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베크가 실소하자.
더스틴이 차갑게 웃는다.
[재밌나?]
“뭐가 재미있냐는 겁니까?”
[이 상황이 재미있냐고 묻고 있네. 이게 자네가 원했던 것 아닌가?]
말을 끝마치기 무섭게.
사사사사사삭-
더스틴의 등 뒤로 수백 개의 검은 구체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런 미친…….’
“얼른 피해! 당장!”
그 모습을 본 나는 멍하니 있던 하인들에게 고함을 지르곤.
서둘러 자리를 피하기 시작했다.
“더스틴… 지금 뭘 하자는 겁니까? 지금 당신은 아카데미의 규율을 위반하고 있을뿐더러, 제게 큰 모욕을 안겼습니다.”
[모욕? 크하하하하하하하하!]
광소하던 더스틴이 뚝 웃음을 그치더니.
[그 낯짝처럼 피부 가죽도 두꺼운지 봐야겠어.]
싸늘한 한마디를 던진다.
“헉, 헉…….”
내가 하인들을 끌고 미친 듯이 질주하여 자리를 벗어난 그때.
콰과과과과과과광-
내 등 뒤로 거친 충격파와 함께.
격렬한 폭발 소리가 울려온다.
* * *
다음 날, 점심시간.
“소문 들었어? 대회의가 열린대!”
“대회의? 누가 무슨 대죄를 저지르기라도 했대?”
어느새 더스틴과 베크 교수가 싸웠다는 소문이 퍼진 걸까.
학생들은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오늘 벌어질 대회의를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몰랐어? 더스틴이랑 베크 교수님이랑 싸웠다는데? 그 탓에 베크 교수님은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대! 조만간 새 마물학 교수님이 오시는 것 아니냐는 말도 있다고!”
‘소문 도는 것 참 빠르네.’
나는 떨어진 음식물로 엉망이 된 테이블을 치우며 생각에 잠겼다.
‘그보다 대회의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려나…….’
듣자 하니 베크 교수는 꽤나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고 했다.
‘치명적인… 부상? 팔 한쪽이 날아간 것치곤 꽤 멀쩡해 보이는데. 정말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게 맞아?’
나는 태연하게 식사를 하고 있는 베크 교수를 보며.
생각을 이어 갔다.
‘뭐, 저놈들이 검을 쓰는 직업은 아니니까.’
교수들은 전사가 아니다.
좀 많이 불편하더라도 지팡이를 들고 마법을 사용하는 데는 큰 지장이 없을 터.
‘베크 교수가 죽는 편이 깔끔하긴 했는데. 그건 좀 아쉽네.’
내가 속으로 생각을 이어 가던 그때.
교수들이 하나씩 자리에서 일어난다.
“베크 교수, 부축이 필요하나?”
“…괜찮습니다.”
베크 교수가 달프 교수의 손을 밀어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간다.
그러던 중.
“하인장.”
“…예?”
불현듯 그가 날 부르자.
난 접시를 치우다가 힐끔 그를 바라봤다.
“일이 끝나는 대로 내 집무실로 와.”
‘…집무실로 오라고?’
설마 베크 교수가 무언가 눈치를 챈 걸까?
‘아냐. 그랬다면 날 죽이려고 했겠지. 굳이 날 부르진 않았을 거야.’
난 생각을 정리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 * *
식당에서의 잡일들을 모두 끝마친 뒤.
나는 곧장 흑카데미를 나가 검은 숲 방향으로 이동했다.
‘하여간 이놈도 어지간히 정신이 이상한 놈이란 말이지. 이 위험한 곳 근처에 자기 집무실을 둘 건 또 뭐야?’
대다수 교수들의 집무실은 모두 흑카데미 안에 있는 반면.
베크 교수의 집무실은 검은 숲과 흑카데미의 경계선 부근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놈의 마물이 뭐라고…….’
소문을 듣자 하니.
더 가까운 자리에서 마물을 포획하고 관찰하고픈 게 그 이유라고 했다.
똑똑-
“베크 교수님, 하인장입니다.”
내가 낡고 허름한 벽돌집의 문을 두드리자.
“열려 있으니까 들어와.”
집 안에서 베크 교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문에 경계 마법은 설치하지 않은 건가? 대담한 건지 무심한 건지…….’
나는 의아해면서도 조심스럽게 문을 젖혔다.
“교수님, 들어가겠습니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독한 약초 냄새가 내 코를 찔러 왔다.
‘무슨 놈의 가죽들이 이렇게 많아? 마물 사랑꾼인 줄 알았더니.’
테이블 위에는 마물의 해부학도가 놓여 있었고.
정체불명의 가죽들이 천장 곳곳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적당히 빈자리에 앉아.”
‘뭐야… 평안해 보이네.’
어제 격렬한 전투를 치르고 팔을 잃은 사람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베크 교수는 침착해 보였다.
“예.”
“내가 널 왜 불렀을 것 같아.”
“글쎄요……. 제가 어떻게 교수님의 의중을 알 수 있겠습니까?”
나의 대답에 그가 픽 실소를 흘린다.
“어제 봤으니 알 것 아냐, 그 미친 리치 새끼가 지랄발광을 하는 거.”
“그야… 보긴 했지요.”
‘어제 더스틴한테 무슨 말을 했는지 물어보려고 하는 건가?’
갑자기 더스틴이 발작했으니.
당연히 그 연유가 궁금하여 하인들에게 정보를 캐냈을 터.
‘그리고 내가 더스틴이 내게 저주를 사용하고 나서 더스틴이 이상해졌다는 걸 알게 됐겠지.’
하나 난 이 상황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기에.
난 천천히 입을 뗐다.
“하지만 전 더스틴 님의 마인드 브레이커에 당했던 터라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뭐?”
베크 교수는 굳은 얼굴로 날 바라보다가.
다시 픽 실소한다.
“됐어. 그깟 시시한 이유 따위로 부른 게 아니야.”
‘…뭐? 더스틴이 갑자기 공격한 이유를 알고 싶어서 부른 것 아니었어? 그럼 왜 부른 건데?’
내가 의문이 담긴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베크 교수는 싸늘하게 말한다.
“더스틴과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했다면 몰라도, 놈은 이미 선을 넘었어. 알아?! 선을 넘었다고!”
베크 교수가 고함을 내지르자.
‘어째 침착해 보인다더니. 그래, 이게 정상이지. 멀쩡하던 팔이 작살이 났는데 열불이…….’
“그 빌어먹을 새끼가 키클롭스를 죽였다고! 그 귀한 마물을 내 눈앞에서 죽였다고!”
“…예?”
“혼혈은 개체 수도 거의 없는 데다가 포획할 확률도 낮다고! 근데 놈은… 놈은 그 귀한 표본을 죽였어!”
‘지금… 이 새끼가 뭐라는 거야? 그러니까 부상을 당해서 빡친 게 아니고, 마물이 뒈져서 열을 내는 거야?’
나는 어처구니없이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속으로 납득을 했다.
‘하긴… 그러고 보니 콘스 교수와 손을 잡은 것도 아크 교수가 마물을 건드린 것 때문이었지.’
물론 베크 교수가 자기의 몸보다 마물을 더 중요시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그렇… 죠. 하지만 대회의가 열린다고 하니, 더스틴의 추방은 거의 확정될 것 같습니다만…….”
“그래! 지금 그게 문제야!”
“…예?”
더스틴의 추방이 문제라니?
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놈이 그대로 아카데미에서 추방당하면 난 누구한테 화를 풀어야 할까?”
“아…….”
더스틴이 분노로 일그러진 눈으로 날 응시하며.
음산하게 말한다.
“누가 더스틴을 사주했건 그건 이제 중요하지가 않아. 중요한 건 그 개 같은 리치 새끼가 뒈지는 꼴을 내 눈으로 봐야 하는 거지.”
“허어…….”
‘그래? 내가 사주하긴 했는데… 그거 고마운 일이네.’
속내와 달리 나는 나지막이 탄식을 내뱉으며 말을 이어 갔다.
“하지만 그걸 왜 제게…….”
“듣자 하니 이 아카데미 안 어딘가에 더스틴의 라이프베슬이 있다는 소문이 있어. 예전에야 그러려니 하고 넘겼었는데 생각이 바뀌었어. 그걸 찾아야겠어. 정확히는 너와 하인들이 말이야.”
베크 교수가 날 응시하며 고개를 까딱인다.
‘찾으려면 네가 찾든가?’
“…예? 하지만 저희보단 교수님께서 움직이시는 게 더 확률이 높을 것 같은데…….”
“내가 움직이기 어려우니 너한테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저희가 무슨 수로 그걸…….”
내가 말꼬리를 흘리자.
베크 교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응시하며 말한다.
“찾아야 될걸?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한 놈도 빠짐없이 죽일 거니까.”
‘이 미친놈이 뭐라는 거야?’
자기 실력이 딸려서 더스틴에게 당한 걸.
왜 애꿎은 하인들에게 화풀이한단 말인가?
‘물론 내가 부추기긴 했다만…….’
“아마 이번 대회의에서 더스틴의 추방이 결정될 거고, 삼 일 정도의 정리 기간을 주겠지. 그 삼 일 안에 더스틴의 라이프베슬을 찾아내.”
“…삼 일 안에 말입니까?”
삼 일?
솔직히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당장 라이프베슬을 줄 수도 있긴 했다.
‘하지만 그래 봐야 이쪽이 얻을 수 있는 게 없단 말이지.’
나는 슬쩍 베크 교수를 살피곤.
슬며시 운을 던졌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하인들에게 동기부여를 주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뭐?”
“예를 들어 라이프베슬을 찾는 하인에게는 외출할 수 있는 권리를 준다든가요. 그렇게 하면 아마 하인들도 더 목숨 걸고 라이프베슬을 찾으려 하지 않겠습니까?”
내 의견이 재미있다고 여긴 것일까.
“…외출할 수 있는 권리?”
베크 교수가 실실 미소를 흘리더니.
와락-
돌연 하나밖에 남지 않은 팔로 내 멱살을 잡아채며 으르렁거린다.
“콘스 교수님이 뒤를 좀 봐주니까 네가 뭐라도 되는 것 같아? 넌 일개 하인 새끼들의 대가리일 뿐이야.”
“교수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저는 일개 하인장일 뿐입니다. 하지만 라이프베슬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황에 하인들에게 최소한의 동기부여라도 주는 것이 일의 효율을 올리는 데 좋지 않을까 생각했을 뿐입니다.”
나는 옅은 미소를 흘리며 계속 말했다.
“저는 오랜 기간 하인들을 봐서 그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동기부여를 하면 일의 능률이 월등하게 올라간다는 걸 말이죠.”
“하…….”
내 말이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베크 교수는 짜증스러운 한숨을 내뱉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뭐, 좋아. 라이프베슬을 찾아내는 놈은 내가 반드시 이곳에서 내보내 주겠다고 그래.”
“…알겠습니다.”
물론 난 베크 교수의 말을 믿지 않았다.
‘말은 저렇게 해도 정말 라이프베슬을 받는 순간, 입만 싹 씻고 넘어갈 확률이 높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하인들에게 해당 사항을 전달하도록 하겠…….”
내가 꾸벅 인사를 하고 문을 젖히던 그때.
웅웅웅-
[베크…….]
문틈 사이로 선명하고도 붉은 두 개의 안광이 흉흉하게 번뜩이고 있자.
‘이런 미친…….’
깜짝 놀란 나는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더스틴은 제 집인 양 집무실로 들어와.
[편안해 보이는군.]
내 존재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베크 교수에게 지팡이를 겨눈다.
‘저 새끼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분명 지하 감옥에 처박혀 있어야 할 더스틴이 왜 여기에 있단 말인가?
“더스틴… 어떻게 감옥에서 빠져나온 거지? 분명 마력 구속구를 채웠을 텐데……?”
[곧 죽을 놈이 이유 따위를 알아서 뭐 할까.]
더스틴이 갑자기 마법을 시전하자.
“크윽… 더스틴!”
베크 교수의 남아 있던 오른팔이 삽시간에 썩어 들어 가.
바닥에 툭 떨어진다.
[이런… 하나 남은 팔마저 잃게 됐군.]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지? 내가 뭘 잘못했다고!”
[지옥에서 내 용서를 기다리고 있게.]
퍽-
검은 마력이 지팡이에서 쏘아져 나가자.
베크 교수의 목에 붉은 사선이 그려지고.
툭-
베크 교수의 목이 힘없이 떨어져 바닥을 구른다.
[후우…….]
부패 저주를 시전하여 베크 교수의 흔적을 완전히 지워 버린 더스틴.
[이제야 분이 좀 풀리는군.]
그는 시체가 있던 자리를 보며 너털웃음을 터뜨리다가.
[근데 넌 왜 이곳에 있는 거지?]
불현듯 고개를 돌려 날 응시한다.
‘빌어먹을…….’
솔직히 조용히 나가 주길 바랐건만.
눈앞의 리치 놈은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대체 어떤 새끼가 이 미친놈을 풀어 준 거야?’
나는 더스틴의 안광을 마주하며 다급히 머리를 굴렸다.
‘이놈과 싸우는 건 미친 짓이야. 베크도 별 반응도 못 하고 죽었잖아?’
물론 베크가 지팡이를 잡지 못한 것도 있긴 했으나.
그만큼 베크와 더스틴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었다는 것일 터.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넘길 수 있지? 생각해! 생각하라고!’
[상관없겠지. 죽이면 될…….]
더스틴이 무어라 말하려던 그때.
나는 재빨리 소리쳤다.
“베크 교수가 제게 열쇠를 찾으라고 하더군요.”
[…열쇠?]
다행히 더스틴이 반응을 보이자.
난 얼른 말을 이어 갔다.
“예. 라이프베슬이 들어 있는 상자를 열 수 있는 열쇠를 찾으라고 했습니다.”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