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카데미의 노예가 살아남는 법-101화 (101/200)

101.

슈바츠의 선포가 회장 안을 울리자.

“크라켄 왕국에 단죄의 불을!”

“이단에게 정화와 안식을!”

좌중도 그를 따라 소리치며 전의를 불태운다.

* * *

한편, 같은 시각.

‘후우… 이제 좀 여유로워졌네.’

나는 흑립 유치원의 원장실로 돌아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간 너무 바쁘긴 했지.’

크라켄 왕국에 흑점을 설치한 것을 비롯하여.

토지 개간 그리고 레바논의 첩자들을 제거하는 등 숨 가쁜 하루들을 보냈었다.

‘이제 식량 생산이 끝나기 전까지는 좀 여유롭게 보내 볼…….’

내가 의자에 기대어 앉아 흑카데미에서 가져온 책을 펼치려던 그때.

똑똑-

누군가가 원장실 문을 두드린다.

“들어와.”

내가 문 바깥을 향해 소리치자.

흑립 유치원의 교수 중 한 명인 안나 교수가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온다.

“저… 원장님…….”

“무슨 일이야?”

“오늘은 원생들이 실기 시험을 치르는 날인데요… 혹시 원장님께서도 시험에 참관하실 수 있을까 해서요.”

‘…실기 시험? 벌써?’

아직 어린아이들에 불과한 원생들이 벌써 흑마법을 능숙하게 다룰 정도로 성장한 걸까?

‘그래도 명색이 원장인데, 참관을 해 볼까? 얼마나 달라졌는지도 궁금하긴 하네.’

나는 불현듯 호기심이 들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좋아. 나도 참관하지.”

나는 안나 교수를 따라 곧장 한 교실 안으로 이동했다.

교실로 들어서니.

저마다 혼절한 고블린을 앞에 두고 있는 원생들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호오… 저주 시험을 보는 건가?’

“어?! 원장님이다!”

“와아아아아!”

나를 본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환호성을 내지르자.

안나 교수가 나지막이 속삭여 온다.

“역시 원장님이 참관하시니까 원생들의 눈빛이 확 달라졌네요.”

“확실히 분위기가 달라지긴 했네.”

나는 원생들의 환호와 열의에 응답하고자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오늘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원생에게는 상으로 큰 선물을 주마.”

와아아아아아아!

“흑남님의 선물? 분명 엄청난 선물이겠지?!”

“오늘 시험은 무조건 잘 볼 거야!”

눈앞의 고블린을 보물 보듯 바라보는 아이들의 함성이 교실을 울리자.

안나 교수가 단상을 내려친다.

“자자, 조용! 원장님도 지켜보고 계시니 다들 평소보다 더 분발해야 되겠지? 자, 그럼 지금부터 시험을 시작한다. 시작!”

안나의 외침이 교실을 울리자.

“하압!”

지팡이를 잡은 원생들이 고블린을 향해 흑마법을 시전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하지만 영혼 속박을 얼마나 완벽하게 구현하는지가 합격의 기준이 될 거야. 고블린의 몸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으면 합격이야!”

안나의 말에 원생들은 기를 쓰며 고블린에게 저주를 구현해 나간다.

그러던 중.

끼긱, 끼기기긱-

“어?! 교수님! 된 것 같아요! 저 성공한 것 같아요!”

한 원생이 벌떡 일어나 눈을 좌우로 굴리는 고블린을 보며 소리쳤으나.

난 고블린을 보며 무언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저거… 눈동자가 멀쩡한 것 같은데. 저주에 걸린 게 아니라 그냥 기절했다가 깨어난 것 아냐?’

내 느낌이 정확히 적중이라도 한 것일까.

키에에에에엑!

눈을 굴리던 고블린이 돌연 괴성을 지르며 원생에게 달려들자.

나는 재빨리 고블린 앞으로 달려가 놈의 목을 붙잡고 그대로 바닥에 내려 꽂았다.

쩌어어억-

“…어어?”

머리가 으깨진 고블린을 멍하니 바라보던 원생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으나.

나는 아랑곳 않고 안나 교수를 보며 입을 뗐다.

“안나 교수, 재료를 좀 더 잘 다뤄야 할 것 같은데. 아무리 흑마력 포션이 있다지만 원생이 다치는 상황은 나오지 않는 편이 좋을 거야.”

“분명 잘 기절시켜 놨었는데……. 죄송합니다…….”

“됐어. 개의치 말고 계속 진행해.”

나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시험을 치르는 원생들을 주시했다.

킥?!

이윽고 하나둘 고블린을 통제하는 데 성공한 원생들이 나오기 시작하자.

나는 가장 빨리 시험에 통과한 남학생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가장 먼저 시험에 통과한 데런은 이따가 원장실로 오도록 해. 상을 주마.”

“와아아아아아! 감사합니다, 원장님!”

데런이 기쁨에 겨워 덩실덩실 춤을 추자.

“조금만 더 잘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나도……. 원장님의 눈에 들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동급생들은 못내 부럽다는 듯 데런을 보며 아쉬움을 삭였다.

‘이곳은 이만하면 된 것 같고. 이참에 다른 교실들도 한번 둘러볼까.’

나는 아쉬워하는 원생들을 뒤로하고 악마들이 좋아하는 제물을 만드는 시험을 진행 중인 교실 등을 본 후.

가장 강력한 파멸 마법을 구사한 원생을 선정하여 원장실로 데려왔다.

“데런, 말프, 거스, 너희 세 명은 시험에서 다른 원생들보다 월등한 실력을 선보였지. 약속대로 너희에게 상을 주마.”

나는 상으로 원생들에게 적당한 상금과 더불어.

한 가지 권리를 주기로 했다.

“내일부터 너희는 흑카데미에 있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을 수 있을 거야.”

‘별것 아닌 것 같은 권리이긴 해도 원생들에겐 꽤 큰 권리지.’

애당초 흑카데미의 학생이 아니면 도서관에 출입하는 것조차 어려웠으니까.

“감사합니다, 원장님!”

“앞으로 더 열심히 공부할게요!”

원생들이 기뻐하며 내게 꾸벅 인사하자.

나는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야지. 열심히 배우고 자라서 나를 열심히 지지해 주려무나.’

내가 문을 열고 나가는 원생들의 등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던 그때.

열린 문 사이로 누군가가 안으로 걸어 들어온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달프 교수, 오랜만이군.”

“그간 크라켄 왕국에 계셨던지라 찾아뵙는 게 늦어졌습니다, 으허허허!”

“최근 일이 많긴 했지. 그래서 무슨 일이야?”

내 물음에 달프 교수는 너스레를 떨며 입을 뗀다.

“으허허허, 별건 아닙니다만 전에 제가 드렸던 강화 흑마력 포션을 좀 사용해 보셨나 궁금증이 들어서 말입니다.”

“아, 그것 말인가? 물론 사용해 봤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달프 교수가 눈을 반짝인다.

“어떠셨습니까?”

“확실히 기존에 사용하던 흑마력 포션보다 효과가 배는 좋은 것 같던데, 좋은 걸 만들었어.”

“그렇습니까? 으허허허허허! 흑남께서 그리 말씀을 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달프 교수가 껄껄 웃으며 기뻐하자.

나는 슬며시 호기심을 내비쳤다.

“그런데 어떻게 흑마력 포션을 개량할 생각을 한 거야?”

“별건 아닙니다만, 데르칸의 뿔에 있는 치유의 힘을 좀 이용해 봤습니다.”

“데르칸이라면… 악마잖아? 악마한테서 뭔가를 얻는다는 게 가능한 거였어?”

악마는 어떻게 보면 정령과 같이 영적인 존재와 같다.

한데 그러한 악마에게서 어떻게 뿔을 얻었다는 건지 난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으허허허허! 맞습니다! 원래는 굉장히 힘들뿐더러 불가능한 일이지요! 하지만 최근 연구를 한 결과, 악마와 오랜 시간 교감을 한 흑마법사가 가끔 이렇게 악마에게서 무언가를 얻는 경우가 있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어깨에 힘을 잔뜩 준 달프 교수가 말을 이어 간다.

“물론 아직 이 부분은 연구 중인지라 확실한 건 아닙니다만, 일단은 그렇습니다. 으허허허허!”

“그래? 어쨌건 연구 성과가 뚜렷하니까 나도 지원해 준 보람이 있네.”

“흑남님의 지원에는 항상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잠시 내 눈치를 살피던 달프 교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혹시 연구비를 더 지원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지금 지원하는 연구비가 결코 부족한 액수는 아닐 텐데?”

내가 게슴츠레하게 뜬 눈으로 응시하자.

“아, 물론입니다. 흑남께서 지원해 주시는 액수가 부족하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아무렴 그렇고말고요!”

달프는 화들짝 놀라 손사래를 친다.

“그러고 보니 달프 교수, 자네가 최근 흑탑 인근에 집을 장만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혹시 연구비를 착복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그건 오해입니다! 전 단언컨대 연구비로 다른 짓을 한 적이 없습니다!”

달프가 기겁하여 고개를 좌우로 흔들자.

나는 피식 미소를 흘렸다.

“달프 교수, 나는 능력을 중시하는 사람이야.”

“그 말씀은…….”

“성과만 확실하게 낸다면야 딴짓을 하더라도 적당히 눈감아 줄게. 하지만 만약 성과를 못 내면… 더 이상의 지원은 없을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나의 경고에 달프가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해했습니다.”

“좋아. 아 참, 그리고 다른 교수들한테도 뭔가 성과를 낸 게 있으면 찾아오라고 전해 줘.”

* * *

2달 뒤.

“그게 아니라니까! 안나 교수님 말씀을 잊었어? 산성 골렘의 파편을 먼저 넣고 잘 녹인 다음에 그리폰의 깃털을 넣어야 한다니까? 그래야 올바른 부패약이 만들어진다고 하셨잖아?!”

“이씨… 그렇게 잘 알면 네가 해 보든가?!”

창밖에서 원생들의 고함 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힐끔 창밖을 살폈다.

‘호오… 부패약을 만드는 중인 모양이네.’

내가 커다란 가마솥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논쟁을 벌이는 원생들을 보며 미소 짓던 중.

똑똑-

“흑남님, 안에 계십니까?”

‘…레논인가?’

“하하, 부탑주님이셨군요.”

나는 갑작스레 찾아온 레논 부탑주를 반가이 맞이했으나.

어째선지 레논의 표정이 썩 밝지만은 않아 보였다.

“예, 크라켄에서 이변이 발생했다고 해서 급히 찾아왔습니다.”

“이변… 말입니까?”

‘이변이 생길 게 있나?’

설치한 흑점은 별 탈 없이 잘 돌아가고 있었으며.

식량 생산도 원활히 진행 중이건만, 이변이 생겼다니?

“그게 참 희한한 것이… 흑점 옆에 가게가 들어서고 있다고 하더군요.”

“가게요? 그거야 예상했던 것일 텐데…….”

애당초 흑점을 세울 때 주변에 마을이 들어서고 상가가 생길 거라는 건 예상한 부분이건만.

레논은 왜 그것을 이변이라고 말하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아무래도 단순한 가게가 아닌 모양이군요.”

그에 레논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습니다. 정확히는 성점이라고 부르던데, 신관들이 운영을 하고 있다는 걸 봐선 아무래도 레바논에서 개입을 한 것 같습니다.”

“…예? 성점이요?”

‘아크 신관장에게 정보를 흘렸으니 움직일 거라고 예상은 했는데… 성점은 좀 예상 밖이네.’

내가 어처구니가 없어 픽 실소를 흘리던 중.

미간을 찌푸린 레논이 입술을 뗀다.

“아무래도 흑점의 관리를 우리가 하고 있다는 정보가 어디서 샌 모양입니다.”

“뭐, 언제고 벌어질 일이긴 했습니다. 그래도 예상보다 좀 더 빠르긴 합니다만, 일단은 현장으로 가서 상황을 파악하는 게 좋겠군요.”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고 언데드 와이번을 준비해 뒀습니다. 바로 가시죠.”

* * *

나는 레논과 함께 곧장 크라켄 왕국으로 이동하여.

검은 대지와 가장 밀접해 있는 던전인 왕의 무덤으로 이동했다.

‘허…….’

상황을 파악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자자, 던전을 토벌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게 뭐겠습니까? 무기와 식량 그리고 부상을 당했을 때 사용할 성수겠지요! 저희 성점에서는 여러분께 필요한 그 모든 것을 팔고 있습니다!”

“흠… 하긴, 주변에 포션 구할 곳은 없으니 성수라도 챙길까?”

“그래. 갖고 있어서 나쁠 건 없잖아?”

용병과 모험가들에게 호객 행위를 하는 신관들을 비롯하여.

손님들로 바글거리는 성점과는 달리.

“젠장… 분명 장사는 우리가 먼저 시작했는데…….”

“흑남님을 볼 면목이 없군…….”

손님은커녕 파리만 날리는 흑점만 봐도 작금의 상황을 파악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으니까.

“상황이 많이 나쁜 모양입니다.”

“그러게요. 일단은 흑점으로 가죠.”

나는 레논과 함께 흑점으로 이동했다.

“어서 오… 허억! 흐, 흑남님? 부, 부탑주님도?”

나와 레논을 본 흑마법사들이 기겁하며 머리가 땅에 닿도록 허리를 수그린다.

“죄, 죄송합니다! 저희의 역량이 부족한 탓에 손님들을… 손님들을…….”

“나와 레논 부탑주는 상황을 보려고 온 거지 너희를 타박하려고 온 게 아니야. 언제 이곳에 성점이 들어온 거지?”

나의 물음에 흑마법사가 이를 갈며 대답한다.

“저 망할 놈들이 이곳에 자리를 잡은 지는 며칠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놈들이 들어온 뒤부터 손님이 하나둘씩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사람들이 대거 성점으로 넘어간 데는 이유가 있겠지?”

그에 흑마법사가 씁쓸히 고개를 끄덕였다.

“파는 상품들은 저희와 비슷합니다만… 놈들이 물건을 산 용병들에게는 성수의 가격을 깎아 주는 짓거리를 하는 통에 놈들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말았습니다.”

“허어… 크라켄의 병사들이 성점을 짓는 것을 제지하진 않았고?”

“병사들은… 그저 방관했습니다.”

흑마법사의 보고에 레논의 미간에 옅게 핏줄이 섰다.

“우리와 손을 잡으려는 것처럼 굴다가 이제 와서 다시 레바논의 손을 잡겠다는 건가?!”

‘흠…….’

나는 고민에 잠겨 있다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크라켄이 우리와 레바논의 사이에서 간을 보고 있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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