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쩌어어어억-
“커어어억!”
나는 나자빠진 기사를 지나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그라트니 신전보다는 많이 작네. 하긴 어촌에 있는 신전이 커 봐야 얼마나 크겠냐마는…….’
그럼에도 신전 안은 어촌의 집들보다 정갈했고 또 공을 들인 티가 느껴졌다.
나는 마치 내 집처럼 신전 안을 돌아다녔고 보이는 문들은 모두 열어젖혔다.
그러던 중.
“다 해서 얼마지요?”
“30골드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열심히만 모은다면 대신전에도 갈 수 있겠습니다! 이게 다 레바논 님의 은총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으허허허허허허허!”
내가 한 방문을 열자.
바삐 돈을 세며 헤벌쭉 웃는 신관과 늙은 수녀의 모습이 보인다.
‘30골드? 많이도 털어먹었네.’
“당신은… 누굽니까?!”
바삐 돈을 세던 신관이 나를 보곤 허겁지겁 테이블에 늘어놓은 은화를 가죽 자루에 쓸어 넣자.
나는 그런 그를 보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레바논 님의 뜻을 따라 곳곳을 방랑하는 갈프 신관입니다.”
“아… 그래요? 그런데 여기는 신전의 관계자 외에는 들어오실 수 없는… 크억!”
내 주먹에 턱을 강타당한 신관의 몸이 허공을 체공하다가 뒤로 나자빠지자.
“…….”
늙은 수녀는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이게 대체… 무슨 짓입니까!”
“이게 레바논 님의 뜻입니다.”
퍼억, 퍼어억-
곧 혼절한 신관의 몸이 축 늘어지자.
‘이만하면 대충 정리는 끝났나.’
나는 늙은 수녀를 보며 입을 뗐다.
“이 어촌에는 잡화점이 보이질 않더군요. 그래서 말인데 이 신전 안에 지도가 있습니까?”
“예? 아… 예, 예. 있습니다.”
“가져 오시지요.”
나의 명령에 늙은 수녀는 몸을 벌벌 떨면서도.
곧 지도 한 장을 들고 와 내게 공손히 내민다.
‘흐음… 어디 보자. 여기가 에크만 신전이라고 했었지. 에크만, 에크만… 아, 여기 있네.’
레바논 왕국의 최남단에 박혀 있는 자그마한 점 위로.
에크만 신전이라는 글씨가 자그마하게 적혀 있다.
‘그럼 여기에 있는 다른 점들도 전부 신전들인가 보네. 오, 대신전은 저기에 있네.’
나는 차분히 지도를 살피다가 다시 늙은 수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에크만 신전에서 가장 가까운 포털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건… 빅토리아성일 겝니다…….”
‘빅토리아성? 아, 여기 있네.’
레바논 왕국 중남부 부근에 위치한 성으로서.
다행히 이곳에서 아주 멀지는 않아 보였다.
‘이 정도 거리면… 말을 타면 두 달 정도 걸리려나. 일단 느긋하게 빅토리아성까지 가 볼까.’
물론 빅토리아성의 포털을 이용한다고 하여.
곧장 흑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일단은 빅토리아성의 포털을 이용해서 이곳까지 가야 돼.’
나는 다른 점들보다 유독 그 크기가 커다란 점.
‘레바논 대신전’이라는 글귀가 적힌 곳을 바라보며 생각을 이어 갔다.
‘어떻게 비밀 지부를 대신전 인근에다가 만든 건지.’
나는 내가 가야 할 길을 정확히 파악하곤.
쓰러져 있는 신관을 보며 생각했다.
‘솔직히 신관을 때리면 악행이 아닐까 했는데, 부패한 놈들을 때려잡으니 신성력이 오를 줄이야.’
비록 미비하긴 했어도 나의 심장에는 확실히 신성력이 차올랐기에.
나는 깊은 고민에 잠겼다.
‘그래. 어차피 대륙에 왔잖아. 이건 신성력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해.’
이곳에서 선행을 베푼다면.
굳이 신성력이 있는 물건을 착즙하여 신성력을 얻지 않아도 될 터.
‘애당초 신성력이 많았다면 천년백작한테도 밀릴 일이 없었겠지. 후우… 빅토리아성까지 가면서 최대한 선행을 베풀어 보자. 선행… 선행이라… 어떤 일을 해야 확실한 선행이 될까…….’
나는 곧 고민을 접곤 늙은 수녀를 보며 물었다.
“빅토리아성까지 가는 길목에 이곳보다 더 큰 신전이 있습니까?”
“예, 예……. 이곳에서 북쪽으로 삼 일 정도 가시다 보면 피카르 신전이 있습니다. 이곳보다 규모도 훨씬 큰 데다가 신관님들도 많이 계시지요. 신관장님도 계시고요.”
“그래요?”
‘신관장이 있는 신전이면 확실히 규모가 큰 곳인가 보네.’
나는 빙긋 웃으며 계속 말했다.
“그럼 여기 계신 신전의 관계자들은 모두 저와 함께 그곳으로 가시죠.”
“…예?”
늙은 수녀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뭘 놀라? 그럼 설마 내가 그냥 이대로 갈 거라고 생각했어? 그럼 너희는 또 어부들한테 기부금이라는 명목으로 돈을 뜯을 것 아냐.’
솔직히 어부들이 돈을 뜯기건 말건 나와는 크게 관계없는 일이긴 했으나.
적어도 날 도와준 늙은 어부를 생각해서라도 이 일은 확실히 마무리해 주고 싶었다.
“거기서 당신들이 저지른 과오를 참회하셔야 할 것 아닙니까.”
* * *
다음 날.
“커흠…….”
늙은 어부가 손녀와 함께 에크만 신전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할아버지, 진짜 그놈 말을 믿는 거예요?”
“그래도 그 눈빛은 거짓을 말하는 눈빛이 아니었어.”
노인의 말에 마린이 답답한 마음에 가슴을 두드린다.
“상단의 허드렛일이나 하던 사람이 어떻게 기사를 이기겠어요?! 이러지 말고 그냥 돌아가요. 괜히 신전에 들어갔다가 엔돈이 또 뭘 내놓으라고 하면 어떡해요?”
“그러지 말고 잠깐 여기서 기다려 보거라.”
늙은 어부는 문 앞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곧 신전의 문을 힘껏 두드렸다.
끼이이익-
그러자 어째선지 신전의 문이 힘없이 열렸고.
“저, 저건…….”
문 너머로 가득 쌓여 있는 은화의 산이 노인의 눈에 들어왔다.
“세상에……. 할아버지,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래요? 잠깐… 할아버지! 이것 좀 보세요!”
마린이 은화 위에 놓여 있던 양피지를 발견하곤 크게 소리친다.
“음… 뭐라고 적혀 있든?”
“그게… 구해 줘서 고맙다고, 여기에 있는 돈들은 우리 마을 사람들을 위해 쓰라고 적혀 있어요.”
마린이 까막눈인 할아버지를 위해 대신 양피지의 내용을 읽어 나가자.
늙은 어부의 새하얀 눈썹이 위아래로 꿈틀거린다.
“레바논 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사자를 보내셨던 모양이구나. 그는… 레바논 님의 사자였어…….”
“…그러게요.”
평소였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라며 투정을 부렸을 마린이었겠으나.
그녀 역시 이번만큼은 고개를 끄덕일 뿐 할아버지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얼른 이 기쁜 소식을 사람들에게 알리러 가자꾸나!”
* * *
삼 일 뒤.
우리는 목적지인 피카르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성이 워낙 커서 경비가 심할 줄 알았는데… 저놈들도 도움이 되네.’
철저한 경비를 할 거라는 나의 예상과 달리.
엔돈 신관 무리 덕에 우리는 별다른 의심을 받지 않고 성문을 통과했다.
“가, 갈프 신관님, 피카르 신전에 도착했습니다!”
마부석에 있던 기사, 맥기가 전방의 커다란 신전을 가리키며 소리치자.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확실히 성안에 있는 신전은 크기부터 다르네. 역시 영주가 사는 곳은 다르다 이건가?’
자작, 남작 등.
각각의 지위를 받은 영주들이 땅을 통치하는 다른 왕국들과 달리.
레바논 왕국의 영주들은 다름 아닌 신관장들이었다.
‘그래서 아크 신관장 그 늙은이도 시간이 남으면 자기가 영지를 관리하던 걸 이야기하곤 했었는데…….’
내가 이제는 바닷속의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을 아크 신관장을 떠올리던 그때.
푸히히히히힝-
갑자기 마차가 급정거를 한다.
“무슨 일이야?!”
“그게… 저 망할 노인이 갑자기 마차 앞으로 뛰어들어서…….”
억울해 보이는 맥기가 가리킨 곳에는.
“나 좀 도와줘……. 나 좀 도와줘…….”
말에게 간곡히 도움을 요청하는 추레한 노인이 자리하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마차 문을 열고는 노인에게 걸어갔다.
“어르신, 여기에 계시면 마차가 지나갈 수가 없습니다.”
“나 좀 도와줘…….”
‘하아… 그래, 까짓것 선행한다고 생각하자.’
“어르신, 대체 무슨 일이십니까?”
“지렸어.”
“…예?”
지렸다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설마…….’
“지렸어! 지렸다고! 축축해!”
아이처럼 생떼를 부리는 노인을 보며 난 미간을 찌푸렸다.
‘이 노인… 정신에 문제가 있는 사람인가 보네. 보호자도 없이 혼자 다니고 있었던 건가?’
돌봐 줄 가족이 없는 걸까.
아니면 가족이 정신 나간 노인을 잃어버리기라도 한 걸까.
내가 노인의 가족을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때.
“저기 있다! 저기 있어!”
“당장 잡아! 당장!”
어째선지 가족 대신 중무장한 성기사들이 노인을 발견하곤.
범죄자를 쫓듯 미친 듯이 달려오는 것 아닌가?
‘뭐야… 설마 죄인이었나? 하지만 딱 봐도 정상은 아닌 것 같은데…….’
정신이 온전치 못한 노인을 잡으려 저 많은 성기사들이 달려온다는 게.
내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나! 저놈들 싫어! 싫어! 싫어!”
콰드드드득-
갑자기 노인이 옆에 서 있던 나무를 뿌리 뽑아 들어 올리자.
‘…음?’
나는 멍하니 노인의 등판을 바라봤다.
“오지 마!”
노인이 달려오던 성기사들을 향해 나무를 홱 던지자.
“빌어먹을…….”
성기사들의 몸과 검신에 은은한 빛이 서려 간다.
서걱-
성기사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이가 단칼에 나무를 동강 내고는.
노인을 보며 소리친다.
“골버린 님! 제발 진정하십쇼! 다시 치료원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싫어! 너희는 내 말을 안 믿어 주잖아!”
화가 났는지 노인이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자.
퍼억, 퍼억-
노인이 날뛸 때마다 바닥이 움푹 파여 간다.
“…….”
‘대체 저 노인… 정체가 뭐지? 아니… 치료원이라는 곳은 대체 뭐 하는 곳인데 저런 노인을 데리고 있었던 거야?’
딱 봐도 심상치 않은 노인의 힘에 내가 침을 꿀꺽 삼키던 중.
“진짜야! 지하 감옥 밑에 비밀 통로가 있다니까! 왜 내 말을 안 믿어 줘!”
“아, 믿습니다! 믿으니까 제발 그쯤 하세요!”
나는 그들의 대화에 순간 몸을 움찔거렸다.
‘지하 감옥의… 비밀 통로? 설마 대신전 밑에 있는 지하 감옥을 이야기하는 건가? 근데…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비밀 통로가 있다고? 저 말이 진짜일까?’
워낙 노인의 상태가 오락가락하는 것 같아 보이는지라.
나는 저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만약 저 노인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곳을 이용하여 전대 성녀 헬렌을 찾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녀가 어떻게 나에 대한 예언을 남겼는지, 어째서 바알의 신도가 된 건지, 묻고 싶은 게 많긴 해.’
더욱이 소드마스터 에밀라가 지하 감옥에 들어갔다가 죽었을 거라 예상하는 상황에서.
정말 노인의 말대로 비밀 통로가 있다면 수많은 이목을 피하여 전대 성녀를 만나는 것도 가능하리라.
‘하지만 저 정신 나간 노인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내가 고민에 잠겨 있던 그때.
“아니야! 너희는 날 안 믿잖아! 다 알아! 거짓말쟁이는 벌을 받아야 해!”
화아아아악-
갑자기 노인의 몸에서 찬란한 신성력이 흘러나오더니.
삽시간에 노인의 몸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삭-
다시 노인이 모습을 드러낸 곳은 성기사들의 앞이었는데.
콰자자자자자자작-
“으아아아아악!”
“커어어어어억!”
방어구가 으깨지고 어디 한 대 맞은 것 같은 표정을 한 성기사들이 허공을 표류하고 있었다.
‘대체 저 노인… 정체가 뭐야?’
* * *
결국 노인은 잡혔다.
‘성기사 몇백 명이 온 건지…….’
거기다가 피카르 신전의 신관장, 프란 신관장과 대다수의 신관들이 투입됐던 덕에.
대로변은 그냥 아수라장으로 변했었다.
‘노인이 잡힌 것도 웃겼지.’
미쳐 날뛰던 노인이 설마 피곤하다고 제자리에서 그냥 나자빠져 자 버릴 줄이야.
내가 속으로 혀를 차던 중.
“여기, 확실히 아크 신관장님의 추천서가 맞네.”
눈앞에 있던 여인이 내게 양피지를 내밀며 말을 이어 간다.
“하지만 다음부턴 주의하는 게 좋을 거야. 본인이 임명한 신관이 떠돌이 신관에게 몰매를 맞은 상황이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니까. 나야 넘어간다지만 다른 신관장들도 그러리란 보장은 없잖아? 주의해.”
“감사드립니다, 프란 신관장님.”
내가 고개를 숙여 보이자.
프란 신관장은 됐다는 듯 고개를 젓는다.
“그러잖아도 에크만 신전에 쌓인 구더기를 한번 청소해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명분이 없던 차에 네가 대신 청소를 해 줬으니까 됐어.”
프란 신관장이 희미한 미소를 보이자.
나는 그녀를 보며 생각했다.
‘호오… 그래도 신관장은 아주 썩어 빠지진 않은 모양이네.’
“하지만 갈프 신관, 그쪽이 이곳에 머무르기 어려운 건 알지?”
“예, 엔돈 신관을 때렸을 때부터 그러리라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엔돈은 프란 신관장의 가신이었다.
그런데 내가 그녀의 가신을 건드렸으니 당연히 주변의 시선도 썩 곱지 않을 것이고.
프란 신관장은 그 부분을 우려한 것이리라.
“이해가 빠르니 다행이네. 그럼 곧장 대신전으로 가는 건가?”
“일단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또 엔돈 신관과 같은 사람을 보게 된다면… 그땐 저도 어떻게 행동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의 대답에 프란 신관장은 나를 보며 살짝 입꼬리를 올린다.
“레바논 님의 뜻을 따르는 것도 좋지만, 높이 올라가려면 눈치를 잘 봐야 할 거야.”
“눈치… 말입니까?”
“그래. 뭐, 어차피 넌 교황님의 세력을 등에 업었으니 큰 문제는 없겠다만. 그래도 조심은 해야겠지.”
‘교황의 세력이라……. 역시 아크 교수는 교황 쪽 사람이었구나. 뭐…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불현듯 낮에 있었던 일이 떠올라 프란 신관장을 보며 입을 뗐다.
“그런데 낮의 그 정신 나간 노인은 대체 누구였습니까?”
“아아… 미카엘 치료원에 계시던 분인데 어떻게 탈출을 하셨던 모양이야.”
‘미카엘 치료원? 그게 대체 뭔데? 정신병원이야?’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만약 미카엘 치료원이 굉장히 유명한 곳이라면… 신관인 내가 그곳을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되니까.’
질문을 했다가 내가 신관 행세를 하고 있다는 게 들통날 수도 있었기에.
“그렇군요.”
나는 적당히 그녀의 말에 호응해 주었다.
“골버린 성기사를 아나?”
“잘 모릅니다.”
“그렇겠지. 과거의 영웅을 기억하는 이가 몇이나 될까. 그분은 성마전쟁에서 크게 활약하셨던 성기사이자 소드마스터셨다.”
‘아아… 소드마스터였어?’
나는 그제야 노인이 어떻게 그런 강대한 힘을 갖고 있는지 납득할 수 있었으나.
동시에 한 가지 의문이 내 머릿속에 피어올랐다.
‘근데 소드마스터나 되시는 양반이 어쩌다 미친 거지?’
하나 나는 잠시 의문을 접어 두고 그녀의 말에 장단을 맞추었다.
“그런 분들을 보살펴야 한다니 고생이 많으십니다.”
“하아… 그러잖아도 치료원 때문에 고민이야. 분명 안에서 부상자들이 계속 나올 텐데, 치료원에 가려고 하는 신관들이 없어.”
‘가만… 이건 기횐가?!’
그러잖아도 지하 감옥의 비밀 통로에 대해 언급했던 골버린을 다시 만나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찾아올 줄이야.
나는 이때다 싶어 얼른 입을 뗐다.
“혹시 급한 일이라면 제가 좀 도와드리면 어떨까 싶습니다.”
“…네가?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프란 신관장이 깜짝 놀라 나를 바라보자.
‘뭐야… 왜 저렇게 쳐다봐? 어차피 소드마스터는 그 골버린이라는 노인 한 명일 거고, 그 노인만 조심히 대하면 되는 거잖아?’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다만 저도 일정이 있다 보니, 너무 오래 도와드리기는 어렵겠습니다만…….”
“그럼 치료원에 보낼 신관들을 구하기 전까지만 도와주는 건 어때?”
“그러지요.”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 말해. 이쪽에서도 최대한 배려해 줄게.”
‘필요한 거라…….’
그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몇 가지 물품을 줄 것을 요청했다.
* * *
다음 날.
“갈프 신관님! 도착했습니다!”
프란 신관장의 배웅을 받으며 마차에 올랐던 나는 느긋하게 마차에서 내리다가.
‘뭐… 뭐야, 이건?’
눈앞에 보이는 드높은 성벽을 보곤 혀를 내둘렀다.
‘여기가… 미카엘 치료원이라고?’
치료원이라 함은 병자들을 치료하는 곳이 아니던가?
근데 이곳은 꼭…….
‘치료원이 아니라 요새? 아냐… 감옥 같은데…….’
그러잖아도 높다란 산 위에 세워진 게.
꼭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세워진 거대한 요새 같기도 했다.
“갈프 신관님! 이쪽입니다!”
나는 마부의 안내를 따라 치료원의 입구인 성벽의 출입문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미카엘 치료원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일단 들어가시기에 앞서 이걸 착용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갑자기 병사가 내게 두터운 갑주와 투구를 내미는 것 아닌가?
“이건… 뭡니까?”
“방어구를 착용하셔야만 안으로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물론 그걸 입으셔도 장담은 못 드리겠습니다만…….”
병사가 말꼬리를 흘리자.
나는 방어구를 받아 든 채 멍하니 생각했다.
‘뭔데, 대체……. 설마 치료원이 아니라 이상한 곳에 온 건 아니겠지?’
나는 애써 의문을 삼키고는 병사의 말을 따라 방어구들을 전부 착용했다.
“그럼… 문을 열겠습니다.”
끼기기기기긱-
두터운 철문이 좌우로 젖혀지자.
나는 경비를 따라 문 안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뭐야. 평범한데?’
내 우려와 달리 성내는 피카르성과 별반 다를 게 없을 정도로 평범했다.
‘그나마 차이가 있다면 집들 대신 이상한 건물들이 있다는 건데…….’
내가 고개를 좌우로 틀며 바삐 미카엘 치료원을 구경하던 그때.
퍼어어어억-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어디선가 기다란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우욱… 그만… 제발… 이제 그만… 나갈래…….”
웬 병사 한 명이 우리의 앞에 툭 떨어진 채 입에서 빵 쪼가리를 게워 낸다.
‘무슨…….’
내가 멍하니 병사를 내려다보던 중.
“식사들은 했나? 식사들은 했나? 식사들은 했나? 식사들은 했나? 식사들은 했나?”
웬 노인 한 명이 실실 웃으며 우리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왔고.
“히이익…….”
“시, 신관님을 지켜라!”
갑자기 병사들이 내 주변을 에워싸듯 방어 태세를 갖추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