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카데미의 노예가 살아남는 법-47화 (47/200)

47.

“흑혼해… 듀오요?”

“그래.”

“그건 대체… 뭘 하는 곳입니까?”

“잠깐만.”

나는 고개를 돌려 레나에게 소리쳤다.

“잠깐 이 친구와 대화를 좀 해야 하니까 자리 좀 비켜 줄래?”

“알았어.”

레나가 순순히 자리를 뜨자.

나는 아스칼의 질문에 대한 답을 이어 갔다.

“네 말대로 여자 흑마법사는 적은 데 반면 결혼하길 원하는 남자 흑마법사는 많잖아? 거기다가 동업자 간의 결혼도 원치 않는다면 결혼할 상대를 외부에서 찾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음…….”

“만약 노예와의 매매혼이 만족스러웠다면 노예들을 대거 납치해 왔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건 매매혼을 원치 않는 흑마법사들도 많다는 거겠지. 아니야?”

나의 물음에 아스칼은 조금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를 바라본다.

“…잘 알고 계시는군요. 맞습니다. 노예를 사서 하는 매매혼은 어떻게 보면 저희에게 있어 최후의 수단 같은 겁니다. 노예와 결혼했다가 오밤중에 칼을 맞고 죽었다는 선배들도 많은지라…….”

‘…음? 내가 말한 건 그런 문제가 아니었는데.’

내가 말하려 했던 건 가정의 불화와 다툼이었건만 칼침이라니?

“그건 저주를 걸면 해결될 문제 아냐?”

“그렇죠. 하지만 노예와 오래 함께 생활한 흑마법사들이 왕왕 저주를 풀어 주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끝은…….”

아스칼이 씁쓸해하자.

나는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도, 정조차 없는 관계의 끝이 좋을 수는 없겠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야.”

“…그렇죠.”

“그래서 흑혼해 듀오가 필요한 거고.”

나의 대답에 고민에 잠겨 있던 아스칼이 힐끔 나를 바라보며 묻는다.

“흑남님 말씀대로 바깥의 여인과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이어진다면야 엄청 좋겠습니다만… 그게 생각처럼 될지는 의문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한 건데?”

“그야…….”

힘없이 웃음을 흘린 아스칼이 툭 대답을 던진다.

“어떤 미친 여자가 대륙의 공적인 흑마법사와 결혼을 하려고 하겠습니까?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그럴 일이 없겠죠.”

우울해하는 아스칼을 보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세상은 넓고 여자는 많아. 찾다 보면 흑마법사를 1등 결혼감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찾을 수 있을 거야.”

“그게… 가능할까요?”

“가능할지는 나도 모르지만 적어도 시도는 해 봐야지.”

나의 대답에 아스칼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의문을 던진다.

“그런데 흑남님께서는 왜 그런 일을 하시려는 겁니까? 막말로 흑남님 정도의 능력을 가지신 분이라면 원하는 여인을 골라 결혼하시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실 텐데……. 혹시…….”

잠시 머뭇거리는 아스칼.

그는 내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뗀다.

“흑탑에서 정치적 발판을 마련하려고 하시는 겁니까?”

‘…정치적 발판? 이건 또 무슨 말이야?’

“그건 또 무슨 말이야?”

“흑마법사들에게 있어 결혼은 외면하고 싶지만 마주할 수밖에 없는 냉정한 현실입니다. 그렇기에 결혼을 포기하고 사는 흑마법사분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흑남님께서 그런 고민거리를 해결하시게 되면, 필연적으로 흑남님을 지지하는 세력도 생길 수밖에 없겠지요.”

아스칼의 대답에 나는 속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결혼 문제를 해결한다고 나한테 지지 세력이 생긴다고? 결혼한다는 게 흑마법사들에게 그 정도로 문젯거리였어?’

나는 고개를 저으며 아스칼을 바라봤다.

“약간의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물론 지지 세력이 생긴다면 내 입장에선 좋겠다만 정치적인 이유로 하는 행동은 아니야.”

내가 흑혼해 듀오를 설립하려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그게 엄청난 악행이 될 것 같아서였으니까.

‘막말로 흑마들이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고, 그 아이들이 또 흑마가 된다면…….’

흑마법사들의 세력이 눈에 띄게 커질 것이고.

결과적으로 나에게도 흑마력이 돌아오게 될 터.

‘장기 프로젝트가 되긴 하겠다만 해 볼 가치는 충분해. 뭐… 와중에 지지 세력이 생긴다면 그 또한 환영할 일이긴 하지만.’

“그럼 어째서 이런 일을…….”

아스칼이 말꼬리를 흘리자.

나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아스칼, 나도 흑남이기 전에 남자야. 너희의 원초적인 생각과 내가 생각하는 건 크게 다르지 않아. 그러니 나 역시 밖에서 결혼할 여인을 찾길 원할뿐더러, 겸사겸사 너희가 안고 있는 문제점도 해결하려고 하는 거지.”

나의 대답에 아스칼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거린다.

“진심… 이십니까?”

“그래. 흑마법사도 결국 사람이야. 좋은 밥을 먹고, 좋은 곳에서 살고 싶고, 자기가 원하는 여성과 결혼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같다고.”

나는 아스칼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계속 말했다.

“나는 흑마법사들이… 특히 젊은 흑마법사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할 생각이다.”

“오오오…….”

나의 대답에 아스칼의 얼굴에 감동과 기쁨이 맴돌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너의 조력이 필요해. 나 혼자서 흑혼해 듀오를 만들 수는 없으니까.”

내가 슬쩍 아스칼을 바라보자.

아스칼이 지팡이를 옆에 내려놓곤 내게 무릎을 굽힌다.

“저 아스칼, 정말 제가 원하는 여인과 사랑이 있는 결혼을 할 수만 있다면, 흑남님께서 원하신다면 몸이 부서지라 움직여 보겠습니다.”

‘거참… 결혼이 뭔지…….’

그깟 결혼이 뭐기에 이 젊은 흑마법사가 내게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하게 만든 건지.

“좋아. 그렇다면 일단 먼저 네가 해 줘야 할 일이 있어.”

“해야 할 일이요? 뭐든 말씀만 하십쇼! 어떤 일을 맡기시건 반드시 수행해 보겠습니다!”

아스칼이 자신만만하게 가슴을 두드리자.

나는 게슴츠레하게 뜬 눈으로 그를 보며 말을 이어 갔다.

“너희 이스만 가문은 대대로 각 국가의 정보를 다루는 집안이었지?”

“예? 예, 그렇긴 합니다만 갑자기 제 가문은 왜…….”

“그럼 정보 좀 가져올래? 먼저 시장조사를 해야 할 것 아냐.”

* * *

며칠 뒤.

“음…….”

나는 방 안에서 아스칼에게서 받은 양피지들을 훑으며 생각했다.

‘이거… 최대한 흑마법사랑 접점이 없는 왕국을 찾아보려고 했는데 쉽지가 않네.’

본래의 계획은 흑마법사들과 악연이 없는 왕국 혹은 제국을 찾을 생각이었다.

‘악연이 없으면 그래도 흑마법사에게 갖고 있는 적의가 조금은 적을 테니까. 하지만…….’

도대체 옛 흑마법사들은 무슨 생각이었는지.

툭하면 전쟁, 또 전쟁을 벌였다.

그것도 지도에 그려진 모든 왕국들을 상대로 말이다.

‘이래서야 흑혼해 듀오를 만들긴 쉽지 않겠는데…….’

막말로 ‘결혼 상대가 흑마법사라면 어떠실 것 같으세요?’라고 물었다가.

흑마법사의 첩자라고 의심당해 화형을 당할지도 모른다.

‘어후… 장담을 하긴 했는데 이거… 답이 안 나오네.’

도대체 어디서부터 접근을 해야 할지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

‘애당초 답이 있긴 한 건가?’

전대, 전전대의 흑마법사들이 만든 악연의 고리가 계속 얽히고 얽혀.

지금에까지 이른 상황이다.

‘고리를 푸는 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자른다고 해 봐야 납치 말고는 떠오르는 방법이 없고…….’

결국 나는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하고.

답답한 마음에 방을 나가 흑탑의 1층으로 내려갔다.

‘고민한다고 당장 해결될 문제가 아니야. 사람들 지나가는 모습이라도 보면서 좀 쉬자.’

그렇게 바삐 흑탑 안을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길 몇십 분.

“300골드라고요? 뭔가 잘못된 건 아닌가요?! 제가 몇 년을 기울여 만든 던전이라고요!”

한 여인이 카운터의 흑마법사를 보며 소리친다.

“던전 안에 특수한 함정도 없고, 길들인 마물도 오우거 정도가 전부입니다. 미온 님의 던전은 정확히 300골드짜리 던전입니다.”

“아니… 그걸 지금 말이라고……!”

“저희의 측정이 의심스럽다면 귀하께서 소속된 탑인 시련의 탑에서 측정을 받아 보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뒤에 손님들께서 계신지라.”

‘음… 시련의 탑에서 온 마법사였나?’

나는 별생각 없이 말다툼을 벌이던 그들을 바라보다가.

‘아… 가만…….’

불현듯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다른 왕국에서 결혼감을 구해 오기 어렵다면 내수 시장을 이용하면 되는 거잖아?’

같은 흑마법사와 결혼하기를 꺼려 한다면.

시련의 탑, 혈탑의 여인들과 흑탑의 흑마법사들을 매칭시켜 주면 되는 것 아닌가?

‘아스칼을 불러야겠어.’

* * *

몇 시간 뒤.

“부르셨습니까, 흑남님!”

“어, 꽤 괜찮은 생각이 떠올라서 말이야. 일단 앉아.”

의자에 앉는 아스칼을 보며 나는 입을 뗐다.

“너, 시련의 탑이나 혈탑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하다니요? 그야… 흑탑에 비하면 많이 떨어지는 탑이라고 생각하죠.”

“아니. 내가 말하는 거는 그런 조건이 아니고, 거기 여마법사들에 대해서 묻는 거야.”

나의 물음에 아스칼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나를 바라본다.

“글쎄요……. 사실 그쪽 출신들이랑은 잘 엮일 일이 없는지라…….”

“그래! 그래서 묻는 건데, 만약 시련의 탑의 여마법사와 결혼한다고 가정하면 어떨 것 같아?”

“어떨 것 같냐고 물으셔도… 그쪽 탑 출신과는 애당초 중매를 볼 일이 없는지라… 잘 모르겠습니다.”

아스칼이 침음하자.

나는 기다렸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잘 모르겠지?”

“…네.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 한번 만나 보면 어때?”

내 물음에 눈을 동그랗게 뜨는 아스칼.

“시련의 탑 여마법사와 만나 보라고요?”

“왜? 싫어?”

“아니요. 싫은 건 아닙니다만…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만나는 건 좀… 그런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래. 당연히 그런 반응을 보이겠지.’

누군지도 모르는 상대와 만나라고 하면.

나 같아도 당연히 고개를 저을 것이다.

“그렇지? 그러니까 여기서 흑혼해 듀오가 필요한 거야.”

“…예? 그게 무슨…….”

“이제부터 네가 할 일이 많아. 먼저 시련의 탑이랑 혈탑에 소속된 마법사들에 대한 정보를 모아야 돼. 가능하겠어?”

내 말에 당혹해하는 아스칼.

“다른 탑에 소속된 마법사들에게서 정보를 얻는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나도 알아. 쉽지 않은 일이지. 그러니까 이쪽에서 먼저 ‘일부’ 정보를 제공해야지.”

“네?”

나는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어 갔다.

“다른 흑마법사들에게 흑혼해 듀오에 대해 좀 이야기는 했어?”

“예. 일단 가입하겠다는 흑마법사들은 10명이었습니다.”

“그 친구들에게서 정보는 받아 냈고?”

“여기 있습니다.”

아스칼이 10장의 양피지를 내밀자.

나는 그것을 받아 내용을 살폈다.

이름: 덱스

가문: 흑마법사 명가로 알려진 도지마 가문의 삼남.

나이: 32살

성별: 남

키: 175

몸무게: 85

얼굴: 나이에 비해 동안

‘이름, 가문, 나이 등, 적으라는 건 다 잘 적었네.’

“이걸 이쪽에서 마음대로 사용해도 된다는 허락은 받았고?”

“네.”

“잘됐네. 그럼 이제 이걸 갖고 시련의 탑이나 적탑으로 가서 선전하는 거지. 결혼하고 싶은 흑마법사 10명이 있다고. 그럼 관심이 있는 사람은 네게 만나자고 하겠지. 아 참.”

나는 잠시 아스칼에게 손짓을 한 뒤 계속 말했다.

“거기에 적힌 정보들 있잖아? 전부 보여 주지는 마.”

“예?”

“일부만 보여 주라고. 가문이랑 나이, 얼굴 정도만. 그리고 상대가 궁금증을 보이면 그때 넌지시 흑혼해 듀오 가입을 권유하고.”

나의 말에 아스칼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렇지만 그렇게 해서 다른 탑의 여마법사들이 관심을 보일까요?”

걱정스러운 듯 묻는 아스칼.

“너희가 어디 출신인지 잊은 건 아니지? 너희는 흑탑 출신이야. 검은 대륙의 탑들 중에서도 제일 잘나가는 탑에 소속된 흑마법사들이라고. 그것만으로 일단 먹고 들어가는 거야.”

‘막말로 따지고 보면 대기업에 종사하는 회사원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현실이었다면 어디 가서 쉽게 퇴짜 맞지는 않을 정도의 스펙을 보유한.

나름의 능력자들이다.

‘흑탑보다 떨어지는 혈탑이나 시련의 탑의 여마법사들이 한번쯤은 관심을 가질 만한 스펙이라고.’

“분명 반응을 보일 테니까 자신감을 갖고 다녀와. 누가 보냈냐고 묻는다면 흑남인 내가 보냈다고 하고. 아 참, 그리고 흑혼해 듀오에 가입하겠다고 하는 사람들한테서 반드시 정보도 받아 와.”

“…알겠습니다.”

순순히 내 말을 믿지 못한 걸까.

그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 방을 나선다.

‘아스칼이 돌아올 날이 기대되네.’

* * *

며칠 뒤.

덜컹-

“흑남님! 흑남님!”

아스칼이 나를 부르며 다급히 방 안으로 들어온다.

“일찍 돌아왔네. 소득은 좀 있었어?”

그에 아스칼이 얼굴에 웃음꽃을 띤 채 말한다.

“먼저 시련의 탑에 들렀었는데 정말… 엄청났습니다! 정말 흑남님 말씀대로 이쪽의 흑마법사들의 정보를 보여 주니 많은 여마법사들이 관심을 보였습니다!”

“거봐, 내가 뭐라고 했어? 흑혼해 듀오에는 몇이나 가입했어?”

나의 질문에 아스칼은 대답 대신.

아공간 주머니에서 양피지를 한 아름 꺼내어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이만큼입니다, 흑남님!”

후두둑-

책상이 미처 감당하지 못한 양피지들이 바닥에 굴러떨어진다.

‘아니… 이건 생각보다 너무 많은데?’

나는 구르는 양피지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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