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카데미의 노예가 살아남는 법-51화 (51/200)

51.

‘지팡이를 어디서 구했냐고? 뼈가 썩을 대로 썩은 리치의 방에서 구했지.’

하지만 상대에게 사실을 말할 이유는 없었기에.

나는 고개를 까딱이며 물었다.

“왜. 뭔가 문제가 있어?”

“아니요. 지팡이 자체에 문제는 없습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오히려 탐이 날 정도니까요.”

손가락으로 지팡이를 훑으며 말을 이어 가는 저주술사.

“지팡이의 몸체는 마력 전달이 잘되는 금속인 아다만티움 그리고 세계수의 나뭇가지를 섞었습니다. 오… 세상에, 이건… 제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이건 드래곤의 뼈군요. 허…….”

‘저주술사가 아니라 감정사야? 뭔데 지팡이의 재료를 알아보는 건데?’

“지팡이에 대해서 잘 아는 모양이네.”

나의 말에 저주술사는 고개를 젓는다.

“잘 아는 건 아닙니다만 저주를 풀며 워낙 많은 물건들을 본 덕에 물건 평가에도 조금 익숙한 편입니다.

“조금 익숙한 정도가 아닌 것 같은데?”

“과찬이십니다. 여하튼 지팡이 자체는 이제껏 제가 봐 왔던 지팡이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좋아 보입니다.”

‘호오… 그렇단 말이지? 더스틴 그 늙다리 리치가 참 좋은 걸 주고 갔었네.’

내가 속으로 미소를 짓던 그때.

저주술사가 말꼬리를 흐린다.

“다만… 지팡이에 걸린 저주가 문제인데…….”

지팡이에 술식을 그리고 그 위에 시약을 뿌리는 등.

이리저리 검사를 하던 저주술사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희한하군요……. 뭔가 엄청난 저주가 걸려 있을 줄 알았는데… 시전자에게 엄청난 피해가 가는 저주도 아니고, 단발성 저주가 걸려 있는 것 같습니다.”

나를 바라보며 말을 잇는 저주술사.

“저주 자체는 큰 문제가 될 것 같진 않아 보이는군요.”

‘단발성 저주면 한 번 저주가 발동되고 나면 사라진다는 거니 확실히 별게 아니긴 하네.’

“다만 이 저주는… 제가 해주 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엄청난 저주가 아니라며? 그런데 해주 하기 어렵다고?”

‘이 녀석… 저주 전문가가 아니라 감정사인 건 아니겠지?’

“흑남께서도 아시겠지만 저주를 시전한 사람의 힘에 따라 저주의 힘도 달라집니다. 그리고 이 지팡이에 걸려 있는 저주는 최소한 저보다 더 강한 흑마법사가 건 저주로 보입니다. 어쩌면…….”

잠시 침묵하던 저주술사가 입술을 뗀다.

“탑주님에 버금가는 흑마법사가 이 지팡이에 저주를 걸지 않았나 싶습니다.”

“…뭐?”

‘탑주에 버금가는 흑마법사가 저주를 걸었다고? 그것도 단발성 저주를? 왜?’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

하지만 일단 저주를 해주 하는 게 우선이다.

“쉽게 해주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골치 아프네…….”

탑주급이 건 저주라면.

실질적으로 당장 저주를 해주 하는 건 힘들다는 소리일 터.

‘그래도 시전자에게 피해가 오는 저주는 아니라고 하니 지팡이 자체는 사용할 수 있겠지.’

“좋아. 거기까진 이해했다. 근데 무슨 저주가 걸려 있는 건데?”

“시전자를 무작위로 다른 곳에 전송시키는 ‘전이’ 저주가 걸려 있습니다.”

“…전이 저주라고?”

‘그런 저주는 처음 듣는데…….’

흑카데미에서 오랜 시간 굴렀던 나도 처음 들어 보는 저주다.

“아마 생소하실 겁니다. 저 역시 생소하니까요. 전이 자체는 백탑의 고유 마법입니다. 아마 이 저주를 부여한 사람은 백탑의 마법에 흑탑의 저주를 접목한 모양입니다.”

‘백탑의 마법에 흑탑의 저주를 접목했다? 그러고 보니 더스틴이 백탑 출신이긴 했지.’

그렇다면 역시 이 지팡이에 저주를 건 자는 더스틴이라는 소리일 터.

‘근데 더스틴이 탑주급이라고? 나보다 강한 것 같긴 했지만 탑주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아무래도 저주술사가 판단을 잘못한 모양이긴 했으나.

뭐 어떤가?

‘이미 죽은 놈이 강한지 약한지 알 게 뭐야.’

“제가 내린 결론입니다만 저주를 푸시려면 이 지팡이로 마법을 한 번 사용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저주는 풀릴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내가 어딘가로 이동된다는 거잖아.”

“그렇긴 합니다만… 여하튼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사용하실지 말지는 흑남님의 판단에 달려 있을 것 같습니다.”

‘음… 그건 그렇지.’

저주술사는 제 몫을 충분히 다했다.

이 지팡이를 사용할지 말지는 결국 나의 몫일 터.

“수고했어. 나가 봐.”

“이 카스론을 기억해 주시길…….”

저주술사가 꾸벅 인사하고 방을 나서자.

나는 생각에 잠겼다.

‘이 지팡이가 엄청난 거라는 건 알겠는데… 더스틴 그 망할 놈은 왜 그딴 저주를 걸어 놓은 거야?’

내가 아무리 흑카데미에서 많은 지식을 흡수했다고 해도.

몇십 년을 살았을지 모를 리치에 비견될 바는 아니었다.

‘결국 더스틴의 저주를 해주 하는 건 어렵고, 흑마법을 한 번 사용하긴 해야 한다는 건데…….’

지팡이를 사용했다가 어디로 이동될 줄 알고 사용한다 말인가?

‘다른 놈에게 지팡이를 쥐여 주고 마법을 사용하게 하는 방법도 있긴 하다만.’

그랬다가 그놈이 지팡이에 눈이 멀어.

지팡이를 들고 그대로 도망칠 수도 있을 터.

‘일단 지팡이를 사용하는 건 조금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겠어.’

* * *

같은 시각.

흑탑 안, 파멸학파의 영역이자 그들의 관할인 10층에선.

“그 핏덩이 새끼가 후계자가 될 수도 있다고? 멍청한 늙은이 새끼가 노망이 들었나!”

콰장창창-

분노로 눈이 뒤집힌 제른이 던진 물건들이 박살 나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한 게 얼만데 감히 내 앞에서 그런 소리를 해!”

흑마력 포션 병이 박살 나 지면을 타고 흐르자.

“이크…….”

그 모습을 숨죽여 지켜보고 있던 파멸학파 흑마법사들은 조심스럽게 로브를 들추곤.

조용히 속삭인다.

“왜 저러시는 거야?”

“말씀하시는 걸 봐선 아무래도 탑주님께서 흑남님을 차기 후계자로 삼으려고 하셨던 모양이야.”

“…뭐?”

동료의 말에 눈을 휘둥그렇게 뜬 흑마법사들.

“아니… 차기 탑주는 부탑주님들 중에서 정하는 것 아니었어?”

“원래는 그렇지. 그게 지금까지 내려오던 암묵적인 규칙이기도 하고.”

탑주의 자리가 공석일 시.

새 탑주는 부탑주들 중에서 선택한다.

그게 지금까지 흑탑에 내려오던 암묵적인 규율이었다.

“그런데 탑주님께서는 그 규율을 깨시려는 건가?”

“에이, 설마……. 막말로 흑남이 한 게 뭐있다고? 겨우 결혼 상단 하나 차린 게 전부잖아?”

“근데 너도 거기 가입하지 않았냐?”

“어? 어… 음…….”

파멸학파 산하의 흑마법사들이 속삭이던 그때.

누군가가 슬며시 제른의 앞으로 다가간다.

“제른 님, 문제가 생겼습니다. 고룬이 죽었습니다.”

“…고룬?”

집어 들었던 도자기를 잠시 내리고 눈을 굴리는 제른.

“고룬? 고룬… 그래. 그런 녀석도 있었지. 그런데… 죽었다고? 연구를 하다 죽은 건가?”

흑마법을 연구하다가 실수라도 하여 죽는 흑마법사들이 왕왕 있었기에.

제른은 심드렁하게 묻는다.

“아닙니다. 흑남이 고룬을 죽였다고 합니다.”

“…그래?”

순간, 눈을 번뜩이는 제른.

“누가 먼저 공격했지? 흑남이 먼저 했나?”

“듣자 하니 고룬이 먼저 공격을 했다고 합니다. 흑남은 규율대로 처리했다고 합니다.”

“증인은 있고?”

제른의 말에 심복이 고개를 끄덕인다.

“예, 당시 자리에 있던 흑마법사들이 펠기누스의 소환을 비롯하여 모든 사실을 토로했다고 합니다.”

“…펠기누스? 그게 진짜였다고?”

잠시 제른의 얼굴에 당혹감이 흐른다.

“후우… 일이 풀리는 게 없군.”

“놈이 차린 것과 비슷한 결혼 상단을 차리시는 건 어떻습니까?”

심복의 물음에 제른이 눈을 부릅뜬다.

“지금 나보고 그깟 하찮은 상단을 운영하라는 건가?”

“죄, 죄송합니다.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부탑주의 자존심을 건드린 탓일까.

심복은 실수를 만회하고자 얼른 말을 이어 간다.

“몰래 그를 죽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흑남은 이미 레논 부탑주와 손을 잡았습니다. 더 놔뒀다가는 부탑주님의 뜻에 방해만 될 뿐입니다.”

심복의 말이 맞다.

흑남은 대륙 정벌에 반대하는 레논의 손을 잡았다.

“무엇보다 놈은 아직 어리지. 놔두면 어디까지 올라갈지 몰라.”

“맞습니다.”

“나도 마음 같아선 벼락출세한 애송이 놈을 죽이고 싶다. 하지만 만약 그랬다가 베논 님의 분노를 사기라도 한다면, 감당할 수 있겠나?”

마신 베논.

그가 흑남을 주시하고 있는 한, 쉽게 흑남을 건드릴 수는 없었다.

“신의 주시를 피할 수 있다면 좋겠다만 그건 어렵겠지.”

신은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고.

그 시선 아래에서 흑남을 암살한다는 건 꺼림칙한 일이다.

“신의 뜻이 두려우시다면 놈이 스스로 죽게 만드는 건 어떻겠습니까?”

“스스로 죽게 만든다? 자살이라도 하게 하자, 이 말인 건가?”

“그렇습니다. 놈을 욕망의 방 안으로 밀어 넣는 겁니다.”

심복의 말에 제른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욕망의 방이라……. 제법 괜찮은 생각이긴 하다만 그곳은 12흑마법사 중 한 명인 네로가 엄중히 관리하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는 것 정도는 네로 님께서도 수락하실 겁니다.”

“수락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만 상관없다.”

천천히 입꼬리를 올리는 제른.

“내가 직접 탑주님께 가서 설득을 해 보마.”

* * *

다음 날.

“비켜! 비켜라!”

1층 로비에서 큰 소란이 일어나자.

‘뭔데 이렇게 시끄러워?’

로비 한쪽에서 고객과 상담 중이던 나는 힐끔 고개를 돌렸다.

‘저건 또 뭐야?’

도굴꾼들로 보이는 남자 여럿이 낑낑거리며 사슬을 끌고 있었는데.

사슬들의 끝에는 커다란 관짝 같은 것이 달려 있었다.

‘진짜 관짝인가? 근데 관짝이 뭐 저렇게 커? 어디 왕의 무덤이라도 도굴해 온 건가?’

도굴꾼들이 도굴해 온 물건을 흑탑에 파는 것은 흔한 일이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돌리려던 찰나.

“거, 건드시면 안 됩니다!”

도굴꾼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울리고.

털썩-

관짝을 건든 흑마법사의 몸이 바닥에 부딪힌다.

‘뭐야. 설마… 죽은 건가?’

“젠장, 내가 건들지 말라고 했잖아!”

도굴꾼의 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머리를 붙잡는다.

“이런 미친… 당장 떨어져!”

“저 도굴꾼 새끼들이 돌았나? 야! 너희 정신 나갔어?! 그런 저주받은 물건을 왜 들고 온 거야!”

“그야 팔아먹을 데가 흑탑밖에 없으니까! 나라고 좋아서 가져온 줄 알아?! 죽은 새끼들 몸값이라도 받아야 할 것 아냐!”

흑탑의 방문객과 도굴꾼들의 대장이 목청을 높이는 가운데.

나는 생각에 잠겼다.

‘저주가 걸려 있나? 하지만… 고작 관짝 좀 만졌다고 죽는 저주라니…….’

만약 저게 정말 저주이고 그런 저주가 흑마법사들에게 있었다면.

이미 세상은 흑마법사들의 것이었을 터.

‘눈 깜짝할 사이에 사람을 죽이는 저주라……. 그런 게 정말 있다면 어마어마하긴 하겠네.’

내가 속으로 혀를 내두르던 중.

“전부 그 관에서 떨어져라. 즉사 저주라… 희귀하군…….”

누군가가 수군거리는 좌중을 밀치며 도굴꾼들 앞으로 나온다.

‘저 여자는…….’

분명 본 기억이 있다.

‘12명의 위대한 흑마법사라고 했었지. 아마… 네로였나?’

12명의 위대한 흑마법사들.

그들은 부탑주들과 동등한 위치에 있었으나.

부탑주들과는 한 가지 명확한 차이가 있었다.

‘위대한 흑마법사들은 흑탑의 운영에는 개입하지 않는다고 했었지.’

흑탑의 전두지휘는 탑주와 세 명의 부탑주가 한다.

‘위대한 흑마법사는 무슨. 그냥 힘은 있는데 관리하기 까다로운 미친 흑마법사들에게 자리를 주고 달랜 거잖아?’

물론 그렇다고 12인의 위대한 흑마법사라는 자리에 혜택이 없는 건 아니었다.

‘흑마법사들에게 해가 되는 행동만 아니면 그 어떠한 행동을 하건 흑탑은 간섭하지 않는다고 했지.’

그렇게 보면 그냥 12명의 무법자들 아닌가?

내가 속으로 고개를 젓던 중.

네로가 관짝을 내려다보며 말한다.

“정황은 알겠다. 죽은 놈이 멍청한 거지. 저주가 걸린 물건은 많이 봤을 텐데 안일하게 대처한 놈의 잘못이다. 네 잘못은 없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걸 들고 나를 따라와라. 욕망의 방으로 간다.”

네로가 손가락을 까딱이자.

도굴꾼들이 다시 사슬을 잡고 낑낑거리며 관을 옮긴다.

‘…욕망의 방?’

“아스칼, 욕망의 방이 뭐냐?”

나는 옆에 있던 아스칼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음… 간단히 말씀드리면 흑탑에서 다루지 않는 저주가 걸린 물건들이나, 죽일 수 없거나 특이한 마물들을 모아 놓은 곳입니다.”

“그런 걸 왜 모아 놓는 건데?”

“그야… 마물들이 갖고 있는 특이한 힘들이나 저런 저주가 걸린 물건들을 통해 새로운 저주를 연구하기 위해서죠.”

‘오호… 그러니까 저런 저주가 걸린 물건들로 새로운 저주를 연구한다? 신기하네.’

내가 속으로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중.

아스칼이 계속 말한다.

“이런 말씀을 드리기엔 죄송스럽지만 심장 적출 마법도 손가락으로 심장만 뽑는 모히토라는 마물을 연구하면서 탄생한 저주입니다. 따지고 보면 리치가 된 흑마법사님들의 조상 격이죠.”

‘오호… 리치의 조상 격이라……. 그건 흥미롭네.’

“재미있네. 근데 방금 그 물건은 왜 네로가 가져간 거야?”

“그야 욕망의 방의 총책임자가 네로 님이시니까요.”

“그래?”

‘명색이 12인의 위대한 흑마법사면서 그런 곳을 관리한다? 저 양반도 어지간히 이상한 양반이네. 아니면 저주에 관심이 많은 건가?’

어쩌면 생전의 베크 교수처럼 마물에 미친 놈일지도 모른다.

‘온갖 저주가 걸린 물건들이랑 신기한 마물을 모아 놓은 방이라……. 호기심은 가네. 그런데… 저 양반은 왜 가다 말고 이쪽으로 오는 건데?’

어째서일까.

네로가 잠시 도굴꾼들을 세우더니 내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오는 것 아닌가?

‘나한테 용무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겠지?’

“흑남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지만 나의 예상과 달리.

네로는 내게 다가와 정중히 인사를 건넨다.

“반갑습니다, 네로 님. 그런데 어쩐 일로……?”

“탑주님께 흑남께 욕망의 방 안의 것들 중 원하는 것 하나를 내어 드리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마침 지금 저도 욕망의 방으로 돌아가는 길이니 같이 가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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