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30분 뒤.
‘이야…….’
나는 지팡이를 거두어들이는 나가란 탑주의 등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무슨 놈의 노인네가…….’
첩자 수십을 비롯하여 위대한 흑마법사라 불리던 멜크가 합공하였건만.
저 구부정한 노인조차 이기지 못하다니.
‘역시 만만하게 봐선 안 될 양반이야. 그보다…….’
나는 바닥에 쓰러져 있으면서도 눈만은 부라린 채 나를 노려보는 멜크를 비롯하여.
첩자 무리를 보며 픽 실소를 흘렸다.
‘살짝 위기감을 줬더니 아주 그냥 벌 떼처럼 모여들었네.’
나의 발언에 멜크가 수상함을 느끼고 나름대로 대처를 할 것이라고 생각은 했었다만.
설마 자신의 수하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아 주는 고마운 짓거리를 할 줄은 몰랐다.
“탑주님! 흑남!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입니까!”
멜크가 나를 보며 강하게 항의하자.
나는 뭐가 문제냐는 듯 그를 응시했다.
“뭐 하는 짓이긴? 흑탑에 스며든 첩자들을 색출 중이지.”
“…첩자? 첩자라니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우리는 그저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 뿐입니다!”
“아, 그래? 모여서 레바논에 팔아먹을 정보를 논의하고 있었는지, 아니면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지는 들어 보면 알겠지.”
나는 이미 저주에 걸려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첩자에게 다가갔다.
“지금까지 넌 레바논을 위해 어떤 일들을 해 왔지?”
“으으… 저희는 레바논의… 명령을 받고… 검은 대지의 정보를… 빼돌렸습니다. 개중에는…….”
사내의 입에서 정보가 줄줄이 흘러나오자.
나는 눈을 질끈 감은 멜크를 보며 고개를 까딱였다.
“이렇게 증거가 명확한데, 이래도 발뺌할 생각은 아니겠지?”
“그건, 저 새끼들이 문제인 거다! 나는 레바논과 아무런 관계가 없어!”
멜크가 상황을 모면하고자 첩자들을 손절하려고 했으나.
나를 비롯하여 그의 외침을 귀 기울여 들어 주는 이는 없었다.
“뭐, 그건 까 봐야 알겠지. 너한테도 곧 마인드 브레이커를 걸 거니까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뭐라고?”
허탈한 웃음을 흘리는 멜크.
하나 곧 그의 눈에 서슬 퍼런 독기가 넘실거리기 시작한다.
“이봐, 랄프. 네놈은 이 아수라장에서 무사할 것 같아? 내가 모를 줄 아나 본데, 네놈, 레바논에서 신관 행세를 했었지?”
“신관 행세? 내가?”
“난 다 알고 있어. 다 알고 있다고! 네놈 몸속에 흑마력만이 아닌 레바논의 신성력이 흐르고 있다는 걸……!”
멜크가 악다구니를 내지르며 지팡이를 잡으려 하자.
웅웅웅웅-
나는 재빨리 놈 앞으로 달려가 얼굴에 힘껏 주먹을 꽂았다.
뻐어어억-
멜크의 몸이 힘없이 바닥을 구른다.
“허튼짓을 할지 모르니 놈의 입과 전신을 단단히 묶어 둬.”
“갈프 신관!”
멜크가 충혈된 눈으로 나를 죽일 듯 노려보며 소리치자.
데스나이트들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놈의 입과 전신을 사슬로 묶어 버린다.
“읍! 읍!”
‘흠…….’
나는 멜크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비록 유추일 뿐이긴 하지만 나에 대해 거기까지 알아냈을 줄이야.’
하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멜크는 오늘 이 자리에서 죽게 될 테니까.
“이봐, 멜크.”
나는 멜크의 귓가에 얼굴을 바싹 붙이곤.
그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사람은 알아도 모른 척할 때가 있어야 하는 법이야.”
“읍읍읍! 읍!”
눈을 부릅뜬 멜크가 쇠사슬이 끊어져라 발버둥 쳐 봤지만 소용없었다.
‘잘 가라.’
나는 그런 놈의 몸에 슬며시 부패의 저주를 걸어 놓고는.
아무렇지 않게 레논 부탑주에게 다가갔다.
“부탑주님, 좀 나온 게 있습니까?”
나의 물음에 레논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한 채 고개를 끄덕인다.
“일단 지하에서 대량의 양피지가 발견됐습니다. 정황을 더 살펴봐야 하겠습니다만, 일단 당장 확인해 보니 모두 레바논에서 보내온 지령들인 것 같더군요.”
“예상대로군요. 그건 그렇고, 저 배신자들은 어떻게 처리하실 겁니까?”
“그야 정보들을 빼낸 뒤에는 규율대로 처리하거나 이용하는 쪽으로…….”
레논과 내가 대화를 이어 가던 중.
“읍! 읍읍읍!”
갑자기 멜크가 몸을 크게 들썩거리기 시작한다.
“저놈이 또 발광을 하는 모양이군요. 사슬을 더 단단히 묶으라고 지시를 내려야겠습니다.”
“그래야지요. 그런데… 뭔가 이상한 것 같습니다.”
멜크의 몸에서 악취가 피어오르자.
당황한 레논이 재빨리 멜크에게 달려간다.
“읍……!”
“이건…….”
삽시간에 멜크가 썩은 시체처럼 변해 버리자.
레논은 어안이 벙벙하여 시체를 바라보다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이건… 혹시 흑남께서 손을 쓰신 겁니까?”
“예? 그럴 리가요? 귀중한 정보원을 제가 무엇 하러 죽이겠습니까? 자살한 게 아닐까요?”
나의 물음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레논.
“하기야, 살아 있는 것보단 죽는 게 낫겠습다만…….”
미간을 찌푸린 채 시체를 내려다보던 레논이 나지막이 혀를 찬다.
“이 얼간이 같은 놈이 도대체 왜 이런 짓을 벌인 건진 알 수가 없게 돼 버렸군요.”
“이런 놈들은 이해하려 해 봐야 머리만 아플 뿐입니다. 일단은 살아 있는 배신자들과 증거물들을 챙겨 돌아가시죠.”
* * *
3일 뒤.
흑탑의 회의실.
“…….”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 삭막한 분위기 속에서 레논이 무겁게 입을 뗀다.
“…다음으로, 배신자 멜크 건에 대한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의 부하들과 압수한 양피지들을 확인한 결과, 놈은 약 8년 전쯤부터 레바논의 첩자로 돌아선 것 같습니다.”
“계속하게.”
나가란 탑주가 고개를 까딱이자.
레논은 들고 있던 양피지의 내용을 차분히 읊기 시작한다.
“많은 의문을 남겼었던 아일린 일가의 독살 사건을 비롯하여, 에스만가의 모든 인원이 전원 행방불명된 일 등, 멜크는 물음표로 남았던 많은 사건들에 개입을 했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 외에도 놈은 기타 여러 곳에서 활동하며 우리 흑탑을 견제하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
레논의 보고가 끝났음에도 좌중은 쉽사리 입을 떼지 못한다.
그러던 중.
“이로 흑남의 말이 사실이라는 게 증명됐군. 레바논의 첩자가 흑탑에 이렇게 깊숙이 박혀 있었을 줄이야…….”
나가란 탑주가 탄식하듯 한숨을 토해 내자.
레논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 나간다.
“그간의 피해를 결코 무시하는 건 아닙니다만, 그래도 이번에 흑남이 배신자를 찾아낸 덕에 멜크와 관련된 첩자들을 대거 색출해 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 그렇지. 흑남이 아주 큰일을 해냈지. 그런데 말이네, 멜크가 첩자라는 사실은 어떻게 안 건가?”
눈을 크게 뜬 나가란 탑주가 내게 계속 의문을 던진다.
“레바논 왕국에 갔었던 게 큰 도움이 된 겐가? 아니면 뭔가 다른 방도가 있었다든가……?”
‘이 사안은 길게 말해 봐야 좋을 게 없어.’
“제 개인적인 조력자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자네의 조력자라……. 제법 범상치 않은 사람들인가 보군. 으허허허허!”
나가란 탑주가 너스레를 떨던 중.
좌중 중 한 명이 입을 뗀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가만히 보고만 있는 겁니까?”
“가만히 보고만 있다니?”
“놈들은 우리 터전에 첩자들을 밀어 넣고 어둠 속에서 활동을 했습니다! 경계를 더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의견을 제안한 흑마법사를 보며 나가란 탑주가 고개를 끄덕인다.
“자네 말도 맞네. 앞으로는 포털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신원을 더 철저히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어.”
“그것도 좋은 대응이긴 합니다만 너무 소극적인 대응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럼 자네는 어쩌길 원하는 건가?”
“놈들과 전면으로 맞붙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의견을 제안한 흑마법사가 목청을 높이자.
레논이 곧장 반박한다.
“그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전쟁은 신중히 진행해야 합니다.”
“그럼 레논 부탑주는 이번에도 가만히 방관하자는 겁니까?”
“누가 방관을 하겠다고 했습니까? 일단 행동을 하기에 앞서 신중히 검토를 하자 이거지요!”
순식간에 회의장이 의견 충돌로 난장판이 되자.
미간을 짚고 있던 나가란 탑주가 의자 손잡이를 탁 내려치며 말한다.
“자네들은 전에 랄프가 이야기했던 걸 기억하나?”
“흑남이 말했던 거라면… 시련의 탑과 협업을 하자는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정확하네. 내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말이네. 그 생각… 참 괜찮다는 생각이 들더군. 랄프,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전쟁을 할 생각은 없지만 레바논으로부터 재정적으로 벗어날 생각은 있다, 이 말이 하고 싶은 건가?’
나가란 탑주의 물음에 나는 동의를 표했다.
“분명 전쟁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레바논이 우리의 자존심을 건드렸으니 당장 일어나도 시원찮을 상황인 건 분명합니다. 하나 일단 전에 말씀드렸던 대로 흑탑과 레바논 왕국이 완전히 멀어지는 게 우선입니다.”
나는 잔기침을 하곤 계속 말을 이어 갔다.
“그러니 시련의 탑과의 협업을 통해 재정을 확보하고, 그 뒤에 언데드를 레바논에 팔았던 사실을 대륙에 흘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한다면 굳이 전쟁을 하지 않더라도 레바논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말이네. 흑남의 계획을 시험 삼아 크라켄 왕국에서 시행하는 건 어떨까 하네. 자네들의 생각은 어떤가?”
한 흑마법사가 우려를 표한다.
“계획은 충분히 괜찮다고 봅니다. 하지만 던전 앞에 매점을 짓는다고 해도, 매점의 운영은 어쩔 것이며, 과연 크라켄 왕국이 그걸 지켜만 보고 있을지도 우려됩니다.”
“으허허허허, 그건 너무 걱정 말게.”
나가란 탑주가 껄껄 웃으며 자신 있게 말한다.
“이미 오돈과 이야기를 끝내 놨으니 말이네.”
“…예? 오돈이라면… 크라켄의 왕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네. 그가 매점의 운영을 비롯하여 여러모로 뒤에서 우리를 지원해 주기로 약조했으니 너무 걱정들 할 필요 없겠지.”
나는 나가란 탑주를 보며 생각했다.
‘설마 내가 그 의견을 말한 뒤에 곧장 크라켄의 왕을 만났던 건가? 저 양반도 대단하네.’
“자, 그럼 얼른들 움직이지.”
* * *
세 달 뒤.
크라켄 왕국 남부 지역의 중심에 위치한 아슬란성 안.
남부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기로 유명한 이 성의 주점에선.
“북쪽으로나 가 볼까?”
“왜?”
“페른 왕국이랑 도미닉 왕국이랑 전쟁을 한다는 소문이 있어서 말이야.”
저마다 잔을 쥔 용병들이 술을 들이켜며 대화를 나누기 바빴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네. 여기서 용병 노릇 하는 게 얼마나 편한데, 굳이 사지를 찾아 들어가려고 해?”
“그렇긴 한데… 검은 대지가 지척에 있는 것치곤 흑마법사들의 활동이 생각보다 잠잠한 것 같아서 말이야. 가만히 있는 것도 좀 지겹고.”
“뭐? 이 새끼가 취했나……. 네가 지척에서 스켈레톤들을 맞닥뜨리고도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헛소리 말고 잔이나 들어.”
용병들이 웃으며 술잔을 기울이던 중.
한 용병이 넌지시 말문을 연다.
“이곳 생활이 그렇게 지겨우면 이참에 가고일의 던전에 가 보는 건 어때?”
“엉? 갑자기 거길 왜 가?”
“그야… 황금 가고일은 그 던전에서만 볼 수 있잖아? 황금 가고일을 박살 내면 손에 얼마가 들어오는지는 알아? 못해도 한 명당 30골드 이상은 만질 수 있다고.”
슬며시 정보를 꺼낸 용병이 손가락을 들며 원을 만들어 흔들어 보였지만.
용병들은 어림도 없다는 듯 술잔을 흔든다.
“가면 돈이야 많이 벌겠지. 그런데 거긴 던전 위치가 영 별로야. 여기서 마차를 타고 며칠은 남쪽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그 던전 근처에는 아무것도 없잖아?”
“그래도 황금 가고일을 잡으면 돈은 확실하게 챙길 수 있잖아?”
“글쎄……. 한번 계산을 해 보자고. 황금 가고일이 대략 5층쯤에서 출몰한다고 하니까… 짐꾼을 고용하고, 음식값에 무기 수리비… 씁… 다른 던전보다 조금 더 남긴 하겠지. 근데 장기간 머무르기도 애매한 곳에서 굳이 그 수고를 하자고?”
계산에 능한 용병이 어림잡아 셈을 하며 의견에 반박했으나.
던전을 언급했던 용병은 확신에 차 고개를 젓는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상황이 좀 많이 달라진 모양이야.”
“상황이 달라졌다니? 황금 가고일이 1층으로 올라오기라도 했대? 그럼 간다.”
“그건 아닌데……. 진짜 못 들었어? 지금 크라켄 왕국에 있는 던전들 앞에 상점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하더라고? 가고일 던전 앞에도 하나 생겼다고 하던데?”
“엉?!”
용병들은 멍하니 동료를 바라보다가.
서로의 얼굴을 보며 껄껄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푸하하하하! 야, 농담도 적당히 해. 누가 그 오지에 상점을 지어?”
“아, 진짜라니까?!”
“아, 그래그래. 네 말이 진짜라고 치자고. 어떤 얼간이가 상점을 지었는지 몰라도, 어차피 며칠 내로 망할 것 같은데?”
동료의 빈정거림에 의가 상한 용병이 등을 돌리며 소리친다.
“어차피 망하긴 하겠지.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건, 그 상점이 망하기 전에 가고일 던전에 가서 한탕 하자는 거였는데, 싫으면 말든가.”
“하… 그래. 까짓것 한번 가 보든가. 며칠 고생한다고 생각하고 가 보면 되지.”
* * *
삼 일 뒤.
허허벌판에 위치한 가고일 던전 앞에 모여든 용병들.
“…진짜로 상점이 있네?”
그들은 가고일 던전 옆에 위치한 자그마한 건물 주위를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어떤 미친놈인지 몰라도 돈이 썩어 나는 게 분명해. 이걸 어떻게 관리할 생각으로 지은 거야?”
“그러니까. 우리는 몰라도 다른 용병들이 물건들을 강탈할 수도 있… 어? 저건…….”
상점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이 그들의 눈에 들어오자.
용병들은 다시 저들끼리 숙덕거리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나라에서 시킨 짓 같은데?”
“하여간 높은 자리에 앉은 놈들 생각은 알 수가 없다니까. 물론 우리야 좋긴 하다만.”
“그보다 얼른 들어가 보자고.”
용병들은 병사들에게 눈인사를 건네고는.
상점 입구에 적혀 있는 글자로 시선을 돌렸다.
“근데 저건… 뭐라고 적혀 있는 거야? 아란, 네가 좀 읽어 봐.”
“으음… 희한하네.”
“뭐라고 적혀 있는데 그래?”
동료의 재촉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용병이 나지막이 입을 뗀다.
“흑점?”
“뭐, 상점의 이름 같은 거겠지. 그보다 들어가 보자고.”
용병들은 경계를 서고 있는 병사들의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흑점 안으로 들어갔다.
“흠…….”
“이게 뭐야. 그냥 상점이잖아?”
그리 넓지 않은 흑점 안은 이제껏 용병들이 봐 왔던 상점들과 별반 차이가 나질 않았다.
“기대했던 것보단 평범한데?”
“확실히 안은 평범하네. 하지만 잘 생각해 봐.”
아란이라 불린 용병이 동료들을 보며 어깨를 으쓱인다.
“어차피 우리는 던전만 토벌하면 되잖아? 어디 멀리 갈 것도 없이 필요한 게 있으면 여기서 물품을 보충하면 되는 거고.”
“그렇긴 하지.”
“이보쇼! 주인장!”
아란의 호령에 계산대에서 젊은 남자가 걸어 나와 그들을 응대한다.
“어이구, 손님들. 찾으시는 게 있으십니까?”
“그… 다른 건 됐고, 요깃거리는 있나?”
“그럼요! 마른 고기와 빵 그리고 포도주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드릴까요?”
남자의 물음에 아란은 손을 좌우로 흔든다.
“됐어. 어차피 던전의 5층까지 내려가는 데 일주일이면 충분할 테니까.”
“하하, 알겠습니다.”
“가자.”
이윽고 용병들이 흑점을 나서자.
젊은 남자의 뒤로 다부진 체격의 중년 남자가 모습을 보인다.
“흑남님, 아무래도 장사가 썩 잘되진 않는 모양입니다. 슬슬 이곳은 병사들에게 맡기고 철수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시작부터 배부를 수는 없는 노릇인 법이죠. 하지만 장담하는데, 앞으로 두 달, 그 안에 이 가고일 던전은 사람들이 미어터질 겁니다. 그럼 당연히 이 흑점도 부가적인 수익을 얻게 되겠죠.”
“…예?”
* * *
두 달?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았건만.
“당장 이 안에 있는 음식들 다 내놔! 전부 다!”
“무기! 무기가 필요해! 무기!”
“번호! 번호 내놔! 우린 몇 번이야!”
“어, 98번입니다. 대기하시는 동안 뭐라도 좀 드시겠습니까? 아, 물론 공짜는 아닙니다.”
이제는 흑점이 전부 상대하기 힘들 정도로 수많은 용병들이 흑점을 이용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