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카데미의 노예가 살아남는 법-63화 (63/200)

63.

그에 나를 의아하다는 듯 바라보는 레논 부탑주.

“예, 당연히 이런 중대 사안은 바로 보고해야지요.”

“그렇습니까?”

“왜 그러시죠?”

레논의 물음에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 미스릴 광산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돌아가나 궁금해서 질문을 드렸습니다.”

“아아…….”

그제야 내가 질문을 한 이유를 눈치챈 것인지.

레논은 옅은 미소를 보인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해당 지역에 파견을 나온 흑마법사의 학파가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저는 아직 소속된 학파가 없습니다만.”

“그래서 저도 고민 중에 있습니다.”

레논이 낮게 침음하자.

나는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악마학파와 파멸학파 출신의 흑마법사들이 함께 파견을 나온 경우도 있을 것 아닙니까? 그때는 어떻게 합니까?”

“방법은 다양합니다. 소유권을 두고 협상을 하거나 이권을 나눠 갖기도 합니다. 또는 드문 일이긴 하지만 전투로 소유권을 결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미스릴 광산의 소유권은 악마학파와 나한테 반반씩 있다는 건가? 이건 좀 그런데.’

어쨌건 바알에게 습격을 받은 건 나였고.

그로 인해 마녀들의 마을에 미스릴 광산이 있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만약 악마학파와 미스릴 광산을 나눠 갖는다고 해도 내가 더 지분을 많이 받아야 정상이지.’

“그렇습니까? 레논 님은 어떻게 하고 싶으십니까?”

“음… 글쎄요.”

고민에 잠겨 있던 레논이 슬며시 나를 바라본다.

“솔직히 말씀을 드리자면 욕심이 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미스릴 광산을 소유할 수 있다면 재정적으로 불리한 악마학파에 엄청난 도움이 될 테니까요.”

“…그렇지요.”

“하지만… 악마학파를 대표하여 저는 미스릴 광산의 소유권 주장을 포기하려고 합니다.”

‘그래. 당연히 권리 주장을… 뭐? 포기를 해?’

저 엄청난 돈벌이를 포기한다는 레논의 선언에.

나는 너무 놀라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대인배야, 아니면 성인군자야? 집에 돈을 다발로 쌓아 놨나? 악마학파에 돈이 없다더니 이걸 포기한다고?’

“…진심이십니까?”

“진심입니다.”

‘허어…….’

내가 도무지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하자.

레논은 힘없이 웃으며 말한다.

“만약 악마학파가 미스릴 광산을 갖게 되면 분명 다른 두 학파의 견제가 들어오게 될 겁니다. 지금 악마학파는 두 학파의 견제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더욱 소유권을 가지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미스릴 광산에서 나오는 돈으로 학파를 더욱 강성하게 만들어야 할 터인데.

어째서 레논은 저런 선택을 한 걸까.

‘진짜 두 학파의 견제를 감당할 수 없어서 저러나? 하긴… 뭐, 막말로 지금 흑탑의 실세는 파멸학파니까.’

“아니요. 미스릴 광산의 주인은 랄프 님이십니다. 애당초 랄프 님이 마녀들과 다투지 않았다면 이 미스릴 광산의 존재도 알지 못했을 겁니다.”

레논은 고개를 젓곤 말을 이어 간다.

“다만, 랄프 님께 두 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미스릴 광산에서 나오는 수익의 일부를 저희 악마학파에 지원해 주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아아… 그러니까 소유권은 나한테 완전히 넘기는 대신 광산 수입의 일부를 지원해 달라고? 그 정도야 얼마든지 내줄 수 있지.’

미스릴 광산에서 나올 수입이 상상을 초월할 것인데.

까짓것 악마학파에 연구비도 못 줄까?

“그 정도야 어려운 일도 아니군요. 얼마든지 지원을 해 드리겠습니다.”

‘아주 그냥 평생을 연구에 파묻힐 수 있게 지원해 주지.’

“고맙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부탁은…….”

잠시 머뭇거리던 레논 부탑주가 내 눈을 보며 겨우 입을 뗀다.

“혹시 흑남께선 제 여식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

“레나 말입니다.”

‘어떻게 생각하긴? 그냥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친구 정도지. 근데 갑자기 자기 딸 이야기는 왜 꺼내는 거야?’

하지만 나는 속내와 달리 미소를 지으며 입을 뗐다.

“굉장히 유능한 친구지요. 훗날 악마학파의 거목이 될 겁니다.”

“아닙니다. 제가 말하는 건 제 여식이 갖고 있는 가능성이 아닙니다.”

“그럼……?”

“이성적으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레논의 물음에 나는 침묵했다.

‘뭐야, 불안하게시리……. 이보쇼, 설마… 아니지?’

나는 눈만 굴리다가 겨우 입가의 미소를 유지하며 입을 열었다.

“그야… 레논 부탑주님을 닮아 굉장히 단아하고 또 예쁘지요……. 예.”

자식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걸까?

“그렇지요? 저도 제 딸만 한 여식을 본 적이 없습니다.”

활짝 미소를 짓는 레논 부탑주.

“그래서 말입니다. 혹시 제 딸과 혼사를 치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흑남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

‘혼사라니……. 아직 앞길 창창한 젊은이한테 결혼이라니?!’

내가 얼음이 되어 아무런 말도 못 하자.

레논은 싱글벙글하며 계속 내게 말한다.

“다른 놈들이었다면 꺼지라고 엄포를 놨겠지만, 흑남님이라면 제 딸을 맡겨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 예…….”

“흑남님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어떻긴? 아직 나도 그렇고, 레나도 결혼할 마음이 없는 것 같던데.’

손뼉도 합이 맞아야 치는 것 아닌가?

‘설마 나한테 미스릴 광산의 이권을 양보한 것도… 내가 레나와 결혼하길 바라고 양보한 건가?’

나는 속으로 혀를 내두르며 레논 부탑주를 바라봤다.

‘이 양반… 딸 바보인 줄 알았더니 은근히 능구렁이 냄새가 나네.’

“결혼은…….”

바로 퇴짜를 놓으면 레논의 심기가 상할 것이다.

여기서는 적당히 예의 있게 거절하는 편이 좋을 터.

“아직은 제가 어리다 보니 가정을 꾸리기보다는 흑마법에 더 힘을 쏟고 싶습니다.”

“…그렇습니까?”

레논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나는 얼른 한마디를 덧붙였다.

“하지만 레논 님의 말씀은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지요.”

“정말이십니까?! 으하하하하하! 아주 잘 생각하셨습니다!”

레논이 내 손을 잡고 위아래로 붕붕 흔들자.

‘이 양반아, 승낙한 게 아니고 검토하겠다고, 검토!’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이 정도로 미스릴 광산의 소유권을 가져올 수 있다면 싸게 먹힌 거지.’

혹시나 레논이 딸 이야기를 더 꺼낼까 싶어.

“그보다…….”

나는 얼른 헛기침을 하곤 화제를 돌리고자 했다.

“막상 광산을 얻은 것은 좋지만 관리하는 데 어려움이 있겠군요. 혹시 조언해 주실 건 없으십니까?”

미스릴 광산을 얻은 것은 좋다.

하지만 채굴부터 시작하여 광물을 가공하고 그걸 또 외부에다 팔아야 하는.

아주 복잡한 절차들을 해결해야만 한다.

‘흑탑에서 구르고 구른 레논이라면 좋은 방법을 알고 있을지도 몰라.’

“조언이라 하기는 뭐하지만 광산의 관리는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예?”

“그런 기타적인 부분들은 흑탑에서 관리를 해 줄 겁니다. 흑남께서 원하신다면 말이죠.”

레논의 말에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의외군요.”

“이미 납치한 드워프들과 흑탑 산하의 상단들을 이용할 터이니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다만, 그 대가로 흑탑에서 흑남께 약간의 보수를 원하겠지요.”

“보수라면… 미스릴 말입니까?”

나의 물음에 레논 부탑주가 고개를 끄덕인다.

‘뭐… 생산부터 시작해서 유통까지 다 책임진다면야 약간의 보수 정도야 지불할 의사가 있지.’

솔직히 흑탑이 귀찮은 일들을 알아서 해결해 주겠다는데.

내 입장에선 너무도 좋은 일이었다.

“상세한 이야기는 흑탑에 돌아가서 나눠 봐야 알겠습니다만, 아마 일이 그렇게 흘러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군요.”

“일단 광산을 좀 더 둘러보시겠습니까? 드워프 녀석들이 들이닥치면 이 광경도 더 이상 볼 수 없을 테니 말입니다.”

* * *

며칠 뒤.

나는 레논과 함께 언데드 군단을 이끌고 흑탑에 복귀했다.

‘갈 때는 참 편했는데 올 때는 걸어와야 한다니, 내 참…….’

그러곤 곧장 비의 숲에서 있었던 일들을 탑주와 여러 위대한 흑마법사들에게 알렸다.

‘생각보다 회의가 길어졌네.’

보고를 끝마치곤 회의장을 나와 결린 어깨를 풀던 중.

레논 부탑주가 넌지시 내 옆으로 다가와 말을 건다.

“광산 건은 깔끔하게 해결된 것 같습니다.”

“그러게요. 제 생각 이상으로 가벼운 사안처럼 취급하셔서 당황스러웠습니다.”

당연히 누군가는 욕심을 내어 광산의 공동 소유를 주장할 거라 생각했건만.

레논이 광산의 소유권을 내게 완전히 넘긴다는 말을 끝으로.

누구도 내가 미스릴 광산의 소유주임에 대해 태클을 걸지 않았었다.

“그야 그것이 흑탑의 규율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규율의 효과를 받고 싶다면 당연히 다른 이의 권리도 존중해야지요.”

“하하, 부탑주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런데 이 아저씨 왜 이렇게 기분이 좋아 보여?’

어째선지 입가에 미소가 활짝 핀 레논을 보며.

나는 가볍게 말을 던졌다.

“그런데 어째 회의장에 들어갈 때보다 더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요.”

“하하하, 그렇게 보였습니까?”

레논의 물음에 나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른 부탑주가 마녀들의 추격에 나섰다는 말 때문에 그러신 겁니까?”

“뭐…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이야기를 듣자 하니 레논 부탑주가 흑탑에 마녀들이 기랄 군도로 도주했다는 소식을 알린 뒤.

제른 부탑주가 마녀들의 추격에 나섰다고 했다.

‘어떻게든 공적을 쌓아 보려고 나간 거겠다만, 함정인 게 빤히 보이는데 그걸 나가다니.’

그만큼 제른이 탑주의 자리에 목을 맨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문뜩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간다.

‘혹시 레논 부탑주가 제른이 나설 걸 알고 양피지 안에 왜곡된 정보를 적어 놨다면… 에이, 무슨 상관이야?’

그렇잖아도 나도 제른 부탑주를 썩 마음에 들지 않아 하던 상황에서.

레논 부탑주가 알아서 견제를 해 준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은 일이었다.

“하하, 아무쪼록 제른 부탑주에게서 희소식이 들려오길 바라야죠.”

‘다만 그렇게 된다면 내 거취에 대해서도 다시 이야기가 나오겠지.’

마녀들이 몰살한다면 베논이 경고했던 바알의 추종자들은 사라지는 것이고.

당연히 흑카데미에서 생활하던 내게도 영향이 올 것이었다.

‘그 부분도 생각을 해 두긴 해야겠어.’

미리 대비를 해서 나쁠 건 없으니 말이다.

“아 참, 그리고 부탑주께 한 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레논과 함께 흑탑의 1층으로 내려가며 말을 이어 갔다.

“혹시 마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흑마법사는 없습니까?”

“마녀 말입니까?”

“예. 며칠 전에 얻었던 그 물에 대해 조사를 좀 해 보고 싶거든요.”

‘편린의 물. 솔직히 그냥 마녀들이 사용하던 마법 매개체 같긴 하지만… 혹시 거기서 바알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나의 말에 낮게 침음하는 레논 부탑주.

“마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 그런 사람이… 흐음… 아!”

무언가 떠오른 바가 있는 것인지.

레논이 두 눈을 번뜩인다.

“한 명 있긴 합니다.”

“오오, 그래요? 누굽니까?”

“하므네라고, 전직 도굴꾼인 여자입니다.”

‘…전직 도굴꾼?’

전직 도굴꾼이라는 말에 나는 의아함을 느끼고.

다시 질문했다.

“그러면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겁니까?”

“예. 주로 대륙이나 검은 대지에서 나오는 희귀품들을 수집하는 수집가가 됐다고 하는데, 그녀라면 편린의 물에 대해 뭔가 알지도 모릅니다.”

“하므네라……. 혹시 하므네의 비밀 창고의 주인이 혹시 그 하므네입니까?”

레논이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생각에 빠졌다.

하므네의 비밀 창고.

흑탑의 동쪽에 위치한 커다란 매장으로 그 안에는 온갖 기이한 물건들이 있다고 한다.

‘비밀 창고는 무슨… 전당포지.’

흑탑에 물건을 판매하는 데 실패한 도굴꾼들이 최후의 보루로 찾아가는 곳.

그곳이 바로 하므네의 비밀 창고였다.

“근데 그곳에 들어가려면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만.”

“맞습니다. 도굴꾼들이야 자유롭게 출입이 가능하지만 그 외의 사람들은 그녀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만한 물건을 갖고 가야 출입이 가능하죠.”

‘호기심이라…….’

편린의 물이라면 그녀의 호기심을 채우기 충분하지 않을까?

“일단 바로 가 봐야겠군요.”

나는 레논과 인사를 한 뒤.

서둘러 흑탑을 나서려고 했다.

그런데 내가 1층 로비를 지나던 와중.

“이것 봐! 새로운 돈벌이들이 나왔다!”

“이건 좀 의외군. 마녀들의 목에 현상금이 걸리다니. 둘이 다투기라도 한 건가?”

암살자들로 보이는 이들이 양피지를 쥔 채.

자기들끼리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보나 마나 마녀들이 흑마법사들의 역린을 건드리기라도 한 거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미쳤다고 동맹의 목에 현상금을 걸까?”

“내가 넌지시 들었는데 그 미친년들이 흑남을 건드렸다고 하더군.”

“흑남을? 왜 이렇게 현상금을 많이 걸었나 했더니 이제야 이해가 가네. 흑마법사들이 눈이 뒤집힐 만도 해.”

‘호오…….’

나는 일부러 속도를 늦추곤.

그들의 옆을 천천히 지나며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어디 그뿐이야? 흑행을 나갔던 학생들 중 몇 명은 자다가 죽었다고 하더라.”

“자다가 죽어? 그게 무슨 소리야?”

“커흠… 이건 나만 아는 비밀인데… 글쎄 흑남이 습격당한 날, 깨어 있었던 사람이 없다고 하더군.”

한 암살자의 말에 다른 암살자들이 관심을 보인다.

“좀 더 자세히 말해 봐.”

“나도 정확히는 몰라. 아무래도 마녀가 흑남을 공격하기 전에 주변에 개수작을 부렸던 모양이지. 근데 특이한 게 하나 있어. 흑남이 전투를 벌였던 곳에서 어째선지 성마법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하더군.”

“…성마법?”

의외의 단어에 두 눈을 부릅뜨는 암살자들.

“그래, 성마법. 그것도 고위 성마법인 신성한 철퇴가 사용됐다고 하던데 확실한 건 아니야.”

“성마법이라……. 그게 가당키나 하나?”

“안 될 건 또 뭐야! 막말로 흑남이 고위 사제를 호위로 고용했을지 누가 알아? 아니면 흑남이 성마법을 사용했다든가.”

“그거야말로 개소리군. 에라이! 흑남이 정말 성마법을 사용했으면, 나는 오늘부터 치료사로 전향한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암살자들이 말도 안 된다는 듯 픽 웃음을 흘리자.

이야기를 꺼냈던 암살자는 억울하다는 듯 소리친다.

“아, 흑남이 성마법을 사용했는지는 몰라도 성마법의 흔적이 남았다는 건 진짜라니까 그러네! 20골드나 주고 얻은 정보라고!”

그에 나는 괜히 뜨끔하여 얼른 자리를 벗어났다.

‘거참… 20골드짜리 정보가 생각보다 정확하네.’

그 일이 벌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소식이 퍼진 걸까.

새삼 검은 대지가 좁다는 게 느껴진다.

‘흠흠…….’

나는 괜히 로브를 더 단단히 두르고는.

조용히 흑탑을 벗어났다.

* * *

‘여긴가?’

흑탑에서 동쪽으로 걷길 몇십 분.

[하므네의 비밀 창고]

나는 곧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전당포라기보단 사유지 같네.’

집 주변으로 넓게 쳐져 있는 담장이나.

대문 너머로 보이는 작은 정원은 적당히 잘사는 흑마법사의 집을 연상케 했다.

‘그런데 무슨 놈의 줄이 이렇게 길어?’

저마다 보따리를 싸든 채 대문 앞에 줄을 서 있는 도굴꾼들을 보며.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은 나도 줄을 설까.’

줄의 맨 뒤로 가 기다리길 몇 시간.

마침내 내가 대문 앞에 도달하자.

쩌저저적-

정문 앞에 박혀 있던 커다란 눈동자가 나를 응시하더니.

“가져온 물건은?”

생각보다 얇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생각보다 젊은 모양이네.’

나는 속으로 생각하며 아공간 주머니에서 포션 병을 꺼내었다.

“내가 가져온 건 이거다.”

“…나랑 장난해? 그건 그냥 물이잖아.”

목소리가 한없이 싸늘해지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건 편린의 물이다. 마녀들에게서 가져온 거지.”

“…….”

그러자 눈동자는 한참이고 말이 없더니.

“들어와.”

곧 집의 경비로 보이는 남자가 대문을 열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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