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카데미의 노예가 살아남는 법-114화 (114/200)

114.

“고대 용사들의 무덤? 그게 뭔데?”

“과거에 크게 이름을 알렸던 용사들의 시체를 안치해 놓은 곳이에요.”

“그런 곳이 있었다고? 난 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내가 의아해하자 제이나는 우쭐거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당연히 모를 수밖에요. 왕 정도의 직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모르는 정보니까요.”

“호오… 그래?”

“용사들이 사용했던 장비들 중 상당수가 오리하르콘으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러니 그걸 빼돌릴 수만 있다면 당신이 원하던 대로 오리하르콘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는 거죠.”

‘확실히 일리가 있긴 한데… 좀 의아하네. 만약 제이나의 말대로 정말 고대 용사들의 무덤이 엄청난 노다지라면 과연 다른 사람들이 가만 놔뒀을까?’

아니, 절대 그럴 일은 없다.

“근데 네 말대로라면 이미 누군가가 장비들을 빼돌렸을 가능성이 높은 것 아냐?”

“그건 걱정 마요. 각 왕국당 수색할 수 있는 범위가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왕국끼리 땅 갈라 먹기를 했다? 이건 호재네. 여전히 문제점이 없는 건 아니다만.’

“그건 다행이네. 근데 그 정도 되는 무덤이면 당연히 들어가기도 어려울 텐데?”

“맞아요. 고대 용사들의 무덤은 모든 왕국이 관리하는 비공식적 중립지대예요. 그래서 각 왕국의 병사들이 그곳을 지키고 있죠. 선택받은 자가 아니면 무덤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요. 하물며 당신이 그곳에 들어가려고 하면 맹공격을 받을걸요?”

“그렇겠지. 하지만 아무런 대책도 없이 나한테 이런 말을 꺼내진 않았을 것 아냐?”

내 물음에 제이나가 정답이라는 듯 빙긋 웃어 보인다.

“역시 이해가 빠르시네요. 맞아요.”

제이나가 품을 뒤적거리더니 무언가를 꺼내어 내게 내민다.

“이건…….”

그녀가 꺼낸 것은 붉은빛이 맴도는 늑대 조각상이었는데.

꽤나 섬세하게 만들어진 게 괜히 고상해 보이기까지 했다.

“무덤에 들어가기 위한 통행증 같은 거예요. 국가적으로 검증된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거죠. 어때요?”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갈 만하네.’

“그게 있다면야 이야기가 달라지지.”

내가 조각상에 손을 뻗자 냉큼 조각상을 회수해 버리는 제이나.

“주는 게 아니었어?”

“줄 거예요. 단, 저도 같이 간다는 조건하에요.”

“…너도 같이 가겠다고?”

내 물음에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럼 저 혼자 이곳에 남겨 둘 생각이었나요?”

“…….”

내가 곧바로 답하지 못하자.

그녀는 예상했다는 듯 작게 한숨을 내쉰다.

“힘을 잃는 건 상관이 없어요. 항상 머릿속에 그려 왔던 거고, 언제고 그게 현실이 되길 원했으니까요. 하지만… 제 몸이 평범해지기 전까지는 이 시간을 누리고 싶어요. 그러니 당신이 날 데리고 가겠다고 한다면 이걸 주겠어요.”

“음…….”

제이나의 간곡한 부탁에 난 생각에 잠겼다.

‘솔직히 그녀가 동행하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아. 아니, 오히려 좋은 편이지.’

마법사들은 근접전에 상당히 취약하다.

하지만 그녀와 골버린이 나를 호위한다면 적어도 그 부분은 신경을 덜어도 될 터.

‘하지만… 만에 하나 레바논이 그녀의 행동에 이상함을 느끼면 일이 귀찮아질 텐데.’

물론 그 부분은 바알의 신도가 갖고 있던 나무패를 이용하면 해결은 할 수 있다.

‘그래도 장시간 레바논의 시야에 제이나가 안 보인다면 그년은 분명 의심을 품게 될 거야. 하지만 거절하면… 씁…….’

나는 장시간의 고뇌 끝에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그래. 까짓것, 데려가자.’

최대한 빨리 다녀오면 문제가 될 일도 없지 않겠는가?

“후… 좋아. 같이 가든가.”

“정말요? 정말이죠?! 딴말하기 없기예요?”

그리도 기뻤던 것일까.

제이나의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그런데 고대 용사들의 무덤은 어디에 위치하고 있지?”

“잠시만요.”

그녀가 지도를 꺼내어 대륙의 중심부를 짚어 보인다.

“이곳이에요. 정확히는 전사들의 대지라는 곳인데…….”

“아아, 여기?”

“공식적으로 알려진 곳은 아닌데 잘 아시나 봐요?”

그녀의 물음에 난 어깨를 으쓱였다.

“거긴 우리한테도 좀 익숙한 지역이거든. 정확히는 도굴꾼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지만.”

내 말에 제이나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뜬다.

“도굴꾼이요?”

“저기 들어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놈들이 많다고 해서, 도굴꾼들에겐 금지처럼 취급되는 장소지.”

나는 지도를 접곤 느긋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하튼 목적지도 알았으니 이제 남은 건 준비를 하는 것 정돈가.”

‘당분간은 결혼에 대해선 다 잊고 이 일에만 집중하자.’

* * *

한 달 뒤.

나는 거대한 벌판을 두리번거리며 제이나에게 물었다.

“이곳이야?”

“맞아요. 이곳이 바로 전사들의 대지예요.”

‘최대한 빨리 온다고 온 건데도 한 달 가까이나 걸릴 줄이야.’

마차와 여러 개의 포털을 경유하며 최대한 빨리 이동을 했건만.

역시 대륙은 검은 대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도 넓었다.

“저기 깃발들 보이죠? 저게 전부 무덤을 지키는 병사들이에요.”

“그래? 그런데 뭔가 조금 이상한데…….”

확실히 제이나의 말대로 벌판에는 각양각색의 깃발들이 있었으나.

어째선지 병사들의 숫자는 그리 많아 보이진 않았다.

‘기껏해야 몇백 정도밖에 안 돼 보이는데.’

“각 국가의 엄중한 관리를 받는다는 중립지대치곤 어째 병사가 좀 적은 것 같지 않아?”

“어… 글쎄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그녀도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점차 걸음이 빨라진다.

“일단 빨리 무덤지기들을 만나 봐야겠어요.”

“너무 걱정할 것 없네. 무슨 일이 생기거든 자네들을 보호할 테니 말일세.”

함께 따라온 골버린이 눈짓으로 검을 가리키며 말하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제이나의 뒤를 쫓았다.

‘저게 제이나가 말했던 건물인가?

나는 어느덧 가시권에 들어온 건축물을 보며 생각을 이어 갔다.

‘무덤들이 즐비하다는 것치곤 꽤 깔끔해 보이네.’

벌판의 색깔처럼 황톳빛을 띠고 있는 건축물은 언뜻 흙으로 쌓은 성을 연상케 하기도 했다.

‘근데 검문 같은 건 없는 건가?’

내가 병사들을 힐끔 살피던 중.

제이나가 검은 로브를 두른 일단의 무리와 이야기를 나누곤 내게 돌아와 말한다.

“허가를 받았으니 바로 들어가요.”

“그러지.”

나는 앞장서는 그녀를 따라 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이 냄새는… 또 묘하네.’

안으로 들어서자 쿰쿰한 약초 냄새가 내 코를 찔러 왔다.

‘시체 냄새보다야 낫다만, 생소하네. 근데… 저것들은 또 뭐야?’

수백 명은 족히 머무를 수 있는 널따란 공간 안에는.

그 수를 세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나무패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위패 같은 건가? 저놈들이 이곳의 모든 걸 관리하는 거고?’

내가 검은 로브를 두른 사람들을 예의 주시 하던 중.

제이나가 나지막이 말한다.

“저 사람들이 바로 무덤지기들이에요. 이곳을 관리하고 각 왕국에서 오는 손님들을 맞는 일을 하죠.”

내 궁금함을 눈치채기라도 한 걸까.

그녀의 차분한 설명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렇군.”

“그런데 어째… 뭔가 예전보다 숫자가 좀 많이 줄어든 것 같기도 하네요. 병사들이 줄어든 거랑 뭔가 연관이 있는 걸까요?”

제이나가 의아해하던 중.

무덤지기 한 명이 우리 쪽으로 걸어온다.

“…선조님을 뵈러 오신 겁니까?”

쇠를 긁어 내린 것 같은 저음에도 제이나는 웃는 낯을 유지한다.

“아니요. 우리는 선조들의 유산을 찾으러 왔어요.”

“다시 얼굴과 증표를 보여 주시지요.”

제이나가 로브를 벗곤 갖고 있던 조각상을 내보이자.

무덤지기의 얼굴 부근에서 낮은 탄성이 흘러나온다.

“제이나 님이셨군요. 한데 옆의 분들은…….”

“제 호위들이에요.”

“그렇군요. 그런데 이미 발굴 작업은 거의 끝이 났는데, 더 찾을 유산이 있으신 겁니까?”

“…네?”

제이나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발굴 작업이… 거의 다 끝났다고요?”

“예. 반년 전쯤, 레바논을 비롯하여 각 왕국이 대대적으로 발굴 작업에 참여하지 않았었습니까?”

“그게 무슨…….”

제이나가 크게 당혹하는 모습을 보이자.

나는 얼른 그들 사이에 끼어들며 입을 뗐다.

“아하하, 그랬었지요. 저도 당시 작업에 참여했던 터라 아주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물론 성녀님께서도 잘 알고 계십니다만 여독으로 인해 심신이 좀 지쳐 있으신 터라… 하하.”

“이해합니다.”

나는 제이나를 부축하는 척 어깨를 감싼 채 작게 속삭였다.

“발굴 작업이 다 끝났다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그게… 아마 교황이 제게 아무런 말도 없이 일을 진행했었나 봐요. 미안해요.”

‘여기까지 오는 데 얼마나 걸렸는데…….’

나는 제이나를 째려보다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기왕 온 김에 한번 들어나 가 보자. 하다못해 오리하르콘의 티끌이라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것 아냐.”

“…알았어요.”

제이나가 다시 무덤지기와 대화를 나누자.

“…그러셨습니까. 알겠습니다. 따라오시지요.”

무슨 대화를 나눈 건지 무덤지기는 순순히 우리를 한쪽으로 인도했다.

커다란 전사들의 동상 사이를 지나니 거대한 철문 하나가 나의 눈에 들어왔다.

‘호오… 저기가 무덤으로 가는 입군가?’

“필요한 건 없으십니까? 원하신다면 식량과 물도 구매하실 수 있으십니다.”

“다른 건 괜찮아요. 대신 무덤 내부 지도를 좀 주시겠어요?”

“그러지요.”

무덤지기가 순순히 양피지 한 장을 건네며 말을 이어 간다.

“그리고 두 분 다 알고 계시겠지만, 영면에 들지 못한 유령을 보더라도 놀라지 않으셔도 됩니다.”

“유령이… 있습니까?”

내 대신 골버린이 묻자 무덤지기의 로브가 위아래로 흔들린다.

“그렇긴 합니다만 시종일관 가만히 있기만 하니 위험하지 않습니다. 무덤의 끝에 가시거든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주의하지요.”

“부디 원하시는 대로 선조들의 유산을 찾을 수 있길…….”

“고마워요.”

무덤지기가 정중히 물러나자.

제이나는 문에 있는 빈 공간에 증표를 정확히 꽂아 넣는다.

그그그그긍-

증표와 문의 장치가 맞물리는 소리가 나더니.

두터운 철문이 서서히 좌우로 벌어진다.

“가요.”

우리는 횃불을 쥔 채 끝 모를 지하 계단을 내려갔다.

‘어두우니 끝을 모르겠네.’

시간 감각이 모호해질 때쯤 난 마침내 계단의 끝을 볼 수 있었다.

‘워…….’

그러나 그보다 난 눈앞에 펼쳐져 있는 광경에 혀를 내둘렀다.

‘지하라는 게 믿기지가 않네.’

분명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야 할 공간에는 별들이 가득 들어차 있어.

밝은 빛을 내며 무덤 안을 밝히고 있었다.

“저 빛나는 게 뭔지 알아?”

“저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백탑에서 만든 마도구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아, 확실한 건 아니에요. 일단 따라와요.”

나는 제이나를 따라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이 광경을 보니까 좀 실감이 나네.’

아름다운 천장과 달리 내 주변으론 파헤쳐진 무덤들이 한가득했다.

‘흠. 진짜 무덤들을 파고 싹 다 털어 간 건가?’

내가 무덤들을 둘러보던 사이.

“다 이쪽으로 오세요!”

제이나가 비교적 멀쩡해 보이는 무덤을 가리키며 우리에게 손짓한다.

“골버린, 삽을 좀 꺼내 주세요.”

“뭐 하려고?”

“뭘 하긴요? 당연히 땅을 파고 유산을 찾아야죠. 저기 저쪽을 보세요.”

제이나가 가리킨 방향에서는.

콰악, 콰악-

사람보다 조금 큰 골렘이 바삐 땅을 파고 있었다.

‘골렘? 백탑의 마법사들도 온 건가?’

“저것 보세요. 마법사들도 땅을 파고 있잖아요?”

“그렇긴 한데… 마법사나 신관이나 도굴꾼이랑 무슨 차이가 있는 건지 모르겠네.”

내가 헛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리자.

제이나가 얼굴을 붉히며 삽을 든다.

“몰래 도굴하는 거랑 허락을 받고 무덤을 파는 건 다르죠!”

“다르지. 다른데, 그냥 우스워서.”

“얼른 땅부터 파요!”

‘그래. 여기까지 왔는데 뭐라도 건져 가야지.’

나도 제이나를 따라 삽을 들었으나.

콰아아아악-

골렘이 우스워 보일 정도로 강렬한 제이나의 괴력 덕에 내가 힘을 쓸 상황조차 나오질 않았다.

“오, 이것 보세요! 그래도 우리가 아주 늦게 오진 않은 모양이에요!”

얼굴에 흙을 가득 묻힌 채 활짝 웃는 제이나.

그녀는 땅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낸다.

“이것 봐요! 검도 나오고… 이건 장신구 같은데요?”

나는 수확의 기쁨에 탄성을 내지르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녹슨 검을 집어 들어 상태를 면밀히 살폈다.

“확실히 수확이 있긴 하지만, 이건 못 써먹겠다.”

“네?”

“이건 그냥 평범한 검일 뿐이야. 대장장이도 오열할 정도로 녹슨 검이라고.”

나의 혹평에 그녀의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럼 그만 팔까요?”

“이 무덤은 그만 파고 대신 다른 무덤을 찾아봐야지. 그래도 아직 무덤은 많잖아?”

나는 제이나의 머리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 주곤.

다시금 일행과 함께 멀쩡한 무덤을 찾아 나섰다.

그렇게 우린 몇 시간이고 멀쩡한 무덤들을 찾아 돌아다니며 땅을 뒤집었다.

“후우…….”

“아주 소득이 없진 않네요.”

제이나의 말대로다.

우리는 마법사가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지팡이를 비롯하여 갖은 무기들을 발견했으니까.

‘하지만 가장 중요한 오리하르콘 장비가 안 보이네. 진짜 전부 다 가져간 건가?’

우리가 파헤친 무덤이 스무 개가 넘어갈 때쯤.

나는 피식 웃으며 제이나에게 말을 걸었다.

“위에서 음식들을 파는 이유가 있었네. 초창기에는 제법 장사가 잘됐겠어.”

“하루 이틀로 끝날 일이 아니니까요.”

“잠시 숨 좀 돌리자고.”

우리는 잠시 바닥에 앉아 멍하니 휴식을 취했다.

그러던 중 제이나가 슬며시 말을 꺼낸다.

“쉬는 김에 아까 무덤지기가 말한 유령이나 한번 보러 가 볼래요?”

“뭐, 유령을 쫓아내려고 하는 거라면 말리진 않겠다만… 굳이?”

“그래도요. 궁금하잖아요.”

‘조금 궁금하긴 하지.’

분명 성기사들도 신관들도 이곳을 방문했을 텐데 어떻게 유령이 남아 있는지 의아하긴 했다.

“좋아. 그럼 가 보자.”

우리는 무덤지기가 말했던 무덤의 끝자락으로 이동했다.

“오오… 정말 있네요?”

“그러네.”

무덤지기의 말은 사실이었다.

나는 우두커니 서서 허공을 응시하는 유령을 자세히 관찰했다.

‘흠… 칼이 없는 걸 봐선 생전에 전사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건 그렇고, 뒤의 저 문은 대체 뭐지?’

어째선지 유령의 등 뒤에는 큼지막한 문이 있었는데.

꼭 유령이 저 문을 지키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혹시 저 너머에 뭔가 있는 건가?’

내가 생각에 잠겨 있던 중.

쿵, 쿵-

“어이! 이것 봐! 이게 그 말로만 듣던 고뇌하는 유령인가 봐!”

“이야, 유령은 이렇게 생겼구나. 신기하네.”

골렘을 이끌고 온 마법사들이 유령을 보며 저들끼리 떠들썩하게 대화를 나눈다.

“근데 저 뒤의 문은 뭐야?”

“몰라. 한번 열어 볼래? 혹시 알아? 문을 두들기면 유령이 움직일지?”

“에크! 한 방 먹여 봐!”

마법사의 외침에 골렘이 힘껏 주먹을 쳐든다.

콰아아앙-

“…어어?”

“야! 팔이 작살났잖아!?”

그러나 멀쩡한 문과 달리 박살 난 골렘의 팔만 흉물스럽게 덜렁거린다.

“아씨… 네가 시켰으니까 네가 에크 몫까지 땅 파라.”

“멍청하긴. 비켜 봐! 내가 보여 줄 테니까!”

마법사의 지팡이 위로 술식이 그려지기 무섭게.

화르륵-

문 주변으로 불길이 치솟아 오른다.

이윽고 불길이 잦아들자 그을음조차 없는 문이 그들을 반긴다.

“에이씨… 왜 파이어볼도 안 통하는 거야? 안 되겠다. 내가…….”

“야, 더 시간 낭비 말고 그냥 무덤이나 파자고. 쓸데없는 짓이야, 쓸데없는 짓.”

마법사들이 투덜거리며 사라지자.

나는 문을 보며 생각했다.

‘신기하네. 마법에도 골렘의 완력에도 멀쩡한 문이라… 혹시 저 문짝이 오리하르콘은 아니겠지?’

말도 안 되는 상상이다.

하지만 무덤에서 딱히 얻은 게 없었던 탓일까.

나는 홀린듯 문 앞으로 다가갔다.

“당신도 도전해 보는 건가요?”

“아니. 그냥 구경하는 거야.”

‘만약 이게 진짜 오리하르콘이라면 내 흐리멍덩한 마력에 반응을 할 것이고, 아니라면… 돌아갈 채비나 꾸려야겠지.’

나는 손바닥을 비비며 제이나에게 말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네가 좀 도와줘.”

“무슨 일이 생기겠어요?”

“글쎄…….”

그 말을 끝으로.

스스슥-

나는 내 마력을 문에 불어넣기 시작했다.

하지만 5분 뒤.

‘음… 별 반응이 없네. 오리하르콘은 아닌가 보다.’

전에 오리하르콘에 마력을 주입했을 때와 같은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 그렇겠지. 어떤 미친놈이 오리하르콘으로 이만한 문짝을 만들 생각을 했겠어.’

그래도 조금은 기대를 한 탓일까.

괜히 입맛이 쓰다.

“유령도 다 봤겠다, 어느 정도 체력도 회복한 것 같으니까 돌아가자.”

“그래요.”

제이나와 골버린이 먼저 앞장서서 돌아가자.

나도 그 뒤를 따라 걸어가려던 그때.

홱-

‘…음?’

나는 무언가 싸한 느낌에 순간 걸음을 멈췄다.

‘…뭐지? 뭔가 피부가 오싹했는데. 도처에 무덤들이 널려 있어서 그런가? 아니면 이놈의 유령 때문인가?’

내가 이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다시금 발을 옮기려던 그때.

홱-

동상처럼 멍하니 하늘을 응시하고 있던 유령의 눈동자가 데구르르르 움직이더니.

‘…미친?’

정확히 나를 주시하고 있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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