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카데미의 노예가 살아남는 법-75화 (75/200)

75.

자기 자식만큼은 자신보다 나은 교육을 받게 하고픈 것이 부모의 마음일까.

나는 상상 이상으로 들이닥친 학부모들을 보며 소리쳤다.

“자, 진정들 하시고 여기 교수들이 나누어 드리는 양피지를 받아 내용을 적어 주시면 됩니다.”

“이건…….”

양피지들을 받아 간 학부모들이 내용을 살피고는 의아하다는 듯 소리친다.

“가문을 적는 란은 어디에 있죠?”

“가문은 안 적으셔도 됩니다! 저희 흑립 유치원은 모든 원생들에게 동등한 교육을 제공합니다.”

“…그래요?”

‘그럼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그놈의 가문 때문에 흑카데미에서도 얼마나 말이 많았는데?’

앞에서야 똑같은 학생 대우를 한다고 하더라도.

뒤에서는 학생들의 가문에 따라 차별 대우 하는 게 일상 아니었던가?

“양피지를 다 작성하신 분들께서는 돌아가셔도 좋고, 아니면 흑립 유치원을 둘러보셔도 좋습니다.”

나의 외침이 끝나자.

어느 학부모 할 것 없이 양피지를 교수들의 손에 쥐여 주고는 허겁지겁 흑립 유치원 안으로 들어간다.

“어머나, 세상에! 여보, 저것 좀 봐요! 아담하긴 해도 내부를 참 잘 꾸며 놨네요.”

“여긴 교실인가 보군. 그보다 아까 내가 교수들 얼굴을 좀 유심히 살펴봤는데 제법 나쁘지 않더군.”

“저기 정원은 차를 마시는 곳인가 보네요. 예뻐라.”

학부모들은 성안 곳곳을 둘러보며 연신 감탄을 연발했다.

“뭐… 성안을 잘 꾸민 것 같긴 한데, 중요한 건 우리 아이가 이곳에 입학할 수 있냐는 게 문제군.”

“그래도 이런 기회가 생긴 게 어디예요? 우리 때는 물론이고, 지금도 흑카데미를 나오지 않으면 제대로 된 흑마법사 취급도 안 해 주잖아요?”

“당신 말이 맞아. 흑립 유치원을 졸업하면 곧바로 흑카데미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진다고 하니 이건 큰 기회지.”

흑립 유치원.

가문의 무게를 따지지 않는 이곳은 평범한 흑마법사들에게는 큰 기회의 장이었다.

“근데 확실히 뭐라 해야 할까요. 흑남님이 흑탑에 들어오시고 나서부터 뭔가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언제고 백부님께서 내게 최근의 흑탑에 대해 이야기하신 적이 있었는데, 흑탑의 기조나 분위기가 확실히 달라진 모양이더군.”

흑립 유치원의 복도를 걷던 부부가 나지막이 대화를 이어 나간다.

“백부님께서 최근 들어 결혼을 기피하던 젊은 흑마법사들이 많이 결혼했다고 말씀하셨지.”

“어머, 정말요? 의아하네요. 대부분은 결혼을 싫어하지 않았나요?”

“그랬었지. 하지만 흑남께서 다른 탑의 마법사들과의 혼약을 주선하신 뒤로 그런 풍조도 많이 없어졌다더군.”

남편의 말에 아내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래요? 정말 잘됐네요!”

“흑마법사 입장에선 골머리를 앓던 일 하나를 간단하게 처리했으니 잘된 일이지. 여하튼 지금 흑탑에서 실질적인 실권자는 부탑주들이 아니라 흑남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야.”

“그럼 우리 아이를 반드시 입학시켜야겠네요! 흑남께서 운영하는 흑립 유치원 졸업생이 되면 흑남님께서 우리 아이를 흑탑에서 이끌어 주실 수도 있는 거잖아요?”

아내의 말에 남편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겠지. 하지만 이곳에 입학하려면 우리가 적은 양피지 심사라고 했던가… 여하튼 그것 말고도 두 시험을 더 치러야 한다던데. 난 우리 아이가 이곳에 입학할 수 있을는지… 잘 모르겠군.”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고 베논 님께 기도나 하세요!”

“크흠…….”

학부모들이 한창 흑립 유치원을 둘러보며 저마다 꿈을 키워 나가는 사이.

“볼드 학장, 양피지들은 다 받았어?”

나는 볼드 학장과 흑립 유치원 교수들을 독촉하며 양피지들을 모았다.

“여기 있습니다. 다 합해서 825장입니다.”

“825장? 생각보다 호응이 좋네.”

“자녀들에게 질 좋은 교육을 받게 하고픈 것도 있겠습니다만, 무엇보다 랄프 님과 연을 트려는 목적도 있을 겁니다.”

볼드 학장의 말에 나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나와 인연을 튼다고?”

“예. 최근 들어 그런 기류가 흐르고 있었습니다만…….”

‘그런 기류가 있었다고? 딱히 그런 느낌은 못 받았는데.’

“최근 결혼을 한 흑마법사들을 중심으로 해서 흑남님의 소문이 검은 대지에 많이 퍼졌습니다. 거기다가 흑남께서 제른 부탑… 제른을 쓰러뜨리셨다는 소문까지 퍼진 게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볼드 학장은 슬며시 나의 눈치를 살피고는 계속 말을 이어 간다.

“그래서 학부모들이 랄프 님과 어떻게든 인연을 만들고자 자기의 아이를 흑립 유치원에 입학시키려 한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흠… 그래?”

‘그런 소문은 또 언제 퍼진 거야?’

나름 바깥 상황에 신경을 쓴다고 눈과 귀를 열고 생활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나 자신의 소문에는 둔감했다는 게 괜히 우습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쁘지 않은 기분이야.’

“여하튼 한 학년 정원이 500명이니까 325명은 떨어뜨려야 된다는 거네.”

“심사 기준은 전에 말씀하신 대로 진행을 하면 되겠습니까?”

“그래. 가문이나 재력 같은 건 전부 제쳐 두고 입학할 원생 나이만 맞으면 전부 합격 처리 해. 어차피 두 번째랑 최종 시험에서 걸러 내면 되니까.”

나의 말에 볼드 학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던전 제작이 완료됐다고 합니다.”

“그래? 빠르네.”

“3층 크기의 지하 던전이라 금방 만든 모양입니다.”

얼마 전, 2차 입학 시험 준비를 위해 시련의 탑에서 마법사를 초빙했었는데.

생각보다 금방 완성을 한 모양이다.

“그럼 2차 시험 준비도 얼추 다 끝났다고 봐야겠네.”

“언데드는 얼마나 투입할까요?”

“어차피 애들이 보는 시험이야. 많이 투입하지는 말고, 대신 도굴꾼들을 불러다가 함정을 설치하게 해.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그런 것 말고 간단한 걸로.”

나는 볼드 학장을 보며 계속 말했다.

“혹시라도 시험을 치르던 학생이 죽는 경우가 발생하면……. 무슨 말인지 알지?”

“예! 최대한 안전에 심혈을 기울여 진행하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서류 심사 통과한 학부모님들께는 2차 시험 일정 알려 드리고.”

* * *

나는 볼드 학장에게 현장 관리를 맡기고는.

흑혼해 듀오의 총책임자인 아스칼을 만나기 위해 곧장 흑탑으로 이동했다.

‘잘 영업하나 했더니 또 무슨 일인 건지…….’

내가 아스칼의 집무실로 들어가자.

“흑남님! 오셨습니까!”

얼굴이 초췌하여 눈밑이 다크서클로 새까매진 아스칼이 나를 격하게 반긴다.

“무슨 일이야? 뭐 문제라도 생겼어?”

“제발… 제발 저 좀 살려 주십쇼…….”

“무슨 일인데 그래?”

나의 물음에 아스칼은 울먹이듯 말한다.

“아니, 글쎄… 며칠 전부터 갑자기 흑혼해 듀오에 가입하려는 흑마법사들이 폭등해서… 저로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돼요…….”

‘갑자기 가입자가 폭등했다고?’

“갑자기 왜 폭등을 해? 폭등할 이유가 있어? 혹시 네가 가입 조건을 너무 낮춘 건 아니지?”

“아니에요! 분명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요!”

“그럼 폭등을 할 이유가 없잖아?”

나의 물음에 넌지시 입을 떼는 아스칼.

“제 생각에는… 아무래도 랄프 님이 만드신 흑립 유치원 때문인 것 같은데요.”

“…뭐?”

아스칼의 말에 나는 어안이 벙벙하여 그를 바라봤다.

“그게 무슨 말이야? 흑립 유치원이랑 흑혼해 듀오의 가입자가 늘어나는 게 무슨 상관이 있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게, 지금 젊은 흑마법사들 사이에서 이런 이야기가 돌고 있어요. 흑립 유치원은 출세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들어가야만 하는 관문 같은 거라고 말이죠.”

“…뭐?”

‘흑립 유치원이 출세를 위한 관문이라고? 나는 그런 취지로 지은 게 아닌데?’

애당초 흑립 유치원은 나의 흑마력을 상승시키기 위해 지은 시설이건만.

출세를 위한 관문이라니?

“그게 사실이야?”

“예, 정말 그렇다니까요? 그런데 흑립 유치원은 어린애들만 들어가는 곳이니 젊은 흑마법사라고 해도 들어갈 수 없잖아요? 그래서 대신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 흑립 유치원에 자기 아이를 넣으려고 하는 탓에 흑혼해 듀오에 가입하려는 흑마법사들도 폭증한 것 같아요.”

“아…….”

‘자기 대에서 출세하기는 어려울 것 같으니까 아이를 통해 출세의 기반을 다지겠다, 뭐 그런 건가? 하여간 그놈의 권력이란 게 뭔지.’

나는 속으로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아스칼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며 말을 이어 갔다.

“그래, 알았다. 그 부분은 내가 해결할게. 흑혼해 듀오를 함께 관리할 사람을 더 늘려 주면 되는 거지?”

“예! 맞아요! 바로 그거예요!”

거의 절규하듯 소리치는 아스칼을 보며.

나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참에 아스칼이 겪는 문제를 좀 해결해 주고 가야겠어.’

“그 외에 또 다른 문제는 없어?”

“아무래도 고객들이 계속 늘어나다 보니 고객들이 요구하는 조건도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어요. 특히 요즘은 비마법사를 선호하는 쪽이 제일 많은 상황이고요.”

“비마법사를 선호한다고? 그건 좀 의외네?”

내가 놀라움을 보이자 아스칼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유행인 건지 뭔지……. 여하튼 그래서 제 나름대로 크라켄 왕국 쪽에 있는 인맥을 동원해서 노선을 뚫어 보려고 했는데… 그게 쉽지가 않네요.”

“왜?”

“그야… 일반인들은 흑마법사랑 결혼을 안 하려고 하는 게 커서 그렇죠 뭐…….”

‘하기야, 확실히 일반인들은 어렵겠지. 앞으로도 어려울 거고.’

정신이 멀쩡한 사람 중에 흑마법사와 결혼을 하려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하지만 아스칼의 말대로 새로운 노선을 개척할 필요는 있어.’

지금이야 다른 탑의 마법사들과 결혼을 주선한다고 해도.

언제까지고 그럴 수만은 없으니 말이다.

‘음… 새로운 노선이라……. 가만…….’

나는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다가 돌연 한 가지 묘수를 떠올리고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아스칼을 바라봤다.

“이건 어때. 흑카데미 교수 중에 힐락이라고 다크엘프가 있는 건 알아? 마물학 교수인데.”

“그야 알고 있죠. 그런데 그건 왜……. 랄프 님, 설마……?”

아스칼이 경악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네가 생각한 그게 맞을 거야. 내가 힐락 교수를 네게 소개해 줄 테니까 그녀랑 잘 협상해서 다크엘프쪽에도 노선을 뚫어 봐.”

“아하하…….”

나의 발상에 큰 감격이라도 한 것일까.

아스칼은 울상을 지으며 내게 말한다.

“하지만 그러려면… 검은 숲에 들어가야 되잖아요?”

“그렇지. 그러니까 힐락 교수랑 같이 들어가야지. 그 교수는 검은 숲 출신이니까 함께 다닌다면 죽지는 않을 거야. 내가 보증한다.”

하물며 보우마스터인 힐락 교수가 아스칼과 함께한다면.

아스칼이 검은 숲에서 위험에 빠질 일도 적을 터.

“하지만…….”

아스칼이 망설이자.

턱-

나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푸른 미스릴괴를 하나 꺼내어 그에게 내밀었다.

“이, 이건…….”

“그래, 미스릴괴야. 며칠 전에 내가 갖고 있던 미스릴 광산에서 보내온 건데, 출장비로 써.”

“…허업!”

금융 치료가 잘 먹혀든 걸까.

발광석처럼 환해진 아스칼의 얼굴에 굳은 결의가 들어선다.

“흑남님과 고객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보죠!”

혹시라도 내가 뺏어 갈까 얼른 미스릴괴를 받아 든 아스칼.

하나 그는 이내 다시 걱정이 들었는지 조심스럽게 내게 묻는다.

“근데… 갔다가 다크엘프들한테 화살을 맞는 건 아니겠죠?”

“그건 네 영업 실력에 달려 있겠지? 만약 네가 다크엘프들을 흑혼해 듀오에 가입시키잖아? 그러면…….”

턱-

나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미스릴괴 5개를 추가로 꺼내어 그의 앞에 내보이며 말을 이어 갔다.

“이건 다 네 게 될 거야.”

“…이 한 몸 다 바쳐 일하겠습니다!”

* * *

당일 밤.

‘후우…….’

나는 모든 일정을 끝마치고 방으로 돌아와 슬쩍 제이나가 있는 방을 살폈다.

“흠흠…….”

침대에 누워 책을 읽고 있는 제이나의 옆에는 매점에서 산 과자가 놓여 있었다.

‘팔자 좋네.’

나는 속으로 웃음을 흘리고는.

나가란 탑주가 주었던 주머니에서 책 한 권을 꺼내었다.

‘그간 너무 바빠서 앞부분밖에 못 읽었지만 오늘은 그래도 다 읽어 보자.’

나는 차분히 바알의 비사가 담긴 책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고.

스르륵-

‘뭐야, 이건…….’

책의 중간 부근쯤을 읽던 나는 낯선 정보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게… 진짠가? 이걸 내가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 거지?’

나는 도무지 납득이 가질 않아 책을 덮었다.

책에 적혀 있는 내용이 사실인지 아니면 왜곡된 정보인지 믿기지가 않았기에.

나는 한참이고 우두커니 의자에 앉아 있다가 천천히 제이나의 방으로 향했다.

와삭-

“제이나, 한 가지만 좀 물읍시다.”

“음? 뭔데요?”

슬며시 과자를 옆으로 밀치고는 나를 바라보는 제이나를 보며.

나는 천천히 입을 뗐다.

“전대 성녀가 재앙의 문을 열려고 했다는 게 사실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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