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진짜 마물인가?’
내가 미심쩍은 시선으로 돌덩이를 바라보던 그때.
쩌저저저적-
갑자기 돌덩이에 큰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짜잔!”
갈라진 돌 사이로 돌연 튀어나온 여인이 학생들을 보며.
활짝 미소를 보인다.
‘저건… 다크엘프 아냐?’
기다란 귀에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여인은 분명 다크엘프였다.
‘근데 무슨 다크엘프가 돌 안에서 튀어나와? 퍼포먼스라도 하고 싶었던 건가?’
당황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던 걸까.
“뭐, 뭐지?”
“그, 그러게……?”
학생들 역시 당황한 티가 역력하자.
“뭐죠, 이 분위기는?”
힐락이라 불린 다크엘프는 그런 학생들을 게슴츠레하게 바라보며 묻는다.
“하… 기껏 준비해서 나왔더니… 기분이 상하네요. 교수 일은 없던 걸로 하죠.”
“힐락 교수?”
볼드 학장의 무거운 목소리가 울리자.
“아, 학장님. 가벼운 농담이죠. 분위기가 너무 무거운 것 같아서요.”
힐락은 미소를 지은 채 손사래를 친다.
“음… 여하튼 그녀는 새로운 마물학 교수로서 너희를 가르치게 될 거다.”
“한 학기 동안 잘들 지내 봐요!”
‘다크엘프들은 죄다 경계심이 많고 음험함 종족이라고 책에서 봤었는데… 마냥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네. 아니면 저 다크엘프가 유독 이질적인 걸지도 모르지.’
살갑게 인사하는 그녀를 보며 내가 생각에 잠겨 있던 중.
“비의 숲 출신의 레인, 제인 님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하인장이 재차 목소리를 높이고.
웬 여인이 괴상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연회장 안으로 들어선다.
‘뭐, 뭐야, 저건……. 왜 머리가 두 개야? 아니… 세 갠가?’
한 몸에 노파의 얼굴이 둘.
그리고 그 얼굴들 옆에는 어째선지 검은 천에 둘둘 말린 것이 자리하고 있었다.
‘저것도 머리인가? 근데 왜 저것만 천으로 감싼 거지?’
“으히히히히! 어이구, 어린놈들이 몇이야? 어디 보자. 하나아, 두울! 다 세기도 어렵네.”
“레인, 내가 왼쪽을 셀 테니까 네가 오른쪽을 세라고! 으히히히히!”
“그래, 그래! 그러자고!”
세 개의 머리를 가진 노파가 학생들을 쓱 훑곤.
“으히히히! 오랜만이요, 볼드 학장.”
“너는 볼 때마다 늙지를 않는 것 같다? 네 몸에도 마녀의 피가 섞인 것 아냐? 으히히!”
낄낄거리며 볼드 학장의 앞으로 나아간다.
“오랜만입니다, 레인, 제인 님.”
‘오호… 볼드 학장이 경어를 사용하는 걸 봐선, 나름 입지가 있는 사람들인가 보네.’
“그걸 아는 놈이 숲에 한 번 안 놀러 와?!”
“싸가지 없기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네!”
노파들이 버럭 소리치자.
볼드가 슬쩍 고개를 숙인다.
“송구스럽습니다. 그런데… 원래 제가 알기로 레인 님과 제인 님, 두 분만이 함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옆의 그건… 뭡니까?”
볼드 학장이 천으로 둘둘 말려 있는 마녀들의 머리 같은 것을 가리키자.
“볼드, 정말 알고 싶나?”
마녀 한 명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볼드를 응시한다.
“여기에 있는 학생들이 전부 돌이 돼서 죽게 될 텐데? 응?”
“설마… 바질리스크의 머리라도 붙이신 겁니까?”
“그것까진 네가 알 필요 없다.”
마녀들이 볼드의 몸을 툭 밀치자.
“학장님 앞입니다! 예의를 지키시죠!”
한 교수가 나서서 그녀들을 제지한다.
“예의의의?!”
“나보다 어린놈보고 예의를 차리라고? 예의가 없는 놈에게 아주 잘 듣는 특효약이 있지. 제인, 가져왔지?!”
“그래, 그래. 쓴맛을 보여 주자고!”
두 노파가 돌연 손에 푸른 약병을 들곤.
그대로 교수의 면전에 끼얹는다.
“으악!”
자리가 자리였던 탓일까.
피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교수.
“무, 무슨 짓을… 으… 으으으…….”
그가 삿대질을 하려던 찰나.
드드드드득-
어째선지 그의 몸에 얼룩덜룩한 반점이 생겨나고.
개굴-
이윽고 그 자리에서 작은 개구리 한 마리가 요란하게 울어 대기 시작한다.
“레인! 이것 좀 봐! 멍청한 개구리가 됐다고!”
“잘 보고 있어, 제인! 얼간이 같은 녀석. 그러게 누가 입을 놀리래?! 볼드! 부하 관리가 미숙하구나! 으히히히!”
두 노파가 낄낄거리자.
볼드가 사과하듯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한다.
“제 부하가 실례를 끼쳤습니다.”
“그래, 그래! 관리 잘해!”
“이번만 봐준다!”
이번에는 노파가 붉은 시약을 꺼내어 개구리에게 뿌리자.
펑-
“어… 어어?”
빨가벗은 교수가 이내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허겁지겁 옷가지를 챙겨 연회장을 빠져나간다.
‘저 노파들은… 마년가?’
마녀.
검은 대륙의 거주민들 중 한 부류로서.
여러 학파를 공부하는 흑탑의 흑마법사들과 달리 마녀들은 약학 그리고 저주에 해박하다고 들었다.
‘그럼 저 양반들이 새 치료사라는 건데… 그렇게 인재가 없나? 딱 봐도 반쯤 미친 여인들을 치료사로 채용하다니…….’
거기다가 그 세 번째 머리.
그건 진짜 바질리스크의 머리인 걸까?
‘진짜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바질리스크의 머리를 자기네 몸뚱이에 심은 거지? 마녀들에게는 그런 기술도 있는 건가?’
“그녀들은 새로운 치료사로서 너희의 회복을 도와줄 거다.”
레인, 제인의 소개를 끝으로.
개학식은 볼드 학장의 연설 몇 마디와 더불어 금세 끝이 났다.
‘후… 일단 방으로 돌아가서 짐을 풀까.’
레논 부탑주에게서 이것저것 받아 온 탓에 내 아공간 주머니는 이미 포화 상태에 가까웠다.
내가 연회장을 빠져나가는 학생들의 뒤를 따라 연회장을 나서려던 그때.
“흑남님,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어느새 다가온 볼드 학장이 나의 발걸음을 제지한다.
“왜?”
“잠시 소개해 드릴 분이 있어서 말입니다.”
‘소개해 줄 사람? 설마 방금 그 미치광이 마녀들을 정식으로 소개해 주겠다는 건가?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데.’
“레인, 제인이라면 이미 소개를 받았잖아?”
“그 두 분이 아닌 다른 분입니다.”
‘…다른 분?’
내가 볼드 학장에게 붙들린 사이.
어느덧 학생들이 모두 나간 연회장 안이 적막함으로 휘감긴다.
‘아니… 아무도 없는데 대체 누구를…….’
내가 볼드 학장을 보며 입을 떼려던 그때.
“도미닉 왕국 출신의 에나 님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또각, 또각-
열린 문으로 정숙한 차림을 한 노부인이 연회장 안으로 들어선다.
‘…에나? 도미닉 왕국? 도미닉 왕국이라면 흑탑과는 명확한 적대 관계에 있는 왕국일 텐데?’
내가 의아한 눈으로 노부인을 바라보던 그때.
노부인이 나를 흘낏 보곤 볼드 학장을 보며 입을 뗀다.
“이 아이니?”
“그렇습니다. 이번 학기 동안 이분을 가르쳐 주시면 됩니다.”
“…그래?”
내 몸을 쓱 훑더니 나지막이 혀를 차는 노부인.
“체격이나 골격을 봐선 검에 대한 재능은 없는 것 같은데. 내가 가르친다고 의미가 있겠니?”
‘뭐요? 이보쇼, 할멈. 초면부터 면전에 대고 재능 타령을 하는 건 좀 불쾌한데?’
내가 노부인을 쏘아보자.
“판단은 제 몫이 아닙니다. 에나 님을 흑남께 소개해 드린 것으로 제 할 일은 끝이 났습니다.
볼드 학장이 얼른 그녀의 물음에 답한다.
“재능이 없는 사람을 가르치는 것만큼 시간 낭비인 것도 없건만…….”
“할머니, 초면부터 사람한테 재능이 있고 없고 여부를 따지는 것부터 실례되는 행위인 건 아세요?”
나의 물음에 에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희미한 곡선을 그리며 답한다.
“아가야, 냉정하게 현실을 알려 주는 게 오히려 배려가 될 수 있단다. 그리고 너는 검에 대한 재능이 없어.”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그걸 왜 갑자기 저한테 말씀하시는 거죠?”
“나가란에게 듣지 못한 거니?”
‘음? 갑자기 탑주 이름은 왜 꺼내는 건데?’
설마 눈앞의 노부인과 나가란 탑주 간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던 걸까?
“못 들었는데요?”
“그 영악한 놈이 이런 사소한 일은 잘 처리하지 못하는 모양이구나. 짧게 설명하마. 나가란에게 부탁을 받았다. 이번 학기 동안 너를 가르쳐 달라는 부탁 말이다.”
“…예?”
‘그쪽이 날 가르친다고? 댁이 뭐라고 날 가르쳐? 그리고 탑주는 왜 나한테 말도 없이 이런 일을 벌인 거야?’
나는 도무지 작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기에.
볼드 학장에게 슬며시 질문했다.
“대체 저 사람이 누군데 날 가르치네 마네 하는 거야?”
“그녀는 도미닉 왕국의 소드마스터입니다.”
“아아, 그래? 소드마스터…….”
‘…음? 소드마스터? 내가 아는 그 소드마스터라고?’
소드마스터.
9서클이 흑마법의 정점이라면.
검사들의 끝은 소드마스터라고 불리는 전답미문의 경지 아닌가?
‘한 왕국에 많아야 두 명, 그나마도 없는 왕국도 허다하다는 소드마스터가 날 가르치러 왔다고?’
무려 전쟁 억제제라는 취급까지 받는 소드마스터가 겨우 나 하나를 가르치러 왔다니.
나는 도무지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가란 탑주… 대체 무슨 생각이지?’
분명 그녀는 나가란 탑주의 부탁을 받고.
나를 가르치러 왔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탑주에게 득이 될 게 없는데?’
그렇다면 탑주의 단순한 호의인 걸까?
‘진짜 흑혼해 듀오 때문에 이렇게까지 해 준다고?’
확신하기는 어려웠으나.
어쨌든 내 입장에서야 탑주의 호의를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내가 언제 또 소드마스터의 가르침을 받아 보겠어?’
나는 괜히 헛기침을 하곤 노부인을 바라봤다.
“어쨌건 그럼 한 학기 동안 저를 가르치신다는 말씀이군요?”
“그렇기야 하다만 네게 재능이 없으니 뭘 가르쳐야 할지 모르겠구나.”
“거참… 자꾸 재능, 재능 하시는데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는 까 봐야 알죠.”
나의 말에 에나가 빙긋 미소를 짓더니.
볼드 학장을 보며 묻는다.
“이곳에 훈련장은 있겠지?”
“물론입니다.”
“아가야, 따라오너라. 네 재능을 평가해 주마.”
* * *
에나를 따라 원형 경기장으로 들어선 지 몇십 분.
“허억, 허억…….”
나는 목검을 든 채,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눈앞의 할머니를 노려봤다.
‘아니… 이게 말이 돼? 신체적으로는 내가 훨씬 젊고 우월할 텐데……?’
어째선지 에나의 움직임을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었다.
“한눈팔 시간이 있는 모양이구나.”
따악-
“아악!”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목검이 나의 머리를 강타하자.
나는 머리를 붙잡고 자리를 데굴데굴 굴렀다.
“만약 네게 재능이 있었다면 방금 내 공격을 막고 반응이라도 했을 거다. 하지만 네게는 검에 대한 재능이 없어.”
‘그래… 인정한다…….’
나에게는 검에 대한 재능이 요만큼도 없다.
하지만 그게 무슨 대수인가?
‘흑마법만 잘 사용하면 됐지.’
같은 나이대에서 나보다 더 흑마법을 잘 다루는 흑마법사는 없을 터.
“하지만 전 흑마법에 더 능통한데요?”
“그렇겠지. 하지면 아가야, 생각해 보려무나. 전쟁터에서도 능숙하게 흑마법을 사용할 수 있겠니?”
“그건… 모르죠.”
‘애당초 전쟁을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까.’
“장담하건대 수많은 검날들이 너의 목을 노릴 거란다.”
“그렇겠죠. 흑마법사니까요.”
“그래?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이구나. 나가란은 대체 뭘 하는 건지…….”
에나가 목검을 내리고는 씁쓸히 웃는다.
‘뭘 모른다는 건데?’
“제가 모르는 게 있습니까?”
나의 물음에 에나는 연민이 담긴 눈으로 날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뗀다.
“아가야, 지금 대륙에 흑남의 탄생 소식이 파다하게 퍼진 건 알고 있니?”
‘…그래? 소문 참 빠르네.’
고작 몇 달이나 지났다고 내 소식이 그리 빨리 대륙으로 퍼져 나갔단 말인가?
“그건… 몰랐죠.”
“대륙의 수많은 검사들과 현자들이 네 탄생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단다. 제2의 성마전쟁이 일어나는 건 아닌지 하고 말이야.”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저들 입장에서는 흑남이라는 구심점하에.
수많은 흑마법사들이 집결하는 상황을 우려하는 것일 터.
‘근데 이쪽은 딱히 그럴 생각이 없는데?’
누구 좋으라고 전쟁을 한단 말인가?
“그래서요?”
“그래서 네게 검술을 가르치려고 하는 거란다. 검을 휘두르는 것이야 재능의 영역이라고 해도, 피하는 건 노력으로 어느 정도 가능하단다.”
재차 검을 든 채 나를 바라보는 에나.
“아가야, 일단 네 몸이 검에 익숙해질 때까지 훈련을 하자꾸나.”
“…예? 아니… 잠깐……!”
몇 시간 뒤.
‘아오…….’
몇 시간가량을 목검에 얻어맞은 탓일까.
나는 퉁퉁 부은 몸을 그대로 땅에 누인 채 소리쳤다.
“이러다 죽는 것 아닙니까?!”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꾸나.”
에나가 목검을 회수하자.
‘휴…….’
난 그제야 안도할 수 있었다.
“앞으로는 매일 새벽마다 경기장으로 나오려무나.”
“…예?”
“하루라도 쉬게 되면 몸이 녹슬게 되니 말이다.”
단호한 에나의 말에 나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아니… 이 할멈은 지치지도 않나?’
“다른 학생들은 가르치지 않으시는 겁니까?”
“애당초 나가란은 나에게 너의 교육만을 부탁했단다. 그러니 내가 다른 아가들을 가르칠 이유도 없지.”
“아아…….”
‘망할…….’
나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가.
불현듯 한 가지 의문이 들어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할머니는 왜 탑주님의 부탁을 수락하신 거죠? 빚진 거라도 있었나요?”
“빚이라……. 그래, 빚이 있었지. 그리고 너를 보려고 하는 이유도 있었고.”
“저를요? 왜요?”
하지만 나의 물음에 그녀는 더 이상 답하지 않았고.
‘대충 짐작은 간다만…….’
나는 그녀가 말을 아낀 이유를 대강 눈치챌 수 있었다.
‘탑주의 부탁으로 오기는 했지만 겸사겸사 내가 대륙을 침략할 뜻이 있는지 미리 파악하려고 온 거기도 하겠지.’
물론 그녀가 나를 죽일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솔직히 지금도 빈틈이 이렇게 많은데, 죽이려면 얼마든지 죽일 수 있을 테니까.’
아마 에나는 약속을 충실히 지키는 할머니 같았다.
‘다만 그 약속의 기간이 끝나면… 그땐 고국으로 돌아가서 나를 죽일 병력을 모을 수도 있겠지. 에이씨… 일단은 저 할멈의 교육을 흡수하는 데 집중하자. 솔직히 검술을 알아 둬서 나쁠 건 없으니까.’
지금 잘 배워 두면 적어도 전쟁이 났을 때.
눈먼 칼에 찔려 죽을 일은 없을 터.
‘그래. 기왕 기회가 생긴 거, 열심히 해 볼까?’
* * *
다음 날, 새벽.
따아아아악-
적막한 새벽 공기를 뚫고.
선명한 타격음이 원형 경기장 안을 울린다.
‘아아아아아아아악! 이 미친 할멈아! 적당히 패라고!’
새벽부터 에나의 목검에 얻어맞는 것이 내 아침의 시작이라니.
‘확실히 도움이 되는 것 같긴 한데… 몸이 남아나질 않네.’
경기장을 구른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내 몸 곳곳이 소리 없는 비명을 질러 온다.
“쯧쯧. 아가야, 벌써 지친 모양이로구나.”
“흑마법사가 검 휘두르는 걸 보셨습니까? 안 힘든 게 이상한 거죠.”
“그러니 비단 흑마법사들뿐만이 아니라 마법사들조차 전쟁터에서 단명하는 거란다. 아무리 파괴적인 힘을 갖고 있어도 암살이라도 당하는 날에는 그날로 죽는 것이지.”
‘확실히… 그건 그렇지.’
체력적으로 뛰어난 전사들에 비하여 마법사들의 체력은 터무니없이 저질이었으니까.
“오늘은 이쯤 하자꾸나. 마음 같아선 더 굴리고 싶지만 더 했다간 네 숨이 넘어갈 것 같다.”
“후… 수고하셨습니다.”
“아참, 아가. 치료사에게 가서 치료를 받으려무나. 그래야 내일 있을 수업에 지장이 없을 테니.”
‘…뭐요? 그러니까 치료하고 와서 또 굴러라? 가르쳐 줘서 고맙긴 한데… 어우… 저 할멈은 지치지도 않나?’
나는 속으로 혀를 내두르곤.
에나에게 꾸벅 인사하고 치료실로 걸음을 옮겼다.
똑똑-
“계십니까?”
내가 치료실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노파의 괴이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더니.
덜컹-
“으히히히히히, 무슨 일이냐?”
“마녀의 아침잠을 깨우다니. 용기가…….”
레인과 제인이 나를 보곤 뻐드렁니가 보일 정도로 히죽 입꼬리를 올린다.
“멍청한 학생 놈인 줄 알았는데 흑남님이 오셨구랴!”
“얼른 들어오시지요, 얼른요.”
‘거참… 웃는 건 적응 안 되네.’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곤.
세 머리의 마녀를 따라 치료실 안으로 들어섰다.
‘호오… 더스틴이 있었을 때랑은 확실히 안이 많이 달라졌네.’
예전의 치료실은 다소 허전하다고 느낄 정도로 평범했었으나.
지금은 너무도 달라졌다.
부글부글-
‘저 솥단지는 뭐야. 저 끔찍하게 생긴 발은 또 뭔데? 약재료인가?’
내가 빨랫감처럼 주렁주렁 달린 약재들을 노려보고 있던 중.
“치료를 받으러 오신 게지요?”
“몸에 상처가 제법 많으신데 흑남의 일도 쉽지 않지요. 아무렴요!”
레인과 제인의 갈라진 목소리가 내 귓가를 울려온다.
“금방 고약을 내어 드리지요.”
“어린 만드라고라와 인형풀로 만든 거라 금세 상처가 아무실 겝니다.”
곧 마녀가 검게 굳은 딱딱한 비누 같은 것을 내밀자.
나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그걸 내려다봤다.
‘그러니까 이걸 상처에 바르라고? 발라도 되는 거겠지?’
나는 괜히 의심이 들어.
고약을 조금만 떠서 상처에 발라 봤다.
‘오호… 뭔가 시원해지는 것도 같은 게 확실히 효과가 있는 것도 같네.’
하기야 볼드 학장이 멍청이도 아니고, 아무나 치료사로 뽑지는 않았을 터.
‘능력은 확실히 있는 모양이야.’
“확실히 효과가 있네.”
“그렇지요?”
“저희가 몇 날 며칠에 걸쳐 만든 건데 당연하지요!”
레인과 제인이 자랑스레 고개를 쳐들자.
천에 감겨 있던 머리 같은 것이 따라 위아래로 까딱거린다.
‘그보다… 진짜 저건 바질리스크의 머리인 걸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눈동자만 안 보면 석화에 걸릴 일은 없을 것 아냐?’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그녀들을 보며 입을 뗐다.
“궁금한 게 있는데, 하나 물어봐도 돼?”
“흑남님의 질문이라면 뭐든 답해 드려야지요.”
“어떤 게 궁금하십니까?”
마녀들이 쇳소리를 내며 낄낄 웃자.
나는 천에 돌돌 말려 있는 머리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 세 번째 머리 말이야. 정말 바질리스크의 머리야?”
내가 질문을 던지자.
순간 몸을 흠칫거리는 세 머리의 마녀.
“흐음…….”
“과연… 과연…….”
그러나 그들은 이내 표정을 관리하고는.
뻐드렁니를 보이며 꺼림칙한 미소를 짓는다.
“그게 궁금하셨던 겁니까?”
“하지만 호기심이 화를 부르는 경우도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