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어떤 혜택을 주신다는 건지…….”
제른의 물음에 나가란 대신 내가 그를 보며 입을 뗐다.
“결혼 상단에 일손이 부족해 악마학파의 흑마법사들의 손을 좀 빌리기로 했습니다. 다행히도 레논 부탑주께서도 흔쾌히 수락해 주시더군요.”
“그 정도야 뭐…….”
혜택이라기보단 악마학파와 흑남 간의 거래라고 봐도 될 터.
제른이 순순히 수긍하던 중.
나는 그를 보며 나지막이 말을 이어 갔다.
“그리고 과분하게도 제가 결혼 상단의 독점권을 얻어 흑혼해 듀오를 독점적으로 운영하게 됐습니다.”
“…예?”
나의 대답에 제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가.
애써 인형 같은 미소를 보인다.
“제른, 뭘 그리 놀라나? 이 정도면 싸게 먹힌 거네.”
“싸게… 먹히다니요?”
제른의 물음에 계속 말을 이어 가는 나가란.
“그동안 흑마법사들은 항상 사람의 숫자가 적어 고생했네. 명문가의 자제들을 교육한다고 해도 그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았지.”
“그래서 적당히 돈이 있고 적당한 가문의 자제면 입학할 수 있게 그 범위를 넓히지 않았습니까?”
제른의 반박에 나가란이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맞네. 하지만 대륙의 다른 왕국들에 비하면 그마저도 턱없이 부족한 숫자야. 오죽했으면 내가 잡아온 노예들에게 흑마법을 가르칠까 생각도 해 봤겠나?”
“하지만 저희에게 사람의 숫자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저희에겐 언데드들이 있잖습니까?”
이번에는 고개를 젓는 나가란.
“언데드들이 있긴 하지. 하지만 생각해 보게. 10만의 흑마법사들이… 어쩌면 그 이상의 흑마법사들이 있다면 그 군세는 가히 상상을 초월하지 않겠나?”
“…….”
제른이 달리 반박하지 못하자.
나가란은 것 보라는 듯 말을 이어 간다.
“우리의 고질적인 문제인 사람의 숫자. 여기 앉아 있는 흑남은 그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했네. 그러니 그 정도 권리는 줘도 되지 않겠나?”
이미 탑주가 결정을 내렸음에도.
제른은 단호히 고개를 젓는다.
“이제껏 그 어떤 흑마법사에게도 독점권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하물며 그 대상이 흑남이라고 해도 방침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제른, 지금 자네의 발언이 대륙 정벌의 기반에 방해가 된다는 건 알고 있나?”
나가란이 게슴츠레하게 눈을 뜬 채 묻자.
제른은 단호히 고개를 끄덕인다.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구가 적다고 해도, 흑남께 혜택을 드리지 않아도 대륙 정벌은 가능합니다.”
“으허허허허, 그런가? 그럼 그 답을 내게 가져오게.”
“그건… 아직… 준비 중에 있습니다.”
제른이 말꼬리를 흘리자.
나가란 탑주가 혀를 찬다.
“제른, 상상만 가득한 계획은 망상에 불과할 뿐이네. 반면 여기에 있는 흑남은 내게 대륙 정벌의 비전을 보여 줬네. 사람을 늘려 대륙을 정벌한다. 단순하고 원초적이지만 가장 효과적이기도 한 방법을 말이지.”
‘뭐요? 이보쇼, 영감. 그게 무슨 말입니까? 대륙 정벌?’
지금 이 탑주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란 말인가?
‘설마 흑혼해 듀오를 운영하는 게 대륙 정벌의 토대를 다지기 위한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래서 나를 불러서 이런저런 혜택을 주려고 했던 거라면.
어느 정도 납득이 되긴 한다.
‘인구를 늘리려고 한 건 맞다만 이쪽은 대륙 정벌에는 관심이 없는데?’
“여하튼 자네의 말은 잘 알겠네. 일단은 내 쪽에서 한발 물러나지.”
“…감사합니다.”
나가란 탑주는 웃으며 두 손을 들어 보이더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자네의 부탁을 들어주려고 했네만 아무래도 조금 어려울 것 같네. 제른 부탑주가 저리 반대를 할 줄이야…….”
“하하, 괜찮습니다.”
그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놈은 왜 하필 이 타이밍에 와서 초를 쳐? 설마 뭐 너도 결혼 상단을 운영해 보려고?’
설령 제른 부탑주가 나를 견제하고자 비슷한 결혼 상단을 만든다고 한들.
그 결혼 상단은 결코 내 것을 따라올 수 없었다.
‘이미 이쪽은 새 판을 짜고 있으니까. 저쪽은 기를 써도 얻지 못할 판을 말이야. 독점권?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만이야.’
“그보다 랄프, 자네는 내 생각 이상으로 유능한 모양이야.”
“감사합니다, 탑주님.”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어 가는 나가란 탑주.
그는 제른 부탑주가 들으라는 듯 슬며시 목소리를 높인다.
“지금처럼만 계속한다면 언제고 나의 뒤를 이을 수도 있을 거네.”
“…예?”
‘뭐야. 지금… 암묵적으로 나를 차기 탑주로 생각하고 있다고 이야기 한 거야?’
나보다는 세 명의 부탑주가 탑주의 자리에 더 가까운 상황에서.
나를 후계자 후보로 거론하다니.
‘그것도 제른 부탑주가 있는 자리에서? 왜지? 정말 흑혼해 듀오를 높게 평가해서?’
아니다.
아무리 내 업적을 높게 평가했다고 해도 곧바로 나를 탑주 후계로 삼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럼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한 가지밖에 없네.’
바로 눈앞의 제른 부탑주를 자극하는 것.
아마도 그것이 나가란 탑주가 노리는 바였을 것이다.
‘둘 다 대륙 정벌에 관심이 있고, 그 와중에 제른 부탑주가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으니까, 나를 이용해서 제른을 자극한다? 이 영감도 어지간히 뱀 기질이 있네.’
내가 속으로 혀를 내두르던 중.
“탑주님… 흑남님을 차기 탑주로 생각하고 계신… 겁니까?”
얼굴이 싸늘하게 얼어붙은 제른이 나가란을 보며 묻는다.
“안 될 건 또 없잖나?”
“흑남님은 이제 하나의 성과를 거뒀을 뿐입니다. 더욱이 탑주의 자리는 가장 강대한 힘을 가진 흑마법사만이 앉을 수 있는 자리 아니었습니까?”
“으허허허허, 그는 아직 젊네. 가능성은 충분하지.”
나가란의 대답에 제른이 얼어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음… 저 양반… 눈빛이 이상한데.’
아무래도 내가 탑주의 후계자로 거론된 게 거북했던 걸까.
‘거북하겠지. 근데 탑주가 널 자극하려고 그런 것 같은데 그냥 그러려니 해라.’
내가 제른의 눈을 마주 응시하던 중.
나가란이 내게 말한다.
“아 참, 그리고 전에 자네가 내게 부탁했던 저주술사 말이네. 마침 어제 흑탑에 복귀를 했네. 자네에게 찾아가라고 이야기를 해 뒀으니 한번 만나 보게.”
‘드디어 왔어?’
저주술사가 왔다고 하니.
이제 그에게 더스틴의 방에서 얻었던 저주가 걸려 있는 지팡이를 보여 주면 될 터.
‘저주만 풀리면 당장 사용해 봐야지.’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탑주의 방을 나가 서둘러 내 방으로 돌아가던 중.
‘손님인가?’
나는 내 방문 옆에 서 있는 흑마법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는 어쩐 일이지?”
“아, 흑남님이시군요. 저는 카스론입니다. 나가란 탑주님께서 보내셔서 오게 됐습니다.”
‘아아, 저주술사였어?’
나가란이 보낸 저주술사가 눈앞의 이 남자인 모양이었다.
“그런데 왜 안 들어가고 여기서 서성이고 있어? 안에 아무도 없었나?”
“하하… 그게, 안이 좀 시끄러운 것 같아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시끄럽다고? 그게 무슨……?’
내가 의아해하던 찰나.
“그걸 말이라고 해! 좋은 말로 할 때 내 등급 돌려놔라.”
방 안에서 웬 남성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온다.
‘무슨 일이지?’
내가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이미 고룬 님의 등급은 D등급으로 하향 조정 됐습니다. 아무리 선배님이라고 해도 다시 올려 드릴 수는 없어요.”
“야, 흑남님 밑에서 일 좀 하니까 이제는 내가 만만해 보이냐?”
“아니, 그게 아니고…….”
아스칼을 겁박하는 남자와 연신 손을 젓는 아스칼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온다.
‘저 새끼는 또 뭐야? 고룬? 고룬… 아, 그놈이구나? 그 선물만 있는 대로 받아먹고 매칭 상대를 거절한 놈.’
“무슨 일이지?”
“아, 랄프 님!”
문을 열고 들어간 나를 보고 환한 미소를 짓는 아스칼과 달리.
고룬이라 불린 남자는 나를 보곤 얼굴을 구긴다.
“랄프 님, 여기 고룬 손님이 등급을 하락시켰다고 항의를 하러 와서 말이죠.”
“흑남님, 정말 제 등급이 하락한 겁니까?”
“잘 알고 있네. 맞아.”
내가 덤덤히 고개를 끄덕이자.
고룬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본다.
“갑자기 왜 등급을 떨어뜨리신 겁니까? 제가 뭘 잘못하기라도 한 건가요?”
“확인을 좀 해 보니 너, 애당초 베카와 결혼할 생각이 없었던 같던데. 아니야?”
어안이 벙벙한 채로 고개를 끄덕이는 고룬.
“당연히 없었죠. 누가 그런 거대한 여자랑 결혼을 하고 싶겠습니까? 설마… 그게 등급을 하락시키는 요인이었던 건 아니겠죠? 상대가 마음에 안 들면 거절을 해도 된다고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그래. 거절해도 돼. 근데 너는 상대의 호의를 악용해서 선물만 받아먹었잖아? 한두 개면 이러지도 않았어. 수십 개가 넘던데? 그리고 다른 여자들한테도 비슷한 짓거리를 하기도 했고.”
“그건…….”
나의 반박에 머뭇거리던 고룬이 다시 소리친다.
“그게 뭐가 나쁜 겁니까? 상대가 준다고 하니 저로서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는데요.”
“애당초 그녀와 진지하게 만날 생각이 없었다면 정중히 거절했어야지. 상대의 호의를 악용했으니 네 등급 격하도 타당한 거야.”
나의 말에 이맛살을 구기는 고룬.
그는 이내 비굴한 미소를 보이며 내게 묻는다.
“다시 올려 주실 수는 없으십니까? 여기 아스칼의 말로는 D등급은 매칭이 거의 안 된다고 하더군요. 제 나이가 곧 33살입니다. 저도 결혼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시 올려 달라고?”
나는 어이가 없어 피식 미소를 흘렸다.
“탈퇴시키지 않은 것만으로 감사하게 여겨.”
“감사하게… 여기라고요? 아아, 감사?”
피식피식 미소를 흘리는 고룬.
“이쪽은 돈도 냈는데 감사? 벼락출세하더니 이제는 아주 눈에 뵈는 게 없나?”
고룬의 한마디에 순간.
방 안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얼어붙는다.
“허…….”
아스칼이 겨우 한 마디를 토하듯 내뱉던 중.
“근본도 없는 새끼가 높은 자리에 앉았으니 근본도 없는 연놈들을 데려올 생각을 한 거겠지. 시련의 탑? 그런 근본도 없는 놈들이랑 결혼을 하라고? 퉤! 하라고 해도 안 한다. 안 해!”
고룬이 분노를 폭발시키며 소리치고.
나는 그런 고룬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할 말은 다 했고?”
“흑남? 개 같은 소리하네! 운 좋은 새끼가 흑탑에 들어올 때부터 알아봤다! 너 같은 새끼는 죽는 게 이 흑탑에 더 도움이 될 거다!”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린 걸까.
반쯤 눈이 뒤집힌 고룬이 지팡이를 들고 술식을 그리자.
화륵, 화륵, 화륵-
순식간에 그의 등 뒤로 검붉은 화염 덩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죽어라!”
검붉은 화염 덩이들이 허공을 날아 어느새 내 얼굴 앞까지 도달한 그때.
난 지팡이를 잡고 나지막이 한 마디를 읊조렸다.
“펠기누스.”
그러자.
쩌저저저저적-
아무것도 없던 허공이 갑자기 갈라지더니.
‘으윽……!’
내 몸에 있던 흑마력과 신성력이 미친 듯이 소모되기 시작했다.
‘역시 고위급 악마를 소환하면 흑마력이 엄청나게 소모되네. 근데 신성력은 왜 같이 소모되는 거야? 펠기누스가 타천사라 그런가?’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빠져나가는 기운을 느끼며.
나는 생각했다.
‘이 정도면 완전한 소환은 불가능하고… 잘해 봐야 1분 남짓 정도만 소환해 낼 수 있겠는데…….’
내가 속으로 혀를 내두르던 찰나.
[오랜만에 불렀네요.]
흑백의 여섯 쌍의 날개를 가진 타천사가 웃으며 걸어 나오더니.
손가락을 들어 스윽 허공을 긋는다.
“어……?”
그러자 내 얼굴 앞까지 도달했던 검붉은 화염구가 지우개로 지워진 듯.
홀연히 자리에서 소멸해 버렸다.
“지, 진짜… 펠기누스? 지, 진짜라고?”
펠기누스의 존재가 믿기지 않았을까.
고룬은 공격할 의지조차 상실한 건지 멍하니 펠기누스를 바라본다.
[어떡할까요?]
타천사가 손가락을 뱅글뱅글 돌리며 물어 오자.
나는 무심하게 답했다.
“어쩌긴, 규율대로 처리해야지. 죽여.”
[그러죠.]
펠기누스가 팔을 들자.
사사삭-
아무것도 없던 그녀의 손에 어느새 회색 빛깔의 창이 잡혀 있다.
“자, 잠시만 제 말을 들어 주십쇼, 흑남님! 제, 제가 감히 주제를 모르고 흑남님께 패악을 저질렀습니다! 제가 실수를 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쇼!”
“…용서?”
나는 그런 고룬을 바라보며 한마디를 던졌다.
“분노 조절을 잘했어야지 왜 용서받을 짓을 해?”
“죄, 죄송…….”
고룬이 입을 뻐끔거리려던 찰나.
사악-
펠기누스의 손에 잡혀 있던 창이 금세 사라지고.
고룬의 몸에 수많은 사선들이 그어지기 시작한다.
“합… 니…….”
고룬의 입술이 위아래로 실룩거리려던 찰나.
파아아아악-
고룬의 모습은 눈앞에서 사라지고.
매캐한 먼지 같은 것이 방 안에 흩날린다.
‘음… 이건…….’
와중에 흑마법사를 죽인 탓일까.
웅웅웅-
내 몸 안에 선명한 신성력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확실히 흑마법사를 죽인 건 선행이긴 하지. 근데… 엄청난 선행을 한 것도 아닌데 많이 오르네.’
나는 늘어나는 신성력을 느끼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흠칫하여 나의 소중한 부분을 슬며시 어루만져 봤다.
‘후… 다행히 큰 여파는 없는 모양이네. 고자는 사절이야.’
[어때요? 피가 나오면 더러워질 것 같아서 깔끔하게 처리해 봤는데. 마음에 드나요?]
펠기누스가 내 옆에 다가와 살며시 말하자.
나는 조금 뜨악하여 그녀를 바라봤다.
‘시체조차 남기지 않을 정도로 창으로 고룬을 그은 건가…….’
“잘했어. 깔끔하네.”
[호호, 그렇죠? 뭐든 깔끔한 게 제일이니까요.]
나를 보며 상냥한 미소를 짓는 펠기누스.
그녀는 이내 어딘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속삭인다.
[이제 더 있으면 당신이 못 버틸 것 같네요.]
“아직은 흑마력이 부족하니까.”
[아니요. 그 문제만이 아니에요. 한 가지 조언을 하자면, 신성력도 같이 향상시켜요. 그래야 저를 더 자주 불러낼 수 있을 테니까요. 알았죠?]
그 말을 끝으로.
쩌저적-
펠기누스는 삽시간에 자취를 감춰 버렸다.
‘갔나. 근데 이건 왜 부러졌어?’
나는 두 동강 난 지팡이를 내려다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무슨 지팡이가 이렇게 약해? 흑카데미에서 받았던 연습용 지팡이라 그런가?’
아무래도 내 흑마력을 담기에는 그 강도가 너무 약했던 모양이다.
‘쯧, 이미 부러진 건 어쩔 수 없지.’
“아스칼, 창문 좀 열어서 환기 좀 시켜.”
내가 석상처럼 굳어 있던 아스칼에게 손짓하자.
“허억, 허억, 허억… 예? 예!”
아스칼은 그제야 숨을 몰아쉬더니.
얼른 창문으로 달려가 문을 연다.
“대악마… 대악마를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되다니……. 그것도 펠기누스를…….”
아스칼은 방금 전의 상황이 믿기지가 않는다는 듯.
연신 같은 말을 되뇐다.
‘거참… 그리 놀랄 일도 아닌데.’
“뭘 그렇게 놀라?”
“놀라지 않을 수가 없잖습니까? 펠기누스라고요! 거기다가 고룬 선배는 파멸학파에서도 꽤 실력 있는 흑마법사였다고요!”
“그래서 문제가 될 소지가 있어?”
나의 물음에 아스칼이 고개를 젓는다.
“애당초 잘못은 고룬이 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흑남님께 그런 무례를 범했는데, 죽는 게 마땅했죠. 먼저 공격한 사람도 고룬이고요. 문제될 건 아무것도 없죠.”
“그렇지?”
애당초 먼저 죄를 지은 것은 고룬이다.
내가 고른을 죽였다고 한들.
나에게는 그 어떠한 영향도 오지 않을 터.
“고룬의 정보가 적힌 양피지는 태워 버려. 그리고…….”
나는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려.
방 안에 들어와 있던 저주술사에게 손짓했다.
“많이 기다리게 했네. 와서 앉아.”
“예? 아… 예, 예. 감사합니다. 저를 찾으셨다고요?”
아까와는 달리 잔뜩 긴장한 저주술사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나는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저주학파의 흑마법사 중에서도 해주에 능하다면서?”
“마, 맞습니다! 저는 저주를 걸기보다는 남이 건 저주를 파훼하는 걸 좋아하는지라…….”
“그래? 잘됐네. 그럼 이것도 해주 할 수 있겠어?”
내가 더스틴의 방에서 얻었던 지팡이를 꺼내어 그의 앞에 내밀자.
“이, 이 지팡이는…….”
두려움에 먹혀 있던 저주술사의 눈이 욕망으로 번들거린다.
“이 지팡이… 대체 어디서 구하신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