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내가 잘못 본 건가?’
나는 지팡이를 잡은 채 유령의 주변을 기웃거렸으나.
유령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희한하네. 분명 눈이 움직였던 것 같은데…….’
“뭐 하고 있어요? 안 갈 건가요?”
그 와중 멀리서 제이나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일단 발길을 돌리기로 했다.
‘일단 조금 쉬고 이따가 다시 찾아와 봐야겠어.’
몇 시간 뒤.
‘다 잠들었나.’
난 무덤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있는 골버린과 바닥에 누워 자고 있는 제이나를 내려다보다가.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유령이 있던 곳을 다시 찾았다.
[…….]
여전히 여인의 모습을 한 유령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어디 보자. 아까 눈이 움직였던 게 단순히 내가 잘못 본 건지 확인을 해 보자고.’
“흐으읍!”
나는 다시금 문 앞으로 다가가 서클들을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이상하네. 이쯤이면 뭔가 반응이 있어야 할 텐데.’
몇 분이고 문에 회색의 힘을 밀어 넣고 있건만.
정작 유령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질 않는다.
‘내 착각이었나?’
나는 이 짓을 더 해 봐야 의미가 없겠단 생각에 문에서 손을 떼려고 했다.
바로 그때.
스스스슥-
갑자기 문에 새겨진 기이한 각인들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하는 것 아닌가?
‘이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문이 내 힘에 반응을 한다고?’
난 그저 유령이 정말 내 힘에 반응을 했는지 확인을 하려고 한 것뿐이건만.
‘씁… 멈춰야 하나?’
어떤 이변이 벌어질지 모르니 지금이라도 문에서 손을 떼는 것이 맞다.
하지만…….
‘왜 이 문이 내 힘에 반응을 하는 건지 궁금한데. 좀 더 힘을 불어넣으면 뭔가 변화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아무도 열지 못했다던 문이 열린다든가…….’
생각의 저울이 호기심 쪽으로 기울어지자.
‘좋아. 기왕 시작한 거, 끝을 보자!’
나는 모든 힘을 끌어모아 문에 힘을 쏟아 넣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끝이고 나발이고 그냥 그만할까. 무의미한 짓 같기도 한데.’
내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기약 없는 짓을 이어 가던 그때.
그그그긍-
철문에서 기괴한 음성이 울리며 문 사이에 서서히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오오오! 열리고 있어! 쓰읍… 조금만 더…….’
그그그그, 쿠우웅-
조금씩 벌어지던 철문이 마침내 좌우로 활짝 벌어지자.
‘됐다, 됐어! 열렸다!’
나는 문에서 흘러나오는 빛에 눈을 찌푸리면서도 미소를 지었다.
‘이제껏 아무도 이 문을 못 열었다는 건… 이 안에 오리하르콘이 가득히 있을 확률이 높다는 거지.’
물론 문 너머에 어떤 환경이 도사리고 있을지는 미지수였으나.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어떻게든 오리하르콘을 챙겨 가고 싶었다.
‘좋아. 다른 놈들이 오기 전에 얼른…….’
내가 문안으로 발을 들이밀려던 때.
[드디어… 때가 도래한 모양이군요…….]
여인의 떨리는 목소리가 내 등 뒤에서 들려왔다.
슬쩍 고개를 돌리자.
‘씁… 아깐 잘못 본 게 아니었네.’
창백해 보이는 여인이 허공에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설마 공격하려고 하는 건가? 언데드에겐 성마법이 잘 먹히니까 유령한테도 잘 먹히겠지.’
내가 지팡이를 들고 술식을 읊으려던 중.
유령이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한다.
[당신을 그분께서 잠드신 성지로 안내해 드릴게요.]
‘…성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제 뒤를 따라오세요.]
유령 여인이 문 사이로 들어가자 난 고민에 잠겼다.
‘이걸 들어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그러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래. 까짓것 오리하르콘을 잔뜩 얻을 수 있다면 뭐가 나오건 간에 다 상대해 주마.’
내가 지팡이를 다잡곤 유령을 따라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감과 동시에.
쿠우우웅-
등 뒤로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울려온다.
* * *
‘끙…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 문안으로 들어온 것 같긴 한데…….’
난 바닥을 딛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주변을 살폈다.
‘이곳은 대체 뭐 하는 곳이야?’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무덤들이 가득할 것이라 생각했건만.
찌르륵-
어째선지 잔디밭 너머로 작은 냇물이 굽이지며 물결쳤고.
들짐승들이 작은 눈망울로 날 응시하고 있었다.
‘설마 문이 보통 문이 아니었던 건가? 혹시 포털이었나?’
그렇다면 눈앞의 이질적인 환경도 얼추 설명이 된다.
‘그래, 포털이 아니고서야 설명이 안…….’
[일어나셨군요. 유구한 세월 동안 당신과 같은 사람이 오기만을 얼마나 기다렸던지…….]
“…….”
갑자기 창백한 여인이 내 코앞까지 얼굴을 디밀자.
‘아씨… 깜짝 놀랐네. 이 아줌마도 포털을 타고 넘어온 건가?’
나는 애써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야만 했다.
[얼른 움직일까요? 낭비하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예?”
동상처럼 가만히 있던 유령이 왜 난데없이 날 독촉하는 걸까.
‘어이가 없네.’
나는 픽 웃으며 입을 뗐다.
“적어도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설명 정도는 해 줘야죠. 그 문은 포털이었던 겁니까?”
[…포털이요? 당신이야말로 무슨 말을 하는 건가요? 다 알고 온 게 아니었나요?]
“아니… 그걸 그쪽이 물으면 어쩐답니까?”
내 말에 유령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온다.
[하아…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이곳에 온 모양이네요. 이곳은 아가멤논 님의 성역이 있었던 곳이죠. 지금은… 그 흔적만이 남았을 뿐이지만요.]
“아가멤논이요? 그건 또 누굽니까?”
[…아가멤논 님을 모른다고요?]
여인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제가 아는 신이라곤 베논과 레바논 그리고 바알과 기타 잡신들 정도입니다만.”
[방금… 뭐라고 하셨죠?]
내 발언이 그녀의 심기를 거스른 것일까.
유령의 표정이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일그러진다.
‘뭐야. 왜 저렇게 화가 났어?’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설명을 해 주셔야 제가 이해를 할 것 아닙니까?”
[…그렇지요. 제가 선택받은 자를 앞에 놔두고 잠시 실례를 저질렀네요.]
다시금 이성을 되찾은 유령이 한탄하듯 말한다.
[아가멤논 님은 이 세계를 만드신 태초의 신이세요. 이 세상 모든 것들이 그분의 손끝에서부터 탄생했죠.]
‘태초의 신이라……. 그럼 레바논이나 베논보다 더 상급 신이라고 봐야 하는 건가?’
[또한 아가멤논께선…….]
여인이 아가멤논의 업적을 찬미하는 데 몇십 분을 사용할 때쯤.
[하지만… 그놈들이! 아가멤논께서 친히 거두어들이셨던 그놈들이 아가멤논 님을 배신했죠!]
유령이 두 주먹을 부르르 떨며 맑은 하늘을 노려본다.
“…설마 레바논과 베논을 말하시는 겁니까?”
[그렇죠! 심지어 그놈들만이 아니에요! 그 두 연놈을 필두로 모든 신들이 아가멤논 님을 배신했으니까요.]
“흠… 그래요?”
‘모든 신들이 등을 돌릴 정도면 아가멤논의 성격에 문제가 있었던 것 아냐?’
하나 내가 직접 본 것이 아니었기에 난 계속 유령의 말을 경청했다.
[아가멤논께선 놈들과 일 년이 넘는 치열한 공방을 벌이셨어요. 하지만 신들에게 자신의 힘을 나누어 주신 탓에 결국… 패배하셨죠. 그리고…….]
잠시 입술을 떨던 창백한 여인이 힘겹게 말 이어 간다.
[아가멤논 님의 힘을 두 신이 나누어 가져갔죠.]
“…예? 그럼 신성력과 흑마력은 원래 하나였다는 겁니까?”
[그건 저도 잘 모르지만 당신이 문을 열 때 사용한 힘이 바로 아가멤논께서 쓰시던 힘인 건 확실해요.]
창백한 여인의 말에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한 가지 사안을 언급했다.
“납득이 안 되네요. 저한테 힘을 준 건 레바논과 베논이었는데……. 그럼 그들은 이런 상황이 생길 줄 몰랐다는 겁니까?”
내 말에 여인이 비웃듯 말한다.
[당연히 모를 수밖에요. 신의 섭리를 거스르고 얻은 지식이 얼마나 두터울까요.]
“음… 그건 그렇다고 치죠. 그럼 오리하르콘은 뭡니까? 제 힘에 반응을 보이던데 그것도 뭔가 있는 겁니까?”
[그건…….]
머뭇거리던 여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아가멤논 님이 돌아가실 때 흩어진 일부 기운들이 외형을 갖게 됐죠. 그게 오리하르콘이에요.]
‘신의 광물이라더니 진짜로 신의 광물이었어?’
내가 속으로 혀를 내두르던 중.
여인이 전방을 가리키며 날 재촉한다.
[이만하면 갖고 있던 궁금증들은 대부분 풀렸을 거라 생각해요. 이만 이동하죠.]
“어디로 가려는 겁니까?”
[아가멤논 님의 뜻을 따르러요.]
그 말을 끝으로 창백한 여인이 앞장서서 잔디밭 위를 날아가자.
‘후우… 그래. 헛소리를 충분히 들어 준 보상으로 저 여자가 날 오리하르콘 밭으로 안내하려는 걸 수도 있잖아?’
나는 천천히 그의 뒤를 쫓았다.
[이곳이에요.]
유령이 멈춘 곳은 빈 공터였는데.
과거에는 건축물이 있었던 건지 돌들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다.
“뭐가 이곳이라는 겁니까?”
[아가멤논 님께서 남겨 놓으신 안배가 당신의 불안정한 힘을 갈무리하고 강화할 거예요.]
“제 힘이 불안정하다고요?”
내 물음에 여인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까 당신이 문에 힘을 불어넣을 때 전 당신의 불완전함을 느낄 수 있었어요. 저보단 당신이 그 사실을 더 잘 알고 있을 테고요.]
“…….”
내가 곧바로 답하지 못하자.
여인이 눈짓으로 땅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 간다.
[이 밑에는 아가멤논 님께서 남기신 유산이 자리하고 있어요. 우리는 그걸 이용할…….]
“잠깐만요. 그런데 이대로 괜찮은 겁니까?”
[뭐가요?]
여인의 반문에 나는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켜 보였다.
“두 신이 이곳을 주시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는 것 아닙니까?”
[아아, 그거라면 걱정할 필요 없어요. 아무리 신의 시선이 세상 모든 곳을 아우른다고 하더라도 이곳에는 미치지 못할 테니까요.]
‘흠… 이곳엔 신들의 이목이 닿지 않는단 건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거지?’
[궁금하신 모양이네요.]
“궁금할 수밖에요.”
[이유는 간단해요. 아가멤논께서 남기신 안배의 힘 덕이죠.]
‘호오… 정말 안배에 그런 힘이 있다면야… 두 신이 이곳을 건들지 않은 것도 조금은 납득이 가네. 만약 두 신이 아가멤논의 힘이 남겨진 곳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진작 없애려 들었을 테니까.’
“이제 이해했습니다. 그럼 이제 이곳을 팔까요?”
[그러실 필요는 없어요. 다만 당신이 갖고 있는 힘을, 아가멤논 님의 의지를 지면에 흘려 넣으세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의문들이 내 머릿속에 자리했으나.
난 일단 유령의 말을 따라 땅바닥에 손을 대고 힘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정말 이걸로 되는 건지 모르겠네.’
스스스슥-
‘이건…….’
하지만 여인의 말대로 작고 둥근 물체가 땅속에서 올라와 내 눈 언저리에서 둥실거리자.
나는 유령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게 아가멤논의 의지라는 거죠?”
내가 언뜻 콩처럼 생긴 둥근 물체를 가리키자.
창백한 여인이 세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요! 이제 저걸 취하세요!]
“흠…….”
하나 여인의 재촉에도 난 둥근 물체를 보며 고민하다가 입을 뗐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가멤논과 같은 힘을 가졌다고 해서 제가 두 신을 안 따른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지금… 무슨 말을 하시는 거죠?]
뭔가 불길함을 느낀 건지 창백한 여인이 불안한 눈으로 날 응시한다.
“제가 두 신의 명령을 받고 이걸 없애러 온 건 아닐지 의심해 본 적은 없습니까?”
[이, 이봐요…….]
내가 옷소매를 찢어 둥근 물체를 감싸자.
유령의 표정이 점차 딱딱하게 굳어 갔다.
“이건 베논께 바칠 겁니다. 이걸 보시거든 진심으로 기뻐하시겠죠.”
[그게 무슨……! 이봐요! 미쳤어요?! 아가멤논 님의 의지를 이렇게 저버릴 셈인가요?!]
“제가 왜 이미 소멸한 신의 의지를 따라야 합니까? 대세를 따르는 게 맞지요. 그렇잖습니까?”
내가 빙긋 웃으며 둥근 물체를 주머니 속에 넣으려 하자.
창백한 여인이 괴성을 지르며 나한테 달려든다.
스으윽-
그러나 그녀의 간절한 손길은 내 몸을 통과할 뿐이었다.
“유령이 뭘 할 수 있을까요.”
[이 어리석은 놈! 이 멍청한 놈! 그건 단순히 아가멤논 님의 의지가 아니란 말이다! 네 불완전한 힘을 온전케 해 줄 약이나 다름이 없었는데! 그걸, 그걸 베논에게 바치겠다고?!]
창백한 여인의 눈이 핏빛으로 변하던 찰나.
스윽-
나는 다시 주머니에서 둥근 물체를 꺼내고 천을 걷어 냈다.
[…….]
여인이 멍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자.
나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미안하게 됐습니다. 최소한의 확인 정도는 해 보고 싶었거든요.”
[하…….]
“여하튼 저로서도 손해 볼 건 없는 것 같으니 그쪽의 말을 따라 보죠.”
물론 걱정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으나.
내 불완전한 힘을 온전케 해 준다는 말은 상당히 혹하는 것이었다.
‘좋아. 먹어 볼까.’
유령의 반응에서 확신을 얻은 난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둥근 물체를 입에 넣고 삼켰다.
‘음… 뭔가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는 것 같은데. 설마 저 여자가 나한테 헛소리를 지껄인 건 아니겠…….’
몇 분을 지나도 반응이 없어 내가 유령을 째려보던 그때.
두근-
갑자기 심장들이 크게 요동치기 시작한다.
‘효과가 제법… 크흡…….’
하나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이런 미친…….’
두 심장 중심으로 비집고 들어온 그것이 서클에 자리하고 있는 힘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는데.
꼭 몸 안에 작은 블랙홀이 생겨난 기분마저 들었다.
‘으으으…….’
그에 난 이를 악물고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 보고자 했으나.
이미 미쳐 날뛰기 시작한 기운들은 내 통제를 벗어난 상태였다.
‘크으으으…….’
터진 둑처럼 심장에서 힘들이 빠져나간다.
투두두둑-
튀어 오른 핏줄들이 당장이라도 터질 것만 같다.
‘주, 죽겠다…….’
대체 이 고통은 언제 끝이 나는 것일까.
나는 어떻게든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피가 터져 나올 정도로 입술 앙다물었다.
스스슥-
그러던 중, 갑자기 블랙홀이 활동을 멈췄다.
‘끄, 끝난 건가?’
내가 기운을 빨린 것보다도 고통이 멈춘 데에 안도하던 찰나.
쾅-
잠잠하던 블랙홀에서 대폭발이 일어났고.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이었다.
* * *
스르륵-
혼절한 남자의 몸 위로 솟구친 검은 줄과 하얀 줄이 한 몸처럼 엮이어 들어가자.
[오오오오! 아가멤논이시여…….]
창백한 여인이 감격하여 탄성을 내지른다.
하나 기쁨도 잠시.
굵고 검은 줄과 달리 가느다란 새하얀 줄이 당장이라도 끊어지려 하자 여인의 안색이 점차 어두워져 갔다.
[씨앗에 담긴 힘이 많은 것도 아니었는데… 한쪽의 힘이 편향된 게 이런 결과를 만들어 냈구나…….]
이대로 계승자를 죽게 놔둘 수는 없었으나.
유령일 뿐인 그녀가 무슨 수로 그를 돕는단 말인가?
[…….]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던 여인의 눈가에 희미한 눈물이 맺힌다.
[아가멤논이시여… 제가 지금까지 이 세상에 존재했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던 건가요.]
창백한 여인이 의미 모를 말을 중얼거리며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그것이 당신의 계획이라면 전… 마지막까지 당신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여인의 형체가 홀연히 사라짐과 동시에.
감겨 있던 청년의 눈이 번쩍 뜨였다.
스르륵-
그와 동시에 얽히어 가던 매듭이 점차 하나의 회색빛 기둥이 되어 청년의 머릿속으로 스며들어 간다.
* * *
‘으음……. 망할, 얼마나 기절해 있던 거지? 잠깐…….’
나는 먼저 내 몸 상태를 살피다가 몸을 흠칫거렸다.
‘심장이 사라졌어?’
어째선지 인공 심장은 사라져 있었고 두 심장에 뚜렷이 자리하고 있던 신성력과 흑마력도 완전히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스스슥-
다만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양의 애매모한 마력이 내 심장에 뚜렷이 남아 있을 뿐.
‘두 힘이 완전히 합쳐진 건가…….’
나는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유령을 찾았으나.
어째선지 여인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이 아줌마는 어디로 사라진 거야?’
내가 창백한 여인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때.
[아라크네, 그게 제 이름이…….]
어딘가 만족스러운 듯한 여인의 음성이 신기루처럼 들려왔다가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