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레바논이 여길 어떻게 온 거지?’
내가 반갑고 또 고마운 마음에 입을 떼려던 찰나.
[감히 축출당한 하급 신 따위가 성남을 건드리려 해?]
레바논이 바알을 보며 으르렁거린다.
‘바알이 하급 신이라니? 명색이 마신의 자리를 넘봤던 신인데. 아니면 베논에게 패배하고 힘을 빼앗겼나?’
바알을 애송이 취급 하는 레바논을 보며 내가 속으로 혀를 내두르던 중.
바알이 입을 뗀다.
“그는 재앙의 씨앗이다. 네 행동이 스스로 재앙을 키우고 있는 꼴이라는 걸 왜 모르는 거지?”
[재앙?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어이가 없다는 듯 픽 웃는 레바논.
[내 눈을 피하려고 고작 생각한 방법이 인간의 육신을 덧입고 장막 아래에 숨는 것이라니. 신이 인간의 육신을 덧입은 채로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는 잘 알고 있을 텐데?]
“재앙을 저지할 수 있다면 위험을 감수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
레바논의 입가에 스산한 미소가 걸린다.
[그럼 나를 짜증 나게 한 대가를 치러야지.]
레바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으지지지지지직-
멀쩡했던 바알의 사지가 사방으로 찢겨져 나간다.
‘미친…….’
그토록 강대해 보였던 바알을 장난감처럼 다루는 레바논을 보며.
나는 침음했다.
‘내 생각 이상으로 더 엄청난 여신이었구나…….’
“크윽…….”
[다시 힘을 길러 마신의 자리에 도전했으면 됐을 것을. 어리석은 놈.]
레바논의 말에 머리만 남은 바알이 힘겹게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나는 나의 자리에 만족한다. 그리고 내 사명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다.”
[그럼 죽어.]
레바논의 몸에서 빛이 폭발하듯 터져 나오던 그때.
머리만 남은 바알이 무심히 말한다.
“설마 내가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을까.”
바알이 폭발하는 빛에 맞닿을 무렵.
쩌적-
돌연 공간이 갈라지고 바알의 머리가 그 안으로 쏘옥 들어가며 내게 한마디를 던진다.
“왜 레바논이 인간을 위해 이토록 다급히 온 걸까?”
[이 쥐새끼 같은 놈이!]
거대한 빛무리가 바알이 있던 곳을 덮쳤으나.
이미 바알은 사라진 직후였다.
[쯧, 놓쳤나……. 베논 그 얼간이는 대체 왜 저런 놈 하나 간수를 못하는 거야?!]
레바논이 짜증스럽게 소리치는 사이.
나는 그녀를 보며 곰곰이 생각했다.
‘확실히… 레바논이 와 줘서 고맙기는 한데… 어떻게 내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온 걸까?’
레바논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내 마음 한편에선 묘한 의문이 피어오른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구나.]
“덕분에 목숨을 부지했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고개를 숙이자.
레바논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감사하면 레바논 왕국으로 오든가.]
“예?”
나의 반문에 레바논은 눈웃음을 짓는다.
[농담이야.]
“아, 예……. 그런데 제가 여기에 있는지는 어떻게 아신 겁니까?”
[왜? 바알의 말이 마음에 걸려?]
레바논의 말에 나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다만 이곳이 베논 님의 영역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레바논 님이 오셔서 의문이 들었죠.”
나의 말에 레바논은 잠시간 말없이 나를 바라보더니.
곧 미소를 머금고 말한다.
[그만큼 너를 아낀다는 거지. 여하튼 잘 생각해 봐. 흑남보단 성남이 나으니까.]
“가시는 겁니까?”
[가야지. 더 개입했다간 베논과의 약속을 어기는 게 될 테니까.]
그 말을 끝으로 레바논의 모습이 사라지기 무섭게.
검은 장발 머리의 남자가 균열을 찢고 내 앞에 나타난다.
[늦지 않았군. 아니… 이미 그년이 왔다 간 건가? 흐음…….]
스산한 눈으로 레바논이 왔다 간 자리를 내려다보는 베논.
‘베논, 이보쇼. 한발 늦었수다.’
“예, 바알은 이미 도망갔습니다. 많이 늦으셨네요.”
[바알 그놈이 잔재주를 부렸다. 놈이 친 결계 때문에 네 위치를 파악할 수 없었다.]
“…그래요?”
베논의 말에 나는 순간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베논이 결계 때문에 나를 못 찾았다면… 레바논은 대체 어떻게 알고 나를 찾아낸 거야?’
“레바논 님은 금방 오시던데요?”
[나도 그게 의문이다. 나조차 찾지 못했던 걸 어떻게 그년이 더 빨리 찾을 수 있었던 거지?]
‘레바논이 당신보다 더 강해서 빨리 찾은 것 아니요?’
나는 애써 속마음을 꾹 누르고는.
그저 허허롭게 웃어 보였다.
[여하튼 살았으면 그걸로 됐다.]
그 말을 끝으로 베논 또한 홀연히 사라지자.
멈췄던 시간이 다시 움직인다.
파창-
바알의 죽음 때문일까.
검은 돔이 순식간에 깨져 나가고 다시금 내 머리 위로 달빛이 드리웠고.
‘후우… 두 신 모두 바람같이 사라지는구만.’
나는 어딘가 싸늘한 밤공기를 들이켜며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보다 내가 재앙이라……. 바알은 대체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한 걸까.’
무엇보다 나를 신경 쓰게 만든 건 바알이 도망가며 남긴 한마디였다.
‘레바논이 급하게 온 걸 생각해 보면 이상하긴 해. 단순히 내가 성남 후보라서?’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내가 죽은 이후 새로운 성남을 뽑으면 그만 아닌가?
‘진짜 나한테 뭔가 있나? 그래서 두 신이 황급히 나를 찾아온 건가? 망할… 도대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또 거짓인질 모르겠네.’
나는 머리를 거칠게 긁적이며 한숨을 내뱉었다.
‘정답이 없는 문제를 계속 생각해 봤자 답이 나오나. 일단 돌아가자.’
* * *
숙소 피습 사건이 벌어지고 어느덧 5일이 흘렀다.
‘복귀는 그저께 했는데 일은 끝이 없구나.’
요 이틀 사이, 나는 정말 많은 곳을 방문했다.
‘계속 상황 설명을 해 줘야 했으니…….’
가장 먼저 나는 흑탑에 방문하여.
탑주와 부탑주들에게 내가 겪었던 일들을 말했었다.
‘그리고 죽은 학부모들에게 상황 설명도 해 줘야 했고. 아오… 결국 물건은 제대로 보지도 못했네.’
기껏 드워프들의 대공방에 갔는데 정작 구경은 제대로 하지도 못했다.
담당 교수들을 비롯하여 일부 학생들이 죽어 나갔으니 당연한 수순이긴 했으나.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그래도 제작 주문 해 놓은 건 흑카데미로 소포를 보낸다고 하니 다행이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흑탑의 한 회의실 안으로 들어섰다.
‘어디 보자……. 셋… 넷… 이미 다 와 있었나.’
나는 검은 실루엣들을 보며 천천히 회의장 안으로 걸어갔다.
“오오, 랄프 왔는가?”
가장 먼저 나가란 탑주가 나를 보며 반가이 인사했고.
레논 부탑주는 눈인사를.
제른 부탑주를 비롯하여 열두 명의 위대한 흑마법사들은 나를 본 척도 하지 않는다.
“예,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평안하다니? 자네의 일 때문에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네!”
나가란 탑주가 장난스럽게 눈을 흘기더니 엄중히 말을 이어 간다.
“하지만 결정했네. 이 시간 이후로 비의 숲과 마녀들은 검은 대지에서 지워질 걸세.”
나가란 탑주의 선언에.
“허어… 그래도 몇십 년간을 함께 지내 온 동맹인데, 사실 여부도 확인해 보지 않고 처리하는 건 좀 문제가 있을 것 같은데…….”
“그러게 말이네. 레인, 제인의 독단적인 행동일 수도 있잖아?”
낮은 목소리로 수군거리는 좌중.
그러던 그때.
“탑주님, 재고를 해 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파멸학파의 부탑주 제른이 탑주의 의견에 제동을 건다.
“재고를 해 달라고?”
“예, 아직 모든 마녀들이 바알의 신봉자인지 아닌지 확인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비의 숲을 몰살하는 건 너무 섣부른 행동인 것 같습니다.”
제른의 말에 나가란 탑주가 빙긋 웃는다.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나?”
“예? 아… 예. 그렇습니다.”
“그래서 비의 숲을 몰살하기 전에 먼저 사전 병력을 파병하려고 하네.”
나가란 탑주의 말이 끝나자.
좌중의 눈이 번뜩인다.
‘공적을 세울 수 있는 기회라 그런지 아주 다들 그냥 눈에 욕망이 가득 꼈네.’
만약 마녀들이 정말 바알의 종이라고 판명된다면.
바알의 종들을 몰살했다는 업적을 세울 수 있을 터.
‘그런 업적들이 쌓이고 쌓여 훗날 탑주가 되는 데 큰 도움이 될 테니까.’
내가 속으로 생각하던 중.
제른이 탐욕스럽게 눈을 빛내며 탑주에게 묻는다.
“탑주님, 비의 숲에 갈 사람은 정하신 겁니까?”
“정했네.”
‘누가 가려나. 탑주랑 제른이 지향하는 방향이 비슷하니 아마도 제른을 보내겠지.’
둘 다 대륙 정벌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갖고 있으니.
분명 제른을 보내려 할 터.
하지만 어째선지 나가란 탑주는 날 보며 느긋하게 입을 뗀다.
“랄프, 자네가 비의 숲에 다녀오게.”
“…예? 제가요?”
‘이걸 나한테 밀어준다고?’
의외의 상황에 내가 탑주를 바라보던 중.
“탑주님!”
제른이 당황해하여 소리친다.
“흑남께선 아직 경험이 부족하십니다! 그런데 흑남님을 보내신다니요?!”
“경험이 부족하다라……. 제른, 내 한 가지 묻겠네. 경험이 부족한 흑마법사가 콘스를 죽일 수 있었겠나? 거기다가 마녀는 또 어떻고?”
“그건…….”
제른이 말꼬리를 흘리자.
나가란 탑주가 나를 보며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그는 아직 미완성이지만 이미 어엿한 한 명의 흑마법사이자 흑남이네.”
“그러니 더더욱…….”
“그러니 그에게 경험을 할 기회를 줘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애당초 이 건은 흑남 덕에 알게 됐으니 흑남이 마무리하게 하는 게 맞겠지.”
제른은 불만이 많았는지 입을 꿈틀거렸다가 홱 고개를 돌려 버린다.
“그럼 결정됐군. 랄프, 자네가 다녀오게. 만약 마녀들이 베논을 배신하고 바알을 섬기고 있다면… 한 명도 살려 두지 말고 모두 죽이면 되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 혼자 가는 겁니까?”
나의 물음에 나가란 탑주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의자의 손잡이 부분을 치며 껄껄 웃는다.
“혼자 갈 생각을 하고 있었나? 으허허허허허, 대담하군! 하지만 아쉽게도 자네 혼자만 보내진 않을 거네. 레논!”
“예, 탑주님.”
“자네가 흑남과 함께 비의 숲으로 가도록 하게. 병력은 자네가 적당히 알아서 차출하고. 이해했나?”
“알겠습니다!”
* * *
다음 날.
흑탑 외곽의 공방 밖.
절그럭-
“빨리 스켈레톤들에게 방어구를 입히고 무기를 쥐여 줘라! 출정까지 얼마 안 남았다!”
공방장의 명령에 따라.
인부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스켈레톤의 최종 점검을 진행한다.
“누더기 골렘들 상태는?!”
“양호합니다!”
“데스나이트들은?!”
“이미 준비 만전입니다!”
‘워우…….’
나는 공방 앞에 우글거리는 언데드들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렇게 모아 놓고 보니 어마어마하긴 하네.’
당장 모은 스켈레톤들만 대략 2천 구에 부피가 큰 누더기 골렘들까지 있으니.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내가 멍하니 언데드 군세를 구경하던 그때.
“준비는 다 끝나셨습니까?”
레논이 내게 다가와 묻는다.
“예. 그보다… 꽤나 장관이군요.”
“상대가 마녀들이다 보니 조금 넉넉하게 준비했습니다만, 흑남께서 원하신다면 스켈레톤들을 더 차출하겠습니다.”
“아니요. 마녀들이 도망갔을 가능성도 있으니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나는 스켈레톤들을 지휘하는 데스나이트들을 보다가.
다시금 입을 뗐다.
“다만 이 병력을 데리고 비의 숲까지 가려면 꽤 시간이 걸리겠군요.”
지도로 봤을 때 비의 숲은 검은 대지의 남쪽 부근에 자리하여.
흑탑에서 마차로 약 5일 정도는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아, 그 부분은 괜찮습니다. 30분이면 저희는 도착할 겁니다.”
“…30분이요? 비의 숲에 포털이라도 설치되어 있는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저희는 워프학파 마법사들을 이용할 겁니다.”
‘워프학파? 그건 백탑의 학파 중 하나잖아. 그런데 워프학파의 마법사들을 어떻게 이용… 아아…….’
“포획해 둔 마법사들을 이용한다는 말씀이군요.”
나의 말에 레논이 고개를 끄덕인다.
“예, 이미 충분한 세뇌 작업을 했고 가족들도 인질로 잡고 있으니 안전에 문제는 없을 겁니다. 숫자가 적어 자주 사용할 순 없지만 이미 허락을 받아 놨습니다.”
“이해했습니다.”
레논 부탑주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정비가 끝났습니다!”
공방장의 목소리가 우리의 귓전을 울린다.
“그럼 가시죠.”
* * *
백마법사들이 만든 워프 마법진을 타고 비의 숲으로 이동하자.
투드드득-
구름 낀 하늘과 빗물이 가장 먼저 나를 반긴다.
‘한낮인데도 우중충하네. 숲이라 그런지 주변에 나무들도 많고.’
“이곳은 처음이시지요? 툭하면 비가 내리는 탓에 비의 숲이라고도 불리는 곳입니다. 마녀들이 왜 이런 곳을 터전으로 삼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죠.”
“그렇군요.”
“흑남께서 하실 일은 크게 없으실 겁니다.”
레논이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잠자코 있던 누더기 골렘들이 육중한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우지지지직-
‘워… 단순 무식한데 또 강하네.’
누더기 골렘들이 거침없이 나무들을 박살 내면서 전진하자.
레논이 나지막이 말한다.
“본래는 공성 병기로 많이 사용하는데 이런 식으로도 사용을 하곤 합니다. 숲을 개간할 때도 굉장히 유용하지요.”
“그렇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누더기 골렘의 뒤를 따라 비의 숲으로 진입하는 스켈레톤들의 등을 우두커니 바라봤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안에서… 산 자는… 발견하지… 못했다…….]
스켈레톤들을 통솔하던 데스나이트가 우리에게 돌아와 보고한다.
“음… 이미 눈치를 채고 전부 도망을 간 모양입니다.”
레논이 아쉬워하자.
나는 전방을 바라보며 입을 뗐다.
“일단 저희도 진입을 해 보죠. 급히 도망을 갔을 테니 어떤 흔적을 남겼을지도 모릅니다.”
“예.”
나는 레논과 함께 누더기 골렘들이 작살내고 간 길을 지나.
마녀들의 마을로 진입할 수 있었다.
‘호오… 나무 안에서 생활한 건가?’
나는 커다란 나무들마다 달린 문짝들과 창문들을 보다가 힐끗 눈을 돌렸다.
마을의 중심에는 나무 의자와 가마솥들이 어지러이 널브러져 있다.
‘근데… 바알과 연관이 있을 법한 건 안 보이네.’
나는 지팡이를 든 채 천천히 마녀의 마을을 수색해 나갔다.
그러던 그때.
“흑남님! 잠깐 여기에 좀 와 보시겠습니까?!”
레논이 나를 부르자 나는 서둘러 그에게로 달려갔다.
“무슨 일이죠?”
“여기를 보십쇼. 지하로 가는 계단입니다.”
마을에서 가장 큰 나무 안에는.
어째선지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건…….’
“내부는 확인된 겁니까?”
“예, 이미 데스나이트를 들여보냈는데 별다른 함정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요?”
나는 계단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까딱였다.
“그럼 한번 들어가 보죠.”
똑, 똑-
어디선가 들려오는 물소리를 따라.
우리는 계단을 타고 천천히 지하로 내려갔다.
“천장에 달린 이 발광석들은 꽤나 귀한 것인데…….”
레논이 천장을 보며 나지막이 감탄했으나.
나는 묵묵히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허… 세상에…….”
앞에서 걷던 레논이 돌연 걸음을 멈추고 탄식을 내뱉는다.
“왜 그러십니까?”
“저기, 저기를 보십쇼. 허어… 왜 마녀들이 이런 척박한 환경 속에 자리를 잡은 건가 했더니…….”
‘뭔데 그러는 거지?’
나는 레논이 가리킨 방향을 바라봤다.
‘뭐야. 그냥 바알을 모시는 신전 같은데?’
커다란 공동 안에는 바알로 보이는 남자의 조각상이 있었고.
조각상 발치에는 지진과 해일 그리고 불비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로써 마녀들이 바알을 섬겼다는 건 기정사실화됐네.’
흑탑에 돌아가 이 사실을 알린다면.
이제 검은 대지에서 마녀들은 척살의 대상이 될 것이었다.
‘그보다 저건 또 뭐야. 샘물인가?’
어째선지 그림 가운데에 맑은 물이 고여 있었으나.
나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근데 레논은 뭘 보고 놀란 거지? 놀랄 만한 게 없는… 가만…….’
나는 천천히 바알의 조각상 앞으로 다가가.
조각상의 표면을 비롯하여 벽면들을 자세히 훑었다.
‘뭐야, 이거……. 이게 왜…….’
내가 어처구니가 없어 멍하니 조각상을 바라보던 중.
레논 또한 놀란 눈으로 나를 보며 말한다.
“눈치채셨습니까?”
“예… 이제야 부탑주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알 것 같네요. 이 공간… 전부 미스릴로 만들어졌군요.”
“마녀들은 외부와의 교류를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 정도로 미스릴을 모은 건지…….”
레논이 헉 하여 말꼬리를 흘리자.
순간, 나는 한 가지 가정을 떠올렸다.
“이곳 어딘가에 미스릴 광산이 있는 것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