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카데미의 노예가 살아남는 법-31화 (31/200)

31.

‘백탑의… 마법사들이 쓰는 술식이라고? 분명 이 술식을 사용한 놈은 더스틴인데…….’

그럼 더스틴이 생전에 백탑의 마법사이기라도 했던 걸까?

‘놈의 과거사를 아는 사람이라고 해 봐야 아마도 볼드 학장 정도가 전부일 테니까.’

더스틴은 얼마나 오랜 세월을 살았을지 모를 리치다.

그의 과거사를 아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만약 더스틴이 백탑의 마법사였다면… 그건 좀 의외네.’

백탑을 비롯하여 양지의 마법사들이 흑마법사들을 혐오하는 건 너무 당연시되는 세상이다.

‘그런데 백탑 출신의 마법사가 리치가 됐다라……. 내가 모르는 비사가 있을지도 모르겠지.’

그러나 지금은 더스틴의 과거사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보다… 도프는 방금의 술식이 백탑의 술식이라는 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설마… 도프도?’

난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도프를 바라봤다.

“도프, 생전에 백마법사였어요?”

[그랬던 시절도 있었다만 그게 뭐가 중요하냐?]

스켈레톤이 푹 한숨을 내쉬자.

난 어처구니가 없어 그를 바라봤다.

“마법사 출신이라는 걸 들켰으면 무조건 실험체행이었을 텐데, 어떻게 하인장까지 되셨네요.”

[그러니까 그게 무슨 소용이냐고. 그렇게 아득바득 살아남았어도 결국에는 스켈레톤이 됐는데…….]

도프는 씁쓸히 답하더니 잠시간 말을 잇지 못한다.

“제가 괜한 말을 꺼내서…….”

[됐어. 어차피 언젠간 죽었겠지. 하인장이라는 자리가 좀 위험한 자리냐? 그러니까 너도 잘 처신해. 죽는 건 한순간이야.]

“…그래야죠.”

뼈가 담긴 묵직한 충고에 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프의 말이 맞아. 예전보다야 상황이 나아졌다곤 하지만 나도 언제 처분될지 몰라.’

지금이야 콘스 교수와 아크 교수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알력 다툼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다지만.

‘그 줄이 끊어지는 순간 나도 위험해질 테니까.’

내가 상념에 잠겨 있던 그때.

도프가 툭 질문을 던진다.

[그보다 그 술식은 어디서 들은 거야?]

“아… 그게…….”

‘여기서 더스틴을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

아무리 도프가 과거의 하인장이자 도서관의 사서라고 해도.

그가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니까.

“저번에 지하 감옥에 들어온 마법사가 계속 그 술식을 읊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괜히 호기심이 들더군요.”

[…술식을 계속 읊었다고? 희한하네…….]

도프가 뼈만 남은 뒤통수를 긁적이자.

난 얼른 질문을 던졌다.

“왜요? 그 술식이 뭔데요?”

[보통 백탑의 수뇌부들이 사용하는 마법인데, 별건 아니고 일종의 경계마법이야.]

“경계 마법이라면… 콘스 교수의 집무실에 달린 그 눈알이랑 비슷한 건가요?”

나의 물음에 도프가 고개를 끄덕인다.

[잘 이해했네. 근데 그 마법사도 희한하네……. 그래도 백탑의 수뇌부 정도 되는 양반이 뭘 하다가 잡혀 온 건지도 모르겠고, 왜 지하 감옥에서 계속 그걸 읊었을까……. 뭔가 중요한 거라도 놓고 온 건가?]

“도프, 그보다 그 경계 마법을 파훼할 방법은 없나요?”

[경계 마법을 파훼할 방법? 있기야 하지. 근데 그걸 네가 알아서 뭐 하려고?]

‘하긴… 도프 입장에선 납득이 되지 않겠지.’

한낱 하인장이, 그것도 백탑의 경계 마법을 파훼하는 방법을 알아서 무엇 하겠는가?

‘그럼 납득할 이유를 만들어 줘야지.’

“도프만 알고 계세요. 그 마법사가 보물 창고 위치를 알려 줬거든요.”

[…뭐?]

도프는 지그시 날 바라보다가.

[푸하하하하하!]

딱딱거리며 웃음을 터뜨린다.

[설마 그걸 진짜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 진짜라고 쳐도, 에라이! 나가지도 못할 거, 그게 무슨 소용이냐?]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요. 열심히 일한 대가로 특별 사면이라도 시켜 줄지 누가 알겠어요?”

[그래… 그런 꿈이라도 있어야 조금은 살맛이 나겠지. 깃펜 줘 봐.]

도프는 내게 건넸던 양피지와 깃펜을 홱 낚아채 가더니.

양피지 위에 무언가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옜다.]

“이건…….”

난 양피지에 적힌 내용을 살피곤.

힐끔 도프를 바라봤다.

“정말 이게 파훼법이 맞아요?”

양피지에 적혀 있는 건 어째선지.

바질리스크의 꼬리와 비홀더의 눈알 따위의 재료들이었다.

[원래는 그 마법사가 말한 술식을 그대로 따라 하면 되지만 넌 마력이 없잖아? 그러니까 재료들을 적어 준 거지. 능력이 없으면 노력이라도 해야 되지 않겠어?]

“아아…….”

‘이런… 똑같이 읊으라는 사실을 먼저 말해 줬어야지. 하기야 도프는 내가 흑마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니, 자기 나름대로 선의를 베푼 거겠지.’

나는 속내를 삼키곤 옅은 미소를 보였다.

“고마워요, 도프.”

[고마우면 다음에 올 때 좀 단단한 팔뼈 좀 들고 와 줘. 팔이 헐렁거리니까 책 꽂는 것도 힘들어 죽겠다.]

도프가 자신의 덜렁거리는 왼팔을 들어 보이며 투덜대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가장 좋은 뼈로 좀 구해다 달라고 하인들한테 이야기해 놓을 게요.”

[그래. 그리고 자주 좀 놀러 오고.]

도프의 푸념을 뒤로하고.

난 조용히 도서관을 나갔다.

“음음, 새로운 마물 사전이 들어왔다니… 난 정말 운이 좋아.”

‘베크 교수? 책을 찾으러 온 건가?’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도서관에 들어가는 베크 교수를 힐끔 살피다가.

곧 관심을 거두었다.

‘정말… 운이 좋았어. 생각지도 못한 성과를 얻었네. 설마 도프가 백탑의 마법사 출신이었을 줄이야…….’

물론 도프가 자신의 출신 성분을 숨긴 건.

나름대로의 생존 방법이었겠으나 내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덕분에 더스틴의 비밀의 방에 들어갈 방법을 알게 됐으니까. 나중에 좋은 뼈를 구해다 줘야겠어.’

그 길로 다시 2층의 동쪽 끝에 있는.

더스틴의 비밀의 방이 있는 자리로 이동하려던 그때.

저벅-

‘저건… 더스틴, 그 방에서 나온 건가?’

계단을 타고 올라오는 리치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더스틴은 나 같은 건 관심도 없다는 듯 무심히 계단을 오르다가.

홱-

갑자기 고개를 돌려 날 응시한다.

[흠…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살얼음이 얹힌 것 같은 목소리가 내 뇌를 울리는 것 같았으나.

난 최대한 침착하게 입을 뗐다.

“순찰을 돌고 있었습니다.”

[하인장이 직접 순찰을 돈다고?]

‘아, 그냥 좀 가라.’

난 더스틴의 노란 안광을 보며 천천히 입을 뗐다.

“더스틴 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요즘 하인의 숫자가 워낙 많이 줄어서 말입니다. 그래서 저도 부득이하게 순찰을 돌게 됐습니다.”

[그런가…….]

내 변명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더스틴은 눈길을 돌려 계단을 타고 3층으로 사라진다.

‘후…….’

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난 비로소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놈과 마주치는 건 거북하지만, 지금은 정말… 운이 좋았어.’

더스틴이 그 방에서 나온 걸 내 눈으로 확인했으니.

그 비밀스러운 곳에 들어가는 것도 부담이 없을 터.

‘얼른 가자.’

난 재빨리 2층 동쪽 끝에 있는 더스틴의 비밀의 방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여.

더스틴이 술식을 그렸던 벽면을 응시했다.

‘여기다가 더스틴이 부여한 술식을 그대로 적용하면 된다 이거지?’

난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곤.

“앗실라마시 엔드라미스 엔타카니움…….”

아공간 주머니에서 지팡이를 꺼내어 흑마력을 끌어 모아.

더스틴이 그렸던 술식을 따라 그리기 시작했다.

‘…이게 정말 될까?’

불현듯 의심이 튀어나오기도 했으나.

난 애써 의심을 누른 채 계속 마법을 구현했다.

“…앙게하 드라스!”

이윽고 더스틴이 한 것처럼 내가 술식의 완성을 끝마치자.

드드드드득-

정말 벽돌들이 뒤집히며 검은 공간이 내 앞에 열렸다.

‘이게 진짜로 되다니…….’

솔직히 안 될 걸 생각하여 재료를 모으는 방법도 생각해 보긴 했지만.

‘백탑의 마법이라고 해서 안 될 줄 알았는데, 흑마력으로도 술식을 완성할 수 있을 줄이야…….’

설마 이렇게 쉽게 열릴 줄은 몰랐다.

‘이 너머에 뭐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들어가 보자.’

난 지팡이를 쥔 채.

조심스럽게 검은 공간을 향해 발을 들이밀었다.

‘생각보다 어둡진 않네.’

겨우 사람 한 명이 지나갈 수 있는 길.

그 위에 박힌 야명주 덕분에 나는 내가 들어온 곳이 기다란 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런 공간을 직접 만든 건가? 원래 흑카데미에 있던 걸 더스틴이 발견하고 사용하고 있던 걸까?’

혹시나 더스틴이 함정을 설치한 건 아닐까 하여.

난 언제든 성마법을 사용할 수 있도록 신성력까지 손에 응집시켰다.

‘함정은… 없는 건가? 하긴… 누가 이곳을 찾을 수 있겠어? 그보다 더스틴은 이런 곳에서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끊임없는 의문을 안은 채 난 길을 걸었고.

‘이곳은…….’

난 곧 내가 커다란 동공 안으로 들어왔음을 깨달았다.

‘실험실은 아닌 것 같고… 창고로 쓰고 있던 건가?’

동공 안에는 잡다한 물품 따위들이 뒹굴고 있었는데.

대부분은 뭔지 모를 잡동사니들이었다.

‘젠장… 정말 이곳에 더스틴의 라이프베슬이 있긴 한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심장인 라이프베슬을 이딴 창고에 처박아 놓진 않았을 것 같은데… 내가 잘못 짚은 건가?’

아니다.

그럴 리 없다.

‘분명 하인들에게서 진기를 뽑아서 여기로 왔잖아? 더스틴이 그런 행동을 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거야.’

나는 차분히 쌓인 잡동사니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건 옛 대륙의 지도인 것 같고……. 뭔 놈의 양피지가 이렇게 많아?’

낡고 헤진 양피지 안에는 더스틴이 사람의 시절일 때 연구하던 연구들이 적혀 있었으나.

그것들은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라이프베슬을 찾아야 하는데……. 하다못해 뭔가 나한테 도움이 될 법한 거라도…….’

내가 계속 잡동사니들을 뒤지고 다니던 그때.

파자자자자작-

“으윽…….”

무언가 강렬한 기운이 내 손을 강타했고.

웅웅웅웅-

그에 대항하듯 내 몸에 있던 신성력이 일어나 내 손을 보호하듯 감싸는 것 아닌가?

‘갑자기 신성력이 왜… 설마 이것 때문인가?’

난 저린 손을 흔들며 방금 만졌던 지팡이를 내려다봤다.

‘그냥 평범해 보이는 지팡이인데 왜 신성력이 강렬하게 거부반응을 일으킨 거지? 아, 설마… 저주받은 지팡이인가?’

그렇다면 어느 정도 말이 되긴 한다.

신성력과 저주는 극과 극의 관계였으니까.

‘하지만 더스틴은 이딴 걸 왜 이런 곳에 놔둔 거지? 그래도… 뭔가 이유가 있으니까 이걸 여기다 박아 둔 것 아니겠어?’

지팡이가 정확히 어떤 건지는 모르겠으나.

난 일단 그것을 양피지들로 감쌌다.

‘으음…….’

여전히 강렬한 저주의 기운이 내 손을 자극하자.

‘아오! 아파 죽겠네!’

난 얼른 지팡이를 냅다 내 아공간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후… 아직도 얼얼하네. 평범한 학생들이 집었다면 분명 저주에 걸려 죽었겠지.’

난 손을 휘적거리며.

동공 지천에 널브러진 잡동사니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보다… 진짜 어떻게 더스틴의 라이프베슬을 찾지? 찾을 수는 있는 건가? 아니, 진짜 여기에 있긴 한 걸까?’

더스틴은 왜 이런 공간을 창고로 이용하고 있었던 건지.

괜히 짜증이 치솟았다.

‘아니, 명색이 비밀 공간이면 정리도 좀 하고, 중요한 건 중요한 것처럼 보이게 놔둬야 찾는 사람도 좀 편할 것 아냐?! 에이씨… 모르겠다. 일단 최대한 뒤져 보자.’

언제 또 더스틴의 눈을 피해 이곳에 들어올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막말로 지팡이가 없어진 걸 눈치챌 수도 있으니까. 오늘 무조건 승부를 본다. 나와라, 나와! 라이프베슬스러운 거! 나와!’

그렇기에 난 거침없이 잡동사니들을 헤집기 시작했다.

‘나와라! 나와!’

바닥에 널린 잡동사니들을 던지고 부수고 반복하길 두어 시간.

‘후우… 웬만한 건 다 살핀 것 같은데…….’

계속되는 탐색에 난 반쯤 지쳐 바닥에 주저앉았다.

‘진짜 없는 건가……. 하…….’

여기서 물러나야 하는 걸까?

아직은 아니다.

‘오늘이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없어. 뭐라도 찾아야 된다고!’

해가 뜨기까진 아직 시간이 남았다.

‘나와! 나오라고! 라이프베슬!’

난 포기하지 않고 계속 잡동사니들을 헤집어 놨다.

그러던 그때.

‘흠…….’

잡동사니들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던 중.

나의 눈에 작은 목각함 같은 것이 들어왔다.

‘이건 뭐지? 끙… 잠겨 있네.’

열쇠 구멍이 있는 걸로 봐선.

아무래도 열쇠가 있어야만 상자를 열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마법으로는 못 여나?’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상자에 부패 마법을 걸어 봤으나.

상자에는 티끌 만한 변화조차 없었다.

‘평범한 나무 상자처럼 생겼는데 마법이 먹히질 않는다고? 이것 봐라?’

설마 이 안에 더스틴의 라이프베슬이 있는 건 아닐까?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슬며시 상자를 흔들어 봤다.

덜그럭-

‘안에 뭔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설마 진짜로 라이프베슬이겠어?’

상자 안의 내용물을 확인할 수 없는 탓에 확신을 하긴 어려웠으나.

난 결국 상자까지 챙겨 더스틴의 비밀의 방을 나갔다.

‘안의 다른 것들도 더 챙기고 싶긴 하지만 아공간 주머니가 그렇게 넉넉하지 않으니…….’

내가 입맛을 다시며 복도를 빠져나가.

2층의 로비를 걷고 있던 그때.

[누구냐! 누구냐!]

붉은 안광을 흘리며 하늘을 날듯.

광란의 속도로 질주하는 더스틴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뭐… 뭐야…….’

놈이 흘리는 분위기가 하도 살벌했던 탓에.

난 반사적으로 즐비하게 놓여 있던 악마들의 석상 뒤에 몸을 숨겼다.

[감히… 감히!]

더스틴이 귀곡성 같은 고함을 내지르며.

우측 복도로 사라지자 난 그제야 고개를 내밀고 상황을 살폈다.

‘간 건가……. 그보다 저놈은 갑자기 왜 저렇게 눈깔이 뒤집혔…….’

그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내 뇌리를 강타하자.

난 들고 있던 상자를 슬며시 내려다봤다.

‘설마 진짜로 이 안에 라이프베슬이 들어 있던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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