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카데미의 노예가 살아남는 법-60화 (60/200)

60.

나는 손가락에 힘을 주고 나무패를 떼어 보려 했으나.

나무패는 꿈쩍도 하질 않는다.

“무슨 짓을 한 거냐…….”

“드디어 모든 준비가 끝났군요. 정말이지… 오래 걸렸어.”

“하지만 이로써 베논의 이목을 피할 수 있겠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흘리는 레인과 제인.

‘베논의 이목을 피해? 설마 이 나무패가…….’

나는 마녀들의 말에 수상쩍음을 느끼곤.

“펠기누스!”

정말 체내의 모든 힘들을 끌어모아 소리쳤다.

콰자자작-

그러자 허공에 커다란 균열이 일더니.

검은색과 또 그에 대비되는 새하얀 여섯 짝의 날개들이 균열 사이로 나오려 하지만.

“안 되지요, 안 되지요.”

“당신이 펠기누스를 부를 거라는 건 이미 다 예상을 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마녀들이 지팡이를 들고 하늘로 손을 뻗는다.

그러자.

사사사사사사사사삭-

밤하늘과는 전혀 다른 어둠이 일대를 덮기 시작했고.

이윽고 커다란 돔의 형태를 만들어 낸다.

‘이건 대체……! 펠기누스는 어디 갔지?’

분명 내 옆에 있어야 할 펠기누스가 어째선지 보이질 않는다.

‘설마… 저 장막 같은 것 때문에 소환할 수 없는 건가?’

대체 저 장막이 뭐기에 대악마가 들어올 수 없단 말인가?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위대하신 분이시여.”

“위대하신 분이시여! 천을 거두겠습니다!”

펄럭-

갑자기 마녀들이 보물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또 아주 조심스럽게 세 번째 얼굴에 씌우고 있던 두건을 벗겨 낸다.

‘저건… 또 뭐야?’

어째선지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로 작은 회오리가 빙글빙글 돌고 있었고.

회오리 안에는 벼락과 불비가 흩날리며 묘한 기류를 일으켰다.

사아아아아악-

‘크으…….’

이변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째선지 나무패에서 느껴졌던 불쾌한 느낌이 저 회오리에게서 강하게 느껴지는 것 아닌가?

내가 당혹해하던 그때.

“오오… 우리의 위대하신 바알이시여…….”

“당신께 저희의 몸을 빌려드릴 수 있어 그저 영광, 또 영광입니다.”

레인과 제인이 감격하여 세 번째 머리를 향해 고개를 숙여 보인다.

‘…바알? 저게 바알이라고?’

내가 흑탑의 도서관에서 읽었던 책과는 너무도 다르게 생겼다.

‘책에서는 자연재해를 몰고 다니면서 재앙을 일으키는 재앙의 신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저건 뭐…….’

마녀들의 몸에 세 들어 사는 세입자 같지 않은가?

내가 속으로 혀를 차던 중.

“마침내 저희가 흑남을 잡았습니다! 저희가 했던 일들이 모두 밑바탕이 된 게지요!”

“그렇습니다! 모든 건 바알 님께서 원하신 대로 이루어졌지요!”

마녀들이 자신들의 업적을 바알에게 늘어놓는다.

[무능한 것들.]

하나 어째선지 바알의 머리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싸늘하기 짝이 없었다.

[너희의 무능함으로 인해 나의 계획이 늦어졌다.]

“그, 그건…….”

“죄, 죄송합니다! 저, 저희가 모자란 탓에…….”

[됐다. 너희가 벌인 두 번의 헛짓거리는 나를 실망시키기 충분했고 이제 너희는 그 용도를 다했다.]

바알의 말이 끝나자.

갑자기 마녀가 자신의 팔을 들어 첫 번째 머리를 콱 움켜잡는다.

‘저건 또 뭐하는 거야?’

“바, 바알 님? 무, 무슨 일로……?”

콰드득-

“바, 바알 님?! 바알 님! 아, 안 됩니다! 이럴 수는 없습니다! 제가 당신을 위해 그토록 헌신을 했는데, 제게 이러실 수는 없습……!”

콰드드드득-

“레인!”

레인의 목이 당근 뽑히듯 몸에서 떨어져 나가 바닥을 뒹군다.

‘저게 대체 무슨 짓거리야?’

나는 순간 속이 메스꺼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껏 역겨운 광경은 엄청 많이 봤다고 자부했는데… 이건 또 새롭네.’

하지만 마녀의 기괴한 행동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터억-

아직 피가 채 마르지 않은 마녀의 오른손이 이번에는 제인의 머리를 잡자.

“바, 바알 님… 저희에게… 저희에게 영원불멸한 삶을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왜 저희를 죽이시려고 하는 겁니까! 대체 왜!”

제인이 피눈물을 흘리며 소리친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없었고.

“바알!”

제인의 지팡이에 검은 화염구가 맺혀 간다.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투드드드드득-

“아… 레… 인…….”

제인이 생전에 남긴 말은 그게 끝이었다.

‘저 미친놈이… 그래도 자기를 섬기던 놈들을…….’

내가 바알의 무자비함에 혀를 내두르던 중.

꿀렁꿀렁-

바알의 머리가 몸의 중심으로 이동하더니.

마녀들의 목이 날아간 자리마다 새 살이 돋기 시작한다.

‘얼굴이 바뀌었어?’

바알의 얼굴에 있던 회오리는 사라지고.

어딘가 무심해 보이는 남자의 얼굴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으음… 낯설군.”

바알은 어깨를 좌우로 비틀더니.

비로소 내 눈을 마주한다.

“오래 기다리게 했군.”

“…….”

놈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중압감이 느껴진다.

‘후우… 바알의 종들이 아니라 바알을 직접 대면하는 상황이 벌어질 줄이야.’

나는 이곳에서 살아 나갈 수 있을까?

불현듯 걱정이 들었으나.

나는 최대한 무관심한 표정으로 입을 뗐다.

“그렇게까지 나를 죽이고 싶었나?”

“너를 죽여?”

픽 실소를 흘리는 바알.

“착각하지 마라. 너를 죽이는 것 정도는 아주 간단한 일이다.”

바알이 손을 들어 일자로 스윽 긋자.

우르르르르릉-

“우왁!”

갑자기 지진이라도 난 듯 내 발밑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땅들에 커다란 균열이 번진다.

‘이런 미친… 무슨 손가락 하나로 지진을 일으켜?’

만약 상대가 사람이었다면 사기 능력을 가졌다고 욕설을 퍼부었으리라.

‘정신 차리자, 정신 차려. 상대가 신이라고 해도 반드시 살아 나갈 구멍이 있을 거야.’

나는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곤 입을 뗐다.

“아, 그래? 그래서 수업 시간에 몰래 마법을 날리셨나? 식당에서 벌어졌던 독살도 네 짓거리 아니야?”

나의 물음에 바알이 얼굴을 찌푸린다.

“내 종들이 멋대로 일을 벌인 것뿐이다.”

“아, 그래? 그럼 왜 흑카데미에선 가만히 있었던 건데? 이런 힘이 있었다면 진작 나서도 됐었을 텐데?”

나는 입꼬리를 슬쩍 올리고는 툭 한마디를 내뱉었다.

“혹시 베논에게 걸릴 게 무서워서 자리를 옮긴 건 아니지? 그렇잖아? 마신의 자리를 두고 싸웠다가 졌으니 그럴 만도 하지.”

“…….”

바알이 말이 없자.

‘아차… 너무 도발했나?’

나는 순간 피부가 싸늘해진 것을 느꼈다.

“맞다. 난 베논에게 패배했었고 겨우 목숨만을 부지했지.”

그러나 다행히도 바알은 무감각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베논을 이길 자신은 없으니 대신 나한테 복수라도 하려고?”

“복수? 크하하하하하! 그런 사적인 감정은 사라진 지 오래다. 나는 그저 네게 기회를 주려고 한다.”

“…기회?”

내가 눈살을 찌푸리자.

바알은 덤덤히 대화를 이어 나간다.

“네가 믿는 두 신을 저버려라. 그럼 목숨만은 건지게 해 주마.”

‘바알을 믿어라? 근데 그렇게 믿고 따르던 마녀들은 죄다 목을 뽑아 버려 놓고선 목숨은 건지게 해 주겠다?’

자기가 말한 공약은 한 개도 실천하지 않는 놈이 지금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는 건가?

“두 신을 저버리라고?”

“그래. 지금 네가 갖고 있는 힘들을 모두 내려놓으면 된다.”

‘내가 갖고 있는 힘들을 포기하라고?’

그 말인즉슨 신성력과 흑마력을 모두 버리라는 것 아닌가?

‘저 새끼가 돌았나? 누구 마음대로 힘을 버리래?’

솔직히 나는 저 미친놈의 말을 더 듣고 싶지 않았으나.

한편으로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도 계속 대화를 이어 나가야만 했다.

‘적어도 이 망할 공간을 벗어날 방도를 알기 전까진 최대한 말을 많이 해야 돼.’

“왜 힘을 포기해야 하는 건데?”

“네가 두 신의 선택을 받은 재앙이기 때문이다.”

‘내가… 재앙이라고? 어린 시절 대부분을 하인으로 굴렀다가 이제 좀 사람답게 살려는 놈한테 뭐? 재앙?’

나는 어이가 없어 멍하니 바알을 바라봤다.

“내가 재앙이라고?”

“그렇다. 세계는 너로 인하여 멸망할 것이다.”

“허…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나보고 믿으라고?”

나의 물음에 바알의 입가가 희미하게 올라간다.

“그렇다면 어째서 레바논과 베논이 널 선택했을까?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나?”

바알의 말에 나는 침묵했다.

‘이상하다라……. 생각은 해 봤었지. 베논이야 흑남 의식 때문에야 그렇다 쳐도, 레바논은 왜 내게 신성력을 줬는지 납득이 안 됐었으니까.’

레바논의 교전을 읽고 얻었던 신성력.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어딘가 이상한 느낌이 있긴 했었다.

“그래서 재능이 없는 놈은 신에게 선택받을 자격도 없다,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건가?”

“네가 두 신의 선택을 받은 건 네가 재앙의 근원이자 분란의 씨앗이기 때문이다. 그게 네가 선택받은 이유다.”

‘그렇게 따지면 레바논과 베논은 멸망을 원하는 미친 신들이고? 명색이 성신이랑 마신이라는 작자들이?’

“헛소리하지 마. 그저 두 신은 무료함을 채우기 위해 나로 내기를 한 것뿐이니까.”

내가 싸늘하게 말하자.

바알의 입꼬리가 서서히 반달을 그려 가더니 이윽고 크게 웃음을 터뜨린다.

“내기? 으하하하하하! 아주 단단히 착각하고 있군. 내기는 단순한 명분일 뿐이다. 두 신은 너를 이용해 엄청난 재앙을 일으킬 거다. 성마전쟁이나 왕국 간의 전쟁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재앙을 말이다.”

‘나를 이용해 엄청난 재앙을 일으킬 거라고?’

나는 도무지 바알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엄청난 재앙이라고 해 봐야 전쟁밖에 더 있어? 막말로 그쪽이 일으키는 재앙이 더 엄청날 텐데?’

나를 혼란에 빠뜨리려고 궤변을 늘어놓는 걸까?

아니면 진심으로 하는 소리일까?

‘하지만 만약 저 말이 진심이라면… 엄청난 재앙이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거잖아? 레바논과 베논은 그걸 원하고 있다는 거고.’

그렇다면 대체 그놈의 엄청난 재앙이 무엇이고.

두 신은 왜 그런 혼란을 원한다는 걸까?

“뭐, 좋아. 백번 양보해서 내가 재앙의 씨앗이라고 치자고. 그럼 내가 왜 재앙의 씨앗인 건데?”

“그건 네가…….”

바알이 무어라 말을 이어 가려던 그때.

쩌억-

갑자기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검은 돔 위로 굉음이 울려온다.

‘…뭐지? 누군가가 나를 도우러 온 건가?’

“…예상한 것보다 많이 이르군.”

천장을 무심히 바라보는 바알.

그는 곧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이제 선택을 할 시간이다. 두 신과의 연결 고리를 끊을 것인지, 아니면 나의 손에 죽을 것인지 선택해라. 만약 두 신과의 연결 고리를 끊을 것이라면 내가 도와주도록 하겠다.”

“어떻게 도와준다는 건데?”

“너를 나의 신전으로 데리고 가 육체를 재구축할 것이다. 육체의 재구축을 통해 두 신의 힘은 자연적으로 소멸될 것이다.”

‘뭐요? 육체를 재구축해? 시팔, 내가 안드로이드야?’

그렇다고 거절하면 곧장 바알이 죽음을 내릴 터.

‘어느 쪽을 선택하건 개같은 건 매한가지네. 도망갈 수만 있다면 그게 최고긴 한데…….’

하지만 무슨 수로 바알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단 말인가?

쩌저저저적-

다시금 돔 밖에서 굉음이 울려오자.

난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뭔지는 몰라도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 분명해! 그렇다면…….’

어떻게든 찰나의 시간만이라도 벌 수 있다면.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이 생긴다는 것일 터.

‘하지만 무슨 수로 시간을 벌 수 있지?’

내가 미친 듯이 머리를 굴리던 그때.

바알이 나지막이 말한다.

“10초를 주겠다. 그 안에 답하지 않는다면 나의 주관대로 움직이도록 하지.”

‘말이 좋아 주관이지 그냥 날 죽이겠다는 것 아냐? 젠장… 젠장! 좋은 방법이… 가만, 그래!’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나의 뇌리를 스쳐 간다.

‘그걸 사용한다면 잠깐이라도 시간을 벌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얼른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 뒀던 저주받은 지팡이를 꺼내어 손에 쥐었다.

“파멸의 징조.”

화르르륵-

나는 나의 머리 위로 생성된 검은 화살들을 그대로 바알에게 쏘아 냈다.

“그게 너의 대답인가?”

하지만 바알이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날아가던 검은 화살들이 삽시간에 사라져 버렸다.

“진실을 알려 줘도 진실을 알아볼 눈이 없는 어리석은 인간이여, 무지하고 또 무지하구나.”

탄식하듯 읊조리던 바알이 손가락을 아래에서 위로 까딱거리자.

순식간에 내 발밑이 꺼지더니.

부글부글-

‘이런 미친?!’

지옥불 같은 용암이 나를 반긴다.

“우와아아아아악!”

떨어지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고 했던가.

내가 무서운 속도로 추락하여 용암에 빠지려던 그때.

화악-

갑자기 내 지팡이에서 검은 기운이 흘러나오더니.

돌연 나는 나의 몸이 어디론가 날아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슥-

이윽고 내 발바닥이 지면에 닿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틈도 없이 바로 머리 위를 훑었다.

‘후욱… 후욱… 그 빌어먹을 돔에서 나온 건 아니네. 그래도 지팡이에 걸린 저주가 잘 발동해서 망정이지, 진짜… 죽는 줄 알았네…….’

시전자를 무작위 공간으로 내던지는 저주.

나를 물 먹였던 저주가 지금은 이토록 사랑스럽게 느껴질 줄이야.

‘바알은 어디에 있지?’

내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때.

“편안한 죽음을 허락했건만 그마저도 거부하다니. 세계의 안녕을 위해 죽거라.”

저만치서 바알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화르르르르르륵-

검은 돔을 꽉 채울 정도의 운석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미친! 무슨 놈의 운석 크기가……!’

나는 얼른 땅이라도 파 볼까 생각했으나.

운석이 떨어지는 속도가 너무도 빨랐다.

‘이렇게… 죽는다고?’

어느덧 운석의 울퉁불퉁한 표면이 뚜렷이 보일 정도로 가까워지자.

나는 멍하니 운석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런 시팔…….’

그러던 그때.

파창-

내 머리 위에서 무언가가 깨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오더니.

어느덧 코앞까지 다가왔던 운석이 움직임을 멈췄다.

‘뭐, 뭐지?’

내가 당황하여 운석을 올려다보던 그때.

화아아아아아악-

은은하면서도 찬란한 빛의 기둥이 나의 발 앞으로 떨어진다.

‘아니, 가만… 이 힘은……?’

이윽고 빛기둥이 사라지자.

[후우… 다행히 늦지는 않은 모양이네.]

허리까지 머리를 기른 금발의 여인이 나를 보며 빙긋 미소를 짓는다.

‘…레바논이 여길 어떻게 온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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