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카데미의 노예가 살아남는 법-64화 (64/200)

64.

나는 남자의 안내를 따라 정원을 지나.

저택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안은 생각보다 평범하네. 평범한 가정집이라고 해도 믿겠어. 도굴꾼들에게서 매입한 물건들을 두는 곳은 따로 있나?’

내가 두리번거리며 저택 안을 살피던 중.

“편린의 물을 갖고 왔다고?”

저택 2층의 계단 부근에서 여인의 음성이 들려온다.

‘저 여자가… 하므네?’

나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상대를 바라봤다.

키는 땅콩만 한 것이 목소리는 제법 카랑카랑하다.

‘주인장이 아니라 딸이 나온 것 아냐?’

나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녀를 보다가 입을 뗐다.

“그래. 가져왔지. 근데 네가 정말 하므네가 맞아? 혹시 어머니 대신 나온 건 아니지?”

내가 말을 끝내기 무섭게.

척-

옆에 있던 남자가 돌연 나의 목에 검을 겨눈 채 매섭게 노려본다.

“언행에 주의해라.”

“주의?”

나는 피식 웃으며 손가락으로 검을 툭 밀치며 말을 이어 갔다.

“주의해야 할 건 내가 아니라 네 행동이겠지.”

“…뭐라고? 이놈이……!”

내가 호위로 보이는 남자와 눈씨름을 하던 중.

“케슬라, 그쯤 해.”

2층에 있던 작달막한 여인이 계단을 타고 내려온다.

“아무래도 내 가게에 처음 온 도굴꾼 같은데, 말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그리고 그 로브는 좀 벗지? 서로 기본적인 예의는 지키자고.”

“그러지.”

내가 무심하게 로브를 벗자.

“이런…….”

하므네는 내 얼굴을 보곤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이만하면 최소한의 예의는 갖춘 건가?”

“제가… 흑남께 실례를 저질렀군요. 사죄드리죠.”

하므네가 정중히 고개를 숙이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됐어. 이쪽도 실례를 했으니 그쯤 하자고.”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보다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은데.”

나의 말에 하므네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곤.

“케슬라, 잠깐 나가 있어.”

호위인 남자를 밖으로 물렸다.

“편린의 물을 팔러 오신 건가요?”

“아니. 이 편린의 물에 대해 아는 게 있나?”

내가 포션 병을 꺼내어 그녀에게 내밀자.

팔을 쭉 편 하므네가 내 손에 들린 포션 병을 겨우 건네받는다.

“일단 이게 정말 편린의 물인지 확인부터 할 필요가…….”

“나는 그 물을 팔러 온 게 아니야. 네게 정보를 얻으러 온 거지.”

나의 말에 하므네는 나를 무심한 눈으로 올려다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솔직히 반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흑마법사들과 마녀들 간에 전쟁이 벌어졌다는 게 사실인 모양이네요. 과연…….”

하므네는 포션 병 안의 투명한 물을 바라보다가.

슬쩍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본다.

“좋아요. 일단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편린의 물과 마녀들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어요.”

“…그래?”

‘오오, 레논 부탑주가 아주 제대로 알려 준 모양이야.’

내가 조용히 주먹을 꽉 쥐던 중.

하므네가 말을 이어 간다.

“물론 그냥 알려 드릴 수는 없어요. 저도 먹고살아야죠.”

“그래서 얼마를 주면 되는데?”

“제가 원하는 건 돈이 아니에요.”

하므네의 말에 나는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 그녀를 내려다봤다.

“그럼 원하는 게 뭔데?”

“편린의 물 절반을 저한테 주시죠.”

‘절반이나 달라고?’

무슨 놈의 정보값으로 물건의 반을 달라고 하는 걸까.

‘거기다가 편린의 물이 얼마나 귀할지 알고 반이나 줘? 차라리 돈으로 줬으면 줬지, 어림도 없다.’

나는 단호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반 컵. 그 이상은 안 돼.”

“좋아요. 반… 네? 반 컵이요?”

자기가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나를 멍하니 올려다보는 하므네.

“반 컵은… 너무 적은 것 같은데요.”

“그래? 싫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다시 로브를 입으려 하자 그녀는 서둘러 내 팔을 잡는다.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적다고 했지 싫다고 하지는 않았잖아요.”

“그게 그 말 아니었어?”

내가 옅은 미소를 보이자.

“원래 이런 예외를 두면 안 되는데… 좋아요, 반 컵으로 해요. 하지만 이번만이에요.”

“예외라니?”

“그게… 원칙대로라면 상대가 이렇게 정보값을 후려치면 그냥 쫓아내거든요.”

하므네가 멋쩍게 답한다.

‘아아… 그러니까 원칙대로라면 나도 쫓겨나는 게 맞는데, 내 지위 때문에 예외를 두겠다?’

“원리 원칙대로만 살면 금방 고꾸라져. 나름대로 예외를 두고 운영을 해 왔으니 지금까지 이 비밀 창고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거겠지.”

“그야… 그렇죠.”

“그러니까 나한테는 계속 예외를 적용해도 돼.”

농담에 가까운 나의 말에 하므네는 피식 웃으며 나를 바라본다.

“제 가게를 자주 이용해 주신다면 말이죠.”

“그러지.”

내가 순순히 수락하자.

하므네는 의자를 가리키며 내게 앉을 것을 권유하곤 자신도 의자에 앉는다.

“그래서 흑남께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정보를 원하시는 거죠?”

“시련의 물과 마녀들에 대해 네가 알고 있는 모든 것들.”

“좋아요. 대신 먼저 대가를 받을게요.”

나의 말에 하므네는 편린의 물을 반 컵 정도를 따르곤.

특이한 각인이 인상적인 병 속에 흘려 넣는다.

“좋아요. 대가를 받았으니 이제 정보를 알려 드리죠.”

쑤우우욱-

그 말을 끝으로 갑자기 하므네가 손을 들더니.

자기의 옆통수에 손을 밀어 넣는 것 아닌가?

‘…뭐지?’

갑자기 이 여자가 왜 이러는 걸까?

‘뜬금없이 마술이라도 하려는 건 아니… 진짜 들어가 있네…….’

내가 당황하여 속으로 혀를 내두르던 중.

“찾았다.”

하므네가 옆통수에 밀어 넣었던 손을 쑥 빼낸다.

“자, 여기 마녀와 편린의 물에 대한 정보예요.”

그녀가 머리에서 작달막한 양피지를 꺼내어 내밀자.

“…….”

‘아니, 이 여자… 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나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이게… 정보라고?”

“네.”

당당한 그녀의 태도에 나는 홀린 듯 양피지를 쥐고 내용을 훑었다.

‘허…….’

신기하게도 양피지 안에는 정말로 글자들이 빼곡히 담겨 있다.

“이 양피지에 적힌 정보들 말이야. 정말 믿어도 되는 건가?”

“그런 의심을 사기 싫어서 제 머릿속에 저장된 기억을 양피지에 적어서 보여 드린 거잖아요? 믿기 싫으면 마세요.”

하므네가 퉁명스럽게 대답하자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레논 부탑주가 추천을 한 데는 나름 이유가 있겠지. 저 머릿속에서 나온 양피지도 조금은 신뢰가 가기도 하고.’

“믿어 보지.”

나는 무심히 답하고는 양피지 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오호… 이건 좀 의외네. 마녀들이 등장한 시기부터 그녀들이 활동한 역사 그리고 현재 그녀들이 비의 숲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까지 전부 적혀 있다니.’

생각 이상으로 정확한 정보에 나는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저런 능력이라면… 막말로 걸어 다니는 도서관이라고 해도 되겠어.’

나는 속으로 하므네에 대한 평가를 상향 조정 하고는.

계속 양피지를 살펴 나갔다.

‘그런데 어째 편린의 물에 대한 정보는 너무 적은 것 같은데.’

편린의 물과 관련된 것이라고는 딱 두 가지뿐.

마녀들이 자기들의 신에게 의식을 치르기 위한 신성한 물이라는 것과.

편린의 물은 해당 장소의 기억을 담고 있어 옛 기억의 일부를 환상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전부였다.

“마녀들에 대한 정보에 비해 편린의 물에 대한 정보는 너무 적은 것 같은데.”

“그야 워낙 폐쇄적인 사람들이잖아요? 그렇잖아도 알려진 게 적은 사람들인데, 편린의 물은 더 말할 게 없죠.”

‘쯧… 편린의 물을 통해서 바알에 대해 뭔가 알아낼 수 있을까 싶었는데…….’

아무래도 이 정도 정보만으로는 어려울 것 같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혹시 바알에 대한 정보도 있나?”

“바알… 이요?”

“그래. 바알.”

내가 목소리를 내리깐 탓일까.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하므네는 잠시 눈을 꾹 감고 있다가.

아까와 마찬가지로 옆통수에서 양피지 한 장을 빼낸다.

“당연히 추가 비용은 주시겠죠?”

“그래야지.”

나는 하므네의 손에서 낚아채듯 양피지를 가져와.

얼른 양피지 안을 훑기 시작했다.

바알.

위대한 마신 베논과 마신의 자리를 놓고 대립한 신으로서.

일부 학자들은 그가 베논과 형제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형제라……. 이건 루머 같기도 한데… 잘 모르겠네.’

베논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뒤.

그는 겨우 목숨만을 부지하여 심연에서 힘을 모았고.

재앙의 신이 되어 베논을 증오하는 세력의 신이 되었다고 한다.

‘망할… 내가 원했던 건 뭔가 더 세세한 정보인데, 이런 정보는 도서관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잖아.’

내가 속으로 혀를 차며 양피지를 내려놓으려던 그때.

재앙의 끝은 종말이나 바알께서는 종말을 막으시고자 스스로 재앙이 되셨다.

종말의 날이 가까워질 때, 베논의 사자가 나타나리니.

이는 세상이 끝에 왔음이라.

-헬렌-

몇 줄의 문구가 나의 시선을 자극했다.

‘…베논의 사자? 이건 꼭 나를 저격하는 것 같은데. 헬렌? 이 사람은 대체 누구야?’

“혹시 이 마지막 문구에 적힌 헬렌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알 수 있나?”

“추가 요금이 많이 붙겠네요. 한번 찾아볼게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눈을 뜨는 하므네.

“이건 좀… 의외네요.”

“알아냈나?”

“그렇긴 한데… 너무 의외라 이 정보를 믿어도 되는지 저도 잘 모르겠네요.”

하므네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나는 답답한 마음에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일단 말해 봐. 헬렌이 누군데?”

그러자 머뭇거리던 하므네가 조심스럽게 입을 뗀다.

“…전대 성녀요.”

“전대 성녀라고? 농담이지?”

내가 싸늘한 말투로 묻자.

하므네는 툴툴거리며 말한다.

“그래서 저도 의외라고 했잖아요.”

“혹시 어디서 본 건지 기억해?”

“글쎄요……. 워낙 다양한 경로를 통해 얻은 정보들이라 잘 모르겠네요.”

‘하긴… 머릿속에 저만 한 정보들을 넣고 다니는데 출처까지 기억하긴 어렵겠지. 그보다 전대 성녀라…….’

전대 성녀가 저런 말을 했다니.

그렇다면 전대 성녀는 레바논을 배신하고 바알을 신봉했던 걸까?

‘정보의 출처가 없으니 마냥 확신 할 수는 없겠지만 만약 정말이라면… 그녀는 왜 레바논을 배신한 거지?’

누구보다 레바논에 대한 믿음을 지켜야 할 여인이 레바논을 배반하다니.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물며 성녀가 저런 말을 했다고 하니.’

만약 헬렌이 살아 있다면 당장이고 그녀를 만나 보고 싶었으나.

그녀는 이미 죽었으리라.

‘이단심문관들이 그냥 있을 리는 없을 테니까.’

레바논을 섬기는 성녀가 하물며 바알을 추종하는 듯한 말을 했다면.

이미 사형대에 올라가 목이 달아났다고 봐도 될 터.

‘하지만 만약… 정말 만약에 그녀가 살아 있다면?’

“혹시 저 헬렌이라는 사람 말이야. 죽었겠지?”

내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중얼거리듯 말하자.

하므네는 그런 나를 보며 고개를 젓는다.

“아니요. 갇혔다고 적혀 있던데요.”

“…안 죽었다고?”

‘레바논을 배신했는데도 안 죽였다고?’

“흑남께서 궁금해하실 것 같아서 좀 찾아봤는데, 공식적으로 죽은 기록은 없었어요. 다만…….”

잠시 눈가를 찌푸리던 하므네가 다시 입술을 뗀다.

“레바논 대신전의 지하 미궁에 갇혔다는 기록은 있네요.”

‘…지하 미궁? 레바논 대신전에 그런 곳도 있나?’

난생처음 들어 보는 말에 나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렇다면 전 성녀는 지하 미궁에 갇혀 있는 건가? 아니면 갇혀서 이미 죽었을까?’

이미 죽었다면 더 이상 관심을 줄 이유가 없겠으나.

만약 살아 있다고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한번 만나서 이야기를 해 볼 가치가 있지. 왜 레바논을 배신하고 바알을 섬겼는지도 그렇고. 바알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을지도 몰라.’

그렇다면 헬렌에 대해 잘 알 법한 사람을 찾으면 되지 않겠는가?

‘흑카데미에 그런 사람이 한 명 있긴 하지. 좋았어.’

마침내 나는 생각을 갈무리하고는.

하므네를 보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고맙다.”

“별말씀을요. 비용만 잘 지불해 주시면 좋겠네요.”

“물론이지. 그런데 말이야, 그 머리에서 양피지를 빼내는 건 어떻게 하는 거야?”

‘그녀는 이미 수천 번은 넘게 들었을 질문이겠다만, 그래도 궁금하잖아?’

“도굴하다가 얻은 옛 유물의 힘의 덕을 받았죠. 이 힘을 얻고 나서는 도굴은 때려치우고 이 일을 하고 있는 거고요.”

“호오… 유물의 힘이라…….”

내가 호기심을 보이자.

하므네는 씁쓸히 웃으며 손사래를 친다.

“좋은 것만은 아니에요. 이 능력을 활용하려면 도굴꾼들에게서 고서들도 엄청 사서 정보들도 모아야 하고… 귀찮은 게 많아요.”

“그래도 엄청난 능력을 얻었네. 도굴도 제법 매력적으로 보일 정도로 말이야.”

“어차피 중요 고객들에게만 보이는 능력인데요, 뭘. 여하튼 고마워요.”

그렇게 하므네와 대화 나누기를 몇십 분.

나는 그녀에게 정보값을 치르고는 서둘러 흑카데미로 돌아갔다.

* * *

“아크 교수! 아크 교수!”

흑카데미로 돌아온 나는 곧장 아크 교수의 집무실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덜컹-

“허허, 오랜만에 흑남님을 뵙는 것 같군요. 흑행 이후로 처음 아닙니까?”

“그렇지.”

“들어오시지요.”

김이 피어오르는 도자기 잔과 함께 내 맞은편에 앉는 아크 신관장.

“허허, 서리여왕의 왕궁에 갔다가 산 로난잎으로 우려낸 차입니다. 예티들이 길렀다고 해서 선입견을 갖고 있었지만 의외로 맛이 깊으니 한번 드셔 보시지요.”

그는 내게 차를 권하며 여유로운 미소를 보인다.

“꽤 즐거운 흑행이 됐었나 보네.”

“허허, 그렇지요. 반면 흑남께선 꽤나 난감한 일정을 보내고 계시는 걸로 알고 있었습니다만. 혹시 마녀들을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성마법에 대해 배우러 오신 겁니까?”

“아니. 다른 문제야.”

편안히 찻잔을 드는 아크 교수를 보며.

나는 천천히 입술을 뗐다.

“혹시 헬렌에 대해서 아는 게 있나?”

“헬렌 말입니까? 그런 학생의 이름은 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군요.”

“학생의 이름이 아니야. 내가 말하는 헬렌은 전대 성녀 헬렌을 말하는 거야.”

내가 말을 끝마치자.

아크 교수의 손에 들려 있던 찻잔이 미약하게 떨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