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허어…….”
흑카지노에 미쳐 칩을 거는 학생들을 보며.
천천히 내게로 걸어오는 볼드 학장.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학생들에게 약간의 놀거리를 제공했을 뿐입니다.”
“놀거리… 말입니까? 이건, 도박입니다!”
평소 냉정함을 유지하던 볼드 학장이 당혹해하여 목소리를 높이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도박이죠. 하지만 문제될 게 있습니까?”
내가 아무렇지 않게 묻자.
볼드 학장은 굳은 얼굴로 날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젓는다.
“…아닙니다. 당장은 문제될 건 없습니다. 하지만 이 시설로 인해 학생들의 성적에 영향이 간다면, 그땐 문제가 될 겁니다.”
‘그렇겠지.’
특히나 학부모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길길이 날뛰게 될 터.
‘훌륭한 흑마법사가 되라고 보냈는데 도박이나 하고 있으면 나라도 눈이 뒤집힐 테니까.’
“하하, 그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부분은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이곳이 학생들의 학업에 지장이 가진 않을 테니까요.”
“…예?”
볼드 학장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날 보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조만간 새로운 등급제를 하나 실행할 생각입니다.”
“등급제… 말입니까?”
“네.”
* * *
며칠 뒤.
“시험이 며칠 안 남았다. 공부에 전념해. 평생 밑바닥 인생으로 살고 싶다면 흑카지노에서 노는 것도 괜찮겠지. 이상.”
평소보다 유독 까칠해진 콘스 교수가 부패학 교실을 나서자.
“야, 어째 콘스 교수… 전보다 더 까칠해진 것 같지 않냐? 특히 그 하인장 놈이 흑남이 되고 나선 완전 저기압이 된 것 같네.”
“내 말이! 진짜 숨 막혀 죽을 뻔했다니까? 갑자기 왜 저래?”
학생들은 짐을 정리하며 떠들썩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후… 이렇게 힘들 땐 흑카지노에 한번 가야지. 아 참, 그보다 소식 들었냐? 흑카지노에 새로운 제도가 도입됐다던데?”
“새로운 제도? 무슨 제도인데?”
“뭐라 했더라? 무슨 등급을 매긴다고 했던 것 같은데… 나도 자세히는 못 들었어. 수업 끝나고 겸사겸사 한번 가 볼까?”
“당연한 걸 뭘 물어봐?”
두 남학생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던 그때.
“나도 같이 가.”
옆에서 한 여학생이 그들에게 나지막이 말한다.
“레, 레나 님…….”
“레나 님은 그런 곳에 안 간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두 남학생이 떨떠름해하자 레나는 고개를 젓는다.
“생각이 바뀌었어.”
“…예?”
남학생들은 어안이 벙벙하여 되물었으나.
“이쪽에서 도움을 줬는데도 피한다면… 내가 직접 찾아가는 수밖에 없지.”
레나는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입술만 잘근 깨물 뿐이었다.
“너희 이제 수업 없지? 흑카지노로 안내해 줘.”
“아… 예…….”
두 남학생을 따라 흑카데미의 외곽으로 이동한 레나.
“이게 흑카지노라고?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런 건물은 없었던 것 같은데.”
본래 매점으로 사용되던 조촐한 벽돌집은 어디 가고 없고.
원형 경기장 뺨치는 크기의 커다란 건축물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요 며칠간 확장 공사를 한다고 스켈레톤들과 하인들을 대거 동원했다고 하더군요.”
“…스켈레톤을? 그건 흑카데미의 재산이잖아?”
“그렇긴 합니다만… 레나 님도 아실 겁니다. 그 볼드 학장이 흑남에게는 꼼짝 못 하는 걸 말이죠.”
한 남학생의 말에 다른 남학생이 욕지거리를 뱉어 낸다.
“원래 그 자리는 레나 님 것이었는데… 근본도 없는 하인 놈 따위가…….”
“이미 지난 일이야. 그 이야기는 그만해.”
“예? 예…….”
레나는 고개를 들어 건물을 바라보다.
“들어가자.”
천천히 문짝을 젖혔다.
그러자.
[어서 옵쇼! 어서 옵쇼! 크케케케케케케!]
[세 명이다! 세 명!]
어디서 구해 온 건지.
말끔한 예복을 입은 임프들이 그들을 반긴다.
“이건…….”
[등급표를 내놔!]
[그래! 등급을 보자!]
임프들이 작고 붉은 손을 내밀자.
“등급표가 뭔데?”
영문을 모르는 남학생이 묻는다.
[그걸 몰라?! 너희 저번 학기 때 받은 성적표! 그걸 내놔라!]
“…뭐? 그게 등급표라고? 하지만… 우리는 1학년이라고! 성적표가 있을 리가 없잖아!”
[1학년?! 그럼 너희는 노예 등급이다!]
임프들은 낄낄거리며 똥색의 나뭇조각을 던지며 소리친다.
[노예들이 흑카지노를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은 30분이다! 알았냐! 크케케케케케!]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전에는 그런 규칙 같은 건 없었잖아?!”
한 남학생이 억울하다는 듯 말하자.
[시끄러워! 시끄러워! 들어가기 싫으면 썩 꺼져!]
[그래! 꺼져라!]
임프들은 끽끽거리며 화를 낸다.
“알았어요. 일단 들어가죠.”
나뭇조각을 받아 든 레나가 덤덤히 문안으로 들어가자.
“젠장…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남학생들은 구시렁거리며 그 뒤를 쫓는다.
끼이이익-
그들이 도박장 안으로 들어서자.
“카드 나눠 드리겠습니다.”
“이번에는 좋은 것 좀 줘 봐! 또 개 같은 카드 주지 말고!”
눈이 뒤집힌 학생들이 도박에 전념하는 모습이 그들의 눈에 들어온다.
“크게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은데…….”
“등급을 매기는 걸 빼면 말이야. 아니, 애당초 왜 성적으로 등급을 매기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네. 우리 같은 1학년은 어쩌라고? 그렇잖습니까, 레나 님?”
“그렇네.”
불만을 터뜨리는 두 남학생과 달리.
레나는 누구를 찾으려는 건지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그러던 그때.
“자, 여러분! 잠시 칩과 카드를 놓으시고 저를 주목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흑카지노 한쪽에서 남자의 외침이 들려온다.
“…찾았다.”
“예? 찾다니요?”
레나의 말에 두 남학생이 얼굴에 물음표를 그리던 사이.
“다들 갑작스러운 등급제의 시행에 많이 당황하셨을 겁니다.”
흑남이 흑카지노의 고객들을 보며 말을 이어 갔다.
“하지만 흑카지노의 지속적인 영업을 위해 실행한 조치이니 너그럽게들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근데 등급이 높으면 뭐가 좋은 건가요?”
한 학생의 물음에 난 미소를 지으며 질문한 학생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잘 물으셨습니다. 일단 등급이 높으면 저희 흑카지노를 더 많은 시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노예 등급을 받으신 학생분들은 최대 30분만 흑카지노를 이용하실 수 있죠.”
“그럼 제일 높은 등급은요?”
“원하시는 만큼 흑카지노를 이용하시면 됩니다. 이쯤 되면 궁금하실 겁니다. 그럼 등급은 어떻게 올리느냐?”
나는 한번 숨을 고르곤 계속 말을 이어 갔다.
“간단합니다. 성적을 높이세요! 여러분의 성적에 따라 여러분이 받게 될 등급도 달라질 겁니다.”
더 많이 놀고 싶다면 성적을 올려라.
‘아주 심플하지만 이만한 방법이 없긴 하지.’
이미 흑카지노에 중독된 학생들이라면.
이용 시간을 늘리고자 열심히 학업에 매진할 터.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지.’
“또한 귀족 등급 이상의 학생분들께는 추첨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추첨? 추첨이 뭔데?”
낯선 단어에 학생들이 혼란해하던 가운데.
나는 한쪽에 서 있던 하인 호밀에게 손짓했다.
“호밀! 갖고 나와!”
“예!”
드르르르륵-
호밀이 수레를 들고 내 옆으로 오자.
학생들의 시선은 수레 위에 천으로 덮여 있는 물건으로 쏠렸다.
“자, 이게 뭔지 다들 궁금하시겠죠? 이번 추첨 품목은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천을 걷어 올리자.
“저, 저건… 열쇠잖아?”
“뭐야, 열쇠를 어디다 쓰라고?”
학생들은 심드렁한 반응을 보인다.
“맞습니다! 이건 열쇠죠. 하지만 보통의 열쇠가 아닙니다. 흑탑 인근에 위치한 작은 저택의 열쇠죠.”
“…뭐라고? 그게 무슨… 아니, 가만… 그렇단 건…….”
눈치 빠른 학생들이 눈을 부릅뜨자.
나는 재빨리 소리쳤다.
“귀족 등급 이상의 학생분들께는 집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될 겁니다! 흑탑 주변의 집은 특히나 구하기 어렵단 걸 다들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와씨… 미친… 그걸 그냥 주겠다고?”
“흑남이 되더니 돌아 버린 것 아냐?”
상품의 가치를 알아본 학생들이 혀를 내두르는 것과 달리.
“비싸면 뭐 얼마나 비싸다고? 우리 가문의 재력이면 그깟 집 정도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어!”
“그러게 말이다. 나는 또 뭔가 했네. 그냥 이용 시간이나 더 늘려 줬으면 좋겠는데.”
여유가 있거나 혹은 집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학생들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아, 참고로 이 집의 시세는 약 5천 골드입니다.”
내가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를 던지자.
“…….”
흑카지노 안에는 정적이 흐른다.
‘5천 골드면 부자라도 구미가 당길 만하지?’
아무리 저놈들의 가문이 빵빵하다고 하더라도.
5천 골드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액수였다.
‘뭐, 나야 며칠 이곳을 운영하면 벌 수 있는 돈이니까.’
학생들이 매점과 흑카지노에서 펑펑 돈을 써 주는 만큼.
나도 재투자를 해야 할 것 아닌가?
‘거기다가 가문을 잇지 못하는 차남 또는 삼남이거나 비교적 가문의 힘이 딸리는 놈이라면 특히나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겠지.’
“흐, 흑남님… 정말이죠? 정말 저걸 주시는 거죠?”
“물론입니다. 다만 당첨이 되신다면 말이죠. 일단 귀족 등급까지 등급을 끌어올리는 게 우선순위 아닐까요? 참고로 이 집은 다음 학기 때 제공됩니다. 그러니 이번 시험에서 높은 성적을 받으신다면 굉장히 유리하겠죠?”
내가 웃으며 대답을 끝마치자.
“다, 당장 공부하러 가야겠어!”
“나, 나도!”
“저리 비켜! 내가 먼저야!”
대다수의 학생들이 뛰쳐나가듯 흑카지노를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여유가 있는 녀석들은 흑카지노를 즐겨 주면 되는 거고, 아닌 놈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재방문들 해라.’
내가 황급히 달려 나가는 학생들의 등을 보며 미소를 짓던 사이.
호밀이 조심스럽게 물어 온다.
“저… 흑남님, 괜찮은 겁니까?”
“괜찮아. 어차피 벌어들이는 돈에 비하면 많이 쓴 것도 아니잖아?”
“그렇기야 합니다만… 당장의 운영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는지…….”
호밀의 걱정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당장은 매출이 조금 줄긴 하겠지. 하지만 시험만 끝나 봐. 상황이 달라질걸?”
‘시험이 끝난 뒤 PC방이나 술집들마다 학생들로 버글거렸던 걸 생각하면…….’
시험 기간이 끝나거든.
흑카지노도 학생들로 버글거릴 터.
‘물론 시험이 끝난 뒤에는 방학이 있긴 하지만… 며칠간의 황금기 때 엄청나게 빨아먹어야지.’
내가 속으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던 그때.
“무슨 생각이야?”
돌연 레나가 내 앞으로 다가와 묻는다.
‘어, 왔어? 슬슬 올 때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귀신같이 맞춰서 오네.’
“뭐가?”
“이런 걸 차리려고 아버지한테 땅을 빌려 달라고 했던 거야?”
“그래. 꽤 괜찮지?”
나의 물음에 그녀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이해할 수가 없어. 넌 학생들을 싫어했잖아? 그런데 왜 이런 걸 차린 거야?”
‘아, 예전에는 그랬지. 물론 지금도 썩 좋아하진 않아. 하지만 너희는 내 고객이잖아?’
돈을 주고 덤으로 흑마력까지 제공하는 학생들.
이제는 이들을 딱히 싫어할 이유는 없었다.
“사람에게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는 거야. 나한테도 나름의 이유가 있는 거고. 그보다 그걸 물어보려고 이곳에 온 거야?”
“아니.”
그녀가 나를 똑바로 보며 말을 이어 간다.
“저번에 네가 던졌던 질문에 대해 나는 내 나름대로의 대답을 내놨어. 그러니까 이제는 네가 나한테 대답해 줬으면 해.”
‘확실히 그건 그렇지.’
레논 부탑주님은 아마 답을 아실지도 모른다는 나의 물음에.
그녀는 부탑주가 나를 찾아오도록 나름의 대답을 내놓았다.
‘그래, 네가 날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일을 했으니 이쪽도 그 정도 선심은 써 줘야지.’
나를 위해 열심히 일을 하고 또 성과를 낸 자에게는 상을 줘야 하지 않겠는가?
“맞아. 그래서 나한테 무슨 대답을 듣고 싶은 건데?”
내가 모른 척 묻자.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나를 보며 입을 뗀다.
“내가… 무사히 악마를 소환할 수 있게 도와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