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카데미의 노예가 살아남는 법-41화 (41/200)

41.

‘그래. 솔직히 이 안에서 할 게 뭐가 있었어?’

학생들이 즐길 것이라고 해 봐야.

자기들끼리 대결을 펼친다든지 흑마법에 매진하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데 매점이 생겼다? 솔직히 호기심 때문에라도 한 번쯤은 와 볼 수밖에 없지.’

물론 아직 가오픈 기간에 가까운지라 구비해 놓은 물건들이 적었음에도.

매점은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오색 쿠키 다섯 개 줘! 빨리!”

“죄송합니다, 그건 하루에 100개만 한정 판매 중인지라 다 팔렸습니다.”

“…뭐? 그럼 룰렛 빵이라도 내놔! 돈이라면 얼마든지 있으니까!”

매점에 배치한 상품들 중에서도 특히 두 가지 상품이 인기가 있었는데.

다섯 가지 맛 중 무작위로 한 가지 맛이 정해지는 오색 쿠키.

그리고 먹으면 룰렛이 돌아 빵에 걸려 있는 무작위 마법 한 가지가 발현되는 룰렛 빵이 바로 그것이었다.

“룰렛 빵도 다 팔렸습니다. 그건 하루에 50개만 판매합니다.”

“뭐라고?! 야! 너 내가 누군 줄 알아?!”

“물론이지요. 체럿가의 차남이신 체른다 님 아니십니까?”

접대에 가까운 호밀의 멘트에 남학생이 우쭐거린다.

“잘 알고 있네. 긴말 안 한다. 남아 있는 것 있지? 그거 전부 나한테 팔아.”

“저도 팔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습니다. 하지만 매점의 관리는 흑남님께서 하시고, 저는 그저 상품의 판매를 맡았을 뿐입니다. 부디 양해를…….”

호밀이 내 이름을 넌지시 언급하자.

남학생은 몸을 움찔거리더니 이맛살을 구긴다.

“아씨… 진짜 짜증 나네. 알았다. 야, 근데 이건 계속 운영하는 거냐?”

“방학 전까지 운영해 보고 결정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 알았다.”

남학생이 툴툴거리며 사라지자.

“죄송합니다. 금일 구비한 물품들이 전부 떨어졌습니다! 학생 여러분께선 다음에 다시 재방문을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호밀이 빈 가판대를 바라보던 학생들에게 소리쳤다.

“에이씨… 내일 다시 오자.”

“언제 열어?!”

“아침 식사 시간이 끝나고 개장합니다!”

학생들이 하나, 둘 매점을 나서자.

“랄프 님, 마감하겠습니다.”

“그래.”

호밀은 내게 고개를 숙여 보이곤 매점의 문을 걸어 잠갔다.

‘으흐흐흐흐… 그래, 이거지. 이거야!’

나는 자꾸 씰룩거리려는 입가를 애써 진정시켰다.

‘매점을 설치하고 물건을 팔아먹는 것만으로 흑마력이 늘어나다니… 역시 내가 생각해도 꽤나 괜찮은 악행이었어.’

매점을 통해 흑카데미 학생들의 스트레스 해소와 흑마법에 정진하는 것을 돕는다.

정말 내가 생각했지만 꽤나 기발한 악행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생각보다 막 엄청 흑마력이 오르진 않는 거네. 뭐, 상관없어. 매일매일 팔아먹다 보면 계속 흑마력이 늘어날 테니까.’

건설한 매점이 무너지지 않는 한.

이곳에서 물건이 팔릴 때마다 나의 흑마력은 계속해서 증가하게 될 터.

‘이 정도면 매점에 배치할 먹거리들 모두 케르베로스에게 검수를 받아야 하는 귀찮음 정도는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겠어.’

볼드 학장이 사정사정해서 귀찮음을 감수하게 됐으나.

그 정도 귀찮음이야 어차피 하인들이 떠안을 일이었다.

‘뭐, 학장의 입장도 있을 거고.’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음식에 독이 들었는지 확인해야 흑카데미의 장으로서 안심이 될 테니까.

‘크흐흐흐… 선행? 어림도 없지.’

선행을 하면 성남에 가까워지고.

그건 곧 내가 고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조건 악행만 저지른다.’

나는 다시금 결심을 하곤 계산대로 고개를 돌렸다.

“호밀! 계산 끝났어?”

내 물음에 금화를 만지작거리던 늙은 하인이.

내게 가죽 주머니를 내민다.

“예, 여기 있습니다.”

‘이곳으로 끌려오기 전에는 상단의 재무를 맡았다더니, 확실히 세는 게 빠르네.’

“다 해서 얼마나 벌었어?”

“32골드와 50실버입니다.”

“오호…….”

생각보다 수입이 짭짤하다.

‘저 물건들을 사는 데 끽해 봐야 5골드나 들었을 텐데. 거의 6배 정도가 남네.’

역시 부잣집 자제들이 다니는 흑카데미라 그런지.

씀씀이도 남다른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지.’

더 다양한 상품들을 들여와 학생들의 주머니를 열게 하고.

그걸 밑바탕으로 나의 흑마력을 더욱 올려야 한다.

‘바알인지 나발인지 하는 놈들이 언제 올지 몰라. 최대한 힘을 키워야 돼.’

그러기 위해선 흑카데미에 있는 해충들을 더 뛰어난 악충으로 만들어야 할 터.

‘어떻게 해야 더 흑마력을 빨아먹을 수 있을까…….’

‘학생들이 상품에 익숙해진 상태야. 앞으로 수입이 줄면 줄었지 폭발적으로 늘어나진 않을 거란 말이야.’

그렇다면 결국 새로운 상품을 들여놓아야 할 터.

“호밀, 뭔가 좀 신선한 생각 없어?”

내가 옆에 있던 호밀을 보며 묻자.

호밀이 반문한다.

“신선한 생각이라 하심은…….”

“수입을 바짝 올릴 수 있는 상품 같은 것 말이야.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그런 거?”

“지금의 수입으로는 부족한 겝니까?”

그의 질문에 나는 피식 미소를 흘렸다.

“부족한 건 아닌데 수입은 많을수록 좋잖아?”

“음… 제가 생각했을 때는 이곳의 학생들에게 필요한 건 적당한 유흥거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유흥거리?”

내가 관심을 보이자.

호밀이 계속 말을 이어 간다.

“예, 이곳의 학생들은 밀폐된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으니 적당한 놀거리를 던져 준다면 큰 반응을 얻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놀거리라……. 하긴 매점이 꼭 먹을 것만 팔라는 법은 없긴 하지.’

하지만 흑카데미 학생들의 관심을 끌 만한 놀거리가 있을까?

‘가만… 그래, 그 방법이 있잖아?!’

떠올랐다.

그야말로 악마적인 계획이…….

* * *

흑카데미에 매점이 들어선 지 어언 이 주가 지났다.

“룰렛 빵! 룰렛 빵 달라고! 그게 있어야 내기를 할 수 있단 말이야!”

“죄송합니다. 전부 매진이…….”

“그럼 폭탄 사탕이라도 줘!”

“그것도…….”

여전히 매점은 폭발적인 호황을 누리고 있었고.

나는 그러한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좋다, 좋아. 내 자양분들, 많이들 사라.’

처음에는 매점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던 교수들과 볼드 학장.

‘하지만 지금 그런 놈들은 거의 없지.’

교수들의 연구비라는 명목으로 100골드 정도를 쥐여 주니.

아주 좋아 죽으려던 달프 교수가 떠올랐다.

‘그래. 교수들도 박봉이니까. 역시 돈이 최고야.’

조만간 다른 교수들에게도 연구비라는 명목하에.

적당한 지원금을 안겨 줄 생각이었다.

‘그래야 내 행동에 반감을 덜 갖겠지.’

내가 속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던 그때.

“다 팔리기 전에 얼른 가자고. 오늘은 룰렛 빵을 꼭 사야 돼. 그래야 기숙사에서 내기를 하지.”

“너도 내기 참 좋아한다.”

“딱히 할 게 없잖아?”

두 남학생이 저들끼리 떠들며.

매점 안으로 들어선다.

“어이, 점장! 룰렛 빵 두 개만… 잠깐, 저건 뭐지?”

“어제까진 못 봤던 것 같은데?”

두 남학생의 눈에 들어온 것은.

매점 정중앙에 떡하니 자리하고 있는 커다란 원판이었다.

“뭐야. 이것도 파는 건가?”

“점장! 이건 어디다 쓰는 거야?!”

두 학생이 호밀에게 묻자.

나는 입꼬리를 올린 채 생각했다.

‘드디어 그걸 물었구나!’

애당초 교수들에게 떡고물을 쥐여 준 이유가 무엇이던가?

저걸 본격적으로 운영하기 위함이 아니던가?!

“호밀! 잘 설명해 드려!”

나의 외침에 호밀이 고개를 끄덕이곤 학생들을 응시한다.

“어이구, 잘 물으셨습니다. 그 원판으로 말할 것 같으면 사색 원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색 원판?”

“거기 원판에 4가지 색깔이 보이시지요?”

호밀의 물음에 두 학생은 원판으로 고개를 돌렸다.

원판에는 각각 빨강, 검정, 초록 그리고 파란색이 칸마다 칠해져 있었다.

“보이기는 하는데 이게 뭔데?”

“잘 보시지요.”

호밀이 원판을 힘껏 돌리자.

원판이 시계 방향을 따라 세차게 돌아간다.

툭-

호밀이 그 위로 구슬을 던지자.

데구르르르-

구슬이 초록 칸에 자리한 채.

원판이 멈춰 선다.

“잘 보셨죠?”

“아니, 그러니까 이게 뭐 하는 건데?”

학생의 물음에 호밀이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만약 방금 초록색 칸에 칩을 거셨다면… 다른 색깔에 걸었던 학생분들의 칩을 모두 가져가시게 됩니다. 간단하지요?”

“…뭐? 칩이 뭔데?”

‘자, 흑카지노, 개장합니다.’

카지노 룰렛이 매점에 강림하는 순간이었다.

* * *

일주일 뒤.

“들었어? 매점에 흑카지노가 생겼대!”

“…흑카지노? 그게 뭔데?”

“그걸 몰라? 안 되겠다, 당장 그 책은 던져 놓고 따라와.”

이제는 모르는 학생이 없을 정도로.

흑카데미 안에는 흑카지노의 열풍이 불어닥쳤다.

“푸하하하하하하! 내가 거기서 딴 돈만 100골드가 넘는다니까?!”

“하아… 이번에도 잃으면 난 진짜 가문에서 쫓겨날지도 모르는데… 진짜… 끝인데… 제발…….”

저마다 희비가 엇갈리는 가운데.

수업이 모두 끝나면 대다수의 학생들은 흑카지노로 걸음을 옮겼다.

“파란색 칸에 50골드 칩 건다!”

“나는 빨간색 칸에 30골드 칩!”

촤르르르르르-

맹렬하게 돌아가는 사색 원판 옆에서는.

“뭐 해? 빨리 걸어. 쫄리면 죽으시든가?”

“으음…….”

카드를 쥔 학생들이 서로의 눈치를 살피기 바쁘다.

“자, 곧 돌립니다. 칩들 올려 주십쇼.”

사색 원판을 담당하고 있던 하인의 말에.

촤라라라락-

학생들은 저마다 들고 있던 칩을 각각의 색 위에 던지기 시작한다.

‘일 잘하네. 며칠간 교육한 보람이 있어.’

각 파트마다 하인들을 배치하려고 그들을 얼마나 교육했던가?

“자, 돌립니다!”

마침내 사색 원판이 돌아가고.

“머… 멈췄다!”

“파… 파란색? 파란색이라고?! 으아아아아아!”

“그렇지! 이거야! 이거라고!”

학생들의 고함과 비명 소리가 교차하는 가운데.

‘크흐흐흐흐흐… 흑카지노… 대성공이구나.’

나는 그런 학생들의 뒤통수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똑똑한 놈들이라 그런지 칩에 대해 설명해 주니 금방 알아먹으니 얼마나 편해.’

거기다가 놈들이 딴 돈에서 일정 부분을 수수료라는 명목으로 떼 가니.

그야말로 난 앉아서 돈을 벌고 있었다.

‘그래, 그래. 놀 게 없어서 심심한 너희를 위해 만든 흑카지노다. 충분히 즐기고 돈만 토해 내. 어차피 너희 돈 많잖아?’

어차피 이놈들은 저마다 가문에서 빵빵한 지원을 받을 터.

흑카지노에서 쓰는 돈이라 봐야 푼돈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더 놀아! 더 놀고 돈과 흑마력을 뱉어 내!’

물론 이 광경을 학생들의 부모님이 봤다간 까무러칠 노릇이겠으나.

알 게 뭔가?

‘오히려 그간 흑카데미에는 놀거리가 없었으니 내게 감사를 해야지. 실제로 흑카데미 분위기도 달라졌잖아?’

매점이 들어선 이후로 자신들을 대하는 태도가 한결 유해졌다며.

하인들이 내게 감사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래. 공부만 시켰으니 얼마나 화가 났겠어? 풀 때는 풀어야지.’

학생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학업에 집중하고.

나는 흑마력과 돈을 모은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등가교환이란 말인가?

‘하지만 아직 나는 배고프다.’

지금의 매점으로도 부족하다.

일단 매점을 더욱 키워 내가 없어도 알아서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야만 한다.

‘그래야 내가 마음 편히 다른 업무를 보지. 그러려면…….’

내가 생각을 이어 나가려던 그때.

“이게… 대체 뭔가?”

“하, 학장님!”

“이게 무슨…….”

경악한 눈으로 흑카지노와 나를 쳐다보는 볼드 학장.

‘어, 왔어?’

나는 그런 볼드 학장을 보며 눈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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