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호기심이 화를 부른다라……. 바질리스크의 머리가 아니라 다른 게 들어가 있기라도 한 건가?”
“그건 흑남님의 상상의 영역이지요.”
“상자를 열어 보기 전까지는 안에 뭐가 들어 있을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마녀들의 입에서 쇠를 긁는 것 같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오자.
나는 피식 미소를 흘리며 물었다.
“내 상상의 영역이라… 재미있네. 만약 내가 그 상자를 열어 보겠다고 명령하면?”
“흑남님의 명령이시라면 응당 따라야지요.”
“이 흑카데미의 실세, 나아가 흑탑의 실세가 되실 분의 명령인데 당연히 따라야지요! 하고 말하고 싶지만 그만한 대가를 치르셔야만 할 겁니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지요?”
질문을 길게 늘어뜨리는 세 머리의 마녀.
그녀들은 눈매를 길쭉하게 늘어뜨리고는.
눈알을 좌우로 데굴데굴 굴리며 나를 뚜렷하게 주시한다.
‘대가라……. 안에 뭐가 있는지 궁금하긴 하다만 내가 무언가를 책임져야 할 정도로 궁금하진 않으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됐어. 그보다 남는 고약이 있으면 더 챙겨 줘.”
“넉넉하게 챙겨 드리겠습니다.”
“주머니가 터질 정도로 말이지요.”
* * *
마녀들의 치료실을 나가고 몇 시간 뒤.
흑카데미와 검은 숲의 경계선에선.
“자, 오늘은 마물들의 생태계와 식습관의 첫 수업이죠? 그렇게 긴장할 거 없어요. 제 수업은 그렇게 어렵지 않으니까요.”
새 마물학 교수 힐락이 학생들을 모아 놓은 채.
자신의 수업에 대해 바삐 설명을 한다.
‘흠… 괜히 선택했나?’
나는 그런 힐락 교수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검은 숲 출신이라고 해서 저번 마물학 교수랑은 뭔가 좀 다르게 수업을 진행할 줄 알았는데 것도 아닌 것 같네.’
이번 수업이야 어쩔 수 없이 듣는다고 쳐도.
다음 수업부턴 나오지 않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들던 그때.
“교수님! 마물은 어디에 있죠?”
와중 한 학생이 질문을 던진다.
“마물이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힐락 교수.
“마물은 검은 숲 안에 득실거리죠.”
“아니요, 제 말은 원래 마물을 잡아 와서 그걸로 수업을 진행했었잖아요!”
학생의 외침에 힐락이 싱긋 미소를 짓는다.
“아아, 전 교수님께서는 그런 식으로 수업을 진행하셨던 모양이죠? 하지만 제 수업 방식은 좀 많이 달라요.”
“다르다고요?”
“네!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검은 숲 안으로 들어가서 수업을 진행할 거예요! 신나죠?”
얼어붙은 학생들을 보며 활짝 웃는 힐락 교수와 달리.
나는 의아하게 그녀를 바라봤다.
‘너무 위험한 것 아닌가? 그녀가 독단적으로 내린 결정은 아닐 테고… 볼드 학장이 이걸 허락했다고?’
아무리 힐락 교수가 동행한다고 하더라도.
검은 숲은 너무 위험한 곳이다.
‘나도 하인 시절 때 이곳에서 죽을 뻔했던 게 몇 번이었는지…….’
내가 속으로 고개를 젓던 중.
힐락이 뾰족한 귀를 쫑긋거리며 소리친다.
“걱정들 마세요! 저는 이 숲에서 꽤나 오랫동안 생활을 해 왔답니다. 제 말만 잘 따르면 여러분이 다칠 일은 없어요!”
‘하긴… 검은 숲 출신이니 누구보다 숲 사정을 잘 알고 있겠지. 그렇다면 이 수업… 들을 가치가 있겠는데?’
이곳의 그 누구보다 검은 숲에 통달한 힐락.
그런 그녀를 파수꾼 삼아 미지의 공간인 검은 숲을 탐방한다?
그건 내게도 꽤나 매력적인 수업이었다.
‘검은 숲은 내게도 선뜻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었으니까. 잘됐네.’
“자, 이제 검은 숲 안으로 들어갈 거예요! 안으로 들어가거든 절대로 큰 소리를 내거나 제 말을 어기시면 안 돼요! 아셨나요?!”
“예!”
“그럼 들어가죠.”
힐락의 인도하에 우리는 천천히 검은 숲 안으로 진입했다.
몇 시간이나 걸었을까.
‘오호… 확실히 이곳이 경치는 죽여준단 말이야.’
나는 숲의 광경을 보며 속으로 낮게 탄성을 내질렀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곳이라 그런지.
커다란 폭포도, 산길도 모든 것이 야생의 날것 그 자체였다.
‘확실히 길잡이가 있으니까 편하네. 베크 교수 그 멍청한 양반은 무식하게 하인들을 밀어 넣는 방식을 선호했었는데.’
내가 자연에 한껏 취해 있던 그때.
“여러분! 저기를 보세요! 저 덩굴처럼 서로 얽혀 있는 풀들이 보이시죠? 저게 바로 아로호르 약초예요. 저게 있다는 건 근처에 포란도들이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힐락이 한쪽을 가리키며 속삭이듯 말한다.
‘포란도라……. 그놈들은 쉽게 잘 안 보이던데, 그놈들이 여기 있을 리…….’
크러러러러러러렁-
지축을 울리는 괴성에 힐락이 학생들에게 바싹 엎드릴 것을 지시했고.
나는 순순히 그녀의 말을 따라 바닥에 엎드렸다.
“포란도들이 보이죠?!”
잔뜩 흥분한 힐락 교수.
그녀는 잔뜩 신이 나 학생들에게 설명을 시작한다.
“저 친구들의 외피가 보이시죠? 저건 거대한 성벽같이 두텁고 단단하죠. 너무 단단해서 어지간한 흑마법에는 흠집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요. 굉장하죠?”
힐락의 설명에 한 학생이 질문을 던진다.
“그럼 위험한 것 아닌가요?”
“포란도들은 태생이 온순해서 괜찮아요. 기본적으로 이쪽에서 건들지 않는 이상, 저쪽도 우리를 공격할 일은 없어요.”
‘베크 교수는 굉장히 위험하고 난폭한 마물이라고 그랬었는데……. 실제로도 그랬었고. 우리가 포획하려고 해서 그랬었던 건가? 역시 현지인은 다르다 이건가?’
전 마물학 교수 베크 교수의 가르침과 힐락 교수의 가르침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고.
“이상하네, 포란도는 분명 포악한 마물이라고 했었는데…….”
“근데 막상 이렇게 보니까 얌전하잖아?”
그런 탓인지 학생들도 혼란해하는 분위기다.
‘아무래도 베크 교수가 잘못 가르친 게 분명하네.’
내가 속으로 혀를 차던 중.
힐락 교수가 다시금 말을 이어 간다.
“저들의 외피는 드워프들의 대공방에서 갑옷으로 만들어지거나 지팡이의 재료로 사용되기도 하죠. 또한 포란도의 고기는 고급 식자재로서… 거기, 학생. 졸지 말고 잘 들어요. 시험에 낼 거예요!”
“예!”
‘드워프의 대공방? 흑탑은 드워프랑도 거래 관계를 튼 건가?’
드워프.
책에서나 봤던 이종족들로 아직까지 내 눈으로 직접 그들을 본 적은 없었다.
‘대공방이라… 신기하네. 나중에 그런 곳도 한번 갔으면 좋겠는데.’
조용하고 한적하던 분위기에 취해 내가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콰과과과과과과과광-
돌연 저만치 떨어진 들판에서 커다란 굉음이 울려온다.
‘…뭐야. 어떤 미친 새끼가 마법을 갈겼어?’
크롸라라라라-
검게 타오르는 불꽃 위로.
기습을 받은 포란도들의 포효가 쩌렁쩌렁하게 퍼져 나간다.
“이런 미친……! 누가 마법을 썼죠?!”
힐락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학생들을 보며 소리쳤으나.
당연히 나오는 이는 없었다.
크롸라라라라라-
포란도들이 우리가 있는 방향을 죽일 듯이 노려보자.
“이런…….”
힐락 교수는 재빨리 허리춤에 매어 뒀던 활을 꺼내며 소리친다.
“다들 제자리를 지키세요. 그러면 안전할 테니까요.”
‘도망가라고 지시하는 게 아니고 자리에 있으라고?’
나는 납득이 가지 않아 그녀의 등을 바라봤다.
힐락 교수야 어떨지 몰라도.
지금 학생들의 실력으로는 포란도들의 외피에 흠집조차 내기 어려울 터.
‘대체 무슨 생각으로…….’
화아아아악-
그러나 힐락 교수의 활촉에 서서히 모여드는 푸른 기운을 보고는.
나는 그제야 어째서 그녀가 그런 명령을 내렸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에나 할멈만 미친 실력자인 줄 알았더니… 이 다크 엘프, 보우마스터였어?’
소드마스터들만이 사용한다던 푸른 강기.
에나 할멈이 사용하던 푸른 강기가 똑같이 힐락의 활촉에 걸려 있는 걸 봐선.
그녀는 보우마스터가 분명했다.
‘어떻게 다크 엘프가 교수가 된 건가 했더니… 이유가 있었구나…….’
팽-
그사이 힐락이 끝까지 당긴 활시위가 튕겨져 나가고.
쿠러러러러러러러-
바위고 나무고 할 것 없이 박살을 내며 돌진하던 포란도들의 무리 위로 화살이 떨어진다.
그리고 그 자리에 빛이 있었다.
“워…….”
나는 소리 없는 폭발의 현장을 멍하니 바라봤다.
‘저게… 마스터인가? 저런 화살을 맞으면 뼈도 못 추리겠네.’
왜 마스터라는 칭호를 가진 자들이 전쟁 억제제라는 소리를 듣는지.
나는 이제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힘을 다 쓴 것도 아닐 텐데 저 정도의 위력이라니. 허 참… 아직 난 가야 할 길이 멀구나. 근데… 저런 괴물이 왜 마물학 교수로 온 거야?’
솔직히 지금의 실력을 증명하기만 해도.
어느 왕국을 가건 후한 대접을 받을 터.
‘이해할 수가 없네.’
내가 고개를 젓던 사이.
상황을 마무리한 힐락이 내게 다가와 조심스레 묻는다.
“…다치신 곳은 없으시죠?”
“예, 덕분에 무사합니다.”
“휴… 다행이다…….”
나의 대답에 비로소 안도의 숨을 토해 내는 힐락 교수.
“아하하… 하마터면 교수에 취임하자마자 짤릴 뻔했네요. 아, 자리랑 목이 같이 달아날 뻔했던 건가요?”
“목이 잘리다니요. 농담도 잘하시네요.”
“농담이라뇨? 만약 흑남님이 제 수업을 들으시던 중에 부상이라도 입으셨으면, 후…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네요.”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피식 미소를 흘렸다.
“아무래도 이런 형태의 수업은 위험하니 다음부턴 조금 더 신경 써서 진행하시는 게 나을 겁니다.”
“아하하하… 그렇죠? 고민을 한다고는 했는데 이런 변수가 나올 줄이야……. 좀 더 안전에 유의해야겠어요. 고마워요.”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왜 보우마스터가 교수 일을 맡았냐고 물어보려다가 손을 내둘렀다.
“아닙니다. 계속 수업을 진행해 주시죠.”
‘지금은 상황을 마무리하는 게 우선이야. 그건 나중에 힐락 교수랑 따로 만나서 이야기해도 되는 거니까.’
내가 슬쩍 뒤로 빠져 주자.
힐락 교수는 학생들의 앞으로 다가가 그들을 보며 눈을 흘긴다.
“제가 분명 제 말에 따르라고 했었을 텐데요. 누가 흑마법을 사용했죠?”
“…….”
힐락의 무력을 본 탓일까.
학생들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눈만 끔벅거리던 그때.
“저, 전 봤어요! 그 흑마법은 저희가 사용한 게 아니에요! 우리 뒤쪽에서 날아온 거라고요!”
한 학생이 소리친다.
“…뒤쪽에서 날아왔다고요?”
‘뒤쪽에서 날아왔다고?’
정말 학생의 말이 사실이라면.
누군가가 악의를 갖고 포란도의 머리 위에 마법을 뿌렸다는 것 아닌가?
‘하지만 힐락 교수가 보우마스터라는 건 예상을 못 했던 모양이야. 하긴… 나도 몰랐으니까. 그보다… 그럼 누가 이런 짓거리를 한 거지?’
“일단 현장으로 가 보죠. 뭔가 흔적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래요.”
나의 말에 힐락 교수는 흔쾌히 승낙하곤.
잔디 하나 남지 않은 들판으로 이동했다.
“아무래도 상대가 사용한 마법은 재앙의 축제인 것 같습니다, 교수님!”
“재앙의 축제라면…….”
학생의 말에 힐락 교수가 힐끔 나를 바라보자.
나는 나지막이 대답했다.
“파멸학파의 파괴 마법입니다. 보통은 5서클 이상의 흑마법사들부터 구현할 수 있는 흑마법으로 알려져 있죠.”
“그렇단 건… 저희를 습격한 건 5서클 이상의 파멸학파의 흑마법사라는 말이 되겠군요!”
힐락 교수가 눈을 번뜩인다.
“파멸학파의 교수님들에게 찾아가서 따져야겠어요! 다크엘프가 교수에 취임했다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장난을 치신 것 같은데…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겠네요.”
그러나 분통을 터트리는 힐락과 달리 나는 고민에 잠겼다.
‘정말 파멸학파의 교수들이 이런 짓거리를 했을까? 힐락 교수가 다크엘프라는 이유로?’
물론 내가 다크엘프와 흑마법사 간의 관계가 어떤지 상세히 아는 것은 아니었으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교수들이 이런 짓거리를 하진 않았을 것 같다.
‘학생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자기들에게도 지장이 생기는데 구태여 이런 짓을 한다?’
“뭔가 단서가 될 건 없는 것 같네요.”
폐허가 된 들판 일대를 둘러보던 힐락 교수.
그녀는 풀이 죽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하긴… 자기 첫 수업부터 이 사달이 났으니…….’
“아무래도 흑마법 하나만으로는 습격자를 유추하는 데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렇… 겠죠……. 아하하… 학생들이 멀쩡한 것에 의미를 둬야겠네요.”
솔직히 흑마법 하나만 갖고 습격자를 단정 짓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단은 돌아가시죠. 더 수업을 진행하는 건 불가능하실…….”
내가 힐락 교수를 적당히 위로하며 발길을 돌리려던 그때.
사아아아아아-
‘으음…….’
순간 불쾌하고도 꺼림칙한 느낌이 나의 등을 자극해 왔고.
‘이 느낌은……?’
나는 곧 내가 그런 느낌을 떠올린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왜 흑마법이 떨어진 자리에서 불쾌한 기분이 드는 거지?’
“흑마법이 떨어진 자리에서 뭔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네? 뭐가 느껴진다고요? 뭐가요?”
하나 나와 달리 힐락 교수는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다.
‘이렇게 불쾌한 기운이 강하게 느껴지는데…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고?’
비단 힐락 교수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학생들에게도 물어봤으나 그들 역시 아무렇지 않다는 말을 해 왔다.
‘내가 이상한 건가?’
피부로 느껴지는 이 수상쩍은 자극을 다른 이들은 느끼지 못한다니.
‘거참…….’
나는 의아함이 들었으나 일단은 학생들과 함께 검은 숲을 벗어났다.
* * *
다음 날.
“수고하셨습니다!”
여느 때처럼 나는 소드마스터 에나에게서 수련을 받고는.
아침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내려갔다.
‘…음?’
그러나 어째선지 평소와 달리 학생들은 식당에 들어가지 않고.
그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흑남님, 혹시 오늘은 매점을 좀 일찍 열어 주시면 안 될까요?”
개중 일부 학생은 내게 부탁을 해 오기까지 한다.
“왜?”
나의 물음에 옆에 있던 한 여학생이 내게 이유를 말해 준다.
“지금 음식에 독이 풀렸다고 해서 밥을 먹을 수가 없어요.”
“누가 음식에 독을 풀었다고?”
‘그게 가능한가?’
조리실에는 조리실장 케르베로스가 군림하고 있는데 독을 풀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