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나는 말귀를 못 알아먹는 팔칸을 보며 소리쳤다.
“당장 그곳으로 우리를 안내하라는 뜻이다. 이해했나?”
“아, 예!”
‘그래도 만약을 위해서 몇 명은 이곳에 남겨 놓는 게 낫겠지.’
“케서린, 너는 이곳에 남아서 출항한 배들을 전부 항만으로 다시 돌려놔라.”
“알겠습니다! 고트, 렌던, 페스린! 너희는 흑남님을 따라가라!”
케서린의 차출에 세 명의 흑마법사가 나의 뒤에 붙는다.
“그들을 데려가십쇼.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러지. 팔칸, 안내해라.”
우리는 팔칸이 데려온 말을 타고 북서쪽에 있다는 항만으로 황급히 이동했다.
1시간쯤 달렸을까.
“저깁니다!”
팔칸이 전방을 가리키며 소리 지른다.
‘흠… 확실히 아까 봤던 항만보다 작아 보이긴 하네.’
이곳에는 선착장도 몇 없었을뿐더러.
이곳에 정박된 배들이라고는 어부들의 조각배 정도가 전부였다.
‘이 정도 크기면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도 않았겠어.’
내가 항만을 둘러보며 생각을 이어 가던 그때.
“으으으으…….”
한 선착장에서 이상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저건…….’
나는 황급히 그곳으로 달려가.
해적들의 입에 칭칭 감겨 있던 밧줄을 풀어냈다.
“허억, 허억… 누군지 모르겠지만 고맙…….”
“누가 너희를 이곳에 묶어 뒀지?”
“그게…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희는 그냥 남동쪽 항만에 있어야 할 동료의 배가 여기에 있기에 궁금해서 와 본 것뿐이었는데… 갑자기 웬 미친 늙은이가 저희를 두드려 패고는 이곳에 묶어 놨습니다.”
‘역시 여기로 도망친 건가……. 아오… 저 멍청한 새끼.’
나는 팔칸을 째려보며 생각을 이어 갔다.
‘이곳이 레바논과 더 가까운 항만이면 당연히 이곳을 집중적으로 봉쇄를 했어야지, 어딜 봉쇄하고 있었던 거야?’
하지만 저 늙은 해적을 타박해 봐야 별반 달라질 게 없었기에.
나는 붙잡혀 있던 해적들을 보며 말을 이어 갔다.
“그 미친 늙은이는 어디로 갔지?”
“동료의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습니다!”
“출항한 지는 얼마나 됐고, 어느 쪽으로 갔지?”
“태양이 저기쯤 있을 때였습니다. 방향은 저쪽입니다.”
한 해적이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킨 뒤 뒤이어 북쪽 방면을 보며 말하자.
나는 하늘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대략 한 시간 정도 지난 건가?’
“지금이라도 배를 띄우면 놈을 쫓을 수 있겠어?”
나의 물음에 팔칸이 애매한 표정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가능이야 할 겁니다만, 지금 이 항만에 있는 배들이라고는 고기잡이배들과 노획한 상선들밖에 없습니다.”
“상선을 타고 가면 되는 것 아냐?”
“그게… 아직 수리를 안 해 놔서…….”
팔칸의 말에 나는 그의 손에 들려 있던 망원경을 낚아채어 상선을 살폈다.
‘이런…….’
돛은 곳곳이 찢겨 제 형체를 찾아볼 수 없었고.
돛대들 또한 기역 자로 꺾여 흉물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진작 수리를 좀 해 놓을 것이지, 저렇게 방치할 거면 왜 상선을 노획한 거야?’
내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던 그때.
한 흑마법사가 내게 다가와 말한다.
“랄프 님, 어쩌면 제가 계약한 악마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도움이 된다고?’
“무슨 악마와 계약했는데?”
나의 물음에 그녀는 대답 대신 술식을 읊기 시작했고.
부글부글부글-
곧 수면 위로 널따랗게 커다란 기포들이 올라오더니.
철썩-
웬 커다란 배 한 척이 수면을 뚫고 올라오는 것 아닌가?
‘저건…….’
찢어진 돛과 박살 난 돛대들 그리고 곳곳이 파손된 갑판까지.
누가 보면 유령선이라고 할 정도로 갑자기 나타난 배의 상태는 처참해 보였으나.
나는 저게 뭔지 잘 알고 있었다.
‘마고라랑 계약한 놈이 있을 줄이야……. 특이한 녀석이네.’
마고라.
유령선의 모습을 하고 있는 악마로서.
솔직히 말하면 굉장히 효용성이 떨어지는 악마이기도 했다.
‘물이 있는 곳이 아니면 쓸모가 없으니까. 뭐… 그래도 지금 같은 상황에선 최고의 악마긴 하네.’
나는 ‘쓰레기 같은 능력일지 몰라도 세상에 쓸모없는 악마는 없다’라는 레논 부탑주의 말에 다시금 동의하며.
마고라와 계약한 흑마법사에게 물었다.
“악마는 얼마나 유지할 수 있지?”
“그게… 항해에만 집중한다면 적어도 반나절 이상은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고라의 속도는?”
나의 말에 흑마법사가 자랑스럽게 제 가슴을 두드려 보인다.
“저깟 상선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를 거라고 감히 장담할 수 있습니다!”
“그래? 좋아, 그럼 바로 탑승하자고.”
“저, 흑남님… 저희는, 그것이… 악마를 탄다는 게 조금…….”
어째선지 나의 말에 팔칸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인다.
“다 갈 필요는 없겠지. 그럼 너희는 이곳을 지키고 있어라.”
“예,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대신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제 부하 몇을 보내겠습니다. 혹시라도 뱃길을 잃는 경우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고맙군.”
나는 팔칸을 승선에서 제외하고는.
나를 따르는 악마 병단의 흑마법사들 그리고 일부 해적들과 함께 마고라에 승선했다.
그러자.
촤라라락-
선원도 없건만 돛이 제멋대로 펼쳐지더니.
배가 서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호오… 선원들도 없는데 알아서 움직이다니, 이게 마고라의 힘인가 보네.”
“그렇습니다! 보통 배를 움직이기 위해선 많은 선원들을 필요로 하지만, 마고라는 그런 게 필요 없습니다!”
마고라와 계약한 흑마법사가 자랑스럽게 소리치자.
‘그래. 자부심을 가질 만도 하지.’
“훌륭하군.”
나는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여 줬다.
철썩-
유령선이 쾌속 항해 하길 두어 시간쯤 지났을까.
“어?! 저기! 전방에 배가 보입니다!”
한 해적의 외침에 나는 뱃머리 부분으로 이동하여.
망원경을 눈에 갖다 댔다.
‘그렇게 멀리는 못 갔구나.’
나는 갑판 위를 바삐 누비는 해적들을 관찰하며 입을 뗐다.
“비프! 마고라로 배를 포격할 수 있겠어?”
“가능은 합니다! 다만 그럴 경우 마고라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짧아지게 됩니다!”
“그래? 그럼 됐다. 일단 배를 가까이 붙이는 데 집중해!”
철썩-
확실히 마고라가 악마라 그런지 유령선은 점점 표적을 향해 접근해 갔고.
어느덧 배의 뒷부분이 선명히 보이자 나는 수하들을 보며 소리쳤다.
“표적이 눈앞에 있다! 전투 준비 해!”
“예!”
‘일단 저 배부터 멈춰 세워야지.’
나는 지팡이를 들고 돛대를 보며 흑마력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배가 박살 나도 계속 갈 수 있나 보자.’
이윽고 영창을 끝마친 내가 돛대들을 보며 지팡이를 뻗자.
쩌저저저적-
검게 변색되어 가던 돛대들의 밑동 부분에서 비틀린 울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어어어?”
“피, 피해!”
느닷없이 돛대들이 무너지자 갑판 위에 있던 해적들은 아연실색하여 허겁지겁 자리를 피했고.
쿵, 쿵, 쿵-
밑동이 썩은 돛대들이 줄줄이 갑판 위로 쓰러져 내린다.
“우와아아아악!”
삽시간에 선박이 아수라장으로 변한 탓일까.
“…손님이 온 건가.”
선장실에서 나온 아크가 난장판이 된 갑판을 지나.
배의 후미 부분으로 나와 나를 정확히 바라보며 소리친다.
“허허, 오랜만이군!”
이제 내게 존대할 이유가 사라진 탓일까.
그는 내게 편히 말을 던졌고.
나는 활짝 웃는 아크 신관장을 보며 픽 실소를 흘렸다.
‘저 미친놈이… 웃어?’
눈앞의 상황을 보고도 웃을 수 있다니.
나는 저 사이비 신관장의 머릿속이 어떻게 되어 있나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웃음이 나오나 보네.”
“허허허, 레바논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다면 그건 분명 기쁜 일이네. 하나 설사 이곳에서 죽게 되더라도 순교를 하게 되는 셈이니 절로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지.”
‘허 참…….’
꽤나 그럴듯한 아크 신관장의 말에 나는 실소를 흘리며 지팡이를 들었다.
“내가 꽤 많은 흑마법사들을 봐 왔지만 너 같은 미친놈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제른을 도와준 거지?”
“허허, 당연히 성녀님의 순교를 돕기 위함이었네.”
‘저 미친놈… 진짜로 성녀를 순교시키려고 그런 거였어?’
“제른 부탑주라면 무사히 성녀님을 순교시켜 줄 거라고 믿었었지. 다만 항상 부족하다고 평가를 받으시던 성녀님께서 그런 괴력을 갖고 있을 줄은 예상치 못했지만 말이네. 허허…….”
그때의 일을 회상하기라도 하는 걸까.
아크 신관장은 씁쓸히 웃다가 내게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랄프, 자네는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온 건가? 허허, 설마 나를 배웅하려고 온 것이라면 정중하게 사양하겠네.”
“배웅? 그럴 리가 있나? 당연히 널 잡으러 왔지.”
“허허, 나를 말인가?”
나의 말에 아크 신관장은 짐짓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도.
손에 메이스를 쥐고는 소리친다.
“허허, 나를 죽일 생각으로 덤벼도 승패를 장담할 수 없을 터인데, 굉장히 오만해진 모양이군.”
“원하는 정보만 얻어 내고 나면 네 소원대로 순교시켜 줄게.”
“원하는 정보라……. 허허, 일개 신관장이 뭘 알고 있겠나?”
아크 신관장이 호기심을 보이자.
나는 무심한 태도를 유지하며 소리쳤다.
“제2성기사단장 에밀라가 얼마 전에 죽었다던데, 알고 있지?”
“…….”
내 말을 믿기 어려웠던 걸까.
침묵으로 일관하는 아크 신관장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흠… 몰랐던 건가? 하긴… 그간 추격을 피해 도주하기 바빴을 테니.’
“…그런가? 그건 의외군. 흑마법사들의 손에 순교를 당하신 건가?”
“아니. 제이나와 에밀라는 이미 본국으로 돌아갔고, 에밀라가 지병으로 죽었다는 게 레바논 쪽의 입장인데?”
“…지병으로 죽었다고? 허허허허…….”
아크가 다시 말을 잃자.
나는 망원경을 들어 아크 신관장의 표정을 살폈다.
‘호오… 뭔가 표정이 오묘하네. 그래, 소드마스터가 지병으로 죽었다고 하니 너도 뭔가 좀 이상하다 싶지?’
“그래. 소드마스터가 갑자기 급사했다? 뭔가 이상하지 않아?”
나의 물음에 아크 신관장은 잠시 말이 없다가.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허허, 이상할 게 뭐 있겠나. 그것이 그녀의 운명이었을 뿐이네.”
“멀쩡했던 사람이, 그것도 소드마스터가 그렇게 허망하게 죽었는데 안 이상하다고?”
나는 아크를 보며 계속 소리쳤다.
“그녀가 급사한 이유가 뭘까? 나는 에밀라가 헬렌을 만난 탓에 죽었다고 보는데, 그쪽은 어떻게 생각해?”
“허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군.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나를 쫓아온 겐가?”
“정말 몰라? 넌 헬렌에 대해 잘 알고 있잖아?”
내가 떠보듯 질문을 던지자.
“허허, 나는 잘 모르는 일이네. 그리고…….”
무릎을 살짝 구부리는 아크 신관장.
화악-
느닷없이 하늘로 도약한 그는 순식간에 내가 있는 곳으로 날아와.
“그에 대한 답은 베논에게 가서 듣게.”
내 머리를 노리고 우악스럽게 메이스를 내다 꽂으려 했다.
쇄애애애액-
“흡!”
메이스의 뭉툭한 부분이 내 머리로 향하자 나는 황급히 뒤로 물러났고.
콰아아아아앙-
아크 교수의 일격이 갑판을 직격한다.
‘배 사이의 간격이 제법 넓었는데 그걸 뛰어넘는다고?’
“허허, 전보다 제법 기민해졌군.”
아크 신관장의 칭찬에 나는 대답 대신 지팡이를 등에 이었다.
“흡!”
그러고는 발끝에 힘을 주고 앞으로 쇄도하여.
아크 신관장의 면상에 있는 힘껏 주먹을 날렸다.
“허허… 그런 주먹질 따위는…….”
그런 나를 보며 미소를 보이는 아크 교수.
쇄애애애애애액-
“…음?!”
하지만 내 주먹에 넘실거리는 검은 기운을 보고는.
그는 황급히 바닥을 굴러 나의 일격을 피해 낸다.
“방금 그건… 뭔가?”
“레바논한테 물어봐.”
탁-
나는 아크가 당황한 틈을 놓치지 않고자 갑판을 질주했고.
그대로 놈의 안면에 주먹을 욱여넣었다.
“허…….”
아크 신관장이 황급히 메이스를 쳐들자.
쩌어어억-
메이스와 주먹이 맞닿은 부분에서 커다란 굉음과 더불어 힘의 파동이 퍼져 나온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겐가? 흑마법사가 박투술이라니…….”
나의 박투술에 기겁을 한 걸까.
아크 신관장은 눈을 부릅뜬 채 내게 물었으나.
“레바논한테 물어보라니까?”
나는 놀고 있던 왼손을 뒤로 뺐다가 놈의 비어 있는 옆구리를 향해 쭈욱 뻗었다.
검은 투기가 맺힌 주먹이 옆구리로 날아오자.
“허업!”
아크 신관장은 메이스를 빼내어 사선으로 기울여 나의 일격을 방어하고자 했다.
쩌어어어어어억-
나의 왼손이 메이스를 직격하자.
“흐읍…….”
아크 신관장의 몸이 힘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주르르륵 미끄러져 나간다.
“허허… 도무지 믿을 수가 없군, 믿을 수가 없어……. 육탄전을 하는 흑마법사라니…….”
자신이 뒤로 밀려났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은 걸까.
“그저 장난으로 배운 박투술인 줄 알았더니 진심이었던 모양이군. 허허, 사죄하겠네.”
허허롭게 웃던 아크 신관장이 웃음기가 빠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중.
화아아아아아악-
갑자기 그의 몸에서 찬란한 빛이 터져 나온다.
‘저건… 아니, 어떻게 저런 사이비 신관장이 저만한 신성력을 갖고 있을 수 있는 거야?’
“허허, 아직 순교해야 할 목숨들이 많은 만큼 나도 전력을 다하겠네.”
메이스를 고쳐 잡은 아크 신관장의 눈가가 싸해지자.
‘순수하게 힘으로만 봤을 때는, 내 흑마력이 아크 신관장의 신성력을 압도할 거야. 확실히 내 일격이 효과가 있었잖아? 충분히 해볼 만해.’
나 또한 주먹에 흑마력을 한껏 불어넣어 놈을 노려보며 전의를 끌어올리던 그때.
고어어어-
어디선가 거대한 뿔피리 같은 고동 소리가 내 귓전을 울려왔다.
‘방금 건… 잘못 들은 건가?’
고어어어어어-
하지만 재차 뿔피리 소리가 울려온다.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이건 대체 무슨 소리야?’
내가 긴장을 풀지 않고 아크 신관장을 노려보던 그때.
“허허… 오늘은 참 기이한 날이군. 박투술을 쓰는 흑마법사를 본 것도 모자라 생전에 저 고동 소리까지 듣게 될 줄이야…….”
아크 교수가 메이스를 거두며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저놈은 저게 무슨 소리인지 아는 건가?’
“더 대화를 나누고 싶지만 우리의 만남은 여기까지가 좋을 것 같네.”
“…뭐?”
“허허… 참 묘하게도 랄프, 자네가 성장한 모습을 보니 안타까우면서도 즐겁군. 그럼, 잘 있게.”
아크 신관장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하늘 높이 도약하여 약탈한 배로 돌아가더니.
해적들 몇을 데리고 급히 바다에 조각배를 띄운다.
‘저거… 갑자기 왜 저래?’
아무리 돛대가 작살났다고 해도 그렇지.
큰 배를 버리고 갑자기 조각배로 갈아탈 이유가 있는 건가?
‘방금 그 소리가 대체 뭐라고 저렇게 급하게 구는 건지 모르겠지만… 내가 그대로 놔줄 거라고 생각했나?’
나는 등에 이고 있던 지팡이를 다시 손에 잡고는.
조각배를 향해 마법을 사용하려고 했다.
바로 그때.
고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다시금 거대한 뿔피리 소리가 들려왔는데, 아까보다 더 크고 선명해졌으며.
“어어어어어어?”
어째선지 선체가 좌우로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으지지지지지직-
이윽고 유령선 마고라 밑에서 무언가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려오자.
[키야아아아아아!]
유령선에서 기이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온다.
‘이건…….’
갑작스러운 아크 신관장의 도주. 그리고 유령선 밑에서 들려오는 불길한 소리.
그 모든 걸 종합한 나는 배에 있는 흑마법사들과 해적들을 보며 소리쳤다.
“지금 당장 옆 배로 뛰어! 당장!”
“예?! 예!”
나의 고함에 해적들은 황급히 널따란 판자를 갖고 와.
옆배의 난간에 판자를 걸었다.
쿵-
“당장 뛰어! 당장!”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판자 위에 올라타 그대로 옆에 있던 배로 뛰어내린 뒤.
천천히 등을 돌렸다.
콰자자자자자작-
[키야아아아아아아악!]
유령선 마고라는 반으로 찢긴 채로 역소환되고 있었고.
고어어어어어어어어어-
마고라가 있던 자리 위로.
당장이라도 배를 전복시킬 법한 크기의 거대한 파도의 벽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 어어…….”
“베, 베논이시여…….”
거대한 해일을 바라보는 해적들의 얼굴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사아아아아아-
하지만 이미 움직이기 시작한 해일은 거침없이 내가 타고 있는 배를 향해 다가왔고.
‘이런 미친…….’
해일을 탄 배가 오른쪽으로 크게 기우뚱거리자.
나는 황급히 술식을 읊었다.
쩌저저저적-
그러자 곧 허공에 큰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오랜만에 불렀네요.]
펠기누스가 나를 보며 볼멘소리를 해 온다.
“잔소리는 나중에 들어 줄게. 일단 당장 이곳을 벗어나야 해, 당장!”
[네, 그러죠.]
펠기누스가 툴툴거리면서도 순순히 나를 끌어안고 하늘로 날아오르자.
나는 당황하여 소리쳤다.
“나 혼자만 끌고 올라가면 어떡해?! 저기 배 위에 사람들 보이지? 쟤들도 빼낼 수 있겠어?”
[가능은 하죠. 근데 그러려면 당신의 힘이 좀 소모될 텐데 괜찮겠어요?]
“신경 쓰지 말고 당장 해.”
나의 명령에 펠기누스가 갑판 위의 흑마법사들과 해적들을 보며 손가락을 까딱거린다.
그러자.
“어어어어?!”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악!”
갑자기 허공으로 치솟은 그들의 몸이 삽시간에 거대한 파도를 지나.
잔잔한 수면으로 떨어져 내린다.
[이 정도면 됐죠?]
‘흑마법사들이 수영을 하나? 옆에 해적들이 있으니 어떻게든 빠져나갈 수는 있겠지.’
“우와아악!”
“뭐, 뭐였지?”
다행히 바다에 빠졌던 이들이 하나둘 수면 위로 머리를 내민다.
‘후우… 그래. 저 정도면 헤엄쳐서 갈 수 있겠지.’
내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중.
솨아아아아아아-
그 크던 배가 삽시간에 해일에 삼켜져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나는 말없이 배가 있었던 자리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아크 신관장이 띄웠던 조각배가 있던 자리를 살폈다.
‘무사할 리가 없겠지.’
“…….”
해일이 지나간 자리에 역시나 조각배는 보이지 않는다.
‘후우…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
내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상황을 파악하던 사이.
고어어어어어어어어어-
이번에는 아주 선명한 뿔피리 소리가 내 귓가를 흔들어 놓는다.
‘저건… 대체 저게 뭐야?!’
물길이 가신 자리 위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커다란 섬이었다.
‘화산이 폭발한 것도 아닌데 갑자기 섬이 왜 생긴 거지?’
내가 도무지 현 상황에 납득하지 못하던 그때.
[어머, 천년백작이네요. 오랜만에 재밌는 걸 보네요.]
펠기누스가 섬을 보며 흥미롭다는 듯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