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카데미의 노예가 살아남는 법-49화 (49/200)

49.

“여성 파트… 총괄 매니저? 그건 또 뭔데?”

“간단히 말하면 내 오른팔이 되는 거지.”

나의 말에 레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본다.

“이해는 했어. 그런데 왜 굳이 이런 일을 하는 거야?”

“뭐?”

“네가 하는 일은 중매쟁이들이 하는 일이잖아. 그런 하찮은 일을 굳이 네가 왜 하는 건가 궁금해서.”

‘뭐… 하찮아 보이긴 하지.’

솔직히 저들의 입장에서 내가 하는 건 그저 평범한 중매로 보일 터.

‘하지만 이 하찮은 일이 흑탑의 역사를… 아니, 흑마법사들의 역사를 바꿀 수 있는 일이란 건 모르나 보네.’

나는 속으로 피식 미소를 흘리곤.

지그시 그녀를 바라봤다.

“그래서 하찮은 일이니 하기 싫다는 거야?”

“아니… 내 말은 그 뜻이 아니라 그냥 궁금하다는 거야.”

“이유는 간단해. 난 흑마법사들의 숫자를 늘릴 생각이거든.”

나의 대답에 그녀의 눈이 동그래진다.

“흑마법사의 숫자를… 늘린다고?”

“그래.”

“너… 전쟁이라도 할 생각이야?”

싸늘한 그녀의 물음에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전쟁이라……. 그보다는 흑마법사들에게 부흥기를 불러오기 위함이라고 치자.”

“그게 그거잖아.”

“아니, 틀려. 부흥하더라도 전쟁은 안 할 수 있으니까. 그보다 할지 말지 딱 말해 줘. 그래야 나도 다른 사람을 알아보든지 하지.”

내가 단호히 답하자.

레나는 낮게 침음하다가 다시 나를 바라본다.

“알았어. 할게.”

“잘 생각했어.”

그녀가 수락하자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말은 잘 듣네. 나중에 기회가 생기면 뭐라도 하나 주든가 해야겠어.’

“그럼 일단 이걸 받아.”

내가 양피지를 한 다발 내밀자.

그녀는 의아한 시선으로 나를 응시한다.

“이게 뭔데?”

“시련의 탑 남마법사들의 정보. 그게 있어야 다른 여흑마법사들한테 설명하기 쉬울 것 아냐. 가져가.”

* * *

며칠 뒤.

나는 차를 홀짝이다가 맞은편의 레나를 보며 슬며시 입을 열었다.

“여성분들한테 가입 이야기는 좀 해 봤어?”

“이야기는 해 봤지. 근데 생각보다 가입하려는 사람이 드물었어.”

“그래? 왜?”

‘여성 흑마법사들은 결혼에 별로 관심이 없나?’

“시련의 탑의 남자들보다 자기들이 더 우월한데 왜 그들을 소개받아야 하냐고 하던데. 차라리 노예들을 사서 매매혼을 하는 게 낫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흠…….”

레나의 말에 나는 생각에 잠겼다.

‘등급이 맞지 않다 이건데……. 결국 여성 고객들을 잡으려면 대륙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건가.’

솔직히 지금 흑탑의 여흑마법사들을 만족시킬 만한.

동급 혹은 그 이상의 등급을 가진 사람은 검은 대륙에 드물 터.

‘예상하기는 했다만… 뭐, 어쩔 수 없나.’

“좋아. 그럼 일단 가입한 여성분들은 잘 매칭해 주고, 더 이상 무리해서 가입시키지는 마.”

“그래도 돼?”

“그래도 돼. 애당초 흑탑에 여자 흑마법사들은 적어. 숫자가 적은 쪽보단 많은 쪽에 주력하는 게 당연한 거야. 그리고 진짜 결혼이 급하면 결국 다시 흑혼해 듀오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겠지.”

나의 말에 레나가 고개를 끄덕인다.

“알았어. 그렇게 할게. 그런데 랄프, 방학이 끝나도 이 흑혼해 듀오는 계속 운영하는 거야?”

“물론이지. 전반적인 일은 아스칼에게 맡기긴 하겠지만 계속 꾸준하게 관리할 거야. 왜?”

“그냥, 이제 방학도 몇 주 안 남아서 문뜩 궁금해서 물어봤어.”

‘음… 그러고 보니 방학이 몇 주 안 남긴 했지.’

흑혼해 듀오를 운영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낸 탓일까.

확실히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긴 한다.

‘일단 개학 전까지 흑혼해 듀오를 확실하게 정착시켜야겠어.’

“아스칼이 생각 이상으로 일을 잘해 주는 덕에 나도 마음 놓고 흑마법에 매진을…….”

내가 말을 이어 가던 그때.

덜컹-

“랄프 님! 랄프 님! 큰일 났습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더불어.

아스칼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들어와. 무슨 일인데?”

“그게…….”

내가 방으로 들어온 아스칼을 보며 묻던 그때.

“비켜!”

웬 거구의 여인이 열린 문을 비집고 방 안으로 들어온다.

‘뭔데 저렇게 화가 잔뜩 났어? 아스칼이 무슨 잘못을 했나?’

“무슨 일이지?”

“흑남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날카로운 여인의 물음에 나는 도리어 되물었다.

“내 부하가 실수라도 했나?”

“아니요! 그게 아니에요! 저랑 매칭된 남자가 저를 거절했다고요!”

‘거절할 수도 있지, 그게 무슨 문젠데?’

거절하는 건 흑혼해 듀오의 회원의 당연한 권리이다.

“거절하는 건 회원의 기본적인 권리인데?”

“그렇긴 한데요! 제가 그놈한테 선물한 게 얼마인 줄 아세요?! 무려 80골드가 넘는다고요! 그런데도 그 남자는 절 거절했다고요!”

‘거참… 어이가 없네. 선물은 네가 한 건데 그걸 왜 여기서 따지고 있어?’

하지만 나는 미소를 유지한 채 답했다.

“그럼 다른 남성분을 소개해 주면 되겠네.”

“좋아요. 다만! 그 전에 그놈한테 선물했던 것들은 전부 회수해야겠어요! 흑혼해 듀오가 저 대신 회수해 주세요!”

“뭐?”

‘여기가 무슨 선물 회수 센터인 줄 아나?’

나는 속으로 실소를 흘리곤.

차분히 그녀를 응대했다.

“이봐, 혹시 그 남자가 당신에게 선물을 달라고 강요했어?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가 나서서 대신 회수해 줄게.”

“그건… 아니에요. 하지만!”

“뭐야. 그럼 당신이 좋아서 선물을 해 줬다는 거잖아? 뭐가 문제인 건데?”

나의 말에 여흑마법사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든다.

“저는 그놈이 저와 결혼할 줄 알고 선물을 한 거라고요!”

“하아…….”

‘골 때리네…….’

물론 이와 같은 논란이 지금만 생긴 것은 아니었다.

‘며칠 전에도 비슷한 문제를 가진 남흑마법사가 찾아왔었지.’

상대도 자기를 마음에 들어 하는 줄 알고 호구처럼 선물을 퍼 줬는데.

자신을 거절했다고 찾아와 울먹이던 남흑마법사가 문뜩 떠올랐다.

“선물을 주기로 결정한 건 너야. 거기에 흑혼해 듀오는 책임이 없어.”

“그렇지만…….”

거구의 여흑마법사가 말꼬리를 흘리자.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쯤 했으면 어느 정도 알아먹었을 거고. 그보다 남자 쪽도 문제긴 하네.’

그래도 여흑마법사는 진심으로 결혼까지 생각해서 선물 공세를 한 것일 텐데.

그걸 홀라당 받아먹고 거절하는 것도 문제가 있긴 했다.

“아스칼, 회원분이랑 매칭했던 남성분이 누구지?”

“고룬이라고, C등급의 남성입니다.”

“아직 흑탑 인근에 있을 테니 가서 이야기해 보고, 남자 쪽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선물 회수하고, 등급은 D로 격하시켜.”

“알겠습니다!”

아스칼이 방을 나가자.

나는 다시 여흑마법사를 보며 입을 뗐다.

“이만하면 됐지?”

“죄송… 해요…….”

그녀가 사과하자.

나도 순순히 그녀의 사과를 받아 줬다.

“어차피 남성 회원들은 많아. 그 전의 남성 회원은 잊고 새로운 남성분과 매칭해 봐. 흑혼해 듀오의 장점이 뭔데? 네가 원하는 상대를 찾을 때까지 계속 남성 회원과 매칭할 수 있다고.”

나의 말에 풀 죽었던 그녀의 눈에 서서히 생기가 돈다.

“그렇죠? 오호호호호, 맞아요. 남자는 많으니까요. 개중에 제 짝 하나쯤은 있겠죠! 고마워요, 흑남님.”

마침내 그녀가 내 방을 나서자.

나는 생각에 잠겼다.

‘저 정도면 뭐, 양반이지.’

요 며칠간 얼마나 많은 빌런들이 아스칼을 찾아갔던가?

‘손찌검을 한 놈들도 있는 데다가, 매칭 상대에게 저주를 걸었던 미친놈은 진짜……. 후…….’

그래도 이런 진통을 겪어야 흑혼해 듀오도 더 단단히 흑탑에 뿌리를 내릴 수 있지 않겠는가?

‘고통이 없으면 발전도 없지.’

* * *

한편 같은 시각.

“보우렌! 메피르!”

누군가를 애타게 찾는 파멸학파의 부탑주, 제른.

“보우렌!”

그가 파멸학파의 연구실의 문을 벌컥 젖히며.

거듭 소리를 질렀으나 보우렌의 모습은 보이지를 않는다.

“메피르! 이런 망할……!”

도대체 이놈들이 어디로 사라진 거란 말인가?

“어? 부탑주님 나오셨습니까? 이번에는 연구 기간이 좀 기셨군요.”

제른이 3주가량을 연구실에 처박혀있었던 탓일까.

제른을 본 파멸학파의 흑마법사가 그를 보며 반가워한다.

“이번에는 연구 기간이 좀 길었다. 오염이라는 게 참 다루기 힘든 영역이야.”

“성과는 좀 있으셨습니까?”

“후… 아직은 잘 모르겠다. 잡힐 듯 잡히지 않으니……. 그보다 보우렌과 메피르는 어디에 갔는지 아나?”

분노가 느껴지는 제른의 물음에 흑마법사가 얼른 답한다.

“그게… 아마 여자를 만나러 나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여자? 흑마법밖에 모르던 놈들이 갑자기 무슨 여자야?”

“아, 아직 소식을 못 들으신 모양입니다.”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는 제른 부탑주.

“…소식?”

“그… 요 몇 주간 흑마법사들 사이에서 연애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연애 열풍?”

연애 열풍이라니?

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란 말인가?

“그게… 흑남께서 이상한 상단을 차린 뒤로 다들 한창 연애에 빠진지라…….”

“이상한… 상단?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제가 설명을 드리는 것보단 흑탑 밖으로 나가 보시면 바로 이해가 가실 겁니다.”

어안이 벙벙한 채로 흑탑을 나간 제른 부탑주.

그는 부하 흑마법사가 말한 대로 흑탑 인근의 시장가를 걸어 다녔다.

제른이 시장가를 걷던 그때.

“하하하하, 거참… 부끄럽습니다.”

“부끄럽긴요. 자랑스러운 일이죠. 흑탑에 아무나 못 들어가잖아요?”

“으허허허허허! 맞습니다! 이런 말을 드리기엔 부끄럽지만 능력이 있는 흑마법사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흑탑이죠!”

웬 홀쭉한 흑마법사와 시련의 탑의 마법사로 보이는 여성이 정겹게 대화를 나누며.

그의 곁을 지나가는 것 아닌가?

“이건 무슨…….”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 목걸이… 당신에게 어울리는 것 같은데 선물로 드려도 될까요?”

“어머… 고마워요.”

보석 상점에서도.

“술을 좋아하신다고요? 그럼 한잔하러 가시겠습니까?”

“좋아요.”

주점에서도.

심지어 시장의 노점상 곳곳에서도 핑크빛 분위기를 연출하는 흑마법사들이 그의 눈에 들어온다.

“이게 도대체… 허…….”

고작 몇 주간 연구실에 박혀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세상이 이렇게 바뀌었단 말인가?

“음?!”

그러던 그때.

길 한쪽에서 여인과 대화 중인 젊은 흑마법사가 그의 눈에 포착됐다.

“보우렌!”

“부, 부탑주님?”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냐.”

으르렁거리듯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보우렌을 노려보는 제른.

“그, 그게 말입니다……. 이 여인을 알아 가는 중이었습니다.”

“…뭐? 자세히 설명해 봐.”

보우렌이 흑혼해 듀오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자.

제른의 눈이 점점 커다래졌다가 점차 얼굴이 일그러져 든다.

“흑남… 이 미친놈이…….”

보우렌의 설명을 듣고서야.

제른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고 혀를 내둘렀다.

“그저 운이 좋은 놈이라 생각했건만… 설마 이런 일을 벌일 줄이야…….”

흑마법사들 대부분이 결혼을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게 현실이었다.

그리고 그 또한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해, 그러한 현실에서 눈을 돌렸다.

아니. 외면했다.

도무지 해결책을 제시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놈은… 허… 그런 미친 방법으로 해결을 할 줄이야…….”

하지만 흑남은 달랐다.

대량 중매라는 다소 흑남과는 거리가 먼 방법으로 ‘결혼’이라는 흑마법사들의 난제를 간단히 해결하려고 한다.

“이거… 좋지 않군. 좋지 않아…….”

막말로 흑남이 계속 흑마법사들의 결혼을 성사시킨다면.

그들은 학파를 떠나 잠재적인 흑남의 지지 세력이 될 터.

“그러면 내 계획에도 차질이 생기게 된다……. 내가 탑주가 돼야 본격적인 전쟁을 할 수 있는데…….”

만약 흑남이 이 기세를 몰아서 탑주 후보가 되기라도 한다면.

그가 구상했던 모든 계획들이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젠장…….”

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느낀 제른 부탑주.

“흑남을 견제하거나… 죽이는 게 최선이긴 하겠다만…….”

하지만 흑남은 베논의 선택을 받았다.

솔직히 마신의 선택을 받은 그를 죽인다는 건 좀 꺼려진다.

“가만… 꼭 죽일 필요는 없지. 흑남이 만든 걸 나도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어차피 방식이야 흑남이 만든 흑혼해 듀오를 모방하면 될 것이고.

탑주님의 도움을 받는다면 흑남이 만든 것보다 더 뛰어난 중매 상단을 만들 수 있으리라.

“탑주님을 찾아봬야겠어.”

헐레벌떡 흑탑으로 돌아가.

나가란 탑주를 찾는 제른 부탑주.

“탑주님!”

“오, 제른. 여긴 무슨 일인가?”

“드릴 말씀이 있……!”

탑주의 방에 들어서서 말을 하려던 제른이 순간 몸을 움찔거린다.

“제른, 자네는 흑혼해 듀오에 대해 들어 봤나?”

“…예. 들어 봤습니다.”

“참으로 혁신적이지 않은가?! 흑탑이 항상 난제로 여기던 결혼 문제를 이렇게 해결하려고 하다니. 역시 젊은 사람들은 생각하는 게 우리와 너무 다른 것 같네. 으허허허허!”

나가란은 내게 흡족한 미소를 보이며 말을 이어 간다.

“흑남의 계획대로 일이 잘 풀린다면 어쩌면 다음 대에선… 흑마법사들에게도 전성기가 찾아올지도 모르겠어. 그러잖은가, 제른?”

“아… 예… 그렇죠.”

“자네는 별로 기쁘지 않은 모양이군.”

나가란이 의아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자.

제른은 황급히 고개를 젓는다.

“아닙니다! 당연히 기쁘지요! 흑마법사들의 숫자가 늘어나면 그만큼 흑마법사들의 세도 강해지니 당연히 기쁜 일입니다!”

“으허허허, 그렇지? 그래서 말인데 지금 흑남이 운영하고 있는 흑혼해 듀오 말이네. 그곳에 나름의 혜택을 주고자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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