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반갑습니다, 네로 님. 그런데 어쩐 일로…….”
“탑주님께 흑남께 욕망의 방 안의 것들 중 원하는 것 하나를 내어 드리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마침 지금 저도 욕망의 방으로 돌아가는 길이니 같이 가시겠습니까?”
“…네?”
‘탑주가 나한테 욕망의 방에 있는 것 중 하나를 주라고 했다고?’
탑주에게 무슨 바람이라도 분 것일까?
‘갑자기 선물을 준다고? 그 늙다리가 무슨 생각이지?’
“탑주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요?”
“예, 혹시 못 들으셨습니까?”
‘음… 그러고 보니 전에 제프 때문에 결혼 상단 독점권을 못 얻었을 때, 탑주가 미안하다고 다른 선물을 준다고 하긴 했었는데… 설마 그게 이건가?’
나한테 선물을 주겠다는데 거부할 이유는 없을 터.
“아니요. 들었던 것도 같습니다.”
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중.
“욕망의 방은 꽤 위험한 곳인데… 괜찮겠어?”
옆에 앉아 있던 레나가 내게 속삭이듯 말한다.
‘위험하다고?’
“아스칼은 새로운 저주를 연구하는 곳이라고 했는데? 그게 무슨 말이야?”
나의 물음에 고개를 젓는 레나.
“공식적으로는 그렇지. 하지만 그 안에 있는 것들은… 너무 위험해.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흑마법사들이 죽었는지 넌 모를 거야.”
“넌 들어가 본 적 있어?”
“아버지를 따라서 두 번 정도……. 그 뒤로는 못 들어갔어. 애당초 탑주님과 부탑주님들 그리고 12분의 위대하신 흑마법사분들과 욕망의 방 소속의 흑마법사들만 들어갈 수 있으니까. 나도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못 들어갔을걸?”
말을 끝마친 레나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여하튼 굉장히 위험한 곳이니까 들어갈 거면 그건 충분히 감안을 해야 할 거야.”
거듭 경고하는 레나를 보며 난 생각에 잠겼다.
‘위험하다라……. 하긴 새로운 저주를 연구하는 곳이라면 위험하긴 하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탑주가 준다는 선물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어차피 위험하다고 해도 나에게는 펠기누스가 있을뿐더러.
네로가 내 옆에 붙어서 움직일 테니 크게 걱정할 일은 없을 터.
‘좋아. 가 보자.’
마침내 결단을 내린 나는 고개를 들어 네로를 응시했다.
“탑주님께서 저를 많이 배려해 주시는군요. 하하, 알겠습니다. 그렇잖아도 욕망의 방이 흑탑의 정수라고 들었는데 마침 이렇게 방문할 기회가 생기니 잘됐군요.”
“흑탑의 정수라…….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기쁘군요.”
내 칭찬이 정말로 기뻤던 것일까.
네로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손짓한다.
“그럼 따라오실까요? 바로 욕망의 방을 구경시켜 드리죠.”
“좋습니다. 아스칼, 잠시 나 대신 업무 좀 보고 있어. 미리 나 없이도 업무를 하는 연습을 해 둬야 나중에도 흑혼해 듀오를 잘 관리하지.”
“…네? 흑남님 없이요?”
아스칼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자.
나는 의아하게 그를 바라봤다.
“그래. 내가 언제까지고 흑탑에 있진 않을 것 아냐. 개학하면 흑카데미로 돌아가야지. 아, 너무 걱정은 마. 흑카데미에 있으면서도 흑탑에는 주기적으로 들를 거니까.”
“아아, 이해했습니다! 예! 걱정 마시고 다녀오십쇼!”
내가 아스칼의 인사를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찰나.
“나도 같이 갈게.”
옆에 있던 레나가 나를 따라 몸을 일으킨다.
“너도 간다고? 위험한 곳에 굳이 같이 갈 필요가 있어?”
“그렇긴 한데… 그래도 나는 두 번 가 봤으니 그곳이 어떤 곳인지는 조금 알잖아? 혼자 가는 것보단 같이 가는 편이 조금이라도 덜 위험하지 않을까?”
‘그래도 경험자라고 같이 가 주겠다는 건가? 녀석…….’
그녀의 말에 나는 속으로 미소를 짓곤.
네로를 보며 입을 뗐다.
“일행 한 명을 데리고 가고 싶은데 괜찮겠지요?”
“일행… 말입니까? 누구를… 아아, 레나라면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그녀는 욕망의 방에 들어갈 자격이 있으니까요. 좋습니다. 그럼 따라오시지요.”
네로는 순순히 내 요청에 응하곤.
우리를 데리고 흑탑의 지하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웅웅웅-
허공에 둥실 떠 있던 거대한 원판을 타고.
지하로 내려가길 몇십 분.
‘대체 끝이 어디인 거야?’
이제 내가 지하의 어디쯤에 있는지도 가늠이 되질 않는다.
‘무슨 놈의 방을 이렇게 지하 깊숙한 곳에 처박아 놓은 건지 모르겠네.’
“욕망의 방을 이렇게 지하 깊은 곳에 만든 이유가 있는 겁니까?”
“그래야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 경우 흑탑에 피해가 갈 일이 없으니까요.”
빙긋 웃으며 대답하는 네로.
‘문제가 생길 걸 대비해 지하 깊숙한 곳에 지었다고? 아니, 뭐 얼마나 대단한 걸 연구하는데 그런 거야?’
“흑탑은 엄연히 최고의 흑마법사들만이 모인 장소인데 피해가 갈 일이 있습니까?”
“직접 보고 느껴 보시죠.”
‘그래. 얼마나 대단한 게 있기에 그런 건지 내가 보고 판단한다.’
내가 레나와 적당히 담소를 나누고 있던 그때.
그그그그긍-
느긋하게 하강하던 원반이 움직임을 멈춘다.
“내리시면 됩니다. 저곳이 욕망의 방의 입구입니다.”
네로가 가리킨 방향에는.
그 두께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넓고 커다란 철문이 자리하고 있었다.
“문이 제법 두꺼워 보이네요.”
“무식해 보이지만 나름대로 충분히 고안하고 제작한 겁니다. 문을 열어라!”
네로의 음성이 공허한 지하를 울리자.
그그그그그긍-
거대한 철문이 천천히 좌우로 벌어지기 시작한다.
“자, 따라 들어오시죠.”
‘음…….’
나는 네로를 따라 천천히 문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고.
곧 욕망의 방 안을 볼 수 있었다.
‘이곳은…….’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기다란 복도에는.
균일한 거리마다 문들이 달려 있다.
‘악마들도 제법 많네.’
경비로 세워 둔 걸까.
상위 악마이자 전투에 능하다는 바고프들이 복도를 어슬렁거린다.
‘근데… 뭔가 들은 거랑 다르게 좀 평범한데?’
길이만 좀 길다 뿐이지 흑카데미의 복도와 별반 다를 게 없잖은가?
“바고프라……. 경계가 철저하군요.”
“철저하게 관리한다고 해도 항상 부족합니다. 그보다 이쪽 방으로 들어가시죠.”
네로가 서슴없이 한 문을 열자.
나는 의아하게 그녀를 바라봤다.
“욕망의 방은 꽤 위험하다고 들었는데 괜찮은 겁니까?”
“이 층에 있는 것들은 이미 연구가 끝난 소재들뿐이라 괜찮습니다.”
“…그래요?”
‘덜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들을 놔두는 층인가 보네.’
나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곤.
네로의 뒤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섰다.
‘저건 뭐야……. 그림이잖아?’
방 안에는 화폭 하나가 벽에 덩그러니 걸려 있을 뿐이었다.
‘음… 그림도 그냥 평범해 보이는데.’
나는 그림을 유의 깊게 살펴봤으나.
스켈레톤들이 농지를 일구고 있는 너무도 평범한 그림이었다.
“가까이 가서 봐도 됩니까?”
“물론입니다. 화폭을 만지시지만 않으면 됩니다.”
“…그래요? 만약 만지면 어떻게 됩니까?”
나의 물음에 어깨를 으쓱이는 네로.
“화폭 속으로 끌려 들어가 영원히 저 안에서 살게 되실 겁니다.”
“…그래요?”
‘허… 그럼 저걸 만지면 영원히 밖으로 못 나온다는 것 아냐?’
내가 속으로 혀를 차던 중.
“크흡…….”
웃음을 참던 네로가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농담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너무 긴장을 하신 것 같아 긴장을 좀 풀어 드리고자 농담을 해 봤습니다.”
“…네?”
“화폭 안으로 끌려 들어가는 건 맞지만 산 자는 끌려 들어가지 않더군요. 언데드들만이 저 화폭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언데드들만이 들어갈 수 있다고?’
무슨 그런 개떡 같은 힘을 가진 그림이 다 있단 말인가?
“거참… 희한한 능력이군요. 대체 누가 무슨 이유로 이런 걸 만들었는지…….”
“이 화폭은 약 50년 전 엘리우스 대신관이 그렸다고 알려진 그림입니다. 저희 흑마법사들이 부리는 언데드들을 효과적으로 없앨 방법이 없나 궁리하던 중, 이 그림이 탄생했다고 하는데…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오호…….”
‘50년 전의 그림이라……. 그보다 특이하네. 또 흥미롭기도 하고.’
“정말 신선합니다. 왜 네로 님께서 욕망의 방을 관리하시는지 조금은 이해가 될 것도 같네요.”
내가 화폭을 보며 눈을 반짝이자.
“그렇죠? 위험한 물건들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저렇게 재미있는 것들도 들어오니, 이 일을 놓을 수가 없더군요.”
네로도 기분 좋은 미소를 보인다.
“이제 옆의 방으로 이동하실까요?”
“좋습니다.”
나는 네로를 따라 방 곳곳을 이동했고.
‘오호…….’
등을 보이는 순간 대상을 죽인다는 대검, 백어택.
내기에 패배한 상대를 카드에 강제로 담는다는 죽음의 카드, 굴복과 종속의 망자.
그리고 시야에 있을 때 세 번의 호흡을 내뱉으면 대상을 돌로 만들어 버린다는 고르곤의 눈동자 등.
여러 가지 저주받은 물건들을 볼 수 있었다.
‘다 꽤나 흥미가 동하는 물건들이네.’
백어택 대검이나 고르곤의 눈동자는 몰라도.
죽음의 카드, 굴복과 종속의 망자는 꽤나 관심이 갔다.
‘카드에 걸린 저주와 내기를 해서 이기면 카드를 소유할 수 있다라…….’
또한 카드의 주인이 되어 카드를 이용할 경우.
다른 대상과 내기를 하여 승리하면 상대방을 카드 안에 강제로 집어넣어 그 능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고 했다.
‘솔직히 능력만 들었을 땐 엄청나긴 한데… 리스크도 만만찮단 말이지.’
카드로 내기를 하던 중.
단 1번이라도 패배할 경우 주인 또한 카드 속으로 강제로 끌려 들어간다는 리스크.
그것만 빼면 정말 괜찮은 물건이었다.
‘하지만 선물로 받을 수 있는 물건은 딱 한 가지뿐이야.’
네로의 말에 따르면.
욕망의 방에서 선물을 고를 수 있는 기회는 흑마법사 일생에서 딱 한 번뿐이라고 했다.
‘그마저도 탑주의 허락이 떨어져야만 가능하다고 했으니…….’
어쩌면 다시는 얻지 못할 기회이니.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
‘으음… 고민되네…….’
그렇게 내가 고민에 잠겨 있던 사이.
나는 어느덧 일행과 함께 2층가량을 더 내려갔다.
“자, 이쪽 방으로 오시겠습니까? 이 안에 있는 것도 나름 재미있는 겁니다.”
“그래요?”
내가 별 의심 없이 네로의 뒤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서려던 그때.
까가가가가각-
갑자기 방 안에서 기이한 진동 소리가 들려온다.
“어어… 이게 왜 갑자기 작동을……?”
당혹한 네로가 지팡이를 들어 올리던 그때.
‘음? 이런 미친……!’
무언가가 엄청난 속도로 그녀의 옆을 지나 나에게로 날아드는 것 아닌가?
그에 나는 반사적으로 아공간 주머니에서 지팡이를 꺼내어.
날아드는 물체를 힘껏 후려쳤다.
깡-
‘크윽… 무슨 놈의 힘이…….’
반발력 때문에 손에 얼얼함이 그대로 느껴지던 중.
[내가 제압했다.]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상위 악마 바고프가.
내가 쳐 낸 물건을 움켜쥐고는 멀뚱히 네로를 바라본다.
“후우… 별일이 없어서 다행입니다. 바고프, 언제 또 난동을 부릴지 모르니까 꽉 잡고 있어.”
[알겠다.]
네로는 바고프에게 으름장을 놓고는.
고개를 돌려 우리를 바라본다.
“방금 저건 대체 뭐였습니까?”
“저건… 신성력 착즙기라고 불리는 물건입니다.”
‘신성력 착즙기?’
나는 바고프의 손에 들린 물체를 유의 깊게 살펴봤다.
‘가운데에 드릴 같은 게 달려 있는 걸 빼면 헤드셋처럼 생겼네.’
“희한하게 생겼군요. 근데 왜 갑자기 저게 작동한 겁니까?”
“그게…….”
네로는 혼란스러워하더니.
곧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와 레나를 바라본다.
“신성력 착즙기는 신성력을 흑마력으로 바꾸려던 어떤 미치광이 흑마법사가 개발한 물건입니다. 주변에 신성력을 갖고 있는 물건 혹은 사람이 있으면 자동으로 작동하죠.”
‘신성력을 흑마력으로 바꾸려던 흑마법사?’
혹시 내가 도서관에서 읽었던 그 이상한 마법서의 저자인 걸까?
‘그 양반… 재주도 좋네. 저런 희한한 걸 만들 줄이야. 근데 잠깐… 사람이나 물건에서 신성력을 착즙해?’
순간 나의 머릿속에 빛무리가 스쳐 간다.
‘그럼 저 신성력 착즙기를 손에 넣는다면… 굳이 무리해서 선행을 하지 않아도 신성력을 얻을 수 있다는 거네?’
내가 속으로 생각하던 그때.
네로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한다.
“혹시 두 분… 아닐 거라 믿습니다만… 이 신성력 착즙기가 발동된 걸 봐선… 두 분 중 한 분께서 신성력을 갖고 계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