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혹시 말입니다. 지금 저곳으로 가서 난장판을 벌여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음? 그게 무슨 말인가? 난장판이라니?”
골버린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날 바라보자.
나는 덤덤히 말을 이어 갔다.
“미친 척하고 마녀들을 빼 오실 수 있으신지 묻고 있는 겁니다.”
“허… 지금 나보고 저 이교도들을 도우라는 겐가? 이해할 수가 없군…….”
“전부 레바논 님께 도움이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르신께서 못 하시겠다면 제가 할 겁니다. 다만 그리한다면 저희의 관계는 여기까지겠지만요.”
“…….”
반쯤은 협박에 가까운 나의 말에 골버린은 굳은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지.”
“그럼 저는 저쪽 골목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일이 끝나시는 대로 마녀들을 제게 데려와 주시죠.”
잠시 후.
콰아아아아아앙-
“이런 미친… 이 정신 나간 늙은이는 뭐야!”
“막아! 막으라고! 놈이 이교도들을 탈출시키려 하잖아!”
지축을 울리는 굉음과 성기사들의 다급한 고성이.
골목 언저리에 서 있던 내 귓가에까지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이윽고 굉음이 잦아들 무렵.
“여기 자네들이 원하던 이교도들일세.”
골버린이 밧줄에 줄줄이 묶여 있는 마녀들을 내 앞으로 끌고 왔다.
“잘하셨습니다.”
“그런데 말이네. 대체 왜 내게 이런 일을 시킨 건가? 혹시 나를 시험하려고 그런 겐가?”
“그건 아닙니다. 단지 이 일이 우리에게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어 골버린의 손에 쥐여 주며 말을 이어 갔다.
“장비가 필요하다고 하셨죠? 일단 이 돈으로 대장간에 가셔서 장비들을 좀 맞추고 오시죠.”
“…그리하지.”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보던 골버린이 자리를 뜨자.
나는 고개를 돌려 마녀들을 바라봤다.
“전부 검은 대지 출신이겠지?”
“…그렇습니다.”
한 노파가 일행을 대표하여 내게 답한다.
“살고 싶나?”
“…예?”
“살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 물었다.”
마녀의 눈이 동그래졌다가 곧 씁쓸함으로 물들어 간다.
“그야 살고 싶지요. 세상에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만약 너희가 내가 원하는 걸 실현시킬 수 있다면 너희가 도망치는 걸 못 본 척해 주마. 금세 성기사들이 너희를 추격할 테니 빨리 결정하는 게 너희한테도 좋을 거다.”
“…좋습니다. 저희에게 원하시는 게 뭐지요?”
노파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주머니에서 작은 나무패를 꺼내어 들었다.
“그건 숲의 증표……. 그걸 당신이 왜…….”
“전에 보니까 마녀들은 이걸로 장막 같은 걸 펼치던데, 나도 사용할 수 있는 건가?”
“아…….”
내 질문의 의도를 이해한 건지.
노파는 고개를 끄덕이곤 내 손에 들려 있던 나무패를 가져가더니.
손가락을 째어 그 위에 혈흔을 새겨 넣는다.
“다 됐습니다.”
“이걸로… 끝이라고?”
마녀에게서 숲의 증표를 돌려받았으나.
전에 봤던 커다란 검은 장막은 보이질 않는다.
“이게 끝이라고?”
“그렇습니다. 적어도 그걸 갖고 계시는 동안에는 신들의 관찰을 피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걸 믿어야 돼, 말아야 돼?’
나는 고민에 잠겨 있다가.
터억-
노파의 머리를 붙잡곤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마인드 브레이커.”
“으으으으으으…….”
그러자 고통스러워하던 노파의 눈빛이 곧 흐리멍덩하게 풀렸고.
“어? 저건……!”
“흐, 흑마법사가 어떻게 이곳에…….”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녀들의 눈이 경악으로 물든다.
“방금 네가 한 말에 거짓은 없겠지?”
“모두… 사실… 입니다…….”
“그럼 이 숲의 증표는 언제까지 사용할 수 있는 거지?”
“혈흔이… 지워지기 전까지는… 신들의 이목을… 피하실 수 있을… 겁니다…….”
노파의 말이 끝나자.
나는 그녀의 머리에서 손을 떼며 말을 이어 갔다.
“좋아. 가기 전에 숲의 증표를 몇 개 더 줘. 그 뒤엔 떠나도 좋다.”
“허억… 허억… 그, 그러지요.”
숨을 가쁘게 몰아쉬던 노파는 서둘러 나무패 몇 개를 더 내 손에 건네주곤.
나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묻는다.
“저희를 추적해 오신 겁니까?”
“그건 너희가 알 필요 없다. 이제 볼일은 끝났으니 알아서 살길을 도모하든가 해.”
“…감사합니다. 얘들아, 가자꾸나.”
마녀들이 삽시간에 골목 으슥한 곳으로 숨어 들어가던 사이.
“볼일은 전부 다 본 건가?”
간단한 갑옷과 검을 착용한 골버린이 내게 돌아와 묻는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교도들과 할 이야기가 있어 날 자리에서 떠나게 한 것 아니었나?”
‘음… 이 노인네 은근히 눈치 빠르네.’
“그랬죠. 볼일은 끝났습니다.”
“그렇군.”
허허로운 미소를 짓는 골버린을 보며 난 입을 뗐다.
“궁금하진 않으십니까?”
“궁금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호기심과 맨정신,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면 당연히 후자를 택해야 하지 않겠나?”
골버린의 물음에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건 어르신의 선택입니다. 그보다 이걸 갖고 계시죠.”
“이건…….”
골버린이 숲의 증표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나는 얼른 입을 뗐다.
“이제 빅토리아성으로 이동합시다.”
* * *
일주일 뒤.
‘오오… 여기가 빅토리아성이구나. 피카르성이랑은 너무 다르네.’
나는 광활한 빅토리아 성내를 둘러보며 혀를 내둘렀다.
‘흑탑보다도 사람이 많은 것 같아.’
“이곳은 오랜만이군.”
“와 본 적이 있으신 모양입니다.”
골버린은 추억에 젖은 눈으로 빅토리아성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많이 와 봤었지. 이곳에서 동남쪽으로 가면 크라켄, 동북쪽으로 가면 페른 왕국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과거 두 왕국이 언데드들의 공세를 받을 때면 이곳에 들를 수밖에 없었네. 물론 옛날보다 훨씬 더 많이 발전한 것 같긴 하지만 말이네.”
“그렇군요.”
내가 골버린과 대화를 나누며 성내를 걷던 중.
“그럼 도미닉 왕국으로 가는 게 어때? 내가 듣자 하니 이번에 그곳에 새로운 던전이 생겼는데 크기가 장난이 아니라던데?”
“그래? 그냥 던전인가? 아니면 시련 던전인가?”
검사들이 득실거리는 커다란 건물 앞에서 남자들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온다.
“시련 던전이라고 하더군.”
“내 참… 또 어떤 미치광이 마법사가 검은 대지에서 기어 나와 던전을 만든 모양이구만. 그래서 몇 층짜린데?”
“나도 모르지. 듣기론 3층까지는 뚫었다는 것 같은데 그 와중에 여러 파티들이 전멸한 모양이야.”
‘시련 던전이라……. 시련의 탑 출신 마법사가 만든 던전인가. 그쪽 마법사들은 간이 큰 건지, 아니면 그것 말곤 돈 나올 곳이 마땅찮아서 그런 건지… 대담하긴 하네.’
만약 내가 시련의 탑 출신 마법사였다면.
나는 대륙에 던전을 열 수 있었을까?
‘괜히 그쪽 출신 마법사들이 일찍 죽는 게 아니긴 하다만.’
“에라이씨! 얼간이 같은 새끼들, 죽을 거면 가질 말든가. 그놈들이 죽으면 시련 던전 만든 놈에게만 좋은 일 시켜 주는 거잖아?!”
“그게 또 좋은 거지. 미치광이 마법사만 죽이면 그게 전부 우리 게 되는 거잖아?”
“푸하하하하하! 그건 그렇지.”
남자들은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계속 말을 이어 간다.
“근데 그 던전 말이야. 돈이 되는 건 맞겠지?”
“당연하지! 도미닉 왕국에서 건 현상금은 물론이고, 소문으로는 에드란가의 유실된 검술서가 그 안에 있다고 하더군.”
“에드란가의… 검술서? 아니… 그 가문은 멸망했다고 들었는데?”
“던전에 마물들도 엄청나게 많다고 하던데 죽자고 달려드는 이유가 뭐겠어? 다 그것 때문이지.”
‘호오… 검술서라……. 그게 얼마나 가치가 있는 건진 모르겠지만 그건 분명 미끼 상품이겠네. 던전의 주인이 누구인진 모르겠지만 돈 좀 썼겠어.’
검술서가 얼마나 귀한 건진 모르겠으나.
검사들이 수군거리는 걸 보면 나름 귀한 것은 분명할 터.
‘검술서를 미끼로 던전에 출입할 고객들을 끌어모은다라…….’
내가 직접 보진 않았어도 그 던전은 분명 호황을 누리고 있을 것이다.
‘다만 고객들이 미어터진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되겠지만.’
모험가들을 죽여 장비를 빼앗으려다.
되레 던전이 토벌당해 죽었을 이름 모를 시련의 탑 마법사들이 몇이던가?
‘뭐,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지.’
이윽고 건물을 지나 남자들의 목소리가 잦아들자.
골버린이 나를 보며 묻는다.
“자네는 던전 같은 곳에는 관심이 없나? 자네 나이대의 신관들은 왕왕 모험가들을 따라나서는 경우도 있네만.”
“아주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레바논 님의 사명을 따르는 게 우선입니다.”
“지하 감옥에 사명이라…….”
골버린이 궁금해하는 눈치를 보이자.
나는 아랑곳 않고 고개를 앞으로 까딱였다.
“얼른 포털을 타러 가시죠. 해가 지기 전까지 라파엘성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그러지.”
나는 곧 골버린과 함께 거대한 포털이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제법 사람이 많군.”
“그러게요. 죄다 상인들인 것 같네요.”
이미 포털 앞에는 수십 대의 마차를 비롯하여.
등에 짐을 이고 있는 사람 등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우리도 줄을 서죠.”
나와 골버린이 줄의 끝자락으로 이동하려던 그때.
“이보게.”
갑자기 내 등 뒤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목소리…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은…….’
내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이런 미친…….’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익숙한 얼굴을 한 노인이.
아크 신관장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미친놈이 왜 여기에 있어? 바다에 빠져 죽은 게 아니었어?’
분명 아크 신관장이 타고 있던 조각배가 뒤집어지던 걸 내 눈으로 똑똑히 봤건만.
대체 어떻게 그 망망대해에서 살아남은 것이란 말인가?
‘목에 아가미라도 달려 있었나?’
“자네는…….”
아크 신관장 또한 깜짝 놀랐는지 눈에 당혹한 기색이 역력했으나.
“허허… 뒷모습이 어딘가 닮아 혹시나 했는데 정말 랄프 자네였군?! 설마 나를 잡으려고 이곳에서 대기 중이었던 건가? 자네도 정말 대단하구만. 하지만 아쉽게 됐네. 내가 먼저 자네를 발견해 버렸으니 말이야.”
곧 입가에 승자의 여유가 걸린다.
‘아오… 재수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있나.’
작금의 현실에 욕이라도 한 사발 퍼붓고 싶었으나.
지금은 내 상황을 비탄하기보단 해결책을 강구해야만 했다.
‘일단은… 모른 척하자. 난 갈프 신관이잖아? 아크 신관장이랑은 초면이고.’
나는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 몇 번이고 속으로 중얼거림을 반복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사람을 잘못 보신 모양인데, 전 랄프가 아닙니다.”
“…뭐라고? 으허허허허허허!”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리는 아크 신관장.
“랄프, 그쯤하게. 변명을 해 봐야 추할 뿐이네.”
“랄프라니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당황한 척하며 언성을 높이자.
아크 신관장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날 보며 말한다.
“흑남, 참으로 오만하군. 이곳은 검은 대지가 아니라 레바논일세.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로브도 안 쓰고 걸어 다닌 건가?”
“제가… 흑남이라고요?”
아크가 대답 대신 손을 까딱거리자.
척-
수십 명의 성기사들이 다가와 나와 골버린의 주변을 포위한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도대체 당신이 누군데 우리를 겁박하려 드는 겁니까?!”
내가 목청을 높여 소리치자.
“뭐야. 왜 저러는 거래?”
“방금 못 들었나? 저 남자가 흑남이라고 했잖아!”
“뭐?! 흑남이라면……. 세상에… 그럼 저 남자가 흑마법사란 소린가?”
“그냥 흑마법사가 아니라 흑남이라잖아! 저 남자가 흑마법사들의 머리라는 거지!”
“세상에… 그렇게 안 보였는데 흑마법사라니……. 근데 저 때려죽일 놈이 어떻게 이 신성한 곳을 활보하고 다닌 거란 말인가?!”
포털을 타기 위해 줄을 서 있던 군중 사이로 수군거림이 번지기 시작했고.
아크 신관장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더욱 진해진다.
“허허. 랄프, 나는 누구보다 자네를 잘 알고 있네. 그런 어색한 연기가 내게 통할 거라 생각했나? 그쯤 하고 순순히 잡히게. 그러면 신변의 안전은 지켜 주지.”
“제가 흑남이라니요?! 정말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사람이랑 착각하신 것 아닙니까? 저는 갈프입니다!”
“허허… 자네가 계속 그리 나온다면 어쩔 수 없지.”
아크 신관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성기사들이 무기를 들고 내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이상한 의혹을 산 모양인 것 같은데… 어쩔 텐가? 자네가 원한다면 포위망을 뚫을 수는 있네만.”
골버린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는 계속 쫓길 뿐입니다.”
‘여기서 확실히 의심을 벗겨 내고 간다.’
나는 천천히 숨을 몰아쉬곤.
몸 안의 신성력을 끌어모아 주먹에 응집하기 시작했다.
웅웅웅웅웅-
나의 손에서 은은한 신성력이 흘러나오자.
“…….”
일순간 성기사들의 얼굴에 물음표가 걸린다.
“저… 아크 신관장님? 흑마법사가 신성력을 사용한다는 건… 제 생전에 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만……. 저 사람… 정말 흑마법사가 맞는 겁니까?”
“이게 도대체…….”
포털 수비대장의 질문에 아크 신관장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사이.
“에이씨, 뭐야! 흑마법사라더니 아니잖아?!”
“그러니까! 흑마법사가 신성력을 쓴다는 게 말이나 돼?”
“파벌 싸움 아냐? 흑마법사라고 뒤집어씌우고 죽이려고 했던 거지.”
군중 사이에 흐르는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던 아크 신관장이 얼른 소리친다.
“자네는 뭔데 신성력을 사용하는 겐가?!”
“전… 갈프 신관입니다.”
“…신관이라고? 자네가?”
두통이 왔는지 이맛살을 찌푸린 아크 신관장이 나를 노려보며 묻는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어디 신전 출신인가?”
“전 신전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떠돌이 신관입니다. 변방을 돌아다니며 돌봄을 받지 못하는 환자들을 치료하고 레바논 님의 뜻을 전파하는 중이었습니다.”
“허…….”
* * *
갈프 신관을 바라보는 아크 신관장의 눈빛이 복잡해진다.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영문이란 말인가?!’
처음 흑남을 이곳에서 발견했을 때만 해도.
아크 신관장은 바다에서 이곳까지 오기까지 겪었던 모든 고초들이 레바논 님께서 마련하신 안배라고 생각했었다.
레바논 님께서 흑남을 내 손에 넘기셨구나!
분명 그리 생각했고.
그렇기에 레바논 님의 인도에 드높이 찬송을 부르기도 했었다.
헌데…….
흑남이 아니라 갈프 신관이라니?
‘얼굴은 흑남이 분명한데… 어떻게 신성력을 사용하는 건지 모르겠군…….’
혹시나 갈프 신관이 보인 저 힘이 이교도의 환술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었으나.
저 은은한 힘과 빛은 신성력이 틀림없었다.
‘설마… 흑남이 아니라 정말 흑남을 빼닮은 신관인 건가? 아니면 흑남에게 형제가 있다고 한다면…….’
아크 신관장은 혼란한 머릿속을 비우고자 힘껏 고개를 젓고는.
갈프 신관을 보며 입을 열었다.
“자네가 정말 신관이라면 당연히 레바논의 교리에 대해서도 꿰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레바논 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그리고…….”
갈프 신관의 입에서 레바논의 교리가 줄줄 흘러나오자.
“허어…….”
아크 신관장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는 정말… 신관이란 말인가?’
흑남은 신성력을 사용할 수 없다, 이는 명확한 사실이다.
하지만 스스로를 갈프 신관이라 지칭하는 저 남자는 흑남과 너무도 닮았다.
그냥 닮은 정도도 아니고 그를 검은 대지로 데려가.
이 사람은 흑남이요! 하고 부르짖어도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리라.
‘만약 내가 착각을 한 것이라면… 정말 저 남자가 흑남이 아닌 갈프 신관이라 한다면…….’
쿠구구궁-
순간, 아크 신관장의 머리에 한 줄기 거대한 낙뢰가 친다.
‘만약 검은 대지에 있는 흑남을 제거하고 눈앞의 갈프 신관을 대역으로 내세운다면… 흑마법사들을 자유로이 통제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단순히 빛과 어둠이 공존한다는 이념을 넘어.
빛이 어둠을 발밑에 두는 그림도 그려 볼 수 있을 터.
‘검은 대지… 흑탑… 새로운 세계……. 그래, 이 계획은 흑세계… 흑세계가 좋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