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카데미의 노예가 살아남는 법-96화 (96/200)
  • 96.

    “…예? 폐광이라니요?”

    좌중의 질문에 슈바츠는 광물이라고 하기도 뭐한 물체를 잡고 말을 이어 간다.

    “생각들 해 보게. 어째서 갈프 신관이 우리에게 이런 쓸모없는 광물을, 그것도 대량으로 보냈겠는가? 그건 바로 미스릴 광산이 실질적으로 폐광이나 다름이 없다는 걸 우리에게 알리려고 했기 때문이네.”

    “과연… 그리 말씀하시니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리 많이 보낼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그에 슈바츠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으며 말을 이어 간다.

    “아마도 우리가 의심할 걸 우려한 거겠지. 만약 광물이 소량이 왔다면 우리는 갈프 신관이 미스릴을 중간에 빼돌렸다는 의심을 품었을 걸세.”

    “오오오… 교황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좌중이 감탄하며 슈바츠를 추켜세우던 중.

    아크 신관장이 천천히 입을 뗀다.

    “허허… 확실히 갈프 신관이 보기보다 영악한 구석이 있군요.”

    “제 나름대로 살아남기 위해 처세술을 발휘한 거겠지. 그보다… 멜크 그 쓸모없는 놈은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미스릴 광산이 있다더니 이게 뭔가? 상자를 열어 보니 그냥 폐석이잖나?”

    교황이 넌지시 분노를 드러내자.

    대신관들이 앞다투어 그의 분노에 동의한다.

    “교황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놈은 잘못된 정보로 우리에게 혼란을 야기했습니다.”

    “솔직히 위장 흑남이 있는데, 이제 놈은 그만 쳐 내도 되지 않겠습니까?”

    대신관들의 발언을 흐뭇하게 듣는 슈바츠.

    “굳이 쳐 낼 필요까진 없겠지. 말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 아니겠나?”

    “허허, 그렇지요. 그간 멜크가 우리에게 협조한 걸 생각해서 한 번쯤은 넘어가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자네가 뭘 좀 아는군. 하지만 놈의 근간이 흑마법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는 말게. 놈은 언제고 버릴 말이야.”

    * * *

    2주 뒤.

    흑탑 외곽에 위치한 멜크의 자택.

    “…이런 빌어먹을 새끼들을 봤나!”

    한참 양피지를 노려보던 멜크가 양피지를 집어 던지며 고함을 내지른다.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차를 따르던 집사가 조심스럽게 물어 오자.

    멜크는 실소를 흘리며 입을 뗀다.

    “레바논에서 뭐라고 서신이 온 줄 알아? 갈프 신관 그 개 같은 놈이 내 말은 싹 다 무시하고 일을 처리했는데, 뭐? 갈프 신관은 잘하고 있다고 나보고 옆에서 그를 잘 보필하라고 서신이 왔네?”

    분명 갈프 신관에게서 면박을 들은 후.

    교황에게 갈프 신관이 협조적이지 않다고 그를 문책해야 한다는 서신을 보냈건만.

    갈프 신관은 잘하고 있다니?

    “크흠… 아무래도 같은 레바논 출신이라고 저쪽에서 감싸고도는 모양입니다.”

    “…레바논 출신이라 감쌌다고? 내가 저 새끼들을 위해 몇 년을 일했는데! 넌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멜크가 집사에게 화풀이를 하며 소리를 지르던 중.

    똑똑-

    문을 두드린 시종이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온다.

    “뭐야?”

    “멜크 님, 곧 회의가 있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흑탑으로 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쯧… 알겠다. 의복이나 준비해.”

    * * *

    흑탑의 회의장 안으로 이동한 멜크.

    그가 회의장 안의 좌중과 눈인사를 나누던 중.

    “전부 모였군.”

    나가란 탑주가 회의장에 모인 좌중을 보며 말문을 연다.

    “오늘은 여기에 있는 랄프가 중대 사안이 있다고 하여 자네들을 소집했네.”

    “…중대 사안 말입니까?”

    멜크가 위장 흑남인 갈프 신관을 노려보며 묻자.

    위장 흑남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좌중에게 묻는다.

    “예, 중대 사안이죠. 여기에 계신 분들께선 지금 우리 흑마법사의 위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떻고 자시고, 생각할 게 있나? 흑마법사는 흑마법사지.”

    “지금 우리 흑탑 재정 중, 상당한 부분이 레바논에 팔아넘기는 언데드에서 나오고 있다는 사실은 다들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위장 흑남의 말에 좌중이 의문을 표한다.

    “그렇긴 하네만 그건 악마학파만의 문제가 아닌가?”

    “악마학파만 떼어 놓고 봐도 흑탑의 3분의 1입니다. 그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이죠.”

    위장 흑남이 말을 이어 가려던 중.

    나가란 탑주가 그를 보며 묻는다.

    “이 사안에 대해 레논 부탑주와 이야기가 된 겐가?”

    “그렇습니다.”

    “그런가. 그럼 계속하게.”

    나가란 탑주가 고개를 까딱이자.

    위장 흑남이 계속 말을 이어 간다.

    “하여 저는 우리 흑탑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벗어나다니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흑탑이 레바논으로부터 재정적으로 완전히 벗어나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위장 흑남의 선언에 멜크는 순간 자신의 귓구멍을 후볐다.

    ‘…지금 저 새끼가 뭐라는 거지?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더 이상 레바논에게 언데드들을 팔지 않고도 흑탑이 자력으로 재정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저 새끼가…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설마 갈프 신관이 레바논을 배신하려고 하는 걸까?

    멜크의 눈빛이 복잡해지던 중.

    좌중이 고개를 끄덕이며 위장 흑남에게 질문을 던진다.

    “흑남님의 말마따나 레바논과의 관계를 끊어 내는 것도 괜찮겠습니다만, 그렇게 하면 우리는 뭐가 좋은 겁니까?”

    “그러면 우리는 레바논을 압박할 수 있는 무기 하나를 쥐게 됩니다. 이미 쥐고 있는 무기이기도 하지만, 더 효과적으로 사용을 할 수 있게 되지요.”

    “그 무기가 뭡니까?”

    그에 위장 흑남의 입가에 스산한 미소가 걸린다.

    “이제껏 놈들이 언데드들로 대륙에 개수작을 부린 걸 까발릴 수 있게 되는 겁니다.”

    “호오……?”

    나가란 탑주가 눈을 빛내며 묻는다.

    “확실히 랄프 자네의 말도 일리가 있네. 하지만 언데드를 팔지 않고 돈을 벌 대책이 있나?”

    “예, 있습니다.”

    “오오오!”

    확신에 찬 위장 흑남의 대답에 좌중이 흥분하여 묻는다.

    “그래서 그 대책이라는 게 뭡니까?!”

    “그건 바로 시련의 탑과 함께 일을 하는 겁니다.”

    “…예? 시련의 탑과 협업을 하는 게… 대책이라는 겁니까?”

    “잘 이해가 가질 않는군요.”

    좌중이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자.

    위장 흑남이 말을 이어 간다.

    “시련의 탑 출십 마법사들이 대륙에 던전을 설치하고 운영하는 건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그렇지요. 혹시 우리도 던전 같은 걸 만들어서 운영하자는 말씀이십니까?”

    “반쯤은 정답입니다. 정확히는 그들이 던전을 만드는 걸 지원해 주고, 더불어 던전 앞에 임시 매점을 설치하는 건 어떨까 합니다.”

    ‘…뭐라고?’

    위장 흑남의 발언에 멜크는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저 미친놈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흑남 자리에 앉더니 정말 자기가 흑남이라도 된 줄 아는 걸까?

    그렇지 않고서야 갈프 신관이 저런 미친 소리를 내뱉지는 못할 터.

    ‘아니면 설마……?’

    그 짧은 시간에 권력의 달콤한 맛에 취해 레바논 왕국을 배반하고자 하는 걸까?

    ‘멍청한 새끼. 분수를 알아야지. 언제 네놈의 정체를 들킬지 모르는데 저런 미친 짓을… 아니지… 가만…….’

    아무리 갈프 신관이 권력에 눈이 멀었다고 해도.

    저런 헛소리를 한 데는 나름대로 근거가 있을 터.

    ‘갈프 신관도 아주 머리가 없진 않을 거고. 그럼 분수에 맞게 조용히 있는 게 정상일 텐데, 저렇게 레바논을 배반하는 의견을 내놓는다는 건…….’

    정말 갈프 신관이 미쳤거나, 아니면…….

    ‘사실 놈이 갈프 신관인 척하는 진짜 흑남이라면… 저런 헛소리를 늘어놓는 것도 말이 된다. 그래, 놈이 진짜 흑남이라면 모든 게 설명이 되긴 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멜크는 자신의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다만 일단 놈이 진짜 흑남인지 파악부터 해야겠어.’

    만약 놈이 진짜 흑남이라면.

    당장이고 흑탑을 떠나거나 놈을 죽여야만 한다.

    * * *

    당일 밤.

    멜크의 집 안.

    “전부 모였나?”

    “예!”

    자신이 통제하던 첩자들을 모두 소집한 멜크.

    그는 검은 대지 각지에서 정보를 모으던 첩자들을 보며 입을 뗐다.

    “오늘 회의 중에 흑남이 레바논에게서 완전히 벗어나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아니… 흑남이 그런 말을 했습니까?”

    “만약 그게 진짜라고 한다면… 혹시 갈프 신관이 미치기라도 한 겁니까?”

    첩자들이 당황하여 묻자.

    멜크는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가능성은 두 가지다. 놈이 진짜 미쳤거나, 아니면 사실 놈이 진짜 흑남이라든가.”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만약 놈이 정말 신관이라면, 레바논에 해가 가는 의견을 낼 수 있었을까? 그건 말이 안 돼.”

    멜크가 단호히 말하자.

    첩자 중 한 명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뗀다.

    “하지만 만약 그가 진짜 흑남이라면… 그건 더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했지?”

    “그야 애당초 갈프 신관을 이곳에 보낸 건 다름 아닌 교황입니다. 그 말인즉슨, 교황이 그를 신관으로 인정했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수하의 일리 있는 추리에 멜크가 고개를 까딱인다.

    “계속해.”

    “만약 그가 진짜 흑남이라고 한다면… 그는 흑남이자 신관인 셈이 되는 겁니다!”

    “…….”

    순간 방 안에 정적이 흐르더니.

    “푸하하하하하하하!”

    이내 방 안의 모든 이들이 웃으며 손사래를 친다.

    “그럼 네 말은 흑남이 흑마법과 성마법, 둘 다 다룰 수 있다는 건가? 그건 말이 안 돼. 이제껏 두 마법을 모두 다뤘다는 사람에 대해선 들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 이유가 아니고서야 멜크 님의 주장이 성립되질 않습니다!”

    수하가 강하게 의견을 피력하자.

    멜크는 천천히 눈을 감고는 생각에 잠긴다.

    ‘흠…….’

    솔직히 수하의 의견은 농담으로밖에 들리질 않았으나.

    어째선지 묘하게 그의 말이 가슴에 걸린다.

    ‘정리를 해 보자……. 몇 주간 행방불명됐었던 흑남이 흑탑에 돌아왔었다. 하지만 좀처럼 모습을 보이진 않았었지. 그러다가 갑자기 흑남이 밖으로 외출을 한다는 첩보가 들어왔고, 그 뒤로 마차가 터졌…….’

    뭔가 이상하다.

    그러고 보니 흑남이 기랄 군도에서 행방불명됐다가 돌아온 뒤로.

    제대로 모습을 보였던 적이 있었던가?

    ‘…없다. 없어!’

    흥분한 멜크가 돌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의견을 피력했던 수하의 어깨를 꽉 움켜잡는다.

    “네 말이 맞다!”

    “…예?”

    “네 말이 맞다고!”

    ‘흑남이 행방불명됐던 이유는 놈이 레바논 왕국으로 넘어갔기 때문이었던 거다. 그리고 거기서 신관 행세를 했던 거지! 그러다가 운이 좋아 교황의 눈에 띄었다면……!’

    “그래! 이제야 모든 게 들어맞는다! 푸하하하하하하!”

    멜크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하자.

    수하들은 멍하니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모든 게 들어맞는다니요?”

    “갈프 신관, 아니! 랄프 그 새끼는……!”

    멜크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자신의 추리를 부하들에게 이야기하려던 그때.

    콰창-

    갑자기 집무실의 창들이 동시에 박살이 나더니.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일단의 무리가 집무실 안으로 들어온다.

    “네놈들은 누구……?!”

    당황한 수하들이 허리춤에서 칼을 빼 들려 했으나.

    서걱-

    데스나이트의 무자비한 칼질에 목이 썰려 나갈 뿐이었다.

    “죽기 싫으면 가만히들 있어. 움직이는 놈은 곧장 목이 날아갈 거다.”

    “너희는 대체……!”

    멜크는 목을 겨누고 있는 칼날을 보며 침음하던 중.

    로브를 벗은 노인을 보곤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나가란 탑주… 당신이 왜…….”

    “집 안을 샅샅이 뒤져라! 반항하는 놈이 있다면 죽여도 좋다.”

    “예!”

    탑주의 명령에 흑마법사들은 바삐 집 안을 수색했고.

    “마인드 브레이커.”

    “으으으… 그만… 그만……!”

    일부 흑마법사들은 멜크의 수하들을 붙잡고는 저주를 시전한다.

    “탑주님! 이게 무슨 짓입니까! 대체 왜 저를 겁박하시는……?!”

    멜크는 나가란 탑주에게 항변하려 했으나.

    그는 로브를 벗은 한 남자의 얼굴을 보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랄프…….”

    당황한 그의 시선 끝에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는 갈프 신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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