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카데미의 노예가 살아남는 법-104화 (104/200)

104.

‘…설마 눈치챈 건가? 아냐, 그건 아닐 거야. 눈치를 챘다면 저렇게 추궁하듯 물어보진 않았을 거야.’

베논의 말에 나는 애써 뜨끔했던 마음을 잠재우곤.

도리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응시했다.

“제가요? 툭하면 저를 죽이려고 하는 놈을 제가 왜 만나겠습니까? 저한테 득이 되는 게 하나도 없는데요.”

“하긴… 쓸데없는 걸 물었군.”

다행히 베논은 이 안건에 큰 관심은 없었는지.

무심히 나를 바라보다가 슬쩍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여하튼 요즘 네 행보는 즐겁게 지켜보고 있다. 드디어 확실하게 결정을 한 것 같던데, 현명한 선택을 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크라켄 왕국 말이다. 그들을 흑탑의 동맹으로 끌어들여 레바논을 압박하려던 게 아니었나?”

‘뭐, 일단은 그렇지. 근데 그렇다고 네 편에 서겠다는 건 아닌데?’

레바논이고 베논이고 둘 다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매한가지였으나.

어쨌건 일단 레바논 왕국을 몰락시키는 게 당장 내가 원하는 그림이었으니까.

“맞습니다.”

“푸하하하하하! 좋군. 아주 좋아. 너도 레바논 그 악랄한 년의 표정을 봤으면 좋았을 텐데. 썩은 과실처럼 일그러진 게 그년과 참 잘 어울렸지.”

베논이 시원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잡는다.

“넌 올바른 선택을 했다. 고자가 되는 것보단 흑남으로 살며 부와 영예를 누리는 게 네 입장에서도 훨씬 나을 테고 말이야.”

‘내가 완전히 마음을 굳힌 줄 아는 것 같은데, 흠… 일단 적당히 공감하는 척만 해 줄까.’

“그렇긴 합니다. 좀 더 솔직해져 볼까요? 레바논은 제게 신성력을 준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해 준 게 없어요!”

물론 두 신이 맺은 내게 개입하지 않겠다는 맹약 때문에 비롯된 일이겠으나.

어쨌건 내게 신성력 말고 준 게 없는 건 엄연한 사실이잖은가?

“푸하하하하! 그년의 정곡을 찌르는구나! 그래, 그년은 말만 거창하게 했을 뿐 너를 위해 해 준 것이라곤 없지! 그리고…….”

호탕하게 웃던 베논이 순간 몸을 움찔거린다.

“난 너를 흑남으로 만들어 줬다.”

“…그렇죠?”

“그러니 난 네게 무언가를 해 줬다고 볼 수 있겠지. 안 그런가?”

‘아아.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나는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참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점에 대해선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크게 흡족해하며 말을 이어 가는 베논.

“넌 지금 이대로만 하면 된다. 네가 그 누구보다 강대한 흑마력을 얻게 되는 그날! 나는 레바논과 한 내기에서 승리하게 될 것이고, 너는 드높은 권좌에 앉아 세상을 오시하게 될 것이다!”

근엄한 마신의 선포에 평범한 흑마법사들이라면 눈물을 줄줄 흘렸겠으나.

‘개소리하고 있네. 내기가 끝나는 그날 내 목숨도 끝날 텐데, 뭐? 권좌에 앉아 세상을 오시해?’

이미 신뢰가 깨진 상황에서 그 어떠한 달콤한 말을 해 준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너의 마음은 잘 알았으니 나는 이만 가 보도록 하마.”

‘결코 너희 뜻대로 되진 않을 거다. 결코…….’

내가 균열 사이로 사라지는 베논의 뒷모습을 우두커니 노려보던 그때.

사아아아악-

“하, 하늘을 봐! 하늘을 보라고!”

“오오오!”

멈췄던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인지.

군중의 요란한 웅성거림이 나의 귓가를 울려왔다.

‘뭘 보고 저렇게들 놀라는… 아.’

나는 하늘에 자리한 베논의 문양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웅성거리는 군중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마신 베논께서 우리의 의식을 기쁘게 받으시며 크게 흡족해하셨다! 그의 이름을 찬미하라! 기뻐하라!”

나의 외침이 끝나자.

우와아아아아아아-

우레와 같은 함성이 광장을 뒤흔든다.

“베논이시여! 베논이시여!”

“으헝헝헝헝!”

군중의 환호와 울부짖음이 광장을 휩쓸고.

몇 시간 뒤.

화륵. 화르륵-

어둠이 들어선 광장에 횃불들이 피어오른다.

“흥을 돋울 수 있는 연주를 시작해라!”

초청한 악사들이 신명 나게 악기를 뜯자.

경쾌한 연주가 광장으로 퍼져 나간다.

“자자, 여러분! 오늘 이날을 위해 길렀던 칠면조의 배를 갈랐습니다. 냄새가 참 좋죠? 자, 2실버만 내고 드시고들 가십쇼!”

“자자, 우리 여주인장 엔마가 직접 개발한 특제 소스가 발린 양고기 좀 잡숴 보십쇼!”

뿐만 아니라 양팔을 걷어붙인 선술집 주인들이 광장에 판을 벌여 흥취를 더해 준다.

‘의식의 끝이 축제판이 될 줄이야. 뭐, 이건 이것대로 나쁘지 않은 것 같지만.’

내가 축제를 즐기고 있는 흑마법사들을 지그시 바라보던 중.

“자자, 뭣들 하고 있나?! 오늘 같은 날은 머릿속이 뒤집어질 때까지 마셔야 하지 않겠나? 얼른 잔들을 들게! 으허허허허!”

나가란 탑주가 이미 반쯤 취해 있는 수뇌부들에게 잔을 흔들어 보인다.

‘저 노인네… 진짜 사람인가?’

저 노인네가 비운 포도주 자루만 해도 벌써 두 자루가 넘어가건만.

어째서 저 인간은 취할 생각을 않는단 말인가?

“레논! 뭐 하고 있나?! 얼른 잔을 들지 않고! 랄프 자네도 마찬가지일세! 젊은이가 그래서야 쓰나!”

“아… 예…….”

술잔을 주고받던 수뇌부들의 얼굴이 점점 익어 가던 중.

드디어 얼굴에 붉은빛이 돌기 시작한 나가란 탑주가 흐뭇하게 좌중을 바라본다.

“올해는 흑탑에 있어 참으로 은혜로운 한 해였던 것 같네. 특히! 흑남이 흑탑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참으로 많은 게 달라졌지. 그렇지 않나?”

“으헣헣헣! 그렇지요! 당장 흑남이 만든 흑혼해 듀오만 해도 어떻습니까? 흑혼해 듀오가 생긴 후로 결혼 적령기를 놓쳤던 수많은 흑마법사들이 가정을 꾸릴 수 있지 않았습니까? 그 인기는 뭐… 여기에 앉아 계신 여러분도 다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한 흑마법사가 너스레를 떨며 흑혼해 듀오의 최근 실적들을 언급하자.

“어허! 미스릴 광산은 또 어떻고요? 흑남께서 미스릴 광산을 발견하신 덕에 흑탑의 자금이 크게 늘어났지요!”

“어디 그뿐만입니까? 이제 드워프 공방에서 미스릴로 만든 장비들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지 않았습니까? 이 모든 게 흑남께서 이루신 업적들이지요!”

다른 이들 또한 앞다투어 나의 공적을 치하하기 시작했다.

‘이 양반들이 술이 들어가서 이러나? 겸연쩍게시리…….’

“거기다가 이제는 시야를 대륙으로 돌려 크라켄 왕국과의 관계를 개선 중이지 않습니까?”

“흑남께서 레바논의 계략을 박살 내신 덕에 이제 흑점도 완전히 자리를 잡았지요.”

“농지를 개간하는 것도 빠르게 진행 중이고 말입니다. 도무지 약관의 나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을 지경이지요.”

좀처럼 나에 대한 이야기가 끝날 생각을 않자.

나는 손사래를 치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칭찬은 감사합니다만 조금 과한 게 아닌가 싶군요.”

“과하다니요?! 이제껏 흑남께서 한 일들은 그 어떤 흑마법사들이 한 일들보다 대단한 일들이었습니다!”

“그렇지요! 흑남을 위하여 잔을 듭시다!”

‘아니, 이것들아! 칭찬은 고맙긴 한데 술 좀 그만 마시면 안 되냐?! 흑마법사들이 아니라 술고래들만 모아 놨나.’

이 인간들이 칭찬 한마디 하고 대화 주제 하나가 바뀔 때마다 계속 술잔을 드니.

머리가 어지러워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

“후우…….”

내가 어지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미간을 부여잡던 중.

“그런데 흑남님은 슬슬 놓아드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레논의 말소리가 나직이 들려왔다.

“부탑주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혹시 흑남을 싫어하셨다든가……!”

“하하하, 그런 게 아니라 저희가 흑남을 너무 오래 붙잡아 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어허! 레논, 오늘은 모든 일들을 잠시 뒤로 미루고 한껏 취하는 날일세!”

나가란 탑주가 테이블을 탁 치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러니 흑남도 일 생각으로 가득한 그 머릿속을 취기로 채우게!”

술잔을 들곤 나를 보며 눈을 찡긋거린다.

‘…이 인간아! 적당히 처마셔!’

내가 기겁하여 속으로 고함을 지르던 중.

레논이 다시금 좌중을 설득하기 시작한다.

“오늘은 분명 기쁜 날이고 흑남도 오늘을 즐겨야겠지요. 그러니 흑남을 보내 주자는 겁니다.”

“레논, 자꾸 흑남을 보내려고 하는 것 같은데, 둘 사이에 문제가 있는 건가?”

나가란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응시하자.

레논은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하하하, 그런 뜻으로 드린 말씀이 아닙니다. 흑남을 제외하면 여기에 앉아 계신 분들의 연령대가 높잖습니까. 그러니 연배가 있는 사람들끼리는 계속 술잔을 기울이고, 흑남은 젊은이들과 시간을 보내게 하자는 뜻입니다.”

“호오…….”

“흑남도 노인들과 노는 것보단 동년배의 친우들과 노는 걸 더 선호하지 않겠습니까?”

레논의 말이 그럴듯하다고 여긴 걸까.

“…그것도 그렇군.”

“으허허허허! 우리가 너무 눈치 없이 흑남을 붙잡고 있었던 모양이야. 하기야 이제 슬슬 랄프도 제 짝을 찾아야 할 테니 말이네. 안 그런가?”

나가란이 흐뭇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자.

“그러잖아도 이번에 옐론드 가문에서 흑남에게 매파를 보냈다고 전해 들었는데, 그건 어떻게 됐나?”

“잘 안됐으니 소식이 없는 거겠지. 근데 옐론드는 흑혼해 듀오를 이용하면 될 걸 왜 매파를 이용한 겐가?”

“흑남은 가입이 되어 있지 않네.”

“아아, 그건 몰랐군. 그보다 흑남께선 마음에 두고 있는 여식은 없으십니까?”

세상 재미있는 게 남의 연애사라고 했던가.

또 좌중의 이목이 내게 쏠리자.

“아직 생각하고 있는 여식은 없습니다.”

나는 힘겹게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군요. 하지만 슬슬 흑남께서도 결혼을 하셔야 할 텐데 말입니다.”

“에헤이, 흑남께서 안 하고 싶어서 안 하신답니까? 눈에 차는 여식이 없으니 그런 것 아닙니까!”

“아니면 혹시 취향이 이종족이라든가…….”

“그럼… 흑남께서도 흑혼해 듀오를 이용하는 것이 좋겠군! 다크 엘프들과 단단한 결속을 맺을 수도 있을 테고 말이야.”

술 냄새 나는 대화의 장이 점점 요상해진다.

‘씁… 이 양반들이 남의 연애사에 왜 이리 관심이 많은 건지.’

그에 나는 얼른 열띤 분위기에 물을 쏟아부었다.

“제 목적을 전부 이루거든 그때 결혼을 할까 합니다.”

“목적이라 하심은… 크라켄 왕국의 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건 목적의 일부분일 뿐이지.’

내가 대답 대신 미소만 짓던 중.

스스스스슥-

떠들썩하던 광장이 갑자기 고요해진다.

‘음? 왜 또 시간이 멈춘 거지…….’

설마 베논이 다시 찾아온 걸까.

내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때.

“요즘 왜 그러는 건지 모르겠네. 갑자기 심경에 변화가 생긴 이유가 있나?”

대체 언제 온 것인지 내 맞은편에서 잔을 빙글빙글 돌리는 레바논이 내 눈에 들어왔다.

“참 희한해. 내 딴에는 꽤 많이 배려를 해 줬다고 생각했는데. 왜 갑자기 레바논에 칼을 겨누는 거지?”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습니다만 전 레바논에 칼을 겨눈 적이 없습니다.”

나의 대답에 레바논의 눈가가 위아래로 실룩거린다.

“아아, 그래? 그럼 지금 네가 크라켄 왕국에서 하고 있는 일들은 뭘까?”

‘뭐긴, 레바논을 몰락시키는 시발점이지.’

하나 속내와 달리 나는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흑탑의 재정을 늘리기 위한 행동이었을 뿐, 별다른 의도는 없었습니다.”

“…정말 그 이유뿐이라고? 아닌 것 같은데? 분명 다른 이유도 있는 것 같은데.”

‘크윽…….’

레바논의 서늘한 시선에 나는 온몸이 짓눌리는 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다.

‘미친년이긴 해도 신은 신이다, 이건가? 하지만 네가 어쩔 건데?’

나는 입술을 악물고 미소를 지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습니다. 단지 그것뿐이었습니다.”

“…그래?”

치솟았던 레바논의 눈썹이 가라앉자.

‘후우…….’

내 몸을 겁박하던 중압감도 사그라졌다.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는 거지? 그럼 그걸 증명하기 위해 레바논으로 넘어오면 되겠네. 그렇지?”

“이미 한번 방문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레바논 님께서 지금 하고 계신 행동은 엄연한 개입입니다.”

“개입이라…….”

레바논이 입가에 반달을 그린 채 계속 말한다.

“지금이야 너의 모든 행동을 방관하고 있다지만 만약 네가 나의 종들에게 칼을 겨누려고 한다면… 그땐 나도 좌시하고 있지만은 않을 거야. 이해했어?”

‘그러니까 크라켄 왕국에서 하고 있는 모든 행동을 멈춰라? 이거 완전 웃긴 년일세?’

누구 마음대로 남이 하던 장사를 접으라 마라 하는 건가?

것도 베논과의 약조를 어기면서까지 말이다.

“만약 레바논 님께서 직접 움직이신다면 베논 님과 하셨던 내기에서도 불리해지실 텐데요.”

“검은 대지를 몰살한다는 뜻이었지, 네게 개입한다는 뜻은 아니었는데. 오해를 했나 보구나.”

‘이년이 지금… 대놓고 협박을 하네? 그래, 해 보든가?’

“그럼 한번 보여 주시죠.”

“그래야지. 잘 생각… 방금 뭐라고 했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는 레바논을 보며.

나는 무심한 한마디를 내던졌다.

“검은 대지의 멸망을 보여 주셨으면 합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저도 궁금해서 말이죠.”

“…….”

우드득-

손에 들려 있던 잔을 우그러뜨린 레바논.

그녀는 일그러진 얼굴로 나를 노려본다.

“베논이 그렇게 말하라고 시켰나 본데, 넌 지금 단단히 착각을 하고 있어. 알아? 베논이 네 편인 것 같지?”

“그렇게 말씀하시는 레바논 님도 제 편은 아니시죠.”

“너를 역사상 가장 강력한 성남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했는데, 왜 내가 네 편이 아니라는 걸까? 베논은 몰라도 나는 너의…….”

레바논이 눈웃음을 지으며 나를 구슬리던 그때.

“이 쥐새끼 같은 년이! 오늘이 어떤 날인지 알고 수작질을 부리려 해!”

균열을 찢고 나온 베논이 포효하며 대검을 빼 든다.

“수작질이라니요?”

“방금 네년이 내뱉은 말들, 그 모든 말이 개입이다! 네년은 약조를 어겼다.”

“어머, 약조를 어겼다니요? 저는 흑남에게 몇 마디 조언을 건넨 것뿐인걸요?”

레바논의 궤변에 베논의 눈빛이 더욱 사나워진다.

“지금 그걸 변명이라고 하나?”

“당신도 매번 신탁을 내린다는 명목하에 그에게 개입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틀린 말은 아니죠. 아닌가요?”

“…….”

잠시 말을 잃은 베논.

하나 그는 곧 다시 레바논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어쨌건 흑남이 무슨 짓을 하건 네년은 지켜만 봐라. 개짓거리를 눈감아 주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알겠나?”

“그래요. 지금은 계속 지켜만 볼게요. 하지만 나중에 가면 어떻게 될지는 저도 모르겠네요.”

레바논의 도발적인 말투에 베논의 눈에 불이 붙는다.

“…계속 조약을 어기겠다는 뜻인가?”

“어떻게 하면 그런 식으로 이해할 수가 있죠? 누가 어기겠다고 했나요?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한 것뿐이죠. 미래는 아무도 모르잖아요?”

베논의 거친 반응에 한발 물러서는 태도를 취하는 레바논.

“쯧… 하여간 눈치는 빨라 가지… 아!”

투덜거리며 나와 베논을 노려보던 레바논이 갑자기 손뼉을 탁 친다.

“아니면 이건 어떤가요?!”

“…….”

베논의 침묵에도 레바논은 아랑곳 않고 소리친다.

“우리… 무승부로 하지 않을래요?”

“…무승부?”

“그래요!”

도대체 무슨 묘수를 떠올린 걸까.

‘무승부가 가능해?’

“…그게 무슨 개소리지?”

“우리가 했던 조약을 모두 없었던 일로 하는 거예요! 그리고…….”

베논의 으르렁거림을 가볍게 무시한 레바논이.

활짝 웃으며 나를 바라본다.

“그 화합의 증거로 흑남과 성녀를 결혼시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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