?!”

그녀가 크게 당황하여 날 바라보자.

‘아, 너무 결론만 말했나.’

“진짜 신도가 되라는 건 아니고, 연기를 좀 해 줬으면 해.”

나는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하나도 이해를 못 하겠어요. 자세히 좀 말해 줘요.”

“그러니까…….”

내가 그녀에게 나의 계획을 간단히 설명해 주자.

제이나는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린다.

“뭘 하려는 건진 이해했어요. 하지만 당신… 정말 바알을 상대로 이길 수 있는 건가요?”

“인간의 몸에 기생하면서 사는 놈인데, 가능하지 않을까?”

예전이었다면 모를까, 솔직히 지금은 놈과 붙어 볼 만하다는 게 나의 입장이었으나.

제이나는 이 계획이 썩 미덥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상대는 신이에요. 반면 당신은 신에 가까워졌지만 인간이기도 하고요. 이 차이는 결코 무시하지 못할걸요? 그렇지 않나요?”

“음…….”

그녀의 물음에 나는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은 있다만…….’

자신이 있는 것과 장담하는 건 별개의 문제였으니 말이다.

‘확실히 경험이 없으니 장담은 못 하겠네. 씁… 제이나의 말도 일리가 있어. 내가 너무 섣불리 계획을 세웠나?’

아무래도 계획의 수정이 불가피해 보였기에 내 발언을 철회하고자 입을 떼려던 때.

똑똑-

누군가가 나의 집무실 문을 두드려 왔다.

‘누구지? 선생인가?’

나는 대수롭지 않게 문을 젖혔다.

“으으으… 으으… 흐, 흑남님… 흑남… 님… 저를 좀 구해 주십쇼. 저를 좀… 제발…….”

그러자 어딘가 안절부절못하는 남자가 나를 보더니.

황급히 나의 손을 붙잡으며 애원을 하는 것 아닌가?

‘뭐야, 이놈은? 옷차림새를 봐선 흑마법사 같긴 한데…….’

흑카데미 내에서 처음 보는 얼굴이었던 탓일까.

나는 왠지 모를 불길함에 그의 손을 털어 내며 말했다.

“일단 진정하고 무슨 일인지를 말해.”

“그게… 그게…….”

남자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심장이 있는 쪽을 가리켜 보이던 그때.

“그만하면 됐다. 네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으니 이제 편해져도 좋다.”

남자의 심장 부근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으으… 으으… 으아아아아아!”

펑-

느닷없이 남자의 얼굴이 부풀어 올랐다가 팽창한 풍선처럼 터져 나갔다.

‘씁…….’

내가 황급히 로브를 펼쳐 육편을 막던 중.

“오랜만이군. 그렇잖나?”

건너편에서 꽤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얼굴을 가리고 있던 로브를 얼른 내렸다.

‘으음…….’

분명 흑마법사의 얼굴은 사방으로 터져 나갔건만.

본래의 얼굴은 오간 데 없고 어딘가 여유가 있어 보이는 남자의 얼굴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설마 저놈이 이곳에 직접 찾아올 줄이야…….’

“바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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